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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깊이와 언어의 절제, 그리고 철학적 알레고리
— 서울 「중랑 장미축제」 디카시 공모전 당선작 심층 분석
나병훈 / 문학평론가
한국디카시학회 전북지부장
I. 서론
디카시의 본질과 예술디카시’의 미학적 비전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스마트폰)와 시(詩)가 결합한 21세기 새로운 예술 장르로서, 문학이 지닌 전통적 텍스트 중심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미학적 영역을 구축해 왔다. 디카시는 단지 사진에 시를 덧붙이거나, 시에 참고 사진을 첨부하는 보조적 관계가 아니다. 영상과 언어가 1:1로 결합하여 하나의 통합된 상징과 의미를 형성하는 ‘극 순간의 시적 스파크’이자 ‘사물과의 즉각적 감응’이다.
특히 한국디카시학회 이어산 회장은 디카시를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감흥을 일으키는 순간을 디지털카메라로 포착하고, 그 영상과 함께 5행 이내의 짧은 시적 언어로 표현하여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매체 예술”로 규정한다. 이 개념 규정은 디카시가 단순한 문자 언어의 영역을 넘어 시각적 직관성과 언어적 응축성, 그리고 디지털 매체성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고도의 순간 예술임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정론적 바탕 위에서 한국디카시학회가 주창하고 지향하는 ‘예술디카시’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범람하는 일상적 스냅사진이나 통속적인 문자 놀이 차원을 명확히 뛰어넘는다. 예술디카시는 자연과 사물, 인간의 삶을 관조하는 예리한 시선(관찰의 깊이)과, 그 순간을 포착하여 문학적 정수로 응축해 내는 시적 절제(언어의 절제)를 결합하여 한 차원 높은 예술적 승화를 이루어내는 데 그 본질이 있다.
나아가 사물이나 풍경의 외형적 모습을 단순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피사체 뒤에 숨은 시적 자아의 깊은 사유와 삶의 이면을 빗대어 드러내는 ‘철학적 알레고리(Allegory)’ 또한 영상과 언어가 결합하는 매우 중요한 미학적 축으로 작동한다.
이는 단순히 순간의 현상을 스케치하거나 직관적인 느낌을 구어체로 나열하는 가벼운 스낵 컬처(Snack Culture)로서의 디카시를 경계하고, 영상과 언어의 필연적·변증법적 결합, 그리고 철학적 상징성을 통해 존재론적 깊이와 숭고한 서정성을 확보하려는 미학적 운동이다. 한국디카시학회가 정립해 나가는 예술디카시의 비전은 글로벌 미디어 환경 속에서 한국 고유의 디카시 미학을 학술적·예술적으로 체계화하여, 시적 감흥의 순간성을 세계적 예술 언어로 정립하는 데 있다. 즉, 시각 매체의 직관성과 전통 시학의 은유성 및 철학적 상징성을 고도로 응축함으로써 21세기 새로운 인문학적·예술적 담론을 이끄는 핵심 매체 예술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울 중랑장미축제 제4회 디카시 공모전의 당선작들은 이러한 예술디카시의 본질과 지향을 명확히 입증하고 있다. 본 평론에서 다룰 네 편의 작품—「불사조」, 「瓦글瓦글」, 「귀차니즘」, 「아버지」는 관찰 대상과 다루는 정서, 예술적 지향점에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이에 본 평자는 한국디카시학회가 정립하고 지향하는 ‘예술디카시’의 시세계와 미학적 지평을 핵심 비평 틀로 삼아 당선작 4 편을 정밀하게 분석하고자 한다. 피사체를 읽어내는 시인의 ‘관찰의 깊이’와 이를 구상화하는 ‘언어의 절제’, 그리고 그 사이에 형성되는 ‘철학적 알레고리’가 네 작품 속에서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실현되고 있는지를 다각도로 조명해 볼 것이다. 이를 통해 네 편의 당선작이 지닌 시적 성취를 입체적으로 규명하고, 나아가 21세기 새로운 디지털 문학장르로서 디카시가 나아가야 할 ‘예술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본 평자의 핵심적 입장이다.
