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횡성지역사건 종합
[제공 전진실화해위원회]
<국민보도연맹사건>
횡성에서는 1950년 6월 28일 후퇴하던 국군 6사단 헌병대가 100여 명의 횡성읍 주민들을 추동리 고내미 고개와 곡교리 민가에서 살해했다. 한편, 횡성경찰서는 7월 1일 경북지역으로 철수하면서 예비검속된 20여 명을 데리고 가다 영천 부근에서 학살했다. 청일면의 주민들은 청일국민학교의 인근 골짜기에서 학살했다.
6사단 헌병대 상사였던 김씨(김만식)의 증언에 따르면, 6사단 헌병대는 6월 27일 헌병사령부를 통해 대통령 특명으로 분대장급 이상 지휘관은 명령에 불복하는 부대원을 사형시키고 남로당 계열이나 보도연맹 관계자들을 사살하라는 무전지시를 직접 받았다고 한다. 28일 강원도 횡성을 시작으로 원주 등에서 보도연맹원을 사살한 후 충북 충주로 이동했다.
<부역혐의 피해>
횡성지역의 국군 수복은 9월 30일 국군 6사단 2연대 3대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횡성경찰서는 10월 25일 공식 복귀했으며 경찰서 건물이 파괴되었으므로 횡성읍 창고를 임시청사로 사용하면서 주민들을 인근 창고에 감금하였다.
11월 24일에는 강림면 강림리 1구 아천에 살던 엄창현이 강림지서로 연행되어 횡성경찰서로 이송된 후 희생되었다.
한편, 각 지서에 의해서도 부역혐의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1950년 10월 강림리 2구 인민위원장 허정, 4구 인민위원장 이시우 등 강림지서로 연행된 주민들이 고둔치재에서 희생되었다.
서원면에서는 1950년 11월 초 인민군 점령기 옥계리 마을 반장으로 활동했던 임상옥, 임태식, 임상근 등이 연행된 후 임태식은 심한 고문 후 풀려났으나 다른 주민들은 어디선가 희생되었다.
<1‧4후퇴시기 피해>
1‧4후퇴시기에 횡성 청일지서는 자체적으로 부역 주민들을 살해했다고 하며, 1951년 3월 20일에는 유평리 정원영이 2차 수복한 국군이 집안 가족 중 며느리 등 젊은 여자들을 데리고 가려는 것을 막다가 총살당했다.
이상 횡성지역에서 확인된 피해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