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토는 칠 할이 산으로 이루어졌다니, 산의 솟은 지형과 지리는 그만큼 우리 삶과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주 잊지만 한국은 국토 면적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산악국가인 것이다. 산과 더불어 해가 뜨고 산과 더불어 해가 지는 땅에 살고 있는 셈이다. 현대인들에게 산은 주말에나 찾는 행락과 遊樂의 장소로서 더 친근감을 갖지만,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라고 노래한 「靑山別曲」을 보면 우리의 옛사람들의 심상 속에서 깊은 산은 풍진 세상과 동떨어진 청정한 삶을 일구는 이상적 터전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산과 가까이 접하며 겪은 그 감각적 체험이 내면에 다양한 심리적·사회적 원형 체험으로 자리하며 어떤 상징과 표상의 무늬를 남기리라는 예단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일반론을 말하자면 산의 심상이 드러내는 숭고함과 도덕적 位相은 수직의 높이에서 결정된다. 높은 산은 몸으로 촉지하고 측량할 수 있는 한계를 간단하게 뛰어넘음으로써 감각적 확실성 속에서 無限의 추상성을 새기며 삶의 테두리로서의 경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공간의 圖像學에서 보자면 산의 수직성은 일상 범백사가 이루어지는 현실의 수평적 단조로움에 대한 도발이다. 하지만 산의 숭고성은 높이의 체현에서보다는 세속의 일에 더께로 들어앉은 지리멸렬함과 비속성을 압도하며 초월성과 신성함의 느낌을 유발하는 형이상학적 심원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통 사람의 생활 체험이 단조롭고 평면적이며 파편화되는 데 반해 산은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들을 거느린 채 하나의 거대한 전체로써 초월성과 신성한 기운을 뿜어낸다. 산의 정상은 그 높이의 비범함 때문에 신화와 祈雨나 護國의 제의가 이루어지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단군신화의 중심 공간도 산이다. 산의 삼엄하며 서늘한 기운은 봉우리와 봉우리의 이어짐, 그 신묘한 생김새와 거침없이 솟구쳤다 가라앉고 파동치며 흘러가는 봉우리들이 그려내는 山勢의 웅장한 규모와 그 장엄하면서도 심미적 품격에서 나온다.
내 어렸을 적 고향에는 신비로운 산이 하나 있었다.
아무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영산이었다.
영산은 낮에 보이지 않았다.
산허리까지 잠긴 짙은 안개와 그 위를 덮은 구름으로 하여 영산은 어렴풋이 그 있는 곳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영산은 밤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구름 없이 맑은 밤하늘 달빛 속에 도는 별빛 속에 거무스레 그 모습을 나타내는 수도 있지만 그 모양이 어떠하며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영산이 불현듯 보고 싶어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더니 이상하게도 영산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미 낯설은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그런 산은 이곳에 없다고 한다.
김광규, 「靈山」
김광규의 「靈山」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산의 태고성과 신령스러움을 노래한다. 종교학자 정진홍도 한국인의 산 경험의 근저에 구원론적인 기층성과 태고성이 잠재해 있음을 언급한 적이 있다. “영산”이 신령스러운 것은 안개와 구름에 가려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데 있다. 영산은 대자적 존재의 솟아오름이며, 그냥 거기 있음이고, 영성, 혹은 영원성의 顯示다. 옛책들을 뒤져보면 우리 조상들은 깊은 산을 仙界와 연계시키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깊은 산속은 난세에는 숨어 살기 좋은 避世地이며, 잦은 전란이나 전염병에서 몸을 보신할 수 있는 피병지이기도 하다. 『鄭鑑錄』에서 지목한 十承之地에 속한 땅들은 하나같이 산을 끼고 있는 그런 까닭에서다. 어린 시절 산을 오르며 취락의 수평적 공간경험과는 차별되는 수직공간의 원초 체험을 하고, 형이상의 세계에 대한 계시를 받는다. 산 경험은 지리적 원형의 경험이기도 하다. 나날의 삶이 지리멸렬해지고 사람의 수고와 목적이 누추해질 때 영산을 향하는 것은 산의 신성함에 기대어 정화되려는 욕망의 발로이다. “온데간데 없어”진 영산은 어디로 갔을까 ? 그 산을 영산으로 여기고 살았던 이들이 떠날 때 마음에 담고 가버린 것은 아닐까 ? 그러니 거기 새로 들어와 살게 된 이들의 눈에는 그 산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
좋은 땅을 눈여겨 살피고 사는 곳을 가려 취하는 일의 중요성은 공자에게서 나왔다. 살 터전을 정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그래서 물이 드나드는 초입과 들의 형세를 살피고, 산의 모양과 흙의 빛깔을, 그리고 물의 흐르는 방향과 형세를 꼼꼼하게 살폈다. 그 다음으로 앞산과 앞물을 보았다. 이중환은 무릇 살 터를 잡는데 고려해야 할 네 가지, 즉 地利와 生利, 인심, 그리고 아름다운 산과 물을 擇理의 기본 철학으로 삼았다. 이 “네 가지에서 하나라도 모자라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다.”고 적었다. 살 만한 땅은 반드시 좋은 산을 끼고 있다. 고려 문종 때 사람 김부식(1075 ~ 1151)이 지은 한시에도 그런 택리의 철학이 들어 있다. 더듬더듬 읽어내려다가 아무리 머리 굴려도 모르는 한자를 옥편 뒤적이며 읽는다. 끝에서 두번째 줄 부끄러울 '참慚'자와, 끝엣줄 찾을 '멱覓'은 옥편을 보고 겨우 알아본 글자다.
