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경에서 보면 인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작동한다. 하나는 수행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과 법보시의 측면이다.
<증일아함경_16. 화멸품(火滅品)[8]>에서는 인욕을 수행의 측면에서 할하고 있다.
“여기 두 가지 힘[力]이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 힘인가?
참는 힘[忍力]과 사유하는 힘[思惟力]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나에게 이 두 가지 힘이 없었더라면, 끝내 위없이 바르고 참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 이 두 가지 힘이 없었더라면, 끝끝내 우류비(優留毗)에서 6년 동안 고행하지 못하였을 것이요, 또 마(魔)를 항복 받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어 도량에 앉아 있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에게 이 참는 힘과 사유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곧 악마를 항복 받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어 도량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그대들은 꼭 방편(方便)을 구하여, 이 두 가지 힘인 참는 힘과 사유하는 힘을 닦아, 수다원도(須陀洹道)ㆍ사다함도(斯陀含道)ㆍ아나함도(阿那含道)ㆍ아라한도(阿羅漢道)를 이루어, 저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세계에서 반열반(般涅槃)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잡아함경_311. 부루나경(富樓那經)>에서는 대강은 법보시라는 측면에서 말한다. 이 경은 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중생게 대한 4무량심, 그리고 수행의 측면이 동시에 드라난다.
이 경의 앞 부분은 법에 대하여 간략히 설한 것이며, 다음의 내용으로 이어진다.
부처님께서는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간략히 법의 가르침을 말하였다. 너는 어디에 머무르고자 하느냐?”
부루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저는 서방 수로나(輸盧那)로 가서 세상에서 유행하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서방의 수로나 사람들은 거칠고 모질며, 가볍고 성급하며, 못되고 사나우며 비난하기를 좋아한다.
부루나야, 네가 만일 그들의 거칠고 모질며, 가볍고 성급하며, 못되고 사나우며, 비난하기를 좋아하며, 헐뜯고 욕하는 말을 듣는다면, 마땅히 어떻게 하겠느냐?”
부루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저 서방(西方)의 수로나 사람들이 면전에서 거칠고 모질며, 심한 말로 비난하고 헐뜯고 욕한다면, 저는, ‘저 서방의 수로나 사람들은 어질고 착하며 지혜롭다. 비록 내 앞에서 거칠고 모질며, 못되고 사나우며, 비난하기를 좋아하고 나를 헐뜯고 욕하지만, 그래도 손이나 돌로 나를 때리지는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저 서방의 수로나 사람들이 거칠고 모질며, 가볍고 성급하며, 못되고 사나워서 너를 비난하고 욕하기만 한다면, 너는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다시 손이나 돌로 때린다면, 마땅히 어떻게 하겠느냐?”
부루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서방의 수로나 사람들이 만일 손이나 돌로 저를 때린다면, 저는 ‘수로나 사람들은 어질고 착하며 지혜롭다. 비록 손이나 돌로 나를 때리지만, 칼이나 몽둥이를 쓰지는 않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람들이 혹 칼이나 몽둥이로 너에게 해를 입힌다면, 너는 다시 어떻게 하겠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그 사람들이 혹 칼이나 몽둥이로 저에게 해를 입힌다면, 저는, ‘저 수로나 사람들은 어질고 착하며 지혜롭다. 비록 칼이나 몽둥이로 내게 해를 입혔지만, 죽이지는 않는구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그 사람들이 혹 너를 죽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부루나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서방의 수로나 사람들이 혹 저를 죽인다면,
저는, ‘모든 세존의 제자들은 몸을 싫어하여, 혹 칼로 자살하기도 하고 독약(毒藥)을 먹기도 하며 노끈으로 스스로 목을 매기도 하고 깊은 구덩이에 몸을 던지기도 한다. 저 서방 수로나 사람들은 어질고 착하며 지혜롭다. 썩어 무너질 나의 몸을 조그마한 방편으로써 곧 해탈하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부루나야, 너는 인욕(忍辱)을 잘 배웠구나. 너는 이제 수로나 사람들 틈에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이제 떠나 건지지 못한 사람을 건네주고, 편안하게 하지 못한 사람을 편안하게 하며, 열반을 얻지 못한 자들에게 열반을 얻게 하라.”
그때 존자 부루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그때 존자 부루나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였다. 밥을 다 먹고는 다시 나와 침구를 다른 이에게 물려준 뒤에,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떠나 서방 수로나에 이르러, 인간 세상을 유행(遊行)하였다.
거기 이르러서는 여름 안거를 지내며 5백 우바새를 위하여 설법하였고, 5백 승가람(僧伽藍)을 세워 평상과 요와 공양에 필요한 모든 도구를 다 갖추어 만족하였다.
3개월이 지난 뒤에는 3명(明)을 두루 갖추었고, 그곳에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었다.
