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비
발바닥이 간지럽다.
씨앗들이 기지개를 켜며 뾰족이 고개를 내민다. 겨우내 움츠렸던 다리 쭈욱 펴고 발바닥 까치발하고 머리 살짝 내밀며 봄비 맞는다.
‘봄비’하고 말하면 입술이 간지럽다. 간지러운 입술에 침을 바르고 엿듣듯이 가만히 귀 기울이면 새싹들의 간지러운 웃음소리 들린다. 실개천의 버들개지 보드라운 솜털이 귓속을 간지럽힌다. 봄비는 그렇게 우리들 가장 예민한 촉수를 살짝 애무하며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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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는 실로폰의 ‘라’음으로 내려온다. 약간 반올림 된 실로폰의 맑은 음이 들린다. 노란 비옷을 입고 일기예보를 하는 아나운서의 퐁퐁 튀는 음성처럼 봄비는 물오른 가지에, 메마른 대지에 퐁퐁 튀는 악보 하나 던져준다.
봄비는 천천히 촘촘히 날실로 내린다. 사르륵사르륵 명주실 잣는 소리로 내린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연두색 풀잎들이 씨실로 얽힌다. 봄비는 차갑고도 부드러운 연두색 비단 초례이불이다. 맨살에 감겨오던 그 첫 느낌처럼 가슴 설레는 촉감을 가져다준다.
봄비는 분주하게 내리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을 분주하게 한다. 헛간에 매달려 있던 씨앗들, 혹은 마루 밑 찌그러진 깡통 안에서 겨울을 보냈던 씨앗들, 우엉씨, 상추씨, 아주까리씨, 호박씨... 이제 어머니의 분주한 손길로 촉촉이 젖은 흙 내음 맡을 것이다.
호미도 곡괭이도 쟁기도 봄비 소리에 부스스 실눈 떠 본다. 봄비 그치면 주인의 손을 잡고 낯익은 들판으로 나갈 것이다. 이랑 이랑마다 한해의 꿈밭을 만들 것이다. 부지깽이에도 싹이 나게 한다는 봄비, 우리들 가슴에도 희망 하나 심어 준다.
봄비 오는 새벽 멀리서 울리는 첫차의 기적소리는 가을에 떠났던 누군가가 돌아올 것 같은 기다림을 준다. 봄은 오래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지만, 봄비는 손수건 귀퉁이에 수놓았던 제비꽃 그리움을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게 한다.
봄은 봄비로서 봄을 알린다. 봄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여린 새싹들의 소리 듣게 하고 움트지 않은 꽃망울의 소리마저 듣게 한다. 봄비는 명자나무 붉은 꽃망울 사이로 살짝 웃음 띠며 단발머리 키 작은 어린 날의 명자로 돌아온다.
가슴 봉긋한 가지마다 그리움이 부풀었다. 그 그리움 끝내 견디지 못하고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면 어느새 봄비 신열을 다스린다. 그러나 봄비 그치고 나면 명자나무 여기저기서 초경을 맞느라 화들짝 다시 한 바탕 신열로 앓을 것이다.
봄비는 도화지에 연하게 칠해놓은 노란색 바탕 물감이다. 산수유와 개나리, 유채꽃 그 노란 현기증 속에 잠시 이마를 짚고 까무러쳤다가 다시 배시시 웃음지으며 일어나는 어지럼병이다. 지랄도... 그 말끝에 흐르는 말없음표 같이 연민과 안도감과 장난기가 배어 있다.
온통 노란색이었다가 온통 분홍색이었다가 그야말로 노란색 꽃에는 노란비 내리고 분홍색 꽃에는 분홍비 내린다. 내 마음의 색깔 따라 달라지는 봄비, 추적추적이 아닌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는 그래서 늘 생동감을 안겨준다.
가을비는 눈을 감고 향기를 맡게 하지만 봄비는 눈을 뜨고 소리를 듣게 한다. 가을비는 형용사로 다가오지만 봄비는 동사로 다가온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고 봄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봄의 왈츠가 보이고 봄의 교향곡이 들린다.
봄비는 여름비처럼 질척거리지도 않고 가을비처럼 처량하지도 않고 겨울비처럼 고독하지도 않다. 황량한 2월을 건너온 귀한 손님인 봄비는 온돌방 아랫목에서 이불깃 끌어당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옷 한번 적셔보게 한다.
만개한 꽃들을 일시에 데려가는 황사비가 아닌 이른 봄에 내리는 봄비는 물오른 나뭇가지에 맺힌 작은 물방울과도 조곤조곤 얘기 나눌 수 있게 한다. 순식간에 하늘까지 닿는 콩나무를 타고 한 보따리 동화를 가져와 파랗게 풀어놓는다.
봄비는 오래 전에 잊고 있었던 그의 이름이다. 흩어졌던 자음과 모음들이 비로소 짝을 맞춰 문득 내 가슴에 연서로 뿌려지는 설렘과 아득함이다. 꼬깃꼬깃 접었던 그리움의 키를 훌쩍 키우고 말라 있던 가슴 한구석 여린 새싹 하나 뾰족이 돋아나게 한다. (2007. 4. )
첫댓글 장정순님의 글. 정서와 감성, 맛깔나는 언어의 선택이 돋보이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