속된 사람이 오지 않는 곳
올라와 바라보면 마음 트인다.
산의 모습은 가을에 더욱 좋고
강물 빛깔은 밤에도 밝다.
흰 물새는 높이 날아 사라지고
외로운 배는 홀로 가니 가볍다.
부끄러워라, 달팽이 뿔 위에서
반평생 동안 공명 찾아 허덕였다.
산의 모습은 가을이 깊어지자 더욱 그윽해지고 높이 뜬 달의 환한 빛에 드러난 강물 빛깔은 푸른빛을 머금는다. 산과 물을 배경으로 한 자연에서의 삶과 속세의 삶은 대조된다. 산과 물 가까이 사는 것은 뜻과 생각의 맑음을 추구하는 삶이다. 공중에 떠가는 흰 새, 강물 위를 떠가는 배 한 척. 이것들은 바로 그 삶의 유유자적과 隱逸을 잘 드러내준다. 산은 시공의 광활함을 확보하게 해주는 平地突出이다. 실존의 의지나 선택과 무관하게 거기 그렇게 있는 거대한 산은 평면에 고착되어 있는 하찮고 자질구레한 여염의 살림과 극명하게 대조되어 그 시공간을 압도하는 수직의 높이와 외연의 웅장한 규모에서 경이의 대상이 된다.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홀연히 열리는 전망의 넓은 트임에서 오는 정신적 해방감, 눈앞에 펼쳐진 淸景을 통해 갖는 정화의 느낌도 일상적 삶의 순간들 속에서는 할 수 없는 시각적·심리적·사회적 경험이다. 큰 산에 대한 관습적 이해는 세속의 번잡스러움과 무관하게 우뚝 솟은 채 이룬 孤高함과 신령스러움, 자연의 싱그러움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적 감흥 속에서 빚어진 것이다. 따라서 高山이나 名山에서 정신적 고고함의 표상, 위대성의 啓示를 읽어내는 것은 새로울 것도 없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엎뎄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들만 남겨 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줌 돌 한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不動의 姿勢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데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神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溪谷이 된다
산은 한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高山도 되고 名山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김광섭, 「山」
김광섭의 “산”은 대지에 붙박인 부동의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食飮을 하며(“종일토록 먹도 않고 엎뎄다가는”이란 구절을 보라 !), “학”이나 “기러기”처럼 장소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존재다. 인본주의적 상상력 속에서 산은 제 품안에 기르는 새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기 위해 장소 이동을 할 때 “不動의 姿勢로” 떠가는 존재로 새롭게 태어난다. 또한 산은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는 존재다. 3연과 5연을 보면, 사람은 산이 조화를 이룰 때는 정답게 길을 함께 가는 친화와 동행의 존재요, 사람 사는 꼴이 흐트러지면 멀리 달아나는 존재다. 동양에서 산은 사람살이 도덕적 근본을 비춰볼 수 있는 하나의 준거적 틀이라는 생각은 그리 생소한 것이 아니다. 산이 “달팽이”처럼 험한 봉우리로 달아날 때는 사람 사는 꼴이 어지러울 때다. 그러니 산과 사람이 서로를 경원하는 관계가 될 때는 인륜이 무시되고 도덕적 근본이 혼탁해질 때다. 산과 사람은 지리적 원근법 속에서만 서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원근법 속에서도 서로를 발견하는 관계에 있다. 동양의 자연관에서 산은 도원경을 품어 안은 심산유곡의 땅이며, 사람의 손길이 감히 미치지 못하는 신비와 외경의 대상이다. 아울러 산 사람에게 집지을 땅을 주고 생명을 부양하는 풍부한 산물을 내주며, 죽은 사람에겐 영원한 안식을 제공하는 묘자리를 주어 함께 거두는 陽宅의 장소이다. 그래서 김광섭은「山」에서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 높은 꼭대기에 神을 뫼신다”고 썼다. 산은 대지에 종속된 단순한 융기물이 아니라 우주의 세 권역인 하늘과 땅, 그리고 지하세계를 잇는 세계의 축이다. 시공의 원근법 속에서 산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다. 높은 산은 신의 권역에 가장 가까이 닿은 곳, 즉 성스러운 영역이다.
조정권의 「山頂墓地」 연작들은 산의 높이가 체현해낸 고고함을 기리며 내면의 드높은 경지와 정신의 견인주의, 초월적 정신의 청정한 가치를 강조한다.
겨울 산을 오르면서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天上의 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조정권, 「山頂墓地·1」
조정권이 주목한 것은 모든 물들이 단단하게 결빙하는 겨울산이다. 높은 곳에서 결빙하여 “빛나고”, “단호한 침묵”에 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가장 높은 정신”과 이어진다. 일상이 가장 낮은 의식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고만고만한 실존의 기획과 나날의 비속한 욕망들이 부딪치는 삶의 장이라면 산정은 드높은 기개와 비범한 기획, 그리고 신들이 거주하는 “천상의 누각”으로 이어지는 성스러운 자리다. 이 시의 화자가 끊임없이 겨울산의 산정을 흠모하는 것은 바로 그곳이 가장 추운 곳이며 “가장 높은 정신”과 잘 어우러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정신의 높은 단계를 지향하는 자는 일상의 안녕과 편안함에 의식이 잠들게 하지 않는다. 시의 화자는 그 “잠든 정신”을 지팡이로 후려쳐 단련을 하며 저 드높은 곳, 의식이 번쩍 깨어나게 할 만큼 시린 곳으로 끌고 가려 한다. 산정의 “높이”는 “영원히 불완전한 세계, 영원한 모순의 그림자”(니체)인 세계에 대한 부정과 자기초극을 위한 고투에 대한 보상이다.
