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로 이사 온 큰처남께 들렀다. 평수를 느린데다 묵은 살림을 정리하고 왔는지 곳곳이 썰렁했다. 란 화분, 문주란, 관음죽, 행운목으로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발코니는 허전했다.
먼저 살던 아파트보다 넓고 볏이 정말 좋다는 나의 너스레에 장모님은 기다렸다는 듯 키워온 것들은 풀잎과 같은 느낌이 든다며 가치 있는 관목으로 가꿀 것이라 했다.
관목은 자랐을 때 사람 크기나 그보다 작고 손목정도 굵기의 나무를 뜻한다. 주로 아파트나 공원, 놀이터의 조경설계에 채택되는 대개의 정원수를 관목으로 구분한다. 아마도 화원에 잘 가꾼 배롱나무나 매화 모과나무 앵두나무 같은 것을 관목이라 하신 듯 했다.
주로 종로5가 꽃시장에서 묘목을 분에 담고 버려진 것을 들였다. 얻거나 교환도하고 꽃 좋아한다는 소문이 났는지 다른 동 경비아저씨까지 모양 좋은 화분을 들어다 주는 듯 했다. 영양공급만큼이나 볼품없는 플라스틱 분들을 교체하는데 공 드렸다. 몇 해 후 큰처남의 새 사업을 시작하며 받은 축하화분으로 발코니는 더 이상 디딜 자리가 없을 정도로 찼다.
초입은 언제나 화사하다. 팬지, 사철 피고 지는 베고니아, 이름 모를 잎 식물들, 작은 고사리, 산호수, 란 이 있다. 산세베리아가 줄지어 있고 선인장은 손바닥모양에서 어떤 것은 아기주먹처럼 앙증맞다.
안쪽으론 제법 비용이 들었을 법한 소나무 느티나무분재를 시작으로 꽃나무가 이어있다. 겨울이면 홍매가 화사하다. 봄이 깊어지면 연산홍이 철쭉과 어울린다. 꽃이 작지만 향이 진한 라일락, 탐스런 수국. 향내만큼이나 모양을 갖추기 어려운 재스민. 매실을 따내면 배롱나무가 피는데 꽃가지와 줄기가 품위 있다.
파초에서 바나나 달리고 실내에서 열리지 않는 대추가 달리는 발코니를 아이들은 할머니의 꽃밭이라 했다.
실내에서 꽃과 나무는 그냥 자라지 않는다. 분갈이가 필수고 가끔 돌려주어야 한다. 물을 조절하고 통풍도 필요하다. 얼지 않도록 들여놓아야 하는 수종도 있다. 그러다보니 물이 넘쳐 마루판이 상하기도 하고 집안에 흙과 나무 특유 냄새를 풍긴다.
언젠가 장모님께 실수를 했다. 괴괴한 냄새와 어림잡아 1톤은 넘어 보이는 분의 무개가 이유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방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으른 것이다.
사실은 이정도의 화분으로 발코니 설계하중 m2당/300kg외에 안전율까지 고려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과중한 무개를 들어 아래 집에서 항의할 수도 있고 화재 시 탈출이 방해되며 특히 무거운 화분을 옮기다 다칠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간만에 인사차 장모님께 들렸다 나서는데 “안랑(郞) 꽃이 예쁘게 피어있다네 ” 라 하시며 꽃밭 문을 연다. 평소 잎이 뻗쳐 안쪽 깊숙이 있었던 동백이다. 노란 꽃 밥을 에워싼 자주색 꽃이 피었는데 듬성한 것이 오히려 단아했다. 무거운 분을 어찌 옮겼는지 궁금했지만 그냥 색이 곱다고 답 했다. 바닥에 꽃송이 몇이 떨어져있다. 그 이후 장모님을 자주 뵙지 못했다
장모님 팔십대 중반쯤 치매 진단을 받기 전이다. 잠이 오지 않으면 꽃나무와 대화 했다는 장모님께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에 이렇게 답하셨다.
“꽃나무를 잘 키워 실내조경 사업을 하는 막내아들에게 도움을 주고 큰아들 개업을 축하하는 화분은 잘 간직하고 싶다 ”는 소원을 빌었다했다.
이는 잡념을 털어내는 안식장소요 꽃나무가 잘 자람을 보며 영생을 꿈꾸거나 공허함을 메꾸려는 일종의 허무가 아닐까 하는 나의 추정을 뒤집는 답이다.
이제 그 분은 뵐 수가 없다. 세월이지나 기억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할 지경이라도 그저 꽃나무와 대화하는 모습을 그리면 된다. 그분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