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兄님 예산, 女史 예산>20101214
지금은 이 나라가 다시 전쟁상태에 들어간 비상시국이다.
우리가 적으로부터 느닷없이 백 수십 발의 포탄 공격을 받아
군인과 민간인이 죽고 연평도가 쑥대밭이 돼 버린 지가 며칠 되지도 않는다.
거기 살던 주민들은 갈 곳을 잃고 오늘도 이 거리 저 마을을 헤매고 있다.
언제 또 다시 북의 대포알이 날아올지 언제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정치판은 "형님 예산"이니 "여사 예산"이니 "날치기 예산안"이니
"장외 투쟁"이니 하며 여야가 진흙탕 속에서 개 싸움하듯이
처절하게 물고 뜯는 데만 죽기 살기를 하고 있다.
강도가 집에 들어와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데도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는 철부지들을 보는 것 같다.
한국의 정치판과 국회는 역시 세계 제1의 개판이요 난장판이라는 사실은
이 국가적 비상사태하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여야 의원들은 나라가 무차별 포격을 당했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면서도 자기들의 세비만큼은 5%이상 올렸다.
그것도 북의 연평도 포격도발 직후 모든 국민의 신경과 관심이 거기에
쏠려 있을 때 한 짓이니 그 얼굴 두꺼운 파렴치성과 이악(利惡)스러움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국 국회의 새해 예산안 처리라는 것은 여야의 협의와 조정 타협을 통해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 극한 대립과 육탄전, 피 터지는 폭력사태,
그리고 한국 국회가 세계 제1의 난장판이라는 사실이 국내외에 충분히
홍보되고 나라꼴이 개꼴이 된 뒤라야 날치기 처리되거나 會期를 넘기는 일이
예산국회의 관행처럼 돼 왔다.
여당이 국회에서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했다는 얘기는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어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형님 예산"이니 "여사 예산"이니 하는 것은 올해 나온
新種 아이템이다. "형님 예산"이니 "여사 예산"이니 하는 新種 아이템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야당이 문제 삼고 있고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을 위한
것처럼 알고 있는 소위"형님 예산"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상득 의원 지역구인 포항 일대의 예산이 1360억 원이나 더
반영됐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울산~포항 고속도로(100억원), 울산~포항 복선전철(520억),
포항~삼척 철도공사(700억) 등의 사업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 사업들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
동생이 대통령이 된 뒤에 이상득이 동생 빽을 믿고 새삼스럽게
만들어 낸 것들이란 말인가?
아니다. 그 사업들은 이상득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이다.
김대중 노무현 때 북한을 통해 유럽으로 가는 유라시아 철도를 만들겠다며
어거지로 밀어부쳐 온 것들이다.
그때 벌써 타당성 조사와 설계를 마쳤고 해마다 예산집행을
해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안 할 수도 없는 사업들이다.
땅을 사고, 그 지역 주민들이나 시설들까지 이주시켰는데
어떻게 안 할 수가 있겠는가?
한 두 해에 끝나는 사업들도 아니다.
10년 이상이 걸리는 장기 사업이기 때문에
해마다 천억 원 대의 예산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또 이상득의원의 지역구에만 한정된 사업도 아니다.
단지 포항 지역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민주당에서
"형님예산"이란 꼬리표를 붙여놓고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박지원의 지역구 예산이 200억 이상 늘어난 것에 대해
"저만 빼먹었다"며 민주당 의원들이 들고일어나자
박지원은 "F1 자동차 경주대회 공사비 200억원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며
극구 변명하고 있지 않은가?
이상득은 왜 병신처럼 말을 못하는가?
박지원이 하는 식대로 "김대중과 노무현이 유라시아 철도 건설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북을 돕기 위해 벌인 사업들로서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이라고 왜 말을 못하는가?
도마 위에 오른 "여사 예산"이라는 것도 꼬리표를 붙인 것이다.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범정부 차원의
한식 세계화 추진단의 '뉴욕 한국식당'예산 50억 원을 말한다.
이것은 정부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민간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뉴욕에 고급 한식당을 개업하겠다며 책정을 요구한 것으로
국회 심의 과정에서 백지화됐지만 예산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바람에
얼결에 묻어서 처리된 것이다.
예산안의 날치기 통과는 서글픈 일이다. 국회에서 충분한 심의 조정 절차도
밟지 못한 채 해마다 새해 예산안이 날치기로 통과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은 말할 수 없이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행태는 아무리 변명을 해도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꼬리표 붙이기이다.
사실과는 다르지만 일단 꼬리표를 붙여놓고 나발을 불어대면 기정사실처럼
돼버린다. "형님 예산"이라고 꼬리표를 붙여버리면 사실 관계를 떠나서
이상득을 위한 예산처럼 돼 버린다. "여사 예산"이라고 꼬리표를 붙이면
김윤옥을 위한 예산처럼 돼 버린다.
이런 행태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국민들을 오도하는 것이고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는 고도의 선동술이다.방송 신문도 어느 일방의 주장을 단순한
"말 전하기, 말 옮기기" 식으로 무책임하게 보도하고 말 일이 아니다.
일반인들도 사실 관계를 알 수 있도록 알리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중을 속이고 선동을 부추기려는
고도의 선동선전술에 넘어가지 않도록 알려줄 책임이 있다.
꼬리표 붙여놓고 공격하기는 공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선동선전술이라는
사실에 유의하고 거기에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안보 국방 국가의식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흔들리고 있는 것도
그런 선동술에 놀아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앞으로 있을 대선, 총선 등을 앞두고
①형님예산, 여사예산과 같은 "꼬리표 붙이기",
②전쟁을 택할 것이냐 평화를 택할 것이냐 하는 식의 "선동적 구호 만들기",
③우리 민족끼리, 자주, 평화, 통일, 민주화...등과 같은
"용어 선점하기" 수법이 더욱 교묘해지고 진화하지 않을까 매우 걱정된다.
정부 당국에서는 그런데 신경이나 쓰고 있는지 몹시 궁굼하다. 끝.
이 석 희(전 KBS 논설위원, 국제방송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