여름 내내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하여
계곡을 울리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얼어붙어 있다.
계곡과 계곡 사이 잔뜩 엎드려 있는
얼음 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 있다.
결빙의 바람이여,
내 핏줄 속으로
회오리치라.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나의 전신을 관통하라.
점령하라.
도취하게 하라.
山頂의 새들은
마른 나무 꼭대기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들은 마른 씨앗 몇 개로 남아
껍데기 속에서 도취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빗방울과 입맞추던
뿌리는 얼어붙은 바위 옆에서
흙을 물어뜯으며 제 이빨에 도취하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하여
스스로 기쁨에 떨고 있다.
중력의 법칙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던 폭포의 물줄기는 얼어붙어 있다. 자기를 초극하려는 자들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이 하강의 힘과 법칙을 거슬러 오른다. 이 세계는 저마다의 작은 성취에 몰입하며 그 기쁨에 도취해 있다. 새들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앉아 날개를 접고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는 “마른 씨앗”의 성취에 도취해 있고, 뿌리는 “흙을 물어뜯으며” 제 이빨에 도취해 있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해 있다. 도취는 생성의 힘, 미래적인 성취의 의미를 축소하고, 지금-여기의 현상 속에 머물게 하는 힘이다. 국가라는 우상, 자본이라는 우상, 종교라는 우상들은 온갖 삶의 창조와 생성의 가능성들을 얼음 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것들이 아닌가 ? 그것들은 우리 삶을 규정하고 속박하고 유혹한다. 얼음 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에 단단하게 결빙해 계곡과 계곡 사이에 엎드려 있다. 오로지 초인들만이 이것들을 향해 침을 뱉고 등을 돌리고 자기 길을 간다. 「산정묘지」의 서정적 주체는 바람을 불러 “내 핏줄 속으로 / 회오리치라”고 명령한다. “전신을 관통하라”고 외친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충만하는 힘으로 낡은 삶을 쇄신하고 드높은 정신의 높이로 날아오르려는 열망을 드러낸다. 낮은 지평의 삶을 거부하고 산 정상으로 날아오르기를 꿈꾸는 조정권의 서정적 주체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와 닮아 있다. 니체는 우리에게 처음으로 디오니소스의 춤과 웃음을, 더 높은 삶으로 날아오르는 비행술을 가르쳤다. “온갖 새들에게 눈짓하며 날 준비를 마치고 각오하는 자, 행복하고 마음이 가벼운 자, 웃고 있는 예언자 짜라투스트라.”(니체, 『비극의 탄생』) 조정권의 서정적 주체는 산정의 “높이”를 찬양하며 한편으로 낮은 곳에 머무르려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교훈을 전달하고 끊임없이 도약을 선동하며 훈육하려는 예언자적인 어조를 보여준다. 이것은 니체의 낡은 도덕과 인습을 깨고 “우연이라는 하늘, 천진난만한 하늘, 우발성의 하늘, 자유분망한 하늘”을 날아오르려는 짜라투스트라의 어조와 닮아 있다.
2. 설악산
설악산을 분단 이래로 남한의 명산 중의 하나로 꼽는데 이의를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설악산은 강원도의 인제, 양양, 속초 등 세 개의 군에 걸쳐져 있다. 설악산 부부서방 약 칠십 킬로미터 되는 곳에 금강산이 앉고, 남남동방 사십 킬로미터 아래에는 동대산과 황병산이 있다. 雪嶽은 말 그대로 그 주봉인 대청봉에 쌓인 눈이 5 ~ 6개월 동안이나 눈 시리게 덮여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바위가 눈처럼 희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 또 다른 설이 맞서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한가위부터 쌓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 비로소 녹기 때문에 설악이라고 불린다.”고 적혀 있고, 『증보문헌비고』에는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이 눈같이 희다고 하여 설악이라 이름지었다.”고 쓰고 있다. 백담, 수렴, 백운, 가야 등의 계곡으로 갈라지는 내설악이 우아하고 섬세한 여성적 계곡미를 자랑한다면, 천불동을 끼고 양쪽에 솟은 기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외설악은 웅장한 준봉들이 연출하는 남성적 경관이 숨을 멈추게 만든다.
