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이가 난 지 7일만에 어머니가 사망했어요. 그러니까 장님 아버지 심학도가 심청이를 업고 다니며 동냥젖을 먹여서 길렀어요. 동냥젖을 먹여서 길렀는데, 심청이가 자라 나이도 좀 먹고 철이 드니까 아버지를 돕기 위해서 품팔이를 나가게 되었지요.
하루는 심청이가 품팔이 나가서 일을 하다가 좀 늦었는데 심봉사 영감이 심청이를 마중나갔대요. 마중나갔다가 잘못해서 개천에 빠졌어요. 동네 사람들이 보고서 건져다가 집에 모셔다 놓았는데, 심청이가 돌아와 보니까 아버지가 엉망진창이지요. 심청이가 고민이 생겨 가지고서 저희 아버지 눈이 어두워서 그렇게 되었다는 걸 생각하고서, 저희 아버지가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부처에게 가서 불공을 드렸대요. 불공을 드리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아버지 눈을 뜨게 되겠습니까?"
하니까 부처님이 얘기하기를,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면, 공양미 300석을 시주해야 한다."
고 해요. 그래서 심청이가
"내가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겠으니 우리 아버지 눈을 좀 뜨게 해 주십시오."
하며 불공을 드리고 집에 왔어요.
심청이가 약속을 해 놓고 곰곰이 생각하니 공양미 300석을 마련할 길이 없어요. 그래서 근심하고 있는 차에, 남경으로 장사 다니던 선인들이 그 마을을 들러게 되었대요. 그래서 선인들 한테 공양미 300석을 받고 제 몸을 팔아서 '임당수'제숙(祭숙)으로 들어가기로 약속했어요. 그런데 그 사실을 저의 아버지께 알릴 수가 없어서 말을 하지 않았어요.
떠날날이 미구에 닥쳐와서 남경 장사 선인들이 가자고 독촉을 하니까 심청이는
'뺑덕옴마이한데 아버지의 뒤를 살펴 달라고 부탁을 해야 겠구나.'
하구서, 장촌(백령면 남포리)으로 가서 한 집안처럼 지내는 뺑덕어미한테 가서 아버지를 부탁하고 선인들을 따라갔어요.
심청이가 뱃사람을 따라가니 뱃사람들이 심청이를 이물간에다 두고서는
"물때에 따라서 아무날 아무 시에 북을 올리겠으니 북이 울리거든 물에 뛰어 들어라."
그래서 심청이는 치마 뒤집어쓰고 그냥 물로 들어가고 말았어요. 남경장사들은 저의 고향으로 가고......
심청이 용궁에 갔다가 연꽃이 되어서 어느 해변으로 밀려갔어요. 한 어부가 고기를 잡다 보니까 연꽃 송아리가 해변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이 아름답고 멋있게 보여요. 그래서 어부가 그 연꽃을 건졌어요. 거기가 연봉바위 있는데라는 얘기예요.
어부가 그 꽃을 임금님께 바치니까 꽃에서 심청이가 나왔다는 거예요.심청이가 그 꽃에서 나왔는데 인물이 하도 예쁘니까 왕이 왕비로 삼았대요.
(채록자:뺑덕어미 살았다는 곳은 어디라고 들어셨어요?)
장촌에서 살았다는데 그 밖에는 모르죠.
(채록자:뺑덕어미가 장촌에 살았다면 심청이도 그 동네 살았겠네요?)
처음에는 그 동네 살았겠죠.
그렇게 해서 심청이가 왕비가 됐는데 그 뒤에 왕께서 심청의 아버지가 심봉사라는 것을 알았어요. 왕은
'심청이 아버지를 찾아 봐야 겠다.'
하고서 전국 맹인 잔치를 크게 벌였어요. 맹인 잔치를 벌여 놓았는데 심청이는 거기 앉아서 저희 아버지 오는 것만 잔뜩 기다리고 있는데, 잔치가 다 끝날 때까지 도무지 오지를 않아요. 그러다가 맨 끝날에 아버지 모습이 나타나니까 부둥켜 안고서 울면서
"나 심청이요!"
그러니까 심봉사가
"심청이라는 말이 웬 말이냐?"
하고서 눈을 비비적비비적하다가, 그 눈이 완전히 떴다 이거요.
첫댓글 2006년10월14일 백령도 사곶 쉼터에서 "제1회 백령도 심청 孝 축제"가 개최 되었습니다. 효 사상을 고취 ,계승 발전 시키고 백령도를 효의 발원지로 홍보하고 관광자원하기 위한 심 청 孝 축제에 즈음하여 백령도 심청이 전설을 기고 합니다.
글을 읽다보면 이상할텐데요 녹취된 내용을 그대로 옮긴것이라 백령도 말 그래롭니다. 천천히 읽으셔야 옆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듯 합니다.
우리님 덕분에 뺑덕옴마이가 장촌 나인이라는건 첨 알았구요 심봉사(학규)는 아마도 갈렴 살지않았나 여겨지네요! 어케요? 우리 봉삼이만 봐두 짐작이 돼잔씨까...........^^
첨 알믄 안되는데.... 백령도 땅이름 알기(남포-3)에 댓글에도 알려 알려드렸는데요!(행길깨,행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