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조 2023 봄호/ 책만드는집

너와 나 1/ 김종  나는 허공 너는 구름 풀잎 끝에 머물다가 속눈썹에 젖은 바람 달팽이로 쉬다가 산열매 단물 고이듯 우리 함께 익다가.  ******** 연장/ 박종대  참 좋은 이름으로무슨 영장(靈長)이라 했는데 허허 뭐든 만들어 내는참 좋은 연장이야 그놈이 더 놓은 연장을만들어 내기도 하고  ********** 종이 애인/ 김일연  나무의 죽은 심장에 검은 잉크를 찍네 푸르른 모습으로 살아 돌아와 주세요 하얗게 저며진 가슴 검은 물로 적시네 저 하늘 은핫물은 누구의 시인가요 마르고 닳을 때에야 사랑도 잃음이라 종이여 얼룩이 지네요 웃으며 읽어 주세요  ************** 거울 같은 겨울 아침/ 서숙희  기침을 하면은 깨질 듯이 깨끗하여작은 나의 세상이 닦은 듯이 고요하여 흰 티슈 세 장을 썼다 세 번을 울었다  *************** 동창회/ 서연정  이쪽을 끌어당기면 저쪽이 짧아져서시린 가슴 덮으니 맨발이 드러난다한 장씩 이어 붙인다 무릎담요만 한 기억을 먼나무 아래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는다손으로 그린 하트 구름 멀리 날아가고바람은 갓 핀 꽃처럼 여민 섶을 흔든다 ********* 빙벽의 표정/ 이송희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았어요 희뿌연 고백은 얼음이 되었는지 허공에 달그림자만 자욱하게 퍼졌어요 투명 창에 입김처럼 떠오르는 얼굴은 물 같은 말을 뱉다가 돌처럼 굳었지만 여기서 그의 언 손이 내 등을 두드렸어요 실시간 떨고 있는 눈사람이 보이나요? 새어 나온 그의 말이 못처럼 박힐까 봐 바람이 닿을 때마다 눈을 살짝 감았어요.  ************* 뒷고기/ 황순희  장물로 나온 저녁뒷담화가 자작하다 하루의 껍데기가불판에서 뒤척인다 알몸을 탐하였으니우린 이미 공범일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