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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도 2018년 10월 월례치성 도훈
"내가 생각하는 일심이란"
2018. 10. 27(음력 9. 19)
산마다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습니다. 들판에 추수가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제법 내려가서 살짝 추위마저 느껴지게 합니다. 환절기에 건강 잘 챙기시어 건강한 가운데 활기찬 하루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공사간에 바쁘실 텐데, 오늘 특별히 시간을 내서 증산상제님 탄신 147주기 성탄치성에 참석해 주신 태을도인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올해에는 10월 월례치성과 증산상제님 성탄치성과 겹쳐서 같이 모시게 됐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생각이 쌓이게 됩니다. 태을도 공식기두 20주년을 지나고 증산상제님 탄신 147주기를 맞아 성탄치성을 모시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증산상제님께서 이마두 신부님을 비롯한 신성 불 보살들의 간곡한 하소연을 들으시고, 인간의 독기와 살기가 만들어낸 급살병으로 죽어나갈 천하창생을 건지시기 위해 몸소 인간의 옷을 입으셨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은 증산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참으로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과 신명세상에서 가장 성대한 축하잔치가 벌어져야 할, 그야말로 역사적인 날입니다. 아직은 증산상제님 성탄치성이 증산종단에 머물고 있지만, 차차 증산상제님의 가르침의 진가가 알려지면, 모든 이들이 증산상제님 성탄을 축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태을도인들이 힘을 모아 태을도를 널리 전하여 증산상제님의 가르침이 제대로 알린다면, 세상사람들이 증산상제님의 참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 행사는 마음의 자취
증산상제님께서는 "말은 마음의 소리이고 행사는 마음의 자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쓰는 말과 글에는 우리들 마음의 소리가 고스란히 담겨지고, 우리들이 움직이는 행동에는 우리들 마음의 자취가 그대로 남겨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사소한 말 한 마디·미미한 글 한 줄에도 우리들 마음이 담겨지는 것이고, 우리들의 일상적인 행동 하나에도 우리들 자취가 새겨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절실함이 있으면 말과 글에도 절실함이 스며듭니다. 마음에 간절함이 있으면 행동에도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천지부모이신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의 말씀을 듣고 글월을 읽고 움직이신 현장을 따라가다 보면, 천하창생들을 생각하는 절실함과 간절함이 뜨겁게 전해져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심은 절실함이요, 간절함입니다. 한마음의 오롯함이 있기에 절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음의 지극정성이 있기에 간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일심으로 자식들을 낳아서 키워서 사람모습을 갖춰 주셨고, 우리 스승님들은 일심으로 제자들을 각성시키고 깨우쳐서 사람노릇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성군들은 일심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인도해서 태평성대한 세상을 이루도록 했습니다. 우리 부모님과 스승과 성군들의 말 한 마디·글 한 줄·행동 하나에도 자식과 제자와 백성을 향한 절실하고 절절한 마음이 녹아있기에, 자식들과 제자들과 백성들은 부모님과 스승과 성군들의 은혜를 기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증산상제님은 군사부의 표본
증산상제님은 군사부(君師父)의 표본이십니다. 증산상제님은 천하창생의 부모님이요, 천하창생의 스승이요, 천하창생의 성군이십니다. 증산상제님은 우리들에게 부모가 되는 길, 스승이 되는 길, 성군이 되는 길을 알기 쉽게 자세하게 일러 주셨습니다. 상극세상은 상극지리가 지배하여 독기와 살기가 발생하여 아무리 휼륭한 부모·스승·성군이라 할지라도 말과 글과 행동에 독기와 살기가 퍼져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스승이 제자를 각성시키고 깨우치고 과정에서, 성군들이 백성들을 다스리고 인도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소리인 말과 글에 독기와 살기가 어려 있고, 마음의 자취인 행동에 독기와 살기가 배어 있습니다. 이것이 상극의 유전입니다.
