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2월 22일 동짓날이다. 아침은 영하 4도로 추웠지만 낮은 영상 4도까지 올라 따뜻하다.
이 날만 되면 한번쯤 동지팥죽의 맛을 그리워 하고, 어디에선가 먹을 기회가 있을까 생각하지만 올해 역시 기대난망이다. 해마다 추위가 기성을 부리는 때에 엄마가 손수 지은 팥죽은 우리 동네 최고의 '맛'이었다. 팥죽은 고소하고 달콤짭짜름한 것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전통음식이자 또 간식거리다. 따뜻하면 따뜻한대로 식으면 식은 대로 맛있다. 추위에 꽁꽁 얼었어도 녹혀내면 그 맛이 그대로 살아난다. 이왕이면 시원한 동치미 한사발과 같이 먹으면 더 일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이 맛은 내 상상속의 것이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엄마의 '맛'을 재현해 내지 못했고, 요즘 전문 죽회사들이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어찌 반이나마 따라잡을 수 있으랴...
오늘은 휴일 이틀째다. 지난 2일에 분당에서 내려왔으니 3주째 올라가지 않고 완주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특별한 약속도 없이 혼자 있는 주말 이틀은 긴 시간이다. 아침에 8시가 넘도록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바둑 몇 판을 두고도 오전시간이 남아 오랫만에 화장실 대청소를 했다. 이왕 시작한거 방도 정리할 생각으로 문을 열어 젖힌 채 햇살속의 방을 보니 먼지와 머리카락이 책상에 바닥에 소파 주변에 켜켜히 쌓여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혼자 사는데 어디서 이 많은 불순물이 생겨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걸레를 4번을 빨고 3차례 방을 닦았지만 그래도 깨끗해졌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이틀에 한번 하던 것을 매일 닦는 것으로 바꿔야 하는 것인지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었다.
12시가 되어 해가 달았으니 이제 운동을 하자. 그동안 우리 연습장을 그런대로 잘 이용해 왔는데 그물이 내려진지 열흘이 넘었다. 핑게는 업자가 빨리 수리를 하러 들어오지 않아서라지만 연수원장이 골프를 즐겨 않으니 담당 직원들이 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큰돈 들여서 민간시설보다 못하지 않게 번듯하게 잘 지어놓고 무용지물로 놀리고 있으니 안타깝고 늑장을 부리는 직원들이 밉고 야속하다. 그래서 어제 전주에 있는 연습장에 처음으로 다녀왔고, 오늘도 8km 떨어진 그 'PGA'에 가는 것이다.
1,2층 50타석을 갖춘 연습장은 시골 냄새가 나긴 하지만 꽤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분당의 반값이다. 80분에 11,000원이고 붐비지 않으면 상황에 따라 시간을 더 넣어준다. 어제도 20분을 더 쳤는데 오늘은 일요일인데도 40분을 더 준다. 카운터 아가씨가 외지에서 온 손님으로 보여 인심을 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성의?를 봐서 알뜰히 다 때리고 나니 평소 연습시간의 배는 쳤나보다. 12시반에 시작하여 3시가 다 되어 끝났으니 오늘은 연습량을 초과한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팔이 뻐근하고 피로감을 느끼지만 전주의 후덕한 인심을 생각하면 흐뭇한 웃음이 나온다. 확실히 전주는 온고을이라는 별칭대로 사람들이 후하고 공기도 좋은 중소도시라 참으로 살기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부 종교인들이 정치적인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이 곳 사람들은 선량하고 맘씨가 좋아 꼭 충청도 어디에 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 거소인 '牧民館 601호'에 돌아오니 3시반이다. 티비를 켜니 아시아/유럽 단체 대항전인 'Royal Trophy'가 열리고 있었는데 스코어는 7:3으로 우리가 앞서고 있었다. 승리가 눈앞이라 생각하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그때부터 줄줄이 밀리기 시작하드니 5매치를 유럽이 내리 따내면서 8.5 : 7.5의 대 역전패로 끝이 나버렸다. 아무리 장갑을 벗어봐야 알 수 있는 예측하기 어려운 경기라해도 허무하기 짝이 없다. 올해 전적이 좋지 않은 양용은이 처음으로 단장을 맡았는데 안타깝다. 하지만 승패는병가의 상사다. 내년에도 또 다른 주역들이 나와서 새로운 기량으로 우리를 더 즐겁게 해 줄 것이다. 쓰린 속을 달래면서 승복하고 상대를 축하해주는 그들의 모습도 아름답지 않은가..
연중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에 나는 적지않은 시간을 잘 활용했다. 이만하면 동짓날치고는 긴 낮시간이다. 이제 저녁이 서서히 깊어가고 있다. 좀 있으면 뉴스를 보고 이어서 가장 좋아하는 프로인 '개콘'을 보면 이틀의 휴일도 다 지나간다. 팥죽을 못먹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것을 통해 그리운 엄마를 생각하고 지극한 그 사랑을 기릴 수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올 한해도 한 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길지않은 시간이나마 가족을 생각하고 감사할 줄 아는 가장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