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북유럽 여행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템펠리아우키오(Temppelliaukio) 교회입니다. '암석교회' 또는 '바위교회'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교회는 가을아침님의 책 <문명과 지하공간>에서도 지하공간을 잘 활용한 사례로 소개된 곳이기도 합니다.
1961년 공모를 통해 선정된 티모와 투오모 수오말라이넨 형제는 붉은 화강암으로 구성된 커다란 암반을 파서 1969년까지 이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13미터까지 파내려간 공간 위에 유리를 덮고 꼭대기에는 지름 24미터의 둥근 구리지붕을 덮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동판띠l(copper stripe)가 무려 22킬로미터나 된다고 하니 공사규모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천정과 연결된 벽면 위에는 180개 유리창을 달아 자연 채광이 그대로 들어올 수 있도록 처리하여 지하공간의 제약조건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습니다. 유리창 덕분에 시간에 따라 빛의 각도와 세기가 달라져서 실내 분위기가 시시각각으로 변하게 되는 효과도 동시에 기대할 수 있구요. 물론 내부에서도 외부의 환경과 하늘이 보이므로 전혀 답답하지 않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암벽을 깍은 교회 내벽은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마감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고, 내부를 깍으면서 나온 바위들은 적당히 쪼개서 외부에 벽돌로 쌓아올렸는데 외관도 자연스러울 뿐 만 아니라 지붕 위에 올라가는 사람들로부터 건물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이중효과가 있습니다. 리사이클링(recycling)을 넘어 업사이클링(upcycling)의 좋은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벽을 자세히 보면 물이 스며들며 흐르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는데 그 덕분에 바위 곳곳에 이끼류 같은 식물도 자라고 있습니다.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암석교회 못지않게 파이프 오른간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세심한 노력의 산물입니다. 좋은 소리를 위해 음향전문가 베이코 비르타넨(Veikko Virtanen)과 지휘자 파보 베르군드(Paavo Berglund)가 건축 초기단계부터 적극 참여하여 3100개의 파이프와 43개의 정지탭이 내장된 오르간을 최적의 조건으로 설계했다고 하네요. 내벽 마감처리를 하지 않은 이유도 보다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마침 그곳을 방문했을 때 젊은 동양인 피아니스트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파이프를 통해 나온 소리가 동판돔을 따라 진동하면서 신비스러운 울림을 만들어 주었어요. 그 소리는 이전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생경한 음색이었습니다. 투명하고 맑으면서도 밀도가 높은 종소리 같은 느낌이랄까요. 소리가 좋은 이곳은 실제로 일년 중 300회 이상 공연장이나 행사장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에 들어가는 입구는 우리나라 경주 천마총과 비슷합니다. 즉 무덤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무덤과 교회, 언뜻 아이러니해 보이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유대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동굴에 묻어서 동굴은 죽음과 어둠을 상징했지만, 예수의 부활로 개신교 이후의 동굴 무덤은 더이상 죽음의 공간이 아닙니다. 생명과 광명의 이미지로 재창조되는 것이죠. 아마도 이 교회를 만든 수오말리넨 형제는 그 점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생명수가 흐르고 이끼같은 생명이 자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그대로 둔 것은 아닐까... 그저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템펠리(temppelli)는 핀란드어로 템플(temple)을 의미하고, 아우키오 (aukio)는 넓은 공간 또는 여유 공간이라는 뜻이니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넓고 여유로운 교회쯤으로 해석되겠지요. 근데 막상 교회에 들어가보면 그 여유로움이 비단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이 교회는 정신적, 영적으로도 아주 충만하고 넉넉해 보입니다. 우선 눈에 확 띄는 십자가조차 없습니다. 입구 위에 보일듯말듯 조그만 십자가 조형물이 하나 있을 뿐이죠. 그것도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가기 십상입니다.(아래 첫번째 사진 속 붉은색으로 보이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 제단의 모습도 아주 검소합니다. 딱히 장식이랄 것도 없습니다. 화려한 꽃하나 없으니까요. 의자나 집기들도 최소한만 배치되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공간 자체가 이미 가르쳐주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루터교를 따르는 교회이니 검소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 절제함과 소박함이 제 상상 이상입니다. 오로지 간절한 기도와 경건한 음악만이 가득찬 교회, 그곳에서 사람들은 평안한 안식과 위로, 한량없는 은혜를 가득 담아 가겠지요. 저절로 나자신의 부족한 모습과 우리나라 교회의 부끄러운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첫댓글 터키의 지하동굴교회와도 유사한 컨셉이 아닌가 싶은데 나중에 직접 다녀온 후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네에 고맙습니다. 다녀오셔서 유사점을 꼭 말씀해주세요. 저도 궁금하네요~
감사합니다. 핀란드 가면 꼭 가려구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핀란드 가시면 꼭 보시길 강추드립니다. 교회가 헬싱키 도심에 위치해서 찾아가기 어렵지 않습니다.
