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천주교 왜관수도원 최근 소식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제가 구미에 내려온 후에 30분 거리에 있는 왜관수도원으로 피정을 자주 다녔으니 올해로 14년이 됩니다.
왜관수도원은 베네딕트회이고 저는 프란시스회이지만 개의치않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제가 전에 있던 수녀원이 왜관수도원과 분위기가 비슷해서 꼭 친정에 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전국에 있는 피정관을 여러곳 가봤고, 피정집을 소개하는 책을 살펴보아도 가격대비, 만족대비 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참고로 1박3식 피정비가 3만원입니다)
그리고 성무일과에 참석할 수 있고 성찬례도 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오래 다니다보니 수사님들과도 서로의 집안 사정을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얼마전 이 집에 큰 이변이 생겼습니다.
수도원장인 아빠스(abbas)가 갑자기 사임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베네딕도 16세의 영향을 받은 아름다운 결단이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호사가들의 이야기일뿐...
부랴부랴 수도원에서는 다음 아빠스 선출을 위한 절차를 시작했고
지난 5월 6일 저녁에 예비 선거, 7일 오전부터 본선거를 치르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저희는 구미카톨릭근로자센터장으로 나와계신 수사님으로부터 바자회용 배즙과 소시지를 공급받고 있었기 때문에
저간의 사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교회와 수도원에서 치러지는 선거의 후유증과 홍역을 여러번 듣고 또 치렀던지라, 남의 집 일이지만 사뭇 긴장되는 마음으로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요 5월 7일 오전 트윗을 통해서 '아빠스 당선'이라는 소식이 빠르게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새로 당선된 아빠스가 70년생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당일 오전 본선거가 시작되고 1차에 2/3를 넘었다고 합니다.
왜관 수도원이 속한 베네딕트회 규정상 종신서약자의 과반수를 넘으면 원장이 되고 2/3를 넘으면 아빠스가 되는데 아빠스는 한국천주교 주교단의 일원이 됩니다. 말하자면 아빠스가 주교가 되는 것이지요.
7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44세.
전임 아빠스가 46년생으로 올해 68세이니 24년을 건너뛴 셈이네요.
현재 이분의 당선을 가장 기뻐하는 이는 46세의 어느 교구 주교님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주교단에서 후임이 생긴 셈이지요.
참고로 제가 올해 45세입니다. 69년생..
제가 구미에 뿌리를 내려보겠다고 열심히 땅만 보고 있을 때 이분은 훨훨 날라다니셨더군요. ^^
제가 그동안 나이 때문에 신경써본 적이 없는데 이분 당선 소식을 듣고는 한동안 뒷목이 땡겼습니다. (아이고 내 뒷목...)
왜관수도원의 회원수가 140명이라니 그중에 인물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면 24년을 건너뛰어서 단박에 2/3을 만들어냈을까요. 나중에 신임 아빠스님이 소감을 말씀하시는데 예비선거가 있던 날 저녁과 다음날 오전에 자신의 이름이 300번 이상 불리는 것을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 저에게 왜...' 하면서
들리는 바람결에는 비서수사님도, 운전기사 수사님도, 책임을 맡고 있는 그 누구도 새로운 아빠스보다 나이가 많아서 예전과 의전에 죽고사는 베네딕트수사님들이 혼란스러워한다고 합니다.
이분의 축복식이 지난 6월 20일(목)에 왜관수도원에서 있었습니다.
왜관수도원을 애용하는 세 사람이 구미에서 축복식에 참석하러 갔었습니다.
부지런한 천주교신자들을 감안해서 예식 한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자리가 꽉 차고 예비의자를 놓고 있더군요.
같이 간 자매를 남아있는 수도자석에 데려가서 앉히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참고로 이 성당은 수도원이 2008년에 대화재를 겪은 후 새로 지은 건물의 성당입니다.
이 성당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찬 것은 처음 봅니다.
제 앞앞에는 불교스님도 오셨고 뒷쪽에도 스님이 계셨습니다.
제 앞의 스님은 자리를 잘못잡아서인지 영성체 내내 복도에 서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세시간이 걸린 축복식 내내 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자신을 봉헌하고 있는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
<아빠스님의 부모님, 울릉본당 신자회장님이시랍니다>
이날, 성당에 들어가지 못한 신자들이 성당입구와 마당에서 미사를 보고, 준비한 1500개의 도시락이 떨어져서 부랴부랴 김밥을 몇 백개 사오고도 점심을 못 먹는 이들이 줄 서 있는 것을 보고 구미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웬만하면 천주교 부러워하지 않는데, 이날은 진심 부러웠습니다.
수도회에 닥친 위기를 일사불란하게 헤쳐나가는 그들을 보며,
그리고 그 위기를 축복의 순간으로 이끌어나가는 그들을 보며
이것이 저들이 가진 저력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드려라 시편 96:1>
앞으로 신임 아빠스가 어떻게 수도원을 이끌어나갈지 계속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으리라 믿으며
그 즐거움이 우리 안에서도 새로운 모양으로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첫댓글 '44세의 아빠스'라고 하니
갑자기
도스토예프스키가 생각납니다.
그가 44세에
"카라마조프 형제들" 이란 책을 썼다는데~~~
'카라마조프 형제들' 제가 소싯적에 무지 좋아했던 책인데
갑자기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
그렇군요 수녀님
그날 여기 부산에서는 가옥축복식 잘 했어요
아빠스 저분 저랑 같은 띠동갑이신가벼
어떤 사람이길래...
단박에 되버렸을까잉
'왜관 수도원'은 저에게 참으로 잊을수 없는 곳인데 이렇게 우리 성공회 수녀님의 글을 통하여 소식을 접하게 되네요.
평생을 거룩한 노동으로, 사람을 살리는 치유의 은사로 살아오신 생명의 은인 '요한 수사님'과 제 어깨에 손은 얹어 주셨던 수사 신부님과 수도원 공동체에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