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독서일지 (18)
-(2024.05.04~05.24)
*18일차
-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 살인자의 성모》를 읽으며
21세기 전원생활
바람이라도 불어오니
어느 모로 보나 삭막하다고
도시, 고층아파트에 사는
생각 같아서는
숲이 울창하고 수백 년도 더 된
어쩌면 까마득한 원시림이 있는
그런 곳에서 새들 소리 창연하고
맑게 흘러가는 냇물소리도 들을 수 있는
늘 그런 생각만 하며
다만 근교 시골에라도 나가
전원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처음으로 집다운 집을 지어
살고 싶지만, 그게 글쎄
다 좋으니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라도 실컷 불어
그나마 배부르다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요즘 같이 빠른 세.상.에
그냥 사.는.거.지
1
K에게 보내는 편지
아침에는 연로하신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가까운 병원엘 다녀왔습니다. 한 해가 다르게 급해지시는 장모님이신지라 아침부터 서두르셔서 찾아간 병원에는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많은 내방객 환자로 주차장에 차를 대놓을 공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치료가 끝나기까지 해프닝이 있었구요, 그렇지만 무사히 잘 끝났으며, 흡족해하시며 집으로 바로 가시지 않고 경로당으로 가셔서 친구를 만나시겠다는 말에 저 역시 흡족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바랄뿐이지요. 그러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공동체적 안정과 평화가 잘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청부 살인자는 듣기에도 삭막하고 끔찍합니다. 그런데 지금 읽고 있는 《청부 살인자의 성모》에서 주인공은 청부 살인자 ‘알렉시스’인 것 같습니다(이제 반쯤 읽은 시점에서 가늠해본다면). 제 추리가 영 형편없지 않다면 알렉시스는 아마 열두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소년이거나 막 사춘기로 접어든 청소년일 것입니다. 그런 알렉시스는 총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를 사랑하는 ‘내’가 마음에 거슬려 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총을 쏘아 상대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나요. 그 사랑을 알렉시스는 ‘나는 영원히 당신의 것’이라고 표현하구요.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콜롬비아’는 치안과 법과 질서와 정의가 무너지고 아편과 폭력이 백주에 난무하는 무법천지로 그려지고 있으며, 주인공 알렉시스와 같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교육보다는 청부 살인자로 폭력조직의 사주를 받아 이권에 관계된 사람들의 생명을 해치는 길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을 읽어가노라면 그 정의나 질서가 회복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나라의 주요 종교인 카톨릭교회조차 그런 불법과 무질서한 사회에 편승되어 문법학자인 ‘나’의 관점에서 보면 미래에 대해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읽어갈수록 작가가 이 작품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점점 알쏭달쏭해질 뿐입니다. 미국 타란티노 영화감독의 주특기인 ‘폭력의 미학’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미래가 없는 사회에 대한 분노의 우회적 표현인지, 그것도 아니면 어느 미소년과의 동성애적인 사랑을 이야기한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용 중에는 유독 많은 카톨릭교회와 유명한 성인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또한 사회의 하부 조직이 사용하는 속어나 은어가 알렉시스나 등장인물들을 통해 사용되고 있는데, 그때마다 주의해서 이해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찾아봐야하는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작품 속에서 알렉시스와 ‘나’의 동성애 관계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지지 않고 읽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류의 본격적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을뿐더러, 읽을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서양의 고전 철학의 고향인 그리스에서는 일찍이 그런 남자간이나 여성간 동성애가 있었다는 점을 부분적으로 알고 있고, 중국이나 우리나라 고려시대에도 동성애가 없지 않았다는 점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번 《청부 살인자의 성모》라는 작품 읽기에 있어서는 일부 편견이나 고정관념 깨기와 같은 실천적 시각에서 읽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군요.
저녁을 일찍 먹고 산책을 나서다보면 어느 집 담장을 넘어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는 빨간 장미들을 보게 되는데 그 매혹적인 모습에 시선을 안 뺏길 사람들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한편으로 집에서 뉴스를 듣노라면 마주치는 각종 국내외적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지표들은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K씨,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건강에도 유의하시고 자주 찾아뵐 수는 없지만 연락만이라도 꾸준히 주고받으며 서로의 관계를 따스하게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