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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패러디란 무엇인가
패러디의 사전적 정의
패러디가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핵심 기법으로 부상한 건 사실이나, 패러디의 어원이나 유사형식은 고대 희랍시대로까지 거슬러 울라간다. 우리의 전통에서도 패러디는 구비 전승적 방법으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창작자의 의도를 기존의 텍스트로 합리화시키거나 간접화시키는 방법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오늘날에는 문학은 물론 음악, 미술을 비롯한 사진, 영화, 광고 등의 대중예술 장르의 창작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패러디parody의 접두사 ‘para’는 ‘반하는/반대하는’이라는 대비 혹은 대조의 뜻과 ‘곁에/가까이’라는 일치 혹은 친밀함의 뜻을 지닌다. 그 어원이 함의하듯, 패러디는 잘 알려진 텍스트에 대한 ‘풍자적 인용’ 혹은 ‘조롱하거나 희화화’라는 좁은 개념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텍스트와 텍스트 간의 ‘비평적 거리를 가진 확장된 반복’ 혹은 ‘반복과 다름’으로 정의된다. 풍자적·희극적 동기를 가진 것으로 한정시키려는 제임슨F. Jameson의 입장이 있는가 하면 ‘텍스트의 최소한의 변형’이라는 즈네뜨G. Gennette의 입장이 있고, 그 사이에 로즈M. A. Rose의 ‘희극적 불일치’와 허치언L. Hutcheon의 ‘차이를 둔 반복’의 개념이 존재한다 .
이러한 패러디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시대의 중심 표현방법이다. ‘텍스트의 마술적 병합’이나 다른 텍스트의 변형 및 실용적 재구성을 특징으로 하는 패러디는 재읽기와 재의미화의 차원에서 모든 사회문화구조 속에서 일반화·가속화되고 있다. 문학의 표현 및 창작 활동 교육과 연계시킬 수 있으며 상상력을 고무시키는 창의성 교육과도 직결된다.
패러디의 조건
패러디하면 영향·모방·표절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거나, 독창성·역사성이 결여된 방법적 유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패러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았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의 경우 패러디는 1990년대 이후 저자(주체)의 죽음, 장르의 혼합, 경제 해체, 키치 따위와 함께 유희성·대중성·경박성·일회성이라는 징후를 띠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핵심 기법으로 부상했다. 곱지 않았던 시선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다. 설상가상으로 패러디의 유사형식인 패스티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포스트모던 기법인가, 표절인가’라는 논쟁 속에서 촉발되어, 잘 해봐야 모방 그렇지 않으면 표절이라는 불명예스런 오해를 받았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패러디’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서양사조의 유입과 더불어 회자되었으나 단지 서양문화전통에서만 언급될 수 있는 표현양식은 아니다. 문화의 수용 및 창작의 근본원리로서의 패러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고전시학의 용사用事·환골탈태換骨奪胎, 그리고 희문戲文·희시戱詩 등은 그 모방 의도나 방법에 있어서 현대의 패러디와 놀랄만한 유사성을 지닌다. 패러디의 본령은, 원텍스트와 패러디텍스트라는 두 겹 텍스트 간의 차이와 그 텍스트들이 놓인 두 겹 현실 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대화적인’ 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현재, 공간적으로는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면서 동시에 차별화시킨다. 패러디가 가진 이러한 대화성을 ‘과거의 현재화presentification’ 또는 ‘과거의 현존presence of th past’이라 부르기도 한다.
패러디 개념의 난립상을 정리하고 그 댜양한 양상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패러디 기분을 설정한 후 그 기준에 따라 패러디 여부를 확정해야할 것이다. 패러디의 기본 조건은 다음과 같다.
①패러디는 원텍스트(원전, 기성품)를 필요로 한다.
②원텍스트와 패러디텍스트 간의 차이와 대화성을 전제로 한다.
③패러디는 독자의 역량에 따라 인식되는 것이며 미학적 효과 또한 다르게 인식된다.
④그러므로 독자가 원전을 인식할 수 있는지 직-간접적 전경화foregrounding 장치를 필요로 한다.
패러디란 ‘의식적인’ 모방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영향이나 모방과 구별되며, 모방한 원텍스트를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표절과 구별된다. 때문에 패러디스트는 모방한 텍스트를 독자들이 알 수 있도록 전경화시켜야 하며 독자 또한 그 전경화에 의해 원텍스트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구비해야 한다. 원텍스트와 패러디텍스트 간의 차이와 갈등을 전제로 한 대화성이 패러디의 묘미이며, 패러디의 전경화 장치와 그 대화성을 식별할 수 있는 독자의 안목에 의해 패러디는 완성된다.