한반도의 등뼈에 해당하는 태백산맥의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대청봉이다. 주봉인 대청봉 북쪽으로 마등령, 늘목령을 거쳐 황철봉에서 미시령을 지나 진부령까지 뻗어나가는 능선을 설악 북주능선이라고 한다. 대청봉을 기점으로 북북서로 뻗어나가는 능선을 恐龍稜이라 한다. 마등령에서 대청봉을 잇는 7킬로미터 반경 안에 무수한 岩峰들이 어깨를 견주며 솟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빼어난 자태로 꼽히는 게 천화대다. 공룡 능선에서 동북쪽으로 이어진 천화대에서 바라보면 화채봉이 멀리 솟아있고 동해도 눈에 들어온다. 천화대에서 바라보는 산악이 천상에서 굽어보는 꽃밭 같다 해서 천화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공릉능선에 속하는 암봉들은 왼쪽으론 천불동 계곡을 끼고, 오른쪽으론 내설악의 가야동 계곡을 끼고 솟아 있다. 무너미고개, 연화대, 마등령, 늘목령, 황철봉, 미시령, 신성봉 등이 대청봉의 3킬로미터 반경에 들어 있다. 설악산의 공룡릉과 서북 주릉의 넓은 지대가 내설악을 이루고, 이들 능선의 동쪽과 남쪽이 외설악을 이룬다. 대청봉 서남서 방향으로 뻗어나간 산계에 따로 이름을 갖지 못한 고지들을 지나면 한계령이 나온다. 대청봉 서북주릉을 타고 나가면 귀떼기청봉이 나오고, 대청봉에서 북동 방향으로 능선으로 나가면 화채봉이 있다. 이 화채봉에서 북북동 및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나오는데, 동쪽으로 뻗은 능선이 더 길며 그 끝은 동해안으로 이어진다. 동북능선이라고도 하고 화채능선이라고도 부른다. 이 화채 능선과 북주릉 사이에 외설악에서 가장 깊고 웅장한 천불동 계곡이 있는데, 청류와 양폭, 오련폭, 염주폭, 천당폭 등 급류가 흘러내린다. 대청봉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타고 나가면 관모봉을 지나는데, 거기서 직선거리로 구 킬로미터 더 나가면 양양과 면한 동해에 이른다. 이게 동남 능선이다.
설악산의 지형은 주로 백악기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지형은 풍화작용에 약하다. 설악산의 기암과 절벽들은 지표면으로 노출된 화강암 지대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온 풍화와 침식의 결과물이다. 설악산은 그 자체로 거대한 하나의 자연 생태계다. 한반도의 중부 고산지대에 속해 있으며 지형형성연대가 오래된 곳으로 樹林 植生의 분포는 매우 안정된 정착 양상을 보인다. 그 식물계군으로 보아서는 落葉闊葉樹林帶에 속한다. 설악산의 식물 군집은 초본군락을 빼고 나면 크게 13가지의 군락으로 갈라진다. 신갈나무 군락, 황철나무 군락, 층층나무 군락, 서나무 군락, 갈참나무 군락, 졸참나무 군락, 굴참나무 군락, 소나무 군락, 잣나무 군락, 전나무 군락, 사스레나무 군락, 분비나무 군락, 눈잣나무 군락 등이다.
이 장중하고 삼엄한 설악산을 마음의 地理로 새기고 상상세계를 키워온 시인들이 적지 않다. 그 중 얼른 떠오르는 두 사람이 고형렬과 이성선(1941 ~ 2001)이다. 고형렬은 본디 전라남도 해남 태생이지만 속초·대진·고성 등을 오랫동안 살림의 토대로 삼고 살아온 사람이며, 이성선은 고성 사람으로 평생을 설악산을 끼고 살았던 사람이다.
수렴동 대피소 구석에 꼬부려 잠을 자다가
밤중에 깨어보니 내가 아무것도 덮지 않았구나
걷어찬 홑이불처럼 물소리가 발치에 널려 있다
그걸 끌어당겨 덮고 더 자다가 선잠에 일어난다
먼저 깬 산봉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쫓겨서
옷자락 하얀 안개가 나무 사이로 달아난다
그 모습이 꼭 가사자락 날리며
부지런히 산길을 가는 스님 같다
흔적 없는 삶은 저렇게 소리가 없다
산봉들은 일찍 하늘로 올라가 대화를 나누고
아직 거기 오르지 못한 길 따라 내 발이 든다
길옆 얼굴 작은 풀꽃에 붙었던 이슬들
내 발자국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물소리가 갑자기 귓속으로 길을 내어 들어오고
하늘에 매달렸던 산들이
내 눈 안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오르지 못한 길 하나가 나를 품고 산으로 숨는다
이성선, 「설악을 가며」
이성선에게 “산”은 “내 눈 안으로 후두둑 떨어”져 서정적 주체와 하나가 된 산이다. 산은 주체의 삶을 감싸고 있는 자연과 자연현상들인 햇살, 물소리, 산길, 하늘, 하얀 안개, 산봉, 풀꽃, 이슬들로 이루어진 우주다. 산은 서정적 주체의 중요한 생활공간이 될 만큼 친숙한 것이기도 하다. 산 속의 생활은 세속의 욕망에서 물러나 앉아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초탈한 삶이다. 산수의 수려한 풍광 속에 구현된 도는 그것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정신과 생각에 융화된다는 것이 『논어』 등에서 볼 수 있는 동양의 자연관이다. 동양의 눈으로 보자면 고고한 기품이 깃든 산은 도를 체현한 것이며, 산 속은 몸과 마음을 두루 깨끗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仙界요, 이상향이다. 이성선의 시에서 속세의 복잡하고 혼탁한 삶과 비견되는 산 속은 無心 無私의 청정 도량이고, 수행의 자리다. 더 나아가 自足과 逍遙의 장소, “고요의 무덤 / 우주의 자궁”(「절정의 노래 1」)이다. 시인이 「절정의 노래 1」에서 “내가 최후에 닿을 곳은 / 외로운 설산이어야 하리. / 얼음과 백색의 눈보라 / 험한 구름 끝을 떠돌아야 하리”라고, 삶의 궁극에 이를 장소로 산 속을 꼽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봉이 어디인지. 눈이 펑펑 소청봉에 내리면 이 여름밤
나와 함께 가야 돼. 상상을 알고 있지
저 큰 산이 대청봉이지.
