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악산의 사찰(寺刹)과 암자(庵子)
인제군에 걸쳐있는 설악산의 관광명소(觀光名所)들을 살펴보면 우선 대사찰 신흥사(新興寺)와 백담사(百潭寺), 백담계곡, 봉정암(鳳頂庵)과 오층석가사리탑(五層釋迦舍利塔), 오세암(五歲庵) 등 수많은 일화(逸話)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寺刹)들이 있다.
백담사 / 백담사 돌탑 / 신흥사 전경 / 신흥사 좌불상
<1> 신흥사(新興寺)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율사가 창건한 절로, 당시는 향성사(香城寺)라 하였으며 계조암(繼祖庵)도 함께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세기 들어 절터를 조금 산 아래로 옮겨 짓고 현 사찰명인 신흥사(新興寺)라 하였는데 1681년, 양양(襄陽) 대지진으로 다시 붕괴(崩壞)되었다가 재건된 후 오늘까지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신흥사의 아픈 역사 중 한 가지는 한국전쟁(6.25) 때 이곳에 주둔하던 국군이 날씨가 너무 춥다고 신흥사가 보관하고 있던 불교 장판(經板)들을 가져다 모닥불을 피웠다고 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새긴 귀중한 말씀을 불태웠으니 좋은 일은 아닌데 다시 생각해보면 장병들의 추위를 부처님이 감싸주신 것일까??
이곳 신흥사에는 향성사지 3층 석탑(보물 제443호),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 좌상(보물 제1721호),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보물 제1749호), 극락보전(보물 제1981호) 이외에도 유물들이 수없이 많다.
<2> 백담사(百潭寺)
백담사는 백담계곡 입구에 있는 절로, 계곡에 수많은 못(潭-沼)이 있어서 백담사라 하였다고 하며 절 앞의 냇가에 수많은 돌탑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전두환이 실각 후 부인 이순자와 머물던 곳으로도 유명했고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도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님의 침묵’ 등을 집필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봉정암 / 5층 석탑 / 설악산 공룡능선 / 오세암
<3> 봉정암(鳳頂庵)
봉정암(鳳頂庵)은 신라의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가지고 귀국하여, 이곳 오층석탑에 사리(舍利)를 봉안하고 창건하였다고 하며 조사(祖師) 봉정(鳳頂)이 이곳에서 수도하였다고 하여 봉정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나는 두 번 이곳을 방문하여 1박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무심코 머리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는데 머리 위에 엄청나게 큰 바위가 금방 굴러떨어질 듯하여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서 소청(小靑), 중청(中靑)을 지나 2시간쯤 오르면 최고봉 대청봉(1,708m)이다.
<4> 오세암(五歲庵)
오세암(五歲庵)은 원래 이름이 관음암(觀音庵)이었는데 이곳에 기거하던 설정대사(雪淨大師)는 고아가 된 4세의 조카를 데리고 와서 거둘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 되어 식량을 구하러 아랫마을로 가면서 밥을 지어놓고 조카에게 벽에 걸려있는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며 밥을 다 먹고 저 어머니를 보고 관세음보살~ 하면 돌보아 줄 것이라고 하였다.
설정대사가 양양(襄陽) 부근에서 시주(施主)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폭설(暴雪)이 쏟아져서 도저히 암자로 돌아올 수가 없어 이듬해 3월이 되어 돌아온다. 암자로 돌아오면서 틀림없이 조카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니 가슴이 아팠다. 슬픈 마음을 안고 대사님은 돌아와 보니 조카가 관세음보살 앞에 앉아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는 설화(說話)인데... 과연 사실일까? 그래서 오세암(五歲庵)이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