Ⅱ. 텍스트와 이미지의 입체적 분석 및 상호 비교
1. 자연의 원형과 신화적 비상 : 「불사조」
(1) 작품 구조 및 텍스트 전문
겹겹이 눌린 끝
심장이 뛰고 있다
물빛 머금은 하늘이 내려오면
잠의 껍질이 풀려
불꽃처럼 날아오른다
- 정유남,「불사조」,전문
(2) 영상 포착 및 시각 미학
「불사조」의 사진은 바닷가나 계곡의 단단하고 거친 갯바위/퇴적암 암반을 포착하고 있다.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를 거치며 겹겹이 층을 이룬 바위 표면에는 깊은 균열과 물길이 형성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균열의 모양이다. 중앙을 가로지르는 수직의 패임과 수평의 갈라짐이 어우러져 마치 날개를 펼친 불사조의 형상, 혹은 거대한 십자가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그 홈에 맑은 물이 고여 빛을 반사하고 있다.
사진 속 암석의 차갑고 무거운 질감은 아래쪽에 고인 물의 유동적 질감과 대조를 이룬다. 무생물의 바위가 지닌 정물성(靜物性)에 반사된 물빛이라는 동물성(動物性)이 개입하면서, 단단한 암반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어떤 거대한 생명체의 알이나 껍질로 전환된다. 디카시적 발상의 시작점이다.,
(3) 시적 언어의 구성과 존재론적 도약
시인은 이 시각적 구도를 3연 5행의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문장으로 시적 표현을 통해 순간포착의 서정을 해석한다.
1연("겹겹이 눌린 끝 / 심장이 뛰고 있다")은 암석이 형성되는 지질학적 세월과 지각의 압력을 ‘겹겹이 눌린 끝’이라는 감각적 시어로 압축한다. 퇴적의 중압감은 생명의 억압과 시련의 은유다. 그러나 그 억압의 수극(水極)에서 시인은 역설적으로 ‘심장이 뛰고 있다’는 생명의 박동을 들춰낸다. 바위 틈에 고인 물의 미세한 파동과 형상이 곧 뛰는 심장의 신호로 환원되는 순간이다.
2연("물빛 머금은 하늘이 내려오면 / 잠의 껍질이 풀려")은 하늘과 땅, 거대 우주와 작은 물웅덩이의 미학적 교감을 다룬다. 하늘의 빛이 바위 틈 물에 반사되는 현상을 ‘하늘이 내려온다 ’고 표현함으로써 지상적 차원의 고통에 천상적 에너지를 주입한다. 이로써 억눌려 있던 바위는 ‘잠의 껍질’을 깨고 비상할 준비를 마친다.
결미의 3연("불꽃처럼 날아오른다")은 이미지의 시극(詩極)을 이룬다. 가장 단단하고 차가운 ‘바위’에서 시작하여, 중간 매개체인 ‘물’을 거쳐, 마침내 가볍고 뜨거운 ‘불꽃’으로 승화한다. 바위의 갈라진 물길 형상은 불사조의 펼쳐진 날개가 되어 사차원의 공간으로 비상한다.
(4) 비교 미학적 위치 및 철학적 알레고리
「불사조」는 네 당선작 중 가장 관념적이면서도 높은 차원의 ‘원형적 은유’를 보여준다. 다른 작품들이 전통 건축, 일상 음식물, 철제 구조물 등 구체적인 인공적·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하는 반면, 「불사조」는 지질학적 자연물에서 태초의 생명력과 부활의 신화를 끄집어낸다.