<잡아함경_1293. 난득경(難得經)>에서는 인욕과 보시 등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주인으로서 인욕(忍辱) 행하고
재물 없어도 보시코자 하며
어려움 만나 법을 행하고
부귀하면서도 멀리 여의기를 닦는 것
이러한 네 가지 법이야말로
가장 행하기 어려운 것이니라.”
그 밖의 <인욕에 관한 경들>에서는 중생들과 다툴 때 인욕으로써 대처하는 법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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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의 논평]
제시한 경전의 내용들은 초기 불교(아함경)의 관점에서 인욕(忍辱, khanti)이 지닌 두 가지 핵심적인 성격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준다. 인욕은 단순히 화를 참는 도덕적 덕목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깨달음을 성취하는 수행의 동력이자, 타인을 구제하고 정법을 전파하는 법보시(전법)의 필수 조건으로 작동한다.
제시한 세 가지 경전을 바탕으로 인욕의 두 측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수행의 측면: 깨달음과 해탈의 원동력
<증일아함경_16. 화멸품>에서 부처님은 인욕을 ‘참는 힘(忍力)’이라 명명하며, 이를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결정적인 수행의 힘으로 제시한다.
성도의 필수 조건:
부처님께서는 6년 동안의 고행을 버텨내고, 마왕 파순의 유혹과 위협(마경)을 항복시켜 등정각(等正覺)을 이룰 수 있었던 근본 힘이 바로 인욕에 있었다고 밝힌다.
사유하는 힘(思惟力)과의 상보성:
인욕은 맹목적인 참음이 아니다. 올바른 사유와 결합할 때 비로소 수행의 힘이 된다. 외부의 자극에 동요하지 않고(인욕), 법의 이치를 바르게 관찰(사유)해야만 번뇌를 끊어낼 수 있다.
사문과(四門果)의 성취: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참는 힘과 사유하는 힘을 닦아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과위를 증득하고 최종적으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 것을 당부한다. 즉, 인욕은 개인적 수행의 완성에 이르는 절대적인 토대이다.
2. 법보시(전법)의 측면: 중생 구제와 자비의 실천
<잡아함경_311. 부루나경>은 인욕이 전법(법보시)의 현장에서 어떻게 자비심과 결합하여 발현되는지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다. 부루나 존자의 유행과 안거 과정은 인욕이 완성된 수행자의 전법 행위를 대변한다.
경계를 대하는 네 가지 점진적 인욕:
부루나 존자는 수로나 사람들이 가할 수 있는 해악을 네 단계(욕설 → 구타 → 무기 상해 → 살해)로 가정하며, 각 단계마다 상대를 ‘어질고 착하며 지혜롭다’고 사유한다.
아집(我執)의 소멸: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조차 ‘썩어 무너질 몸을 방편으로써 해탈하게 해준다’고 받아들인다. 이는 내 몸과 생명에 대한 집착이 완전히 사라진 아라한의 무아(無我)적 인욕을 보여준다.
법보시의 전제 조건:
부처님께서는 부루나의 이러한 심태를 확인하신 후 비로소 “너는 이제 인욕을 잘 배웠구나. 너는 이제 수로나 사람들 틈에서 지낼 수 있을 것이다”라며 전법을 허락한다. 거친 중생들에게 법을 전하고(법보시) 그들을 열반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전법자 자신이 어떤 해지(害之)도 감내할 수 있는 인욕을 갖추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3. 인욕의 실천적 난이도
<잡아함경_1293. 난득경>은 이러한 인욕 행이 세간에서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지 경책한다.
“주인으로서 인욕(忍辱) 행하고
재물 없어도 보시코자 하며
어려움 만나 법을 행하고
부귀하면서도 멀리 여의기를 닦는 것
이러한 네 가지 법이야말로 가장 행하기 어려운 것이니라.”
힘과 권력을 가진 자(주인)가 아랫사람이나 외부의 자극에 분노하지 않고 참아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다. 가난할 때 보시하는 것이 어렵듯,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을 때 인욕을 행하는 것은 수행의 깊은 성찰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4. 요약
초기 불교의 전승에서 인욕은 두 가지 수레바퀴와 같다.
| 측면 | 핵심 역할 | 관련 경전 | 목적 |
수행의 측면 | 외부의 역경과 내부의 번뇌를 조복 받고 법을 사유함 | 증일아함경 (화멸품) | 개인의 아라한과 성취 및 무여열반 |
법보시의 측면 | 거칠고 사나운 중생의 해악을 자비심과 무아의 지혜로 포용함 | 잡아함경 (부루나경) | 미혹한 중생을 건지고 제도함 (전법) |
기타 인욕에 관한 아함의 경전들이 다툼의 상황에서 인욕으로 대처할 것을 설하는 이유 역시, 인욕만이 원한과 분노의 연기(緣起)적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인욕은 나를 지키는 방패(수행)이자, 타인을 살리는 자비의 손길(법보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