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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홍성 용봉산을 다녀와서 ㅡㅡ
산 행 지 - 홍성 용봉산(381m)
산 행 일 -2018,04,21(토)
누 구 랑 -통영축산농협산악회정기산행(38명)
산행코스 -용봉초등학교-용도사-투석봉-용봉산(최고봉)-노적봉-악귀봉-마애여래입상-용봉사-후양림
이동거리 6.3km 소요시간 3시간18분 이동시간 3시간10분 휴식시간 8분 평균속력 1.98km/h
오름 598m 내림 535m 출발점해발 35m 도착점해발 99m
ㅡㅡ 산 행 지 도 ㅡㅡ
ㅡㅡ 산 행 기 ㅡㅡ
봄이오는가 했는데 벌서부터 거리에는 반소매차림의 옷이 나부긴다 계절의 의미가 상실해져 가는 이시절에 그래도 덥지도 않고 사늘하지도 않은 봄철에 알맞은 산행지를 찾아서 홍성 용봉산으로 간다
어느산을 가더라도 설레이는 마음은 초딩하교때 소풍가는 전날밤 같이 뚠눈으로 일어나 주섬주섬 챙겨입고 집을 나선다
(06:00)고려병원앞을 출발하여 죽림중앙매장앞에서 일행 태우고 고속도로 따라 가다가 산청휴게소에서 잠시쉬어간다 찻길이 멀다보니 인삼랜드휴게소에도 들려 쉬어간다 고속도로로 미끄러지듯 달리는 차안에서 잠시눈을 붙이고 나니 내포신도시에 들어선다 용봉초등학교정문앞에서 하차하여 산행준비하여
(10:05)매표(휴양림이라서 입장료을 받는다고 합니다 1인1,000원, 단체 800원)을 하고 시멘트도로인 마을길따라 산행시작 합니다 제법 가파른 경사로 따라 오르다보니 숨이차 오르고 길옆의 나무들은 연노록의 새잎을 막피어올리고 있어 눈이 한결 시원합니다
(10:16)미륵불이 있는 용도사에 도착합니다 불교 공부를 2년넘게 하였지만 그지식이야 미흡하고 미륵불앞에서 두손합장하여 고개숙이고 디카를 들어대니 미륵암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는다 이 미륵불은 유형문화재 제87호(1979년7월3일)지정되었고 미륵불은 먼훗날 이땅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미래의 부처이다 이미륵불은 용봉산 서쪽 기슭에 있는 절벽밑에 우뚝솟은 자연암석을 활용하여 조각한 입상이다 머리정수리부분이 평평하며 귀는 직선으로 턱밑까지 내려왔다 가늘고 긴눈,넓적하고낮은코,입은 비교적 작으나 얕게 평면적으로 돋을새김한 은은한 미소는 자비로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고려중기 충청도지방의 불상양식이 잘표현되어 있다 바로앞에 만물바위의 내력을 읽어보고 간다 만물바위는 도솔천에 머물고 계시는 (자씨)미륵은 시간상으로는 56억7천만년뒤에 사바세계에 오시지만 중생을 향한 대자비심은 지금현재에도 자줏빛 광명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계신다 삼신바위와 미륵불과 일직선에 나란히 하고있는 너럭바위의 울퉁불퉁한 변화는 마치 산,들판,호수,계곡등 만물의 형상을 담고 있어 "만물바위"로 불린다 만물바위 위로 비치는 미륵불의 광명은 모든 중생의 업을 소멸시킨다 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전형적인 돌계단의 산길이 이어집니다 봄철들면서 시간이 나질않고 게르음을 피우다보니 미륵산에도 못가다보니 오름길에 숨도차고 선두에서 오르는게 힘들고 등장에는 땀이 흐르고있다 허벅지에 전해지는 묶직한 느낌도 거르음을 피운 증거를 말해준다 그래도 악을 쓰고 올라가 본다 작은 능선을 넘어 바위길로 오르다보니 4월의햇볓이 따사로워진다 낑낑거리며 올라서니 조망이 터지고 미세먼지로 인한 조망은 볼품없다
(10;42)투석봉에 올라선다 우측의능선아래로 최영장군 활터가 지금은 팔각정 정자를 지어 놓았다 건너편에 연출하는 암봉들의 향년은 산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이제부터는 암봉이라지만 산길은 마사토길이다 큰오름도 없는 능선따라 걷는다 등로변에 빨간,분홍,흰색의 철쭉꽃이 한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절묘하게 생긴 암봉들의 인기에 철쭉은 기가 죽은듯 인기가 없다
(10:49)최고봉인 용봉산정상에 올라선다 인정샷 한다고 기다려 겨우 인정샷만 남기고 뒤사람에게 양보해주고 지나간다 넉럭바위위에서 조망을 즐기며 여유부리며 간다 다른산에 갔을때는 쉬어가는것 없이 내달리듯이 가는게 나의산행 수준인데 오늘은 시간이 많아 느근하게 걷는다 이산에는 소나무가 많지만 키가 작아 시야가 탁트이는 전망좋은 등산로가 주로 흙산이지만 적당하게 암릉과괴석들 바위들이 있어 지루함을 덜어준다