이 작품이 드러내는 철학적 알레고리는 고통과 억압의 시간(암석)을 견뎌낸 존재가 지닌 내면의 부활 의지와 초월성이다. 차가운 무생물 속에서 뜨거운 생명의 불꽃을 발견해 내는 이 시적 역발상은 디카시가 도달할 수 있는 초월적 서정성의 극치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2. 전통의 적층(積層)과 발효의 시간: 〈瓦글瓦글〉
(1) 작품 구조 및 텍스트 전문
묵은 숨과 새 숨이
겹쳐 앉아
발효된 시간들,
한오백년 넘실거리다
처마 끝에 맺힌다
- 윤문찬, 「瓦글瓦글」전문
(2) 영상 포착 및 시각 미학
「瓦글瓦글」 사진은 경남 함양의 한옥마을 지붕 군(群)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 시시(High-angle)로 포착했다. 암 기와와 숫 기와가 겹겹이 물려 이어지는 지붕의 곡선들은 굵은 파도처럼 밀려들고, 처마와 처마가 마주치는 공간적 입체감은 한국 전통 건축 고유의 유려함과 장엄함을 동시에 풍긴다.
기와 표면에 드리운 세월의 이끼와 때, 그리고 기와 사이로 보이는 짙은 그늘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위’를 시각화한다. 무수한 기와 장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지붕을 이루듯,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사연이 그 지붕 아래 모여 있음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3) 언어유희와 시적 깊이의 조화
이 작품의 일차적 묘미는 제목의 ‘시각적·음운론적 구성’에 있다. 시인은 북적거리는 소리나 모습을 뜻하는 순우리말 의성어 ‘와글와글’에서 ‘와’ 자에 ‘기와 와(瓦)’ 한자를 대입했다. 이 신선한 언어유희는 사진 속 수많은 기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각적 형상과, 그 속에서 끊임없이 피어났을 수세기에 걸친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음성)를 단 한 줄의 제목으로 완벽하게 결합했다.
1연("묵은 숨과 새 숨이 / 겹쳐 앉아 / 발효된 시간들,")에서 시인은 기와지붕의 적층 구조를 선대(先代)의 삶인 ‘묵은 숨’과 후대(後代)의 삶인 ‘새 숨’의 중첩으로 읽어낸다. 조상들의 숨결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숨결이 기와라는 공간 위에 함께 앉아 있다. 그 유구한 세월의 흐름을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부패하지 않고 깊은 맛을 내는 ‘발효된 시간들’로 명주(銘註)한 것은 탁월한 시적 발상이요 통찰이다.
2연("한오백년 넘실거리다 / 처마 끝에 맺힌다")은 한민족의 한(恨)과 흥이 담긴 민요 ‘한오백년’의 율조를 끌어와 지붕의 파도 같은 곡선을 ‘넘실거림’으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그 유연한 세월의 흐름이 마침내 한옥의 미학적 정점인 ‘처마 끝’이라는 아슬아슬하고도 정교한 한 지점에 맺힌다고 표현함으로써 공간과 시간이 하나로 응축되는 미학적 마침표를 찍는다.
(4) 비교 미학적 위치 및 철학적 알레고리
「瓦글瓦글」은 네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언어적 세공과 공간 미학을 보여준다. 「불사조」가 수직적인 비상과 탈출을 지향하고, 「아버지」가 수직적 하중과 참을성을 다룬다면, 「瓦글瓦글」은 수평적으로 확장하고 넘실거리는 시간의 파도를 다룬다.
이 작품의 철학적 알레고리는 과거(묵은 숨)와 현재(새 숨)의 공존을 통한 세월의 발효와 역사적 연속성이다. 지붕이라는 정적인 인공 건축물에 ‘호흡(숨)’과 ‘발효’라는 생물학적 연금술을 가함으로써 전통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극히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디카시의 언어로 재탄생시켰다.
3. 일상성의 해학과 탈집착의 정서: 「귀차니즘」
(1) 작품 구조 및 텍스트 전문
복잡한 머릿속은
삭제 되었으니
일단은 누워서
젖은 몸이나 말려보자구
- 이병화, 「귀차니즘」전문
(2) 영상 포착 및 시각 미학
「귀차니즘」 사진은 바닷가 해풍 건조망 위에 깔끔하게 손질되어 일렬로 늘어서 말라가는 생선(가자미 혹은 도다리류)들의 정경이다. 머리가 잘려 나간 생선들은 흰 배를 위로 혹은 옆으로 드러낸 채 일정한 간격과 각도로 건조망 위에 누워 있다.