큼직큼직한 꿈같은 수박
알지. 와선대 비선대 귀면암 뒷길로
다시 양폭으로, 음산한 천불동
삭정이 뼈처럼 죽어 있던 골짜기를 지나서
그렇게 가면 되는 거야. 너는 길을 알고 있어
아무도 찾지 못해서 지난 주엔 모두 바다로 떠났다고 하더군
애인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나 나나 행복했을 것이다.
너는 놀라지 않겠지. 누가 저 산꼭대기에
수박을 가꾸겠어.
그러나 선들거리는 청봉 수박밭에 가면 얼마나 큰 만족 같은 짓으로 劫 속에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와서
사는 거야. 별 거겠니 겨울 최고봉의 추위를 느끼면서
걸어. 서릿발 친, 대청봉 수박밭을 걸어.
그 붉은 속살을 마실 수 있겠지.
어느 쑥동 널린 들판에 앉듯, 대청봉
바다 옆에서 모자를 벗으면 가죽구두를 너도 벗어놓고 시원해서
원시 말이야, 그 싱싱한 생명 말이야
상상력을 건든다.
하늘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로
삼경까지 오겠지 기다리지 못하면 시인과 동고할 수 없겠고
그게 백두산과 닮았다고 하면 그만큼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맨발로 눈이 새하얗게 덮인, 아니지, 달빛에 비친 흰 이슬을 밟으며
나는 청봉으로 떠난다.
독재로 너의 손목을 잡고
나는 굴복시켜야 돼 너는 사랑할 줄 아니.
한 가마 옥수수를 찌는 여인의 밤
그 밤만 가지고, 너와 나 우리 모두 노래할 수 있는가
가구를 두고 청봉 수박 마시러 나와 간다, 세상은 다 내 책임이었냐는 듯이 가기로 했다.
이 「대청봉 수박밭」 속에 생각이 있다고 털어놓건
비유인지 노래인지, 그것이 표명인지
거짓같지 않은 뜬소문 때문에
나는 언제고 올테니까.
대청봉에서 너와 가슴을 내놓고
여행을 왔노라며, 기막힌 수박인데 하고 뭐라고 할까.
설악산 대청봉 수박밭 !
생각이 떠오르지 않다니
그것이 공산 아니면 얼음처럼 녹고 있는 별빛에 섞여서 바람이 불고, 수박 같은 달이다. 아니다
수박만한 눈송이가 펑펑 쏟아지면
상상이다 아니다
할 수 있을까.
고형렬, 「대청봉 수박밭」
「대청봉 수박밭」에서 아우르는 시공은 보통 사람의 知覺의 현상학과 욕망의 미시정치학을 넘어서는 초월의 세계, 더 구체적으로는 莊子에 나오는 大鵬의 날개짓이 미치는 상상의 시공이다. 대청봉이라는 현실의 산봉우리를 공간에 대한 경험주의적·현세주의적 이해를 뛰어넘어 우주적·신화적 공간 속에 위치시키는 시인의 상상세계는 禪的 직관과 잇닿아 있는 듯보인다. 시인의 상상력은 大小와 廣狹은 물론이거니와 曲直과 剛柔와 厚薄을 두루 아우르며 대청봉이라는 실재를 두고 時空의 부피를 추상의 무한대로 이끌어간다. 실재와 상상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며 그 사이에 있는 대청봉은 한없이 커진다. 이 시가 보여주는 전망의 크기는 큰 산의 높이에서가 아니라 현실의 시공을 신화의 시공으로 변환시키는 시인의 상상력의 생성력과 드넓은 규모의 형이상학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시인의 상상력은 놀랄만한 신축성을 갖고 있어 장대한 것[바다]과 극미한 것[이슬], 뜨거운 것[여름]과 차가운 것[겨울], 상고 시대와 현재, 높은 것[하늘]과 낮은 것[바다], “한 가마 옥수수를 찌는 여인의 밤”과 겁의 시간이 한데 공존한다. 대청봉 꼭대기에는 여름밤에 펑펑 눈이 오고, 누군가 거기에 수박밭을 가꾸고 있다. 수평에서 수직으로, 닫힘에서 열림으로 움직이는 의식이 열어가는 상상만으로도 소시민의 비좁은 생활공간, 즉 고만고만한 물질적 삶의 지평을 뒤집어 우주화하는 해방과 쇄신의 느낌을 갖게 한다. “劫”의 시간 속에는 여름과 겨울이 함께 하고, 바다와 이슬도 함께 한다. 하나로 합쳐질 수 없는 것들이 합쳐져서 현실의 외연을 한껏 확장하는 것이다. 그 상상세계의 심미적 중심에 “큼직큼직한 꿈같은 수박”, 서릿발 친, “대청봉 수박의 붉은 속살”이 있다. 같은 시집에 들어 있는 「莊子」의 “바다 속에는 華彩峯이 있다.”