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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먼저, 잎 나중 /목련 이야기
일찍 피는 봄꽃들이 한층
싱그러워졌습니다.
봄이 늦은 산촌의 목련도
꽃망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팝콘이 터지듯이 차례로
꽃눈을 열고 있습니다.
이제 산벚나무가 꽃눈을
열기만 하면 필만한 이른 봄꽃은
거의 다 피는 셈입니다.
?생강나무꽃에서부터 시작된
이른 봄꽃의 개화는 산수유와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으로
이어집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꽃인데다
꽃을 가리는 잎마저 없으니
모습이 더욱 선명합니다.
모두가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목본(木本:나무)들 입니다.
먼저 난 앞을 통해 광합성을 하고
그 저장된 영양분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 초본(草本:풀)들의
통상적인 패턴입니다.
그와는 달리 이른 봄꽃을 피우는
이 나무들은 바로 선화후엽(先花後葉),
즉 꽃을 먼저 피우고 나중에 잎이 납니다.
?이들은 왜 잎이 나기 전에
알몸으로 꽃부터 먼저 피울까?
자손을 퍼뜨리기 위한 그들의
생존 전략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찍 꽃이 피면 꽃가루도 적고
꿀도 적지만 수정을 이뤄줄
벌과 나비를 독차지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걸리적거리는 잎이 없어
가루받이도 수월합니다.
벌과 나비 같은 곤충의 입장에서 보면
먹을 것이 없는 이른 봄에
양식을 공급해주니 더없이 고맙습니다.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부상조가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서로가 행복을 선택함으로써
모두가 win win하는 생명공동체가
그렇게 만들어 집니다.
꽃이 먼저 피는 목련
‘나무에 피는 연꽃 같다’는 목련의
꽃피우기 준비는 지난여름부터
시작됩니다.
잎이 무성할 때 광합성으로 생긴
영양분을 겨울눈 속에 저장합니다.
가을에 잎이 진 뒤
추운 겨울을 견딘 겨울눈은
춘분이 지나 낮이 길어지면
꽃피울 준비를 합니다.
목련의 겨울 꽃눈을 보면
먹에 젖은 붓의 모양과 닮았습니다.
그 겨울눈은 털 가죽점퍼를 입고 있습니다.
눈 비늘이 그걸 감싸고 있습니다.
바나나 모양의 잎눈은 크기가
꽃눈의 1/3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겨울에 살펴봐도 생명의 빛이
반짝이는 목련의 겨울눈입니다.
봄에 꽃이 먼저 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잎이 나서 겨울눈을 만들고
꽃이 핀 뒤 다시 잎이 나는 과정을
긴 사이클로 보면 사실 어느 것이
먼저라고 얘기하기도 어렵습니다.
경희대 회기동 캠퍼스는
지금쯤 활짝 핀 목련이 교정을
채우고 이 목련은 이 대학의 꽃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가곡이 된 ‘목련화’는
1974년 경희대 개교 25주년을 맞아
이 대학 조영식 총장이 만든 노랫말에
음대 김동진 학장이 곡을 붙였습니다.
이 대학 출신 테너 엄정행은
60번이나 고쳐 불렀던 이 노래가
자신의 최고 애창곡이라고 말합니다.
노래를 만든 두 사람은 이미
떠났지만 79살의 엄정행은
울산예고 교장으로 일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한
여든의 마지막 무료 순회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목월의 시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4월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백목련아 지고 자목련이 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지구 온난화가 꽃이 피는 질서까지
많이 흔들어 놓은 모양입니다.
그동안에 백목련은 통상 4월에 피고
자목련이 5월에 지면 봄이 간다고
했습니다.
?6.25가 끝나가던 1953년,
시인 박목월이 쓴 ‘4월의 노래’에
한국 최초의 여성 작곡가 김순애가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전쟁 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만든 이 노래는
1960년대부터 학생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됐습니다.
흔히 ‘잔인한 달’이라 일컫는
4월을 목련과 함께 생의 기쁨을 느끼는
찬란한 달로 그려낸 이 노래는
나이 든 사람들에게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는 노래입니다.
소프라노 김주연입니다.
양희은의 ‘하얀 목련’에는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느리게 흐르는 그 노래에는
봄날의 슬픔과 쓸쓸함과 함께
소생의 기운도 들어 있습니다.
1982년 30대 초반의 양희은은
난소암 판정을 받고 우울한 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1983년 이른 봄 그녀는 창밖에 핀
하얀 목련을 보고 유서를 남기 듯
절박한 심정으로 쓴 짧은 시가
‘하얀 목련’이었습니다.
양희은은 수술 후 기적적으로 소생했고
김희갑이 작곡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양희은은 이 노래로 ‘
대한민국 가사대상을 받았고
’하얀 목련‘은 불후의 명곡이 됐습니다.
그녀는 일흔 가까운 지금도 노래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목련꽃이 질 때의 모습은
별로 산뜻하지 못합니다.
땅에 떨어진 꽃잎은 볼품이 없습니다.
작가 박완서는 시든 꽃을 매단
목련의 모습이 누추해 보여
나무를 베어내려고 했는데
베어내도 베어내도 해마다 맹렬히
가지가 돋아서 목련에게 사과하고
친구가 됐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수필집 ‘호미’에
담겨 있는 이야기입니다.
송창식이 1990년 3집 앨범에 담은
‘목련’은 바로 떨어지는 아련한
꽃잎에 대한 노래입니다.
허공 중의 떨음을 보지 말고
물 위에 떨어지는 꽃잎을 보라는
접근 방식이 특이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운을 남기는 좋은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