증산상제님은 역대 신성 불 보살들이 주도해온 상극세상에서의 동서고금 군사부 문화와 문명 속에 녹아있는 독기와 살기를 모두 풀어없애야, 우리들이 급살병을 극복하고 상생의 태을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중심축인 군사부 체제가 온전히 제 역할을 하여 부모다운 부모·스승다운 스승·성군다운 성군이 되어 상생세상을 열어가려면, 독기와 살기가 묻어있는 군사부 체제를 생기와 화기의 군사부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다운 부모를 보고 자식의 길을 잘 가고, 제자는 스승다운 스승을 보고 제자의 길을 잘 가고, 백성은 성군다운 성군을 보고 백성의 길을 잘 가게 됩니다.
태을도를 만나 부지런히 마음 닦고 태을주를 읽어 독기와 살기를 풀어 없애야, 급살병에서 나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습니다. 가족도 살리고 이웃도 살릴 수 있고, 민족도 살리고 국가도 살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천하도 살리고 삼계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계도 살리고 신명계도 살릴 수 있습니다. 증산상제님은 당신의 제자들과 방방곡곡 천지공사의 현장을 누비며 말과 글과 행동으로 생기와 화기로 가득 찬 군사부의 모범을 보여, 우리들에게 그걸 실천하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만고의 진리입니다. 상극인간이 태을도를 만나 독기와 살기를 완전히 풀어 없애 군사부를 올바로 실천하는 상생인간 태을도인으로 인간개조가 되어야 상생의 태을세상이 도래합니다.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의 마음과 마음씀을 배운 태을도인들 각자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나라에서 제대로 서야 합니다. 오늘의 태을도인 5분 도훈 주제가 ‘내가 생각하는 일심이란’입니다. 우리 태을도인들께서는 일심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돌아가면서 말씀해 주시기 바립니다.
충덕도인님 :
일심의 경지는 태을과 하나되는 마음의 경지
@ 이제 모든 일에 성공이 없는 것은 일심(一心)가진 자가 없는 연고라. 만일 일심만 가지면 못 될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무슨 일을 대하던지 일심 못함을 한할 것이요, 못되리라는 생각은 품지 말라. (대순전경 p335)
@ 무진년(1928) 9월 19일 치성을 드린 후에, 고후비님께서 도중을 향하여 가라사대 "만고성인 공부자도 때 아니면 될 수 있나." 하시더니, 이어서 이와 같이 큰 소리로 노래하시더라.
"전무후무 천지운수
우리시절 당한 운수
성경신이 결실이니
삼도합일 태화세를
세상사람 뉘 알소냐." 하고 곡을 붙여 부르시더라. (선도신정경 pp168-169)
우리가 일상생활하면서 어떤 일을 추진할 때, 한결같이 꾸준한 마음을 가지고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과에 대한 의구심, 열악한 물리적인 환경, 경제적인 불안감, 나태함, 현실적인 즐거움에 대한 유혹 등으로 처음에 먹은 마음을 일관되게 지키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 두거나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당초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한참 미달된 결과를 얻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일심은 '어떤 경우에도 중단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한결같이 지속되는 일관된 마음'이라고 풀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면 일심을 가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위에 언급된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성경신을 가지면 일심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신(誠敬信)을 풀이해 보면,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우선 그 일이 옳고 반드시 성취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마음의 의지가 서게 되고, 그 의지를 항상 공경하여 다른 어떤 것보다 앞세우고, 또 정성을 들여서 그 의지를 실천하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인간계의 모든 일은 신명과 더불어 추진되고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심의 상태가 되면 신명을 감화시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신명과 하나가 되려면 결국 태을과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심의 경지는 태을과 하나 되는 마음의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충정도인님 :
폭넓은 공부와 인식을 겸비한 열리고 온전한 모습이어야
@ 하루는 또 이르시기를 "오직 일심(一心)을 가지라. 일심이라 하는 것은 능득능광한 것이니라." 하시더라. (정영규, 천지개벽경 p262)
@ 하루는 공사를 보시기 전에 종도들에게 경계하여 가라사대 "모든 일에 일심이면 이루지 못할 바 없을 것이요 모든 일과 모든 것에 일심이 없으면 우주 간에 만사불성이니라." 하시더라.(정영규, 천지개벽경 p262)