는 구절에 비추어보면 이 무렵의 시인은 노장의 세계 속에 노닐며 공간에 대한 규범적 이해를 간단하게 넘어서는 해석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白居易 선생님께」에서는 1천1백년을 상거한 두 시간을 하나의 공간에서 아우르는 상상력을 펼쳐내 보인다. 마지막 연에서 대청봉 “수박”은 “달”로 변했다가 다시 “수박만한 눈송이”가 되어 펑펑 쏟아진다. 이것은 비유도 노래도 아니다. 거짓도 뜬소문도 아니다. 이것은 시인이 살고 싶은 원초적 원형의 세계, 잃어버린 낙원의 무구함, 문명의 세계와 벽을 쌓고 원시, 혹은 야만으로 탈영토화하는 대청봉의 세계다. 헤겔은 『역사철학 강의』 첫머리에서 “짐승만이 진정으로 무구하다.”고 썼다. 고형렬의 “대청봉 수박밭”은 문명화한 인간들이 잃어버린, 불행의 서사도 역사라는 긴 기억도 남기지 않는 그 짐승의 무구함으로 충만한 원시가 아닌가 !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 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최승호, 「大雪注意報」
강원도는 눈이 많은 고장이다. 강원도 태생인 최승호도 길을 끊어놓는 “폭설”을 자주 경험했을 것이다. 그것을 쬐그마한 “굴뚝새”의 생존을 위협하는 “백색의 계엄령”으로 상징화한다.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도 백색의 계엄령 아래에 들어간다. 눈보라의 군단이 몰려올 때 길은 끊어지고, 산짐승들은 굶주리고,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소나무는 가지를 부러뜨린다. 갑작스런 “폭설”이 몰고 온 이 최소의 생존조건 속에서 굴뚝새는 영문도 모른 채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최소조건의 삶을 찾는다. 아마도 이곳은 깊은 산간지방일 것이다. 이 장소가 증여하는 장엄함과 위엄은 곧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의 실존적 장엄함과 위엄의 근거이기도 하다. 이것은 문명이 만든 조잡하고 복잡한 주거공간에서 만들어지는 평면적 삶의 경험과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장소란 존재론적인 제약의 조건으로 삶의 의미를 규정하는 중요한 한 요소이다. 참된 삶이란 진정한 장소감 위에 구축된 존재양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부조리한 문명이 인공으로 만들어낸 상품화된 가짜 장소들에서는 참된 삶이 불가능한 것이다. 최승호의 「大雪注意報」는 압도적인 자연 재해가 몰고 온 삶의 궁핍한 조건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것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또렷하게 새기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로 “눈보라의 군단” 속에 휩싸여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라는 지형과 외관에 서리는 장엄함과 위엄에 대한 서늘한 느낌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3. 강원도, 높고 깊은 땅
강원도는 경기도와 함께 한반도의 허리께에 해당하는 道다. 한반도 중부의 동쪽에 있다. 북으로 함경남도와 경계를 이루고, 남으로는 경상북도와 경계를 이룬다. 서북으로 황해도, 서남으로 경기도와 충청북도, 이렇게 다섯 개의 도와 접해 있다. 백두산에서 뻗은 낭림산맥이 남동 방향으로 머리를 틀고 내려와서 강원도의 태백산맥으로 이어진다. 흐르는 구름을 이고 솟아있는 금강산·설악산·두타산·태백산 등과 같은 장엄하고 기품 있는 산들을 거느리고 산계를 이룬 태백산맥은 한반도의 중추로 매우 늠름하고 의연하다. 이 태백산맥 동쪽 고장이 영동지방인데, 이곳 지형은 처음 생겨날 때 땅이 높이 솟아 내륙의 산맥은 높고 바다 쪽의 대륙봉은 경사가 빠르게 바로 깊은 바다로 이어져 지형이 완만하고 너른 개펄을 품은 서해와는 달리 물이 늘 푸르고 깨끗하다. 태백산맥은 강원도 땅을 영동과 영서로 갈라놓았을 뿐만 아니라, 땅의 분단은 역사와 문화와 풍속과 기후의 갈라짐으로 이어졌다.