이 사진은 자칫 생선 비린내가 나거나 생업의 고단함, 혹은 죽은 생명체의 건조라는 다소 딱딱하거나 어두운 이미지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규칙적으로 정렬된 생선들의 모습은 뜻밖의 정돈감과 평온함, 그리고 아무런 욕심도 남아있지 않은 해탈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3) 해학적 재해석과 현대적 공감대
시인은 이 일상적이고 노동적인 풍경에 ‘귀차니즘’이라는 현대적 통속어이자 대중적인 심리 상태를 과감하게 대입한다.
1연("복잡한 머릿속은 / 삭제 되었으니")은 실제 손질 과정에서 생선의 머리가 잘려 나간 신체적 사실을 ‘생각과 번뇌의 지움’이라는 심리적 상태로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를 시도한다. 복잡한 계산, 미래에 대한 불안, 세속적 고민으로 과부하가 걸린 현대인들에게 ‘머리가 삭제된 생선’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모든 번뇌가 완전 삭제된 무념무상의 상태로 탈바꿈한다.
2연("일단은 누워서 / 젖은 몸이나 말려보자구")은 생선이 건조망 위에 누워 해풍에 몸을 말리는 수동적 건조 과정을, 지친 존재가 자의로 선택한 휴식으로 전환한다. 구어체인 "~말려보자구"의 사용은 시적 인격화된 생선의 유쾌하고 무심한 목소리를 생생하게 살아나게 한다. 바닷속에서 치열하게 헤엄치며 살아왔던 '젖은 몸'(고단했던 삶의 궤적)을 햇살과 바람에 내맡긴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행위는 현대 번아웃 증후군을 겪는 이들에게 대리 만족과 강렬한 휴식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4) 비교 미학적 위치 및 철학적 알레고리
「귀차니즘」은 네 당선작 중 가장 파격적이고 해학적(Humorous)인 작품이다. 다른 세 작품이 장엄함, 전통의 깊이, 부성애라는 진지하고 묵직한 서정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면, 「귀차니즘」은 어깨의 힘을 완전히 빼고 일상의 가벼움 속에서 삶의 본질을 통찰한다.
이 작품의 철학적 알레고리는 세속적 집착과 번뇌(머리)를 비워냄으로써 도달하는 무념무상의 현대적 해탈이다. 거창한 철학적 담론 대신 "일단 누워서 몸이나 말리자"는 무심한 한마디로 현대 사회의 과도한 긴장을 완화하는 쉼표의 미학을 성취해 냈다.
4. 산업 물상의 은유와 부성애의 헌사 : 「아버지」
(1) 작품 구조 및 텍스트 전문
무쇠도 휜다
세월의 망치를 맞고
가족을 받치느라
굽은 등
무쇠라 불리던 당신
- 윤형주, 「아버지」전문
(2) 영상 포착 및 시각 미학
「아버지」 사진은 공원이나 야외 시설 한쪽에 설치된 굵고 두꺼운 철제 벤트 파이프(환기구 또는 배수관)를 담고 있다. 지면에서 수직으로 솟구쳐 올라갔다가 U자형으로 180도 구부러져 다시 아래를 향하고 있는 이 파이프는 붉게 녹이 슬어 있다. 오랜 시간 비바람과 햇빛에 노출되며 표면의 칠이 벗겨지고 거칠어진 무쇠관의 시각적 형태는,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고개를 숙인 채 등을 동그랗게 구부리고 있는 노인의 뒷모습을 연상시킨다.
차가운 공업용 구조물이지만, 곡선의 굴곡과 붉은 녹의 질감은 차가움을 넘어 둔중한 삶의 궤적과 아픔을 은유하는 감성적 매개체로 변모한다.
(3) 직관적 기표와 감동적 은유의 결합
시인은 거친 철제 구조물에서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아버지’의 신체와 삶을 발견해 낸다.
