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1.月. 맑음
연鳶날리기 좋은 날.
해미읍성海美邑城에 잘 익은 봄바람들이 산들산들 불고 다녔다. 구름이 금잔디처럼 깔려 있는 높고 푸른 하늘위에서는 공중바람이 더 세차게 불고 있는 듯했다. 기운이 화창한 봄날이었지만 둥둥 떠 있는 둥글고 네모난 구름들이 붉은 태양을 알맞게 가려주어 5월의 햇살치고는 독하거나 맵지는 않았다. 오늘은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바람과 햇살과 그늘이 모두 사이좋은 친구가 되기에는 맞춤하게 좋은 날이었다. 고개를 들으면 눈을 가득 채워오는, 해미읍성 안의 높은 하늘 한쪽을 다 가릴 만큼 둥실둥실 떠있는 거대한 연이 몹시도 신기했다. 넓으막하게 보여 40인용 식탁은 족히 될 만한 본연鳶 위쪽으로는 작은 가오리연들이 층층이 30여개가 떠있었고, 아래쪽으로도 가오리연과 연등燃燈 이십여 개가 허공에 차곡차곡 눈금을 그어놓듯이 떠있었다. 사람들의 손과 거대한 연鳶을 이어주고 있는 연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굵은 밧줄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저렇게 큰 연과 함께 수십 개나 되는 연들을 한꺼번에 푸른 하늘로 띄울 수가 있었을까? 글자 하나가 사람만큼의 크기로 ‘봉 해미읍성 연등축제 축’ 이라고 쓰여 있는 연을 바라보면서 나는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그래서 그 커다란 연鳶 밑으로 파란 풀밭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검은 연 그림자를 쳐다보며 하릴없이 서성거려보았다. 바람을 어루만지는 손기술이 탁월한 연쟁이라면 내 두 팔목에 연실을 묶은 뒤에 나를 하늘로 높이높이 띄워 보내줄 수가 있을까하는 상상까지 덧붙여가면서 걸음을 옮겨가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렇게 저 높은 하늘로 나를 띄워 보낼 수 있다면 연은 수미산須彌山을 지나고 이윽고 도솔천兜率天에 이르러 용화회상龍華會上을 준비하고 계시는 미륵보살님을 만나볼 수가 있을 터인데...
부처님오신 날을 맞아 날짜를 보름이나 앞 당겨 미리 해미읍성에서 시행하는 연등축제燃燈祝祭는 5월의 두 번째 토요일인 9일이라고 내 기억 속에 분명하게 새겨져있었다. 토요일 연등축제에 이어서 일요일 일요법회에 참석을 하려면 아예 절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연등행사와 법회에 참여하는 일박이일 일정으로 다녀오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아내와 상의한 결과 의견일치를 보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만큼 편안한 곳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따금 절에서의 일박은 소소炤炤한 생활의 활력活力과 어기찬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는 계기契機나 동기動機가 되어주고는 했다. 벌써 세 번째가 되었지만 금요일 밤의 일산소재 선원의 대비주수행을 마치고 밤11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다가 스마트폰을 열어본 아내가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여보, 일요법회에 항상 참석하는 백화白樺보살님에게서 저녁7시 경에 문자가 들어와 있었네요.” 그 내용은 다름이 아닌 서울에서 해미읍성까지 함께 내려갈 친구가 두 사람이나 더 생겼다는 말이었다.
절에서도 절식구들이 아침9시경에 연등축제 준비를 위해 해미읍성으로 출발한다고 했으니 서초구민회관에서 아침7시에 떠나는 우리들과 아마 거의 같은 시간에 행사장에 도착하게 될 것 같다는 등의 말을 서로 나누면서 봄놀이 관광버스가 엮어놓은 굴비처럼 즐비하게 늘어선 도로를 헤엄치듯 누비며 빠져나왔다. 과천-의왕 외곽도로.. 서해안고속도로.. 서산휴게소.. 해미IC를 지나 해미읍성에 당도하니 아침9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절식구들은 벌써 읍성 안에 도착을 해서 행사준비를 하고 있었고, 씩씩하지도 그렇다고 수줍어하지도 않는 5월의 붉은 해는 하얀 구름 사이를 연신 드나들면서 햇살의 강약强弱과 증감增減을 조절하면서 보기 드문 친밀감親密感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투명하고 힘이 센 산들바람이 수시로 읍성邑城 안을 몰려다니면서 성곽에 꼽혀있는 색색의 깃발들을 흔들어댔다. 그 바람에 저만큼 멀리 떠있는 하얀 구름들도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만 했다. 읍성안의 하늘 가운데는 뾰족하게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름 아래로 수많은 연鳶들이 날고 있었다.
작고 날렵한 가오리연들은 꼬리를 윤기 있게 흔들면서 잘 날고 있는데, 독수리연 하나가 자꾸 곤두박질을 치다가 땅으로 떨어져 내려왔다. 연은 다시 바람을 타고 오르다 얼마만큼 올라가면 또 허공중에서 곤두박질을 두세 번 친 후에 땅으로 떨어져버렸다. 비상飛上을 꿈꾸면서 서너 차례 하늘을 향한 시도를 반복해보았지만 언제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자세히 쳐다보았더니 독수리연은 아쉽게도 살이 하나 부러져있었다. 날개 꺾인 새처럼 살 부러진 독수리연의 소망은 땅 위에서 만큼 하늘 위에서도 쉽사리 이루어질 것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힘센 산들바람이 불어 오가는 오늘처럼 연鳶날리기 좋은 날에도 독수리연 하나가 소망所望을 등에 지고 힘겹게 힘겹게 같은 동작을 수십 번째 반복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스스로 빛나는 연등燃燈이 되어 하늘에서 세상을 비추는 광명光明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꺾인 등을 바람에 의지한 채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 연鳶날리기 좋은 날. -)
첫댓글 현장에 가지 못했어도 가있는듯 , 가본듯 합니다.
축제란 원래 설레고 들뜨는 법인데 절에서 하는행사이니 말해 무엇할까요?
비록 그자리엔 없었지만 자랑스럽고 흐뭇합니다.
같이 동참하신 분들 수고 많으셨고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