오래지 않아
내 손금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찾아오면
내가 만지는 나무도 기다린 듯 붉게 물들고
내 사랑도 만산홍엽으로 우거지리
그러면 아픈 날들도
이렇듯 산과 산 사이에 길을 내고
나그네처럼
훠이 훠이 지나가지 않을까
실직한 마음을 가을 산에 묻으며
정선 가는 길에 접어들면
앞서가던 차도 문득 나그네처럼 아득하고
마음의 절벽도 붉게 물든다
그 절벽 어디쯤에
내 사랑도 돌단풍으로 피어
이홍섭, 「정선 가는 길」
강원도 땅은 높은 산이 많아 예나 지금이나 이 높은 산의 고개들을 넘어야만 동과 서에서 나온 사람과 산물들이 오고 갈 수 있다. 사람들은 “산과 산 사이에 길을 내고” 왕래를 했던 것인데, 그 고개들은 철령, 추치령, 오소령, 건봉령, 진부령, 대간령, 한계령, 대관령 등이다. 정선은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땅이라 이색은 정선 땅으로 들어가는 길의 인상을 “일천 산엔 겹겹 푸르름이 가로놓였으니 한 가닥 길은 푸른 공중으로 들어간다”고 썼다. 동쪽으로 중봉산·문래산이 솟아 있고, 서쪽으로 가리왕산·청옥산·예미산·백운산·함백산이 성처럼 둘러서 있다. 다시 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노추산·석추산·박지산이 있고, 가까이로는 민둔산·고양산 등이 있다. 높은 산들이 많아 이곳 땅이 깊은 우물과 같아서 올려다보는 하늘이 세뼘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산이 높으니 깊은 골도 여럿이어서 이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은 자연스럽게 내를 이룬다. 오대천·지장천·용탄천·어천·골지천·임계천이 그것들인데, 이 물들이 합수하여 조양강이 되고, 이 물들은 다시 굽이굽이 흘러 영월 쪽으로 빠져나가 남한강의 상류 줄기인 동강에 이른다. 만산홍엽 우거진 산과 산 사이의 고갯길을 걸어서 넘거나, 아니면 “주먹만한 함박눈이 차창을 때리는” 한 겨울에 이 산골을 부득이 가게 될 때는 “스위치백식 기차를 타고” 힘겹게 “겨울의 산굽이”를 돌았을 것이다. 그때 문득 “뒤돌아보면 / 재빨리 사라지는 두 줄의 선로가 / 눈 속에서 지워지고 있”는 걸 보았을 수도 있다(이홍섭, 「스위치백식 기차를 타고」). 살림의 팍팍함과 인연의 곡절에서 깊어졌을 정한은 “마음의 절벽도 붉게 물”들였을 것이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박세현의 시를 읽다가 쉰 줄은 들어선 자만이 쓸 수 있는 그윽한 상투성의 세계에 놀란다. 멀쩡한 것도 상투성으로 전락하고 나면 식상해지는 법이다. 산해진미 속에 꼬부라진 털오라기 꽂힌 듯 딱 입맛 가셔 수저를 거두는 게 상투성 아니던가 ! 허나 상투성도 상투성 나름이다. “알맞게 삭은 기둥과 순한 처마와 / 주인의 속내 같은 붉은 곶감을 / 줄줄이 매단 초가집 / 그렇고 그런 상투성에 안심한다”(「시월」) 할 때의 강원도 산골짝 마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상투성 ! 상투성을 살아내고 제 살로 육화해낸 뒤 묵은 김치처럼 꺼내놓는 상투성이다 ! 이게 바로 쉰이 내보이는 상투성의 몸통과 꼬랑지다. 보라, “今年型의 가을 햇살을 / 맨손으로 받으며 / 귀를 열어놓으니 / 종종종 달려드는 환청들이 귀엽다 / 쉰 / 그래서 이 소리도 귀여웠던가”(「쉰」) 자기성찰이니 반성이니 따위의 말은 거두자. 쉰은 상투성을 주물러도 “배지 않은 애를 낳으려고 힘쓰는 폼”(「시는 무슨 시」)으로 주무른다. 주물러서 그윽한 상투성의 시를 빚어내는 것이다. 시인의 말을 빌려, 상투성을 견딤에도 미학이 있구나 ! 먹어본 자가 고기맛을 안다고 이만큼 상투적으로 살아본 자가 상투성의 본래면목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 상투성이 놀라운 것은 그 안쪽에 “무지 외로워져도 괜찮을” 높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높이의 出典은 「북대령」이란 시편인데,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살집 발라내고
우울한 비곗살도 잘라버리고
언뜻 삶을 멈춘 느릅나무
단풍 진 그 자리에서
한번쯤, 딱 한번쯤
제정신 데리고 놀다가
첫서리에 소스라치며
그마저 놓아주고
무지 외로워져도 괜찮을
이 높이
박세현, 「북대령」
이 높이의 상상력을 키워준 것은 강원도 산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수직 절리, 즉 그 많은 뼝대들일 터다. 아울러 이것이 세상의 상투성을 두루 꿰고 볼 수 있는 정신성의 높이라면, 시인이 도달한 지점이 여기다. 이 정신성의 높이들은 수직 절리가 잘 발달된 강원도의 산들이 체화하고 있는 높이에 대한 오랜 관조와 성찰에서 얻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강원도의 주요 수계로는 남한강의 본류와 지류들이 있다. 오대산에 발원한 평창강은 남한강의 본류에 해당한다. 『택리지』에서는 “강릉 서쪽이 대관령이고 영 북쪽이 오대산인데, 于筒水가 여기에서 나오며 한강의 근원이 된다.”고 적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대동지지』도 한 목소리로 오대산 우통수가 바로 한강의 발원지라고 말한다. 이 물이 대관령 서쪽 평탄면의 물줄기를 모아 평창 협곡을 빠져나와 동강 지류와 합치고, 다시 원주시 근교에서 섬강과 만난다. 태백산과 함백산에 나와 영월군을 가로질러 흐르는 동강과, 원주시와 횡성군을 끼고 흐르는 섬강은 남한강의 지류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은 소양강과 화양강 같은 물줄기를 합쳐 큰물을 이루고 강원도의 서남 땅인 춘천, 홍천, 인제, 양구, 화천, 철원, 김화 등을 돌아 황해로 빠져나간다. 영동의 수계는 태백산맥의 지형이 동쪽으로 가파른 탓에 대부분 물길이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삼각주도 없다. 고성군의 남강, 양양군과 명주군의 남대천, 삼척군의 오십천이 영동의 주요 하천이다. 영서 남부 지방인 원주, 원성군, 횡성군, 평창군 등 해발 표고가 낮은 곳은 벼농사가 적합하나 평창의 도암이나 진부 등의 산간 분지들은 고랭지 농업이 발달해 있다.
