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시간을 내서 우리 집 인근에 있는 서부시장을 찾았다. 얼마 전에 특화거리로 지정된 시장이다. 오늘은 통닭과 맥주의 만남이 있는 날이다. 즐거운 추억을 선물하는 행사라고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 갔다.
행사가 열리는 서부시장이 위치한 비산동은 동생이 먼저 터를 잡았다. 대구에는 내가 빨리 왔지만 나는 작년 봄까지 줄곧 월배 하고 상인동에서만 살았다. 동생은 직장이 교동에 있다 보니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서부시장 부근에 살다가 지금은 평리동에서 산다. 예전에 동생네 집에 갈 때는 꼭 서부시장을 지나야 했다. 전에는 육교가 있어서 길을 몰라 육교만 보고 찾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몇 해 전에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육교를 철거해 버렸다. 그 후로는 버스를 타고 오면 정거장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행사를 두류공원에서만 했다. 그런데 올해는 통닭 시장으로 유명한 평화시장과 함께 서부시장에서도 같이 한다. 고맙게도 특화거리로 지정된 효과를 보는 셈이다. 전에는 동생 한테 갈 때마다 맛있는 빵집이 있어서 한 번씩 들렀는데 요즘은 한동안 발길이 뜸했다. 특화거리로 지정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한번 가 본다는 게 자꾸만 미루다 보니 이제야 가게 되었다. 특화거리라서 우선 눈에 띄게 시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연고도 없는 동네에 생전 처음 오는 것 같이 낯선 기분이 든다.
어느 재래시장처럼 시골 냄새가 나던 시장인데 이제는 시장 안에 번화가가 생겼다. 행사가 열리는 기다란 골목은 완전히 새 옷으로 갈아 입었다. 언제 가도 사람이 붐비는 시내 동성로 한복판이나 서문시장 먹거리 골목에 온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들이 눈에 보인다. 시장이 변한 모습을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모처럼 고향을 찾았다가 환경이 변해서 깜짝 놀랐던 일이다. 조금이나마 옛 기억을 떠올려 추억을 찾으려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자신이 없다. 발전하는 모습은 좋지만 왠지 아쉽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번 행사는 대구시가 야심차게 주관하는 행사다. 몇 번 하다 보니 시민들 반응이 좋아서 공간을 넓혔다. 덕분에 평화시장과 더불어서 이 곳 서부시장도 활기가 넘친다. 시장 입구에 붙은 특화거리라는 간판이 분위기를 제대로 말해 준다. 재래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애써 찾은 것도 재래시장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고 싶어서 그랬다. 안타깝지만 자본을 앞세워 우리 주변에 마트나 백화점이 자꾸 늘어난다. 겉만 번지르르한 마트나 백화점 보다 사람 냄새 나는 재래시장을 좋아한다.
행사장을 한 바퀴 돌아보니 또봉이 통닭이라는 간판이 눈에 보인다. 보태준 것도 없는데 정말 반갑다. 언제 부터인가 우리 주위에서 통닭이라는 우리말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안타깝게도 치킨이라는 외국어에 밀려서 시나브로 제 자리를 뺏겨 버렸다. 그래서인지 행사명조차도 통닭과 맥주가 아닌 치맥 페스티벌이다. 한글날만 되면 늘 하는 말이 있다. 너도나도 우리말을 살려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은 평소에도 우리말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 그래서 글 제목만큼은 통닭과 맥주의 만남이라고 썼다.
시장 안에는 이번 행사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먹거리 명물이 있었다. 언제 들어도 구수한 이름인데 추억의 국화빵이다. 현수막에 적힌 글귀가 참 재미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문시장에서 옮겨 왔는지 서문시장 국화빵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언제 서문시장에 가게 되면 모처럼 국화빵도 한번 먹어 봐야 할 것 같다.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우리말로 적힌 간판을 찾아서 석이네 국시 가게에 들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우선 배 불리 먹고 볼 일이다. 동행이 없어 통닭 보다는 잔치 국수 한 그릇으로 때웠다.
또봉이 통닭집 앞에는 이름도 모르는 거리의 화가들이 있었다. 행사장에 찾아오는 손님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들이다. 하도 신기한 마음에 초상화 한 장 그려서 벽에 걸어 놓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면 먼지가 앉아 색이 바래서 싫증날 때까지 걸어 두기도 했다.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어서 외모에는 자신이 없어 눈동냥만 하고 그냥 지나쳤다. 사진 보다 초상화를 더 좋아한 적도 있었는데 세월이 취미도 변하게 한다. 무정한 세월 탓이지만 내게도 마라톤에 빠져서 세상없이 뛰어 다니던 좋은 시절이 있었다.
통닭을 주제로 한 여러 모로 좋은 행사다. 이름만 우리말로 바꾸면 더 좋겠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부질없는 욕심이다. 두류공원은 행사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아직까지 한번도 안 갔다. 서부시장은 잘 아는 시장이라서 어쩔 수 없이 찾았던 걸음이다. 서부시장에 갔으니까 다음에는 두류공원에도 가 봐야 되겠다. 이유는 여하간에 메르스도 물러간 마당인데 흥겨운 분위기는 즐기고 싶다. 어쨌거나 모처럼 활기를 찾았는데 이렇게 좋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우리 집에서 거리는 좀 되지만 자주 가고 싶어진다.
요즘은 지방자치 시대라 어디를 가도 그 지방 나름대로 행사가 있다. 그 가운데서 우리 고장 대구에도 새로운 행사가 자리를 잘 잡은 것 같아서 보기가 좋다. 볼거리도 많고 맛있는 먹거리가 있어서 눈과 입이 즐겁다. 판은 이미 펼쳐 놨으니까 이제는 부담 없이 즐기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