패러디와 그 유사 형식들
패러디는 상호텍스트성intertexuality을 환기한다. 하나의 텍스트란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이전에 존재했던 수많은 텍스트들과의 상호관련 위에서 생성된다는 상호 텍스트적 인식을 기반으로 패러디는 존재한다. 패러디가 가진 상호텍스트성은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의 세계를 소재로 해서 또 다른 텍스트의 세계를 만든다는 데서 확인된다. 그러므로 모든 패러디는 상호텍스트성을 갖지만, 그러나 상호텍스트성에 의한 모든 작품들이 패러디적 관계인 것은 아니다. 패러디는 의식적으로 원텍스트를 전경화시킨다는 점, 원텍스트와의 차이에 의한 대화적 관계를 이룬다는 점에서 상호텍스트성과 차별된다.
패러디가 갖는 상호텍스트성은 메타픽션metafiction과도 접목된다. 여기서 ‘메타’라는 접두어는 기존 언어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언어를 뜻한다. 즉 메타언어는 기존 언어에 대해 시니피안(기표/형식)의 역할을 하는 언어이며, 기존의 다른 언어는 메타언어의 시니피에(기의/의미)가 된다. 때문에 언어에 대한 언어, 글에 대한 글, 텍스에 대한 텍스트라는 점에서 메타픽션은 자기반영성self-reflexi을 갖는다. 패러디는 원텍스의 대상을 글(쓰기)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자기반영적 메타픽션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기존의 텍스트를 대상으로 새로운 텍스트를 창작하는 비평적 글쓰기 일반과 시인의 목소리를 개입시켜 텍스트의 창작과정에 대해 진술하는 자기비평적 글쓰기를 동시에 의미한다. 전자의 글쓰기는 원텍스트를 전제로 성립되는 패러디와 관련이 깊으나, 후자의 글쓰기는 패러디와 무관할 수도 있다. 물론 원텍스트를 편지나 일기, 시론 등의 자기고백적 장르로까지 확대할 경우 후자의 글쓰기도 패러디가 될 것이다. ‘메타시’라는 시의 하위범주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현대시의 메타적 특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이 텍스트를 끌어다 쓰는 작업을 극단적으로 진행할 때, 창작 주체에게 요구되는 작가의식이나 원본성·창조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와해되기 십상이다. 패스티지pashtiche의 입지점은 여기에 마련된다. 비판력 없는 닮음 혹은 모방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이 패스티시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다. 한 텍스트뿐 아니라 수많은 텍스트로부터의 모방이자 평면적으로 흡수되는 저항 없는 ‘닮음’이기에, 비판성·풍자성·동기성이 결여되고 상대적으로 유희적 기능이 강하게 부각된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조건 속에서 양산되는 패스티시는 패러디와 상당 부분 맞물린다. 패스티시에 대한 문학적 가능성에 대한 평가는 논자마다 다르고, 논자에 따라서는 패스티시를 기존의 패러디와 구별하기도 한다. 제임슨은 풍자적 동기가 없는 패스티시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패스티시야말로 주체가 소멸한 세계를 재현할 뿐이기에 풍자적 동기가 거세된 ‘중성모방’, 짜깁기로서의 ‘혼성모방’에 불과한 것이라고 파악한다. 그러나 제이슨이 문제 삼는 ‘풍자적 동기’가 원텍스트에 대한 풍자적 동기는 없되, 그 텍스트가 놓인/놓일 현실적 문맥의 차이에 초점을 맞춰 당대 현실을 풍자하는 패스티시의 예는 우리 현대시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잇다. ‘풍자적 동기의 유무’ 또한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를 안고 있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양산되는 패러디텍스트들은 패스티시와 그 경계를 넘나들거나, 문학적 가능성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한 패스티시 작품들도 많다. 패스티시를 포스트모더니즘 패러디의 한 경향으로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다.
