정왕 장날 팥죽 한 그릇
3월 30일 수요일 오늘은 정왕동 5일 장. 1일 5일 10일 하는 장이지요.
과거엔 장이 서는 넓직한 자리가 있었을테지만 요즘은 신도시로 둔갑하고나서 펼칠 곳 없어 도로를 점령한 것이 그래도 꽤 친근감 있고 접근성 좋아 특히 우리 동네 주민들 사랑받는 장터랍니다.
장 볼 일 없는 사람들이야 한 구획 걸어 지나기기 곤혹 스럽지만 그래도 마음 좀 돌려놓고 천천한 마음으로 둘러보며 걷다보면 딱이 살 것 없어도 솔찬이 재미있는 장터랍니다.
물론 안산 시민장이나 화개장터나 성남 모란장 같지는 않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장입니다.
우리 아파트에서 걸어서 딱 4분이면 장터에 도착하니 참 편리도 하고 가끔은 이런 서민적 접근성 때문에 행복을 느낍니다.
오전에 집사람이 강의갔다 와서 시간나면 두부 두모 사다 놓으라는 말에 팥죽도 한 사발 먹고싶어 어슬렁 어슬렁 나갔지요.
대로 코너집이라서 장터 중 가장 가까운 곳인데' 이렇게 가까운 지척거리에 요렇콤 멋진 포장집 팥죽 가게가 있을 줄은 몰랐지요.
팥죽 뿐이 아니랍니다.
진작에 알았지만 실제 들려 보긴 처음이랍니다.
강의갔다 오는길에 지나쳤는데 오늘은 저 잔치 국수든 팥죽이든 꼭 한 그릇 뚝딱 해 보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서 말입니다.
오늘은 팥죽 한 그릇에 땡치야겠지만 담엔 꼭 잔치국수도 먹어볼랍니다.
팥죽 한 그릇에 3500원, 잔치국수 2500원, 어디가서 2500원에 국수 한 그릇을 먹어요?
안산 시장에서 늘 4000원 주고 먹으면서도 싸다, 싸다 하며 먹었는데 오늘은 본죽이나 가서야 먹어 보는 8000원 짜리 팥죽에 비해 그 어떠한가를 따져 볼 생각입니다.
5월호 서예잡지 연재기사에 올릴 작가로 과천이 집이시고 서초구에 연구실을 두신 무곡 최석화 선생을 선정하고는 과제를 뽑아 우체국에 일반 우편물로 부치고는 집 사람 부탁한 두부 두모를 2000원에 샀습니다.
이 집 두부는 비록 길거리 장터 두부이지만 직접 갈아 만드는 두부라서 날로 먹어도 참 고소합니다.
더욱이 후라이팬에 노랗게 구워 달래 간장에 찍어 먹으면 더욱 고소하지요.
그러지 않아 마침 집사람이 좀 전에 달래를 사다 놓았군요.
아참,
지난 장에 사온 사과는 홍옥인지, 모양이 작고 상큼한 맛이 적어 그냥 남았는데 오늘은 알이 좀 굵은 놈만 파는 단골집에 가서 7개를 사야겠군요.
네~ 역시 이집 아저씨 변함 없이 7개 굵은 놈으로 5000원 하는군요.
검정 비닐 봉다리 두개, 한 손에 사과 한 손에 두부, 양손에 하나씩 들고 걸으니 봉지마다 움직이는 양이 다르군요.
예의 팥죽집에 처음 들어서면서도 단골인 척하고 썩 들어서서 "팥죽 한 그릇!" 하니 쥔 아주머니 역시 단골이 찾아 온듯 이무롭지 않게 "예~ 어서오세요, 팥죽 한 그릇이요?" 하고 대답합니다.
끝 자리에 앉아 따끈하게 뎁혀 오는 사이 내일로 다가온 짧은 중국어 연설이 걱정이 돼 놯서 외우느라 일분 여유도 아까워 연신 들여다 보는데 코 앞에 들이민 팥죽이 한 사발 가득하군요.
옹심이도 있고 그 걸죽함이 과거 제천 시장에서 먹던 멀건 팥죽보다 좋아 보입니다.
선불이라 하기에 3500원 지불하고 팥죽을 먹었습니다.
맛이요?
아 ! 맛 좋아요. 약간 달기가 덜 한데, 차라리 덜 단 것이 제게는 도움이되지요. 뜨거워 식힐겸 천천히 먹어도 절반을 넘게 먹기는 어렵네요.
왜냐구요?
저는 먹는 양이 그리 많지 않거든요, 다른사람에 비해 절반, 많아야 삼분의 이를 먹습니다.
그래서 각자분으로 놓여진 식단에서 음식을 남기고 나갈때는 주인이 맛 없어 남기는가 오해 할까보아 구태어 남긴 이유를 설명하곤 하지요.
그런데 오늘은 그럴 이유 없이 할랍니다.
좀더 천천히, 그래서 다시 중국어 연설문 꺼내들고 들여다 보다 또 한 술 퍼 넣곤 하다보니 어느새 한 사발 다 먹고도 장이 버겁지 않습니다.
아~ 본죽에 비해 어떠냐구요?
물론 본죽 보담은 양은 좀 적습니다. 옹심이도 약간 작고도 적습니다. 그렇지만 맛은 차원이 달라요.
본죽보다 맛 있다 없다 할 게제는 아니지만 어쩌면 본죽 맛이 더 낫다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본죽 맛은 요즘 젊은이들 입맛에 맞춘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집 팥죽은 그런게 아니고 옛날 시골 맛 나는 팥죽이군요.
나올 때 잘 먹었다는 인사는 필요 없을 듯하여 그냥 나옵니다.
왜냐면 그 쯤에는 포장가게 안에 사람이 꽉 차서 주인 내외가 분주해 보였거든요.
나오면서 슬쩍 옆지리에 애들 둘 데리고 들어와 잔치국수 시켜놓고 막 젓갈짝 들기 시작한 국수 그릇을 보니 양이 그리 적지는 않은 듯 합니다.
든든한 뱃속을 어루만지며 나오니 마음은 야곱에게 장자권 팔아먹고 대신 받아먹은 팥죽 만큼이나 가치있어 보입니다.
먹고나서 집에 잠시 누웠는데 집시람이 전화가 오는군요.
"여보, 빨리 나와봐요. 한ㅇㅇ랑 여기 당신이 말하던 국수집에 와 있는데 빨리 나와요"합니다
"아니야. 나 방금 거기서 팥죽 먹었어. 당신이나 먹고 들어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이쪽 지역에 황사가 아주 심합니다.
지구가 반대로 돌면 우리네 먼지가 다 중국으로 갈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