생활에 있어 일심의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공부를 해도 일심으로 하고, 일을 해도 일심으로 하면 그 성취가 없을 수 없습니다. 순간순간을 집중해 마음을 모아 그때그때의 일에 충실히 하는 것이 일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 일심의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변함없는 모습의 신앙, 정성스러운 모습의 신앙이 일심의 모습일 것입니다. 증산신앙을 일심으로 해도 어떤 생각으로 어떤 모습으로 일심을 하는가는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일심이 폐쇄적인 모습이 되면, 외골수적인 모습으로 영혼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게 될 수 있습니다. 신앙에 있어 일심은 폭넓은 공부를 통해서 지그시 활 다리듯 갖춰져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올바른 일심으로 신앙하는 모습은 폐쇄적이고 집착하는 모습이 아니라, 이성을 바탕으로 폭넓은 공부와 인식을 겸비한 열리고 온전한 모습으로 진심을 다하는 그런 마음씀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충일도인님 :
일심이 된다는 것은 인간완성이 된다는 것
일심은 변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며 또한 하나의 마음으로 생각을 합니다.우주가 돌아가는 것도 일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상제님 성언을 통해 일심을 살펴보면 '일심이면 능득능광'이라 하였고, '한 사람이 한 마음이면 한 사람이 나를 볼 것이요. 천하 사람이 한 마음이면 천하 사람이 나를 볼 것이다' 하셨습니다. 또한 '만약 마음을 같이 나눌 일심자가 있으면 서촉에 있을지라도 찾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위의 말씀을 통해 일심이라고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면, 일심이라고 하는 것은 상제님과 한마음이 되는 것이 일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맹목적인 믿음으로 변치 않는 일심과 의리는 깡패도 가지고 있고 관운장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일심은 변치 않은 마음도 있지만, 진정한 일심은 진리에 입각한 천지와 한마음이 되고 천지부모님과 한마음이 되는 것이 일심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천지부모님과 한마음이면 천지부모님을 볼 것이며 천지부모님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일심자라면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찾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시천주 봉태을 하는 것이 일심이라는 결론입니다. 내가 천지부모님의 마음을 배우고 닦아 시천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일심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이며, 그리고 난 뒤 태을주를 읽어 태을체로 재생신되는 것입니다. 천지부모님의 마음을 체득하여 진정한 진리의 도자이자 제자이며 군신으로 자리잡아 가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며, 진리의 화신이 되는 길이며, 또 다른 강증산과 고판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 태을도인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일심은 진리의 사랑을 천지부모님을 대신하여 실천하는 길입니다. 천지부모님의 사랑을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와 국가와 세계의 천하창생에게 베풀 수 있을 때, 진정한 천지부모님의 대행자이며 일심의 경계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합니다. 천지부모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길입니다. 인간 완성의 길입니다. 마음을 닦아 일심이 된다는 것은 시천체과 되고 태을체가 되어 인간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태을도의 최종 결론은 인간완성입니다. 우주의 열매로 최종 열매맺는 것입니다. 그 길의 시작이 마음을 닦는 것이요. 마음을 닦아 천지부모님과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후천 오만 년을 이끌어갈 초석이 될 수가 있는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충양도인님 :
천지부모님이 찾는 일심자, 시천주 속육임
상제님께서 "만약 마음을 나눌 일심자(一心者)가 있다면 내가 비록 서촉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그를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천지부모님은 우리들에게 태을도인으로 재생신(再生身)되어 마음을 함께 할 일심자를 찾고 계십니다. 천지부모님이 찾는 일심자가 시천주 속육임입니다. 증산종단 105년 만에 태을도에서 시천주 속육임이 출발하였는데, 도운이 세운을 접수하여 의통도정 의통정국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시천주 속육임 도인들의 일심으로 태을도 천지공정을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천지도수가 인사로 성사재인 되려면 시천주 속육임 도인들이 '시어일심(始於一心) 종어일심(終於一心)'해야만 가능합니다. 단주가 천심자를 가려 시천주 속육임을 정해 세운을 통할하여 태을주 수꾸지를 돌려 의통성업을 완수하고 세계일가 통일정권 대시국을 건설합니다.