패러디는 콜라주collage·몽타주montage·오마주hommage와도 경계를 넘나든다. 미술이나 영화에서 비롯된 이런 기법들이 문학에 전용될 경우, 흩어져 문학들에 전용될 경우, 흩어져 있는 단어나 문장, 문단의 단편들을 하나의 텍스트로 조립·구성하는 표현형식을 일컫는다. 이러한 짜깁기나 모자이크 혹은 재편집의 방식은 서로 다른 단편들을 나란히 조합해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두 텍스트를 동시에 결합시키는 동시성의 기법에 해당하며, 습관적인 독서에 제동을 걸고 예상외의 새로운 표현과 효과를 낳는다. 그런 점에서 콜라주·몽타주·오마주는 패스티시적 특성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풍자적 동기가 점차 축소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패러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패러디의 대상이 문학작품에서부터 일상화된 대중 장르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패러디와 콜라주·몽타주·오마주와 몽타주와 패러디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혼성모방적 패러디는 인용텍스트의 범위가 대중 장르나 유행어까지 미치면서 인용의 동기성이 결여된 베끼기를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키치Kitsch’ 현상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우리 시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텔레비전이나 영호, 상업광고, 무협소설이나 만화, 싸구려 매체들의 읽을 거리나 볼거리들이 패러디 대상으로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시의 소재가 될 수 없다고 여겼던 저급하고 통속적인 것들을 시에 도입하는 시의 키치화 이면에는, 기존의 시적 규범과 형식을 거부하고 일상적 현실에 대한 독자들이 주목과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전략적 동기가 숨어 있다. 뿐만 아니다. 대중성과 대량생산성을 특징으로 하는 21세기적 대중문화 장르를 시에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문화나 장르 간의 경계와 그 서열화를 무너뜨리려는 동기도 숨어있다. 키치는 패러디의 본 의도인 풍자적 의미를 극소화한 통속적이고 유행적이고 유희적이고 유희적 코드에 기댄 손쉬운 모방인용이기에 현대인들의 감각적이고 유희적인 대리배설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말하자면 키치적인 것에 고급한 시 장르를 접목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부상하는 B급문화(코드/감성), 하위문화, 비주류문화 담론의 뿌리도 키치와 패러디에서 연원한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주체와 주체,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 발생하는 ‘영향influence과 모방imitation’의 관점에서도 패러디는 파악될 수 있다. 패러디가 영향의 경과이자 모방의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단순한 영향이 무의식적 모방의 결과라면, 패러디는 의식적이고 직접적인 그러나 원텍스트에 대해서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 영향의 결과다. 물론 단순한 모방인용이나 표절도 의식적인 영향의 결과지만, 원텍스트를 의식적으로 전경화시킴으로써 인용한 사실을 독자가 알아차리도록 한다는 점에서 패러디적 모방인용과 차이가 있다. 단순한 모방인용은 원텍스트와 일치를 지향하는 것으로, 패러디적 모방인용은 원텍스트와 비판적 거리를 지닌 것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용quotation이나 인유’도 패러디와 밀접히 연관된다. 허치언은 인용이 원텍스트와의 비평적 거리를 필수적으로 하지 않는 반면 패러디는 비평적 거리를 필수적으로 하고, 인유가 상응을 통해 이루어진 반면 패러디는 차이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애써 구별하면서도 그것들이 구조적·실용적인 측면에서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원텍스트와의 유사성은 ‘표절plagiarism’과 패러디의 구분을 모호하게도 한다. 패러디와 표절은 원텍스트를 전제로 이루어진다는 점, 곧 두 개의 약호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표절이 원텍스트를 철저히 숨기면서 그것들이 마치 자신의 독창적인 창작품인 것처럼 가장하는 반면, 패러디는 여러 장치들을 통해서 자신의 작품에 사용되고 있는 원텍스트의 흔적을 남겨 둔다는 점에서 변별된다. 하지만 페더만R. Federman은 ‘표절유희play-giarism’라는 조어를 만들어, 텍스트의 원본성과 창조성에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표절의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표절유희란 다른 텍스트에서 빌려온 수많은 요소들이 몽타주나 콜라주처럼 구성된, 표절과 유희의 성격이 반반씩 섞인 형식을 일컫는다. 그에 따르면 만일 신문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얻거나 어떤 용어나 표현을 빌려서 쓴다면 그것 역시 표절유희가 되고, 현대 작가들은 기존의 수많은 텍스트들을 끊임없이 재사용할 수 있고 때로는 자기 자신의 작품들도 유희적으로 표절할 수 있다. 합법적으로 전략화된 창작방법으로서의 표절이라는 점에서 표절유희는 좋은 의미의 표절인 셈이다. 또한 그레이A. Gray는 그이 소설 『Lanark』(1981)에서, 독자들에게 그 소설이 대표적인 ‘표절색인Index Plagiarism’을 제공함으로써 표절논쟁 자체를 비웃고 있다.표절이 이처럼 의도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는 패러디의 범주 속에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패러디와 그 유사형식들은 다름과 같이 정리된다.
