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1-27 예수님의 길, 나의 길
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18:2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18: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18: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인생의 주도권이 내게 있을 때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방향,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소망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낙심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삶까지도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또한 신자에게 있어서 손해를 보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위로와 기쁨과 감사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55:8-9]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람의 마음과 뜻과 길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길과 너무 다른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앞 날에 대해 알기를 원할 것입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남들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거라 생각을 할 것입니다.
학생은 시험 문제가 무엇이 나올지 아는 것
주식을 하는 사람은 어느 종목이 오를지 아는 것
어디에 줄을 서야 승진을 할지를 아는 것
어느 지역의 땅에 투자를 해야 할지 아는 것
어느 사업에 투자를 해야 돈을 벌지를 아는 것
교회가 어떡하면 성장하고 부흥할지를 아는 것.....
그리고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면 기뻐할 일이지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을 안다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리고 불행한 일을 대비할 수 있으니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인생어 길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좋은 일이거나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면 얼마든지 기꺼이 희생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고난의 길임을 아셨음에도 그 길을 받아 들이고 가신 것입니다.
사람은 고난이 있다고 하면 할 수만 있으면 피하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죠.
그 길이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가는 것은 무모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왜요? 다만 죽으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즉 베드로는 예수님이 죽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만을 한다는 예수님의 책망을 듣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아셨음에도 그 길을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길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로 고난의 길임을 알고도 그 길을 간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고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도하기보다는 얼마든지 우리가 그 고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길을 알고자 기도하기보다 그 고난을 극복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허락하신 그 고난의 길은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신자의 자세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잘되는 것이 우리의 길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가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 제자의 길
즉 예수님이 가신 길은 십자가 고난의 길이듯이 하나님께 속한 신자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고난의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예수님과 신자들을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체가 신자들에게는 고난의 길인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았다면 우리 주님처럼 담대하게 당당하게 받아드리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신자가 무엇때문에 슬퍼하고 낙심합니까. - 고난 때문입니까?
복음찬양 나는 믿네 가사를 보면,
내게 허락하신 시련을 통해 나의 믿음 더욱 강하게 자라나고
험한 산과 골짜기 지나는 동안 주께 더 가까이 나를 이끄시네
내가 겪는 시험이 어렵고 힘겨워도 내 주님보다 크지 않네~
주와 함께 싸워 승리하리라 날마다 믿음으로 나 살아가리
신자에게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믿음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신자된 자의 도리입니다.
히브리서 12:1~11 함께 읽겠습니다.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12: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2: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징계" (헬,파이데이아) : 교육, 양육, 훈련, 훈(징)계. 교정
함께 읽은 히브리서 12장의 징계라는 단어대신 고난이라는 단어를 넣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늘 하나님을 떠나려는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고난과 징계 즉 십자가의 길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징계(고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함과 동시에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교육(양육, 훈련, 교정)을 위한 하나님의 의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을 위한 교육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진정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신자는 예수님의 길이 나의 길임을 잊지 마시고 어떠한 경우에도 끝까지 따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