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 속에는 수천년 삶의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지인에 던지는 질문이다.
1979년 8월 15일은 내가 성당에 처음 간 날입니다.
건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친구의 믿음이 부러웠기 때문입니다.
스물일곱 살이었던
1977년에 시작한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연속 2년하고 잠시 쉬던 해였는데, 그날은 마침 '성모 승천 대축일'이었습니다.
교리 교육을 받던 중, 주임 신부님께서 현직교사이니 고등부 지도 교사를 맡으라 하셨습니다.
7년을 봉사하는 동안, 남녀 학생들이 나누는 '1분 이야기'를 들으며 청소년들을 이해하는 시야가 훨씬 넓어졌고, 재직 중인 학교에서 학생 생활 지도에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때마침 청소년 수련에 남다르셨던 이영묵 몬시뇰님께서 부임하셔서 격려해 주신 덕분에 고등부 출신 중 세 명이 신학교에 지원했고, 그중 두 분이 사제 서품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제가 재직하던 반 학생과 졸업생 두 분도 사제 서품을 받으셨으니, 모두 네 분이 사제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중 한 분은 선종하셨고, 나머지 세 분은 현재 사목하고 계십니다.
저는 1980년 부활절에 세례성사를 받았고, 그해 10월에는 고등부 학생들이 불러준 '주님은 나의 목자' 축가를 들으며 혼인성사를 치렀습니다.
제가 성당에 나가면서 사람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간혹 들었습니다. 아마도 군인 시절 안전 교육을 담당하던 장교였던 터라 깐깐했던 성품이 많이 순화되었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살던 곳에서 본당까지는 아이들 걸음으로 거의 한 시간 걸리는 경사길이라, 주일 미사는 아이들과 함께 늘 차로 다녔습니다.
주임 신부님께서 "어린이는 어른 미사에 참석하지 말고 주일학교나 어린이 미사에 드리라"고 하신 일로 아이들이 미사 참여를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아들은 가톨릭 정신을 잊지 않고 건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성당 품 안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2002년 서대신 본당으로 교적을 옮긴 후에도 '주일 신자'로만 지내다가, 2023년 본당 창립 기념 행사에서 늘 함께 미사에 참여하시던 부부께서 신심 단체 가입을 권유해 주셨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헌신과 순명과 봉사의 참뜻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보속할 때만 겨우 바치던 묵주기도를, 주영돈 토마스 주임 신부님의 권유로 '본당 설립 70주년 기념 묵주기도 백만 단 봉헌 행사'에 참여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바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 신앙을 지켜주시는 사제를 위한 기도도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첫댓글
아이들 미사 참여,
지금 생각하면 요즘 우리 성당 처럼 어른이 아이와 함께 '어린이 미사'에 참여하였으면 되었는데'하는
생각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어릴 때,
주일학교 교육 힘은 아주 커답니다.
우리집 아이들 둘 다,
성당 유치원을 다닌 덕분으로 사춘기 잘 넘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