| 무의식 모방 | : | 영향 | ||
| 의식적 모방 | 방법적 모방 인용 | : | 패러디, 패스티시, 키치, 표절유희 | |
| 은폐된 모방인용 | : | 표절 | ||
영향이나 상호텍스트성이 원텍스트(혹은 원작자)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교감이기에 새로운 텍스트(혹은 새로운 작자)에 총체적으로 반영되는 반면, 패러디는 의식적인 동기를 가지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원텍스트와의 차이나 불일치를 전경화하는 모방인용이다. 패러디는 기법상의 차원이나 불일치를 전경화하는 모방인용이다. 인정받는 모방인용에는 패러디와 인유와 인용 등이 속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모방인용에는 표절이 속한다. 이들이 차별성은 자신의 텍스트가 기존의 텍스트를 모방인용 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동기를, 드러내느냐 은폐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의식적 모방으로 인정받는 모방인용의 경우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창작방법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미학적으로만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의식적 모방인용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의로 감추려는 경우는 윤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표절이 된다.
패러디의 소통구조
패러디는 ‘원텍스트-패러디스트’, ‘패러디텍스트-독자’에 의해 완성되는 두 개의 소통과정을 거친다. ‘원텍스트-패러디스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제1소통과정의 주체는 패러디스트다. 패러디스트는 독자와 저자라는 이중 역할을 담당한다. 원텍스트의 해독자이면서 동시에 패러디텍스트의 새로운 약호자가 되는 것이다. 패러디가 가진, 비평과 창조의 기능은 이 과정에서 발휘된다. 또한 ‘패러디텍스트-독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제2의소통과정의 주체인 독자는, 이미 고정화된 원텍스트 의미와 패러디텍스트의 의미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원작자에 의해 약호화된 원텍스트이 의미, 패러디스트의 동기를 결합시켜 패러디텍스트의 의미, 이 두 의미를 결합해 완성시키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해독작가 바로 독자인 셈이다. 이때 독자는 원텍스트와 패러디텍스트를 비교함으로써 그 대화성을 감지할 수 있는 해독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해독 능력에 의해 독자 자신이 인식하고 있던 원텍스트와 새롭게 동기화된 패러디텍스트가 동화·이화작용을 일으킴으로써 발생하는 변화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이를 간략히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 해독과정 심리 | 모방인용 심리 | 해독과정 심리 | 패러디 효과 | |||||||||||
| ↓ | ↓ | ↓ | ↓ | |||||||||||
| 원텍스트 ⇒ | 패러디스트 ⇒ | 패러디텍스트 ⇒ | 독자⇒ | 패러디의 완성 | ||||||||||
| 패러디스트의창작 의도 | 독자의 수용 능력 | |||||||||||||
| <제1소통과정> | <제2소통과정> | |||||||||||||
| 패러디 = 원텍스트 + 패러디텍스트(이화/동화작용) 패러디의 효과 = 패러디스트의 모방인용의 심리 + 독자의 해독 과정의 심리 | ||||||||||||||
위의 소통모델의 근간인 ‘자가-패러디텍스트-독자’는, 각각 ‘패러디의 창조성-작품구조미학-독서현상학’에 초점이 맞춰진다. 제1소통과정에서는 패러디스트가 원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인용하고 있는가. 제2소통과정에서는 패러디텍스트가 어떠한 미학적 구조를 구현해내고 있는가와 독자는 이 구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원텍스트는 패러디스트의 ‘해독과정이 심리’를 거쳐 패러디스트에게 해독된다. 이렇게 해독된 의미에 패러디스트의 모방인용심리 즉, 패러디의 창작동기가 첨가되어 ‘의도된 의미체계’로서의 패러디텍스트가 생산된다. 원텍스트에 대한 패러디텍스트의 해독과정의 심리와 모방인용심리가 주요 인자로 작용하는 제1소통과정이다. 제2소통과정에서는 패러디스트가 텍스트에 숨겨놓은 여러 단서들을 독자가 재조합하고 구조화함으로써 패러디텍스트의 의미를 완성해낸다. 패러디텍스트에 구현된 의미체계는 독자의 적극적인 해독과정의 심리를 거치면서 ‘수용된 의미체계’로 완성된다. 패러디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해독과정은, 독자 자신이 알고 있었던 원텍스트의 의미와 패러디텍스트에 구현된 의미를 함께 읽어냈을 때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독자의 해독능력에 따라 패러디텍스트에 구현된 의미는 다른 수 있다. 결국 패러디 효과는 패러디스트의 모방인용의 심리와 독자의 해독과정 심리가 상호작용함으로써 발휘되는 것이다.
