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있는 산책: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꽃이 있겠지만, 사실 모든 꽃은 아름답다.
허리가 휜 할미꽃에서도, 투박한 호박 곁에서 피어난 노란 호박꽃에서도 묘한 매력을 느낀다. 메마른 사막, 선인장 가시잎 사이에 핀 작은 꽃들도 매혹적이다.
꽃은 사계절이다. 겨울의 정적을 깨고 나온 매화하며, 여름날의 이름 모를 꽃들, 높아진 가을하늘과 겨루듯 고개를 든 들녘의 코스모스, 겨울 찬 바람에도 겹겹이 포갠 동백꽃 어느 것 하나 눈부시지 않은 것이 없다. 모두 예사롭지 않은 자태를 두루 가지고 있다.
꽃은 크고 작음이 없다. 길가에 핀 아주 작은 꽃이라도 위엄있는 자기만의 기운을 뿜어낸다. 그야말로 넘볼 수 없는 미의 기품이다. 한송이의 들꽃에도 우주의 오묘함이 깃들어 있다.
철마다 피는 꽃들은 계절의 여왕이다. 왕관이 없는 꽃은 하나도 없다. 피어 오른 그곳이 무대다.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이든, 소 달구지 지나간 들판이든 바로 그곳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중앙무대다. 햇빛과 달빛은 그 무대를 밝히는 조명, 그 눈부신 조명을 받지 않고 태어난 꽃은 없다.
쓰다듬듯 꽃잎을 스치는 바람이나 춤추듯 날아다는 꿀벌들은 꽃향기에 취해 환호하는 관중이다. 간간히 떨어지는 빗방울은 꽃들의 얼굴을 더욱 피어나게 하는 분장사다.
꽃은 그 자체가 전성기다. 우울한 꽃은 없다. 얼굴을 찌푸린 꽃을 본 적이 없다. 꽃은 연미복을 입고 파티에 참여한 주연과 같은 미소를 띠고 있다. 아무리 구석진 곳에서 비를 맞으며 핀 꽃이라도 감출 수 없는 기품의 화사함이 있다. 망울을 터뜨리며 피어날 때는 열정이 느껴지고, 완전히 만개한 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기지개를 펴고 하늘을 향한 꽃잎은 불꽃이다. 무엇이든 절정에 이른 모습을 보는 기쁨은 크다. 온 몸이 부풀어 터질 것 같은 충만한 꽃잎들에서 풍겨나는 생명의 기운은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바라보는 이에게 생기를 공급해준다. 여한이 없이 피어난 꽃에서 기쁨의 망울이 터진다. 전성기를 보여 준다는 것만으로 꽃들은 찬사와 박수를 받을 만하다.그러하기에 꽃은 다른 꽃에게 비교 당하지 않는다.
장미와 백합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어느 꽃이든 그 꽃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기에 다른 무엇으로 덧칠할 것이 하나도 없다.
꽃은 완벽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것에는 완벽이란 없다.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모두 미완이다. 모차르트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도 결국 미완이다. 그러나 세상에 핀 모든 꽃들은 완성작이다. 덧붙일 것이 하나도 없다. 만약 인간이 무엇인가 아름다움을 더해보려 하면 오히려 파괴 행위가 된다. 돌틈 사이에 뿌리내린 민들레 꽃도 그 자체로 완벽하다.
꽃들은 따돌림을 당해본 일이 없다. 열등감을 느낀 적도 없다. 열등감이 있었다면 씨앗을 스스로 깨고 딱딱한 땅을 힘겹게 들이밀고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꽃들은 누군가 나를 충분히 보아주지 않아도 서러워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보아준다 해도 우쭐거림이 없다.
꽃은 언제나 당당하고 밝은 얼굴로 하늘을 향해 가슴을 열어놓고 있다. 때로는 상처 입은 꽃도 아름답다. 싸늘한 발칸 반도의 깊은 밤에 장미꽃을 거두는 것은 그때가 가장 짙은 향기를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싸늘한 밤의 상처에서 나는 향은 다르고, 그러하기에 상처마저 매혹적인 향이 된다.
사람을 자세히 보면 꽃과 같다. 아니, 누군가의 노래처럼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창조의 절정은 꽃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람 역시 꽃처럼 다양하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시를 짓는 사람,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음을 부르는 사람, 곁에 있기만 해도 평안의 기운을 돋우는 사람, 사랑을 베풀고도 더 못주어 미안해하는 사람, 값비싼 명품 하나 걸치지 않았는데도 멋을 풍기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그 사람에게도 향기가 난다. 스쳐도 향이 나는 사람이 있다. 아카시아 향기에 취하듯 사람 향에 취해 행복해질 때가 있다. 그 향은 꽃보다 훨씬 더 진한 향이다.
백화점 진열대에 있는 고급 향수도 그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본래의 모습으로의 회복, 세상에 그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없을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화사한 너른 정원이 되고, 그들이 품어내는 향기에 취해 세상은 날마다 나비춤의 축제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