@ 하루는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나를 찾으며 일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들어가는 그 문을 닫고자 함이니라." 하시며 또 가라사대 "시어일심하고 종어일심하라." 하시니라. (정영규, 천지개벽경 p195)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도 문하에 혈심자 한 사람만 있으면 내 일은 이루어지느니라." 증산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세상사람들이 나의 도 문하에 태을도인들이 나왔다고 말들을 하면 태평천하한 세상이 되리라."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태을도인으로 포태되는 운수이니 아동지세니라. 그러므로 치성을 모실 때에는 관복을 벗고 헌배하라. 때가 되어 관을 쓰고 치성을 모시면 천하태평한 세상이 되리라. 나의 도 문하에 태을도를 받드는 태을도인이 되는 그날이 그 사람의 후천인생에서 한 살이 되느니라.“ (이중성, 천지개벽경 p195)
후천선경 건설은 태을도 속육임의 일심자들에 의해 성사재인됩니다. 태을도인 각자가 조금도 방심하지 말고, 일심으로 마음 닦고 시천 태을을 밝혀 급살병에 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충희도인님 :
일심은 천지부모님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
상제님께서는 "일심이면 못 이룰 바가 없다." "모든 것이 시어일심 종어일심이다."라고 하시며 일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상제님께서 말씀하시는 일심은 어떤 뜻일까요? 일심은 상제님과 수부님과 한마음이 되어, 천지부모님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일심은 천명이 내리는 통로이고, 하느님의 권능이 행사되는 마음의 지평이라고 봅니다.
상제님께서 ‘사람의 마음이 천층 만층 구만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마음은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옹졸한 마음이 있는 반면에 대인대의한 마음도 있습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서 삼계우주를 다스리는 천지부모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일치하면 일심의 경지에 들어간다고 봅니다. 일심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은 석가부처가 말한 열반이요, 예수가 말한 구원이요, 공자가 말한 수천명(受天命)이요, 수운 최제우 선생께서 말씀하신 시천주(侍天主)라고 생각합니다.
일심을 갖는 것은 맹목적인 충성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맹목적이지 않습니다. 천하의 선(善)도 다 가졌고, 천하의 악(惡)도 다 가지신 분이 하느님입니다. 모든 것을 다 품어내시지만 지극한 선에 이르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괴롭고 힘들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참는 것이 사랑인 것 같습니다.
일심의 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천지부모님의 말씀과 행동을 꼼꼼히 반추하고 배워서 우리들이 겪어내는 일상에 각자의 마음을 적용해봐야 합니다. 그런 부단한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 어느새 천명이 내리고 일심의 경지에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일심을 갖는 일, 인간의 운명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을 찾을 수밖에 없고 인류역사에 종교가 생겨난 것 같습니다.