긴절한 기도와 경건한 음악은 잘 어울리는 거 같습니다. 아!저,종소리 좋아하는데,종소리와 같은 생경한 파이프오르간소리는 어떨지 상상만 해도 신비롭네요.^^
오르간 연주가 동판을 진동하면서 나는 소리라서 그런 음색이 나는 것 같은데 제가 들어본 바로는 종소리와 가장 유사했어요. 사랑이님도 종소리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좋아해요. 특히 산사에서 고즈넉한 저녁에 듣는 종소리를 좋아합니다...
영화,'위대한 침묵'에서도 수도사들의 절제된 기도와 그레고리오 성가, 그리고 종소리만이 침묵을 대신하지요.아,오르간 소리가 종소리처럼 들렸다니..오르간과 같은 종소리도 그 침묵을 대신할 거 같아요.퓨어님 덕분에 종소리와 같은 오르간을 상상해 봅니다.^^
@사랑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 아 맞네요... <위대한 침묵>에서도 멋진 종소리가 흐르지요...역시나 상상력이 풍부하신 사랑이님...
파이프 오르간, 아마도 그것은
신의 목소리를 듣고싶어하는 인간의 염원이 맺혀진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직접 파이프오르간의 연주를 들으셨다니, 정말 행운아시네요. 푸어님.
그 행운이 모두 가을아침님 덕분이죠^^
언제일지 모르지만 핀란드에 여행을 간다면 꼭 방문하고 싶어요.
꼭 가보셔요. 산유화님 마음에 꼭 드실 겁니다...
여기 갔다오셨군요. 기억이 새록새록...^^ 헬싱키 시내 깜삐 쇼핑몰 앞에 있는 침묵의 교회도 작지만 굉장히 인상적인 곳이지요.
예, 이번에는 못가봤지만 침묵의 교회(깜삐예배당)도 너무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다들 너무 좋다고 칭찬이 자자하던데...사진으로 보니 큰 화분모양이 인상적이에요. 담에 헬싱키 다시 방문하게 되면 꼭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핀란드 건축가 유하 레이비스카가 건축한 선한목자교회 (Hyvan Palmenen Kirkko)를 비롯해 다른 교회들도 꼭 가보고 싶습니다.
저도 작년 겨울 이 교회 방문했었는데.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암석 창문 사이로 햇빛 스며드는 광경이 신비롭더군요.
전날 저녁 시벨리우스 교향곡 4번 공연이 여기서 있었다는데 모르고 지나친게 너무 아쉬었어요.
헬싱키 여행은 이 암석교회와 카모메 식당 두곳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겨울에도 좋았을 것 같아요. 지붕위에 눈이 쌓여 창문으로 보이는 모습도 아름다웠을 것 같아요. 창문틀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핀란드에 흔히 볼 수 있는 자작나무가 연상되더라구요. 시벨리우스 교향곡 4번을 핀란드에서 들으면 더욱 감동스러울 것 같은데 그 좋은 공연을 놓치셨다니 아쉽네요. 저도 영화 <카모메 식당 > 좋아하는데 가보진 못했어요.
현대의 건축물이 수십년도 못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교회는 수백년이 지나도 별일없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해보이지도 않고 신선함마저 느껴지니 참 멋지다고 할수 밖에 없네요.
맞아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주변환경과 어울리지 않게 위압적인 교회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보면 더욱 부러울 뿐입니다. 존재 자체를 드러내지 않고 낮은 데로 임하는 이 교회는 공간 자체가 이미 종교적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어요. 절제하고 덜어낸 가운데 느껴지는 소박한 고졸미...율리시즈님의 미학과도 많이 닮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