제1소통과정에서는 패러디 대상의 범주와 그 대상에 대한 패러디스트의 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어로 된 텍스트, 장르나 매체, 모든 기성품 등이 원텍스트가 될 수 잇다. 패러디의 대상과 그 활용범위는, 동일 장르의 작품에서부터 현실의 모든 기호로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패러디 대상으로서의 원텍스트를 어떻게 범주화할 수 있을까. 아래와 같이 네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우리의 전통 장르(작품)를 원텍스트로 하는 경우
: 신화, 설화, 속담, 판소리, 민요, 고전소설, 고전시가 등을 원텍스트로 삼아 글쓰기
② 비문학 장르(작품)를 원텍스트로 하는 경우
: 사진이나 그림, 광고 등을 원텍스트로 삼아 글쓰기
: 영화보고 난 후 글쓰기
: 대중가요(가사)를 짜깁기해 글쓰기
③ 서구문학적 작품을 원텍스트로 하는 경우
: 성경이나 서구 유명 작품들을 원텍스트로 삼아 글쓰기
④ 우리 현대시를 원텍스트를 삼는 경우
: 앞선 동시대 시인들의 작품(구절)들을 원텍스트로 삼아 글쓰기
이때 주의해야할 사항은 ‘패러디 차용으로서의 대상’과 ‘패러디 목표target로서의 대상’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패러디의 대상이란 원텍스트를 지칭하며 패러디의 목표는 원텍스트가 될 수도 잇고 당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원텍스트로서의 패러디 대상이 없는 패러디는 없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패러디 목표는 넓은 의미의 현실비판이지만 때로는 그 목표가 불분명한 작품들도 있다.
또한, 패러디 대상에 대한 태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원텍스트를 모방적으로 인용하기(모방적 패러디)
② 원텍스를 비틀어 인용하기(풍자·비판적 패러디)
③ 원텍스트들을 짜깁기하기(혼성모방적 패러디)
‘모방적 패러디’는 원텍스트의 권위와 규범을 계승하여 원텍스트와의 이데올로기적 승인 및 내적 발화의 친화를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원텍스트에 대한 공격성이나 희극성은 거세되어 있다. ‘풍자·비판적 패러디’는 원텍스트의 권위와 규범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거나 비판적으로 개작한다. 원텍스트에 대한 공격성과 풍자성이 가장 강하다. ‘혼성모방적 패러디’는 원텍스트를 대량복제하고 복수의 원텍스트들을 과감히 발췌·혼합함으로써 원텍스트의 권위와 규범을 대중화시킨다. 원텍스트에 대한 공격성과 풍자성이 약하다는 점에서 모방적 패러디와 유사하나, 세계의 복합성·임의성, 우연성, 무질서를 반영하기 때문에 복제적 특성과 유희적·실험적 국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변별된다.
패러디의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페러디스트의 태도, 이 두 층위의 조합수만큼 다양한 패러디의 양상이 존재할 것이다. 또한 원텍스트의 어느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모방인용하고 변용하고 있는가도 패러디의 다양성에 중요한 몫을 담당한다. 이를테면 시어·어구·문장의 차원, 형식적인 혹은 내용적 차원, 시정신 및 이데올로기적 차원, 장르적 차원 등이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시적 장치들을 통해 원텍스트를 드러내고 있는가하는 원텍스트의 전경화 방법도 중요하다. 즉 제목, 제사題詞 및 부제副題, 각주, 삽입글 혹은 삽입도형, 관용구, 고유명사화된 명명命名, 플롯이나 문제, 인물 등이 진경화의 구체적 장치들이다.
패러디텍스트와 독자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제2소통과정은 ‘독서반응이론’ 혹은 ‘수용이론’의 관점을 필요로 한다. 원텍스트를 전제로만 성립될 수 있는 패러디의 요건상, 패러디스트를 전제로만 성립될 수 있는 패러디의 요건상, 패러디스트는 일차적으로 독자이며 또 다른 실제 독자를 향해 자신의 창작의도를 약호화한다. 패러디스트의 패러디적 동기에 의해 패러디가 창작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자가 원텍스트와 패러디텍스트 간의 이중적 목소리와 상호텍스트적 문맥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패러디 효과는 발생하지 않는다. 패러디스트가 독자로서 원텍스트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 자라면, 실제 독자란 패러디스트가 발견한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완성하는 자다. 궁극적으로 패러디의 독자는 종전의 단순 관찰자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공동작가로서 작품의 창작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러디는 독자의 참여를 의도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전경화 장치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패러디텍스트는 독자의 수용능력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패러디의 독자는 패러디 약호를 풀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은 앞서 지적한 바 있다.
―정끝별, 『패러디』, 모악, 2017, 11~3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