(11;06)노적봉에 당도하니 아이스케키장사가 옛날 아이스케키라며 홍보하며 많은 산객들이 하나식 물고 앉아 쉬고 있다 그저지나친다 이곳에서 부터 기암괴석에 눈을 집중시켜야 제대로 보고갈수 있는구간이라 긴장해본다 산행시간에 대비하여 만족도가 이만한산이 있을까싶다 그래서 5번이나 다녀간 산이다
(11:12)행운바위을 나무계단을 내려서면서 위에서 바라보니 바위위에다 돌맹이를 던져 얻치면 행운이 온다고 하여 행운바위라 하는데 주변에 돌맹이를 찾을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바라며 돌맹이를 던져을것을 생각하며 내려선다 잠시 오르막으로 올라서 암벽을 따라 돌아 올라가니
(11;22) 악귀봉이다 용봉산의 기암괴석은 악귀봉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는듯하다 악귀봉의 장군바위는 늠름한 장군의위상을 닮았다하여 장군바위이다 충남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답다 홍성군의 진산으로 동남쪽으로 금마천이 흘러 가야산쪽으로 흘러온 효교천과 함께 삽교천을 이룬뒤 삽교호로 훌러들고 덕산면 방면으로는 용봉산북릉상에 수암산이 자리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수암산까지 산행하고 세심청온천으로 내려가는코스을 잡는데 우리는 차길이 멀어 짧게 잡아 산행을 한다 용봉산을낀 홍성일대는 한용운선사,백야 김좌진장군,최영장군,사육신의 한분인 성삼문등의 생가와 9백의총등 위인들의 삶의 흔적과 백제부흥의 마지막 보루였던 임존성등 역사 유적지가 도처에 남아 있다한다 산행중 수백장의 한국화를 보듯 시시각각으로 풍경이 바뀌는 용봉산을 즐기며 걷는다 부엉이바위,매바위,어머니바위,삼형제바위,마당바위등 헤아릴수 없을정도의 많은 바위들이 제각각 그위용을 뽐낸다 산행내내 조망을 즐길수 있는 조망처마다 들려맘껏 주변을 둘려보는 호사를 누린다 악귀봉을 뒤로하고 내려선다 작은다리을 건너 테크을 설치한곳에 용봉산의 보물인 옆으로크는 소나무를 본다 수령이 약100여년정도 된다고 하는 이 소나무는 산객들의 손길로 몸살을 앓아 테크로드를 부득이 소나무와 떨어져 설치해놓았다는 설명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아 가시라 한다 예전에는 등로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손으로 잡고 머리에 붙이치고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멋진 소나무이다 용봉산엔 빈절골이 있는데 옛날에 큰절이 있었고 숲이 우거져 이산에 고려때부터 조선때까지 암자가 99개나 있었다 한다 그래서 99암자 라고도 부르는데 지금은 모두황폐해 버리고 이곳 저곳에 터만 남아있다 어느날 지나는 중이와서 말하기를 "서남쪽으로 내를 돌려서 내부면 하리라" 하여 그렇게 하였더니 내에서는 용이나고 산에서는 봉이나고 그후엔 절이 망했다하여 빈절골이라 부른다 같이가던 일행이 배고프다고 점심상을 차린다 점심도시락준비를 하지 못한 내는 지나친다 오래만에 오신 최사장님이 오셨기에 같이 동행 하며 평상에 앉아 점심상차리는데 같이 앉아 나누어주는 도시락으로 2년6개월만에 산에서 도시락을 얻어먹어본다 산나물과 마늘무침이 맛있어 곱창이 싫다할정도로 싫컨퍼넣었더니 배가 불러 움직이는데 불편함을 느낀다
(12:33)마애여래입상이있는 너른 공터에 도착합니다 마애여래입상은 보물 제355호로 고려초기 축성된것같다 돌출된 자연석의 바위 앞면을 파서 불상이 들어 앉을 감실형의 공간을 만들고 그안에 돋을 새김한 거대한 불상을 조각하였다 민머리위에는 상투모양의 머리묶음을 큼직하게 표현하엿다 얼굴은 몸에 비해 크고 풍만하며 잔잔한 미소가 흘려 온화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눈섭은 반월형이면 눈은 가늘게 표현 하였는데 눈꼬리부부은 약간 처져있어 인자한 느낌을 준다 코와 입은 얼굴에 비해 작고 코는 오똑하고 인중은 깊게 파여 있다 입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짧은 목에는 삼도가 표현 되었고 신체는 알굴에 비해 다소 왜소한 느낌을 주지만 균형이 잘잡혔다 옷주름은 U자형으로 양어께를 감싸고 있으며 목밑에는 4조의굵은 선각으로 표현 되었지만 아래로 내려 가면서 가느다란 음각으로 도시화 되었다 전체적으로 얼굴의 인상이 풍만하고 입체감이 있고 신체의 비례도 좋은 편이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양각이 약해져 있는데 이것은 불상의 아래에서 바라보는 예배자들의 시선을 배려한것이다 불상아래에서 기와조각들이 출토되는것으로 보아 이곳에 건물이 있었던것으로 추정된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서니 커다란 양평조씨묘가 있고 좌측아래에 용봉사이다