태백산백의 동쪽으로 동해와 면해 통천, 거진, 간성, 속초, 양양, 주문진, 강릉, 동해, 삼척 등과 같은 도시들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로들이 대개는 남-북으로 발달해 있는 것과는 달리 강원도는 동-서로 발달해 있다. 이는 서울이 강원도의 서쪽에 있는 것과 산맥의 방향과 수계의 영향 탓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아홉 고을이 모두 동해 가에 있어 남북으로는 거리가 거의 1천리가 되지만, 동서는 함경도와 같이 100리도 못 된다. 서북쪽은 산등성이 막혔고 동남쪽은 멀리 바다와 통한다. 태산 밑이어서 지세는 비록 좁으나 산이 나지막하고 들이 평평하여 명랑 수려하다.”고 적고 있다. 조선 선비 李穀은 시에서 “산맥이 북쪽에서 왔는데 푸름이 끝나지 않았고, 바다가 동쪽 끝이어서 아득하게 가이 없어라.”라고 읊었다. 예로부터 강원도 땅은 산은 높고 골은 깊어 자연과 산천 경관이 나라 안에서 기가 막히게 빼어난 곳으로 꼽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산협은 큰 강을 얽어서 험하며 막인 곳을 만들었고, 백성은 메마른 땅에 의존하여 간난함을 참는다.”고 했다. 높고 험한 산들에 둘리고 깊은 골을 끼고 있고, 골짜기마다 潭과 沼가 있고 샘과 하천이 흐르며 바위를 만나 폭포를 이룬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고
라디오도 잡히지 않는 곳
석회암이 앙상한 두 개의 산 사이
수달이 어름치를 잡아먹는 강이 흐르고
읍내엔 일백 오십 호 주민들이 삽니다
아이가 어른 같고
어른이 아이 같은 그곳에선
시간이 황종류석처럼 더디게 자라고
조폐공사에서 찍은 돈은 쓰이지 않습니다
전윤호, 「도원 가는 길」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과 벼랑마다 다양한 樹種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초록은 울울창창 우거지고 경개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수려하나 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니 자연 평평한 경지면적이 좁아 터전을 일궈 생계를 꾸리기에는 팍팍한 이 땅의 실정을 말해준다. 높은 산들이 전파의 흐름을 방해하니 핸드폰도 터지지 않고 라디오 전파도 수신되지 않는 곳이 강원도다. 사람 살기에 불편한 땅은 필경 야생 동물들에겐 천국일 터다. 다른 곳에서는 거의 멸종되었다는 “수달이 어름치를 잡아먹는 강”이 흐르는 곳이 강원도다. 시인은 이곳의 시간이 “황종류석처럼 더디게 자”란도 쓴다. 강원도 태생의 사람들을 ‘감자 바위’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이곳의 경제활동의 중심이 옥수수와 씨감자를 주로 재배하는 땅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져 있음과 이곳 사람들이 어리석어 보일 만큼 성실하며 욕심이 적은 품성을 가진 탓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빼어난 자연 경관들이 강원도 사람들의 인품을 어질고 순박하며 지혜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4. 태백문화의 발흥지
여러 유적들이 말해주는 바, 이 땅에서 꽤 큰 부족 국가를 이루고 사람들이 살았는데, 춘천 부족을 맥이라고 하고, 강릉 부족을 예라고 불러왔다. 본디 중국 동북쪽에 살던 한국인의 선조들이 한반도로 흘러들어와 예와 맥의 부족을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강원도를 예맥의 땅이라고도 부른다. 고구려 태조 때 고구려 땅이 되었다가 신라 진흥왕 때부터는 신라에 속한다. 고려 때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강릉과 원주의 이름을 따서 강원도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조선 태조 4년의 일이다. 금강산·설악산·태백산과 같이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높고 빼어난 경관을 가진 산들이 여럿인 강원도는 농사짓기에는 그 토양이 척박하니 사람이 대를 이어 살기에는 부적합한 땅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중환은 『택리지』에 이르기를 “북쪽의 회양에서 남쪽의 정선에 이르기까지 모두 험한 산과 깊은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고, 물은 모두 서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들어간다. 火田을 많이 경작하고 논은 매우 적다. 기후가 차고 땅은 메마르며 백성은 어리석다. 비록 시내와 산의 기이한 경치가 있지만, 한때 난리를 피하기에는 좋은 곳이나 오래 대를 이어가며 살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고 썼다. 그럼에도 강원도에서는 예로부터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 여럿 나왔다. 조선 초기의 문신인 함부림·최치운·최수성이 있고, 김시습·박수량·허균·허난설헌·신사임당·율곡 이이 등은 강릉에서 태어났다. 근대에 들어 강원도에서 배출한 문인들로 소설가 이태준, 시인 김동명, 이효석·김유정·박인환 등이 있다. 지금 살아 있는 시인들로 민영(철원), 마종하(원주), 김창균(평창), 강세환·권현영(주문진), 이성선·이상국(속초), 이인수·원영동·권오운·윤후명·권명옥·박세현·박용재·박용하·박기동·심재상·이홍섭·김선우(강릉), 최승호·최계선·최돈선(춘천), 고진하·김우연·유영금(영월), 박정대·전윤호·성미정·최건(정선), 안현미(태백) 등이 있고, 소설가로는 전상국·유재용·한수산·이외수·이순원·심상대·김형경·김별아 등이 있다. 이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찾아 읽으며 강원도의 심산유곡이 이들의 상상세계에서 어떤 이미지들을 낳았는가를 확인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