후천개벽기를 맞이하여 상제님과 수부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천주강림의 대역사가 지구상에 펼쳐졌습니다. 이제는 종교를 믿는 시대가 아니라, 전 인류가 하느님과 전면적인 소통을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에 인간으로 강림하신 천주님의 마음을 배우고 적용해서 우주 간에 가득 찬 신명을 움직여 청화명려한 선경세계를 건설해야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충익도인님 :
목적을 이룰 때 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
고사(古事成語)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정신을 집중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한마음으로 정성을 쏟으면 못 이룰게 없다는 뜻인 '정신일도금석가투(精神一到金石可透)'가 있습니다. 일심은 쇠나 돌도 뚫을 수 있다는, 즉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 일심상태의 심력(心力)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인 것 같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일심이면 만 리밖 군함도 손가락 하나 튕겨서 깨뜨릴 수 있다' 하고 말씀하신 바가 계시고, '만일 일심만 가지면 못될 일이 없다'고도 하셨죠. 이렇듯 일심(一心)자리는 일반적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어떤 마음의 힘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일심은 말 그대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정성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문 수행중에 생각이 분산되고 마음이 흩어져 정신이 일도(一到)하지 않으면, 설독(說讀)이라고 해서 입으로는 소리를 내고 있지만 주송과 의식이 합일되지 않아, 수행의 본래 목적인 자기 본성(本性 )을 찾아들어가는 데 상념이 분분해져, 원할히 수행을 이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무슨 일이든 일심정성없이 되는 일은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저기 아메리카 인디언족에 내려오는 유명한 전설이 하나 있는데요. 기우제에 관한 설화입니다. 그해에 가뭄이 들게 되면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꼭 지내는데,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하더군요. 가뭄이 들 때마다, 이들은 정성을 모아서 기우제를 지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하늘은 반드시 응답을 해주리라 확신이 있었나 봅니다. 실상은 기우제를 한시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비가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기우제를 지내서 비가 내리거나, 비가 와서 기우제를 마치거나 그 어느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인디언족의 기우제에 쏟아붓는 한결같은 일심정성의 마음에 그 의의(意義)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일심은, 목적을 이룰 때까지 포기할 줄 모르는 인디언의 기우제 정신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종부님 :
오직 공심을 가지고 지극한 성경신으로 생활하고 천지공정에 참여하는 것
제가 상제님신앙을 처음 시작했을 때, 상제님말씀 중에 제일 감 잡기가 어려웠던 것이 '일심(一心)'과 '마음을 닦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음이란 단어가 제게 잡히지 않으니, 마음에 관한 상제님말씀은 모두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동경대전(東經大全)」 좌잠(座箴)에 '오도박이약(吾道博而約) 불용언다의(不用言多義) 별무타도리(別無他道理) 성경신삼자(誠敬信三字)- 내 도는 넓고도 간단하니 많은 말이 필요없고, 따로 다른 도리가 없고 그저 성경신 석자라'란 구절을 보며, '일심은 바로 성경신이구나' 하며 비로소 '일심'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제는 제법 마음에 대해서 얘기할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일심은 여전히 제게 어려운 단어입니다.
일심이란 다른 생각이 털끝만큼도 끼어들 틈이 없이, 오직 그 하나의 생각에 완전히 몰입이 되었을 때의 상태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완전한 믿음으로 몰아지경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 순간에 의식이 작용한다면 몰아지경이라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순간이야 몰아지경이 가능하겠지만, 한결같이 몰아지경을 유지하기는 극히 어렵습니다. 상제님이 말씀하신 일심이 평생을 한결같아야 하는 거라면, 몰아지경이란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현실에 착근해 인연을 챙기며 상제님일을 해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일심이냐. 역시 '성경신(誠敬信)'이라 풀이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다만 그 성경신이 한 치의 허트러짐이나 일말의 불안이나 의심없이 지극한 성, 지극한 경, 지극한 신으로 나의 일상생활과 신앙이 유지될 때, 그 성경신을 일심의 경지라 하겠습니다. 여기엔 조금의 사심(私心) 역시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온전하고도 지극한 긍정심과 믿음과 공심으로 한결같이 한 곳을 지향할 때, 증산상제님이 말씀하신 일심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고수부님이 말씀하신 안될 일을 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존재에 대한,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급살병이나 후천개벽에 대해, 한 치의 의심이나 나태함 없이 오직 공심(公心)을 가지고 지극한 성과 경과 신으로 상념하고 행동하는 것, 그래서 늘 기쁨과 확신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는 것이 일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장님 :
절실하고 절절한 마음으로 일심을 다하자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여워하고 예뻐한다고 합니다. 곡식은 남의 밭의 곡식이 좋아보이고, 자신은 내 자식이 좋아보인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제 자식이 객관적으로 아무리 못 생기고 못나보여도, 그 자식을 낳은 부모는 자기 자식을 가장 사랑스러워하고 애지중지하는 법입니다. 때로는 가끔 잔소리도 하고 쓴소리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부모가 자식을 잘 되게 하려고 하는 말입니다. 스승도 자기가 가르친 제자를 그렇게 생각하고 임금도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간세상을 살아가는 인륜의 인지상정입니다.