(12:48)용봉사에 들려 참배하고 경내를 둘러본다 용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본산인 수덕사 말사로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수없으나 사찰의 주변에서 발견되는 기와편으로 보아 백제말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하는바에 의하면 평양조씨 가문에서 옛용봉사터에 묘를 조성하기위하여 용봉사를 폐사 시켰다고 하는데 평양조씨묘비명으로 보아 1906(광무10)전후로 추정된다 이에 주민들과 신도들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본래의 위치에서 약간 동쪽아래로 옮겨진 상태이다
경내에는 봉봉사석조(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62호) 석조:장축2.9m,단축1.36m,높이 1.36m 석구:직경 0.68m.높이0.75m 마애:높이0.75m 석조는 스님들이 물을 담아쓰던 용기로 직사각형모양인데 한쪽모서리에는 배수구가 잇어물이 흘러 내릴수 있도록 하였다 석구는 돌의속을 파내어 그구멍에 곡식을 넣고 찧던 돌절구로 네모난 모양으로 가공된 몸체에 팽이모양의 둥그런 홈이 패여있다 마애는 일명 마대 또는 마학이라고도 하는데 곡식을 가는데 쓰는 맷돌로 네모난 모양으로 되어 있다 제작연대는 정확히 알수없으나 사찰의 창건과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2;52)용봉사 일주문을 지나 개울따라 내려가는 길섶에는 금낭화가 만발하여 산객들을 반긴다 용봉산휴양림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휴양림입구에 용봉산의유래에 대한설명이 있다 산전체를 뒤덮고있는 기암괴석이 금강산과 비슷하다하여 소금강이라고도하는 용봉산! 지금의 용봉산은 고려시대에는 북산,조선시대에는 팔봉산이라 불렸다 일제시대때 홍성군지역에 있는 산줄기는 용봉산 예산지역에 있는 산줄기는 수암산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용봉사와 수암사 라는절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봉산골짜기마다 문화재와 보물이 산재해 있으며 다양한 전설이 곳곳에 전해진다 예로부터 땅에서 사는 온갖짐승과 새의무리는 봉황이 지배하였고 산아래로는 물고기를 비롯한 물속의 모든것들은 용의지배를 받으며 평화로운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후로 용이 하늘의 부름을받고 승천하면서 산의형상이 용몸집에 봉황머리를 닮았다하여 용봉산이라 불리어지고 있다
(13;16)자동차극장을지나 주차장에도착하고 산행종료한다
ㅡㅡ산 행 사 진 ㅡㅡ
용봉초등하교 정문앞
산행하기전 단체사진
용도사 미륵불
만물바위
투석봉
최영장군 활터 방향
활짝웃는 세여인들(꽃)뒤 괴석위에 핀 진달래가 청순해 보입니다
정상으로 오르는 등로가 이렇게 돌계단입니다
정상 인정샷 합니다
썬클라스를 써야 뽀대가 난다는 선영이
오늘은 세여인이 동행 합니다
세사람 여인들은 안경을 쓰고
난 안경을 안쓰는 이유가 원형,원색 그대롤 보고싶어서
대단한산군(릿지산행이나 종주코스산행전문)이 오늘은 느근하게 동행 합니다
오늘은 겁도없이 바위위에 올라섭니다
노적봉 정상
용봉산의 보물 옆으로 크는소나무 (수령이100여년으로 추정됨)
솟대바위
행운바위
악귀봉정상
두꺼비바위
다정해보이는 두사람
둘이 있으니 샘나서 뒤에 붙어 섭니다
돌고래바위 나이는 숫자에 불가하다더니
돌고래가 아니고 말탄 자세라고
삽살개바위라는데~~
마애여래입상 보물 제355호
용봉사경내의석조,석구,마애
석조 물을 담아놓던 용기
용봉사
용봉사 마애여래입상
일주문
봄꽃
첫댓글 봄과 산행이 맞춤입니다
옷도 봄이요 하늘과땅도 아름다운 꽃봉오리두 넘 아름답습니다
보는이 눈까지 봄을 만끽하게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