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렸지만, 증산상제님께서는 참으로 절실한 마음으로 절절한 마음으로 일심을 다해 상생의 태을세상을 여는 군사부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증산상제님은 인간과 신명을 태을도로 낳고 기르고 각성시키고 깨우쳐서 다스려 인도하는 군사부의 완결체로서, 지심대도술 신인합일 삼계일가 태을세상의 주재자이십니다. 증산상제님은 모든 이들이 태을도를 만나, 각자의 마음속에 받아나온 시천과 태을을 밝혀 천주의 품성을 되찾고 태을신성과 생명력을 회복한 시천주 봉태을의 태을도인이 되어, 급살병을 극복하고 세계일가통일정권인 대시국을 세워, 생기와 화기가 무르녹는 태평천하한 군사부시대를 열어가도록 천지공사를 보셨습니다.
천지부모님의 일심정성이 담긴 태을도
이제 증산신앙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 증산상제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증산상제님의 일심을 본받은 태을도인들의 일심만 가지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태을도를 통해 시천주 봉태을의 태을일맥이요 태을일통인 지심대도술의 신인합일 삼계일가 태을시대가 펼쳐집니다. 증산상제님의 일심으로 집행하신 천지공사와 고수부님의 일심으로 감리하신 신정공사와 단주의 일심으로 성사재인되는 상생의 태을세상입니다.
마음이 마음을 알아봅니다. 마음이 마음을 찾아갑니다. 마음으로 구하고 마음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도는 마음의 주고받음입니다. 급살병에 사는 것도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천하가 도탄에 빠지면 도로써 구해낼 수밖에 없습니다. 독기와 살기에 물들어 있는 천하창생의 마음을 독기와 살기에서 구해내야 급살병에서 살릴 수 있습니다.
태을도는 천지부모님의 일심정성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우리 태을도 속육임들이 선구자로서의 소명감을 갖고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천지부모님과 이심전심된 마음으로 일심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태을도를 전해 태을도인으로 재생신시켜 태평천하한 군사부 시대인 태을도 대시국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천지부모님 앞에 다짐하고 또 다짐한 우리의 의지가 기적적으로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이상으로 도훈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내 생각을 전하고 남의 생각에 귀기울이다 보면 짜릿한 감동이 올 때가 있습니다. 생각이 마음을 통해 이심전심된 것입니다. 천지부모님의 가르침이 내 마음을 타고 짜릿하게 감동으로 다가와야 실천으로 옮겨집니다. 천지부모님의 가르침은 예전이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지만 우리들의 마음으로 느껴 받아들이는 경우는 천차만별입니다. 내 마음을 타고 천지부모님의 말씀이 짜릿하게 느껴져야 천지부모님의 뜻과 생각을 온전히 증거하고 세상에 전할 수 있습니다. 태을도인들께서 도인의 길을 가면서 짜릿하게 느끼신 일심에 대한 말씀들을 나워주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로는 일심과 성경신을 얘기하나, 아직도 일상생활에서 정성스러움과 공경함이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어제 만난 카톨릭신앙을 하는 친구의 말처럼, 모든 이를 주님같이-
우리는 '주변의 모든 사람을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같이- 모시자'라는 생각을 정말 실천해야지 싶습니다.
더없이 귀한 태을 진리와 함께 우리에게 항상 최선의 상황을 주시는 천지부모님께,
그리고 태을도인들에게 끊임없이 화두를 던져 앞으로 나아가게 이끌어주시는 종장님께,
태을도인의 길을 꿋꿋하게 걸으며 외롭지 않게 서로서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너무나 귀한 속육임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직 일심의 경지를 터득하여 확연히 알기는 어렵지만, 우리의 지난 인생 경험이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름대로 성공을 이루어 낸 많은 사람들의 예를 보면 일심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증산상제님께서 일을 성취하는 방법으로써 일심의 권능과 결과에 대해 알려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무한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한없는 마음의 가능성을 믿고 모든 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일심만 가지면 못 될 일이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