1행("무쇠도 휜다")은 단 한 줄로 이루어진 강렬한 명제다. 절대 부러지거나 굽혀지지 않을 것 같던 금속의 왕 '무쇠'조차 굽어진다는 사실을 통해, 세상의 그 어떤 시련도 다 이겨낼 것 같던 '아버지'라는 존재의 인간적 한계와 비극성을 암시한다.
2연("세월의 망치를 맞고 / 가족을 받치느라 / 굽은 등")은 굽어진 파이프의 형상에 구체적인 서사를 부여한다. 파이프가 꺾인 원인을 단순한 물리적 가공이 아니라 '세월의 망치질'로 해석하고, 그 구부러진 곡선의 공간을 '가족을 받치고 있는 헌신의 자세'로 읽어낸다. 여기서 '굽은 등'은 신체적 노화의 결과인 동시에 자식과 가정을 지켜낸 영광스러운 훈장이 된다.
마지막 3행("무쇠라 불리던 당신")은 깊은 탄식이자 슬픈 헌사다. 젊은 시절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집안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무쇠 같던 당신'이, 이제는 붉게 녹슬고 등이 굽은 노인이 되어버린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붉은 녹은 아버지가 흘린 피와 땀, 세월의 훈장으로 환원된다.
(4) 비교 미학적 위치 및 철학적 알레고리
「아버지」는 네 당선작 중 가장 감동적이고 ‘인간학적인 울림’이 강한 작품이다. 무생물인 차가운 무쇠 파이프에 ‘아버지의 굽은 등’이라는 뜨거운 생명성을 입힘으로써 산업적 오브제를 진한 가족애의 상징으로 완벽하게 승화시켰다.
이 작품이 함축하는 철학적 알레고리는 세월의 무게와 자식의 짐을 짊어진 채 자신을 마모시켜 가는 부성(父性)의 숭고함이다. 디카시가 단순한 풍경의 스케치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삶과 고통, 사랑이라는 묵직한 서사를 끌어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Ⅲ. 상호 비교를 통한 디카시의 미학적 지평 검토
살펴본 바와 같이 네 편의 당선작은 각기 다른 피사체와 시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디카시라는 공통의 틀 안에서 상호 보완적인 미학적 지평을 형성한다.
1.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자연'에서 '일상'으로
「불사조」는 시선의 대상을 원초적 자연(바위와 물, 하늘)에 둔다. 문명 이전의 시간, 지질학적 세월이 만들어낸 대자연의 흔적에서 신화적 부활을 읽어내는 시선은 거시적이고 초월적이다.
「瓦글瓦글」은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인 '전통 건축'으로 시선을 옮긴다. 자연 재료인 흙과 기와가 인간의 손길을 거쳐 지붕이 되고, 그 지붕 아래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역사의 현장을 따뜻하게 시선에 담는다.
「귀차니즘」은 시선을 지극히 소소한 '일상의 생업 현장'으로 끌어내린다. 시장이나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선 말리는 정경을 통해, 현대인들의 지친 일상을 위로하는 미시적이고 친근한 시선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버려지거나 방치되기 쉬운 '산업적 구조물'에 시선을 고정한다. 무생물의 차가운 철제 파이프에서 인간의 온기와 애잔한 삶의 역사를 발굴해 내는 시선은 깊은 공감과 숭고미를 자아낸다.
2. 변주되는 변증법적 결합 방식과 알레고리의 형성
디카시의 성공 여부는 '사진이 시를 가리지 않고, 시가 사진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 균형점에 있다.
「불사조」는 사진 속 물길의 '형상'을 보고 불사조의 '날개'를 떠올리는 시각적 형상 결합을 통해 존재의 초월성을 알레고리화한다.
「瓦글瓦글」은 사진 속 기와의 '복수성(Plurality)'을 '瓦'라는 한자어와 '와글와글'이라는 의성어로 연결하는 언어유희적·패턴 결합을 통해 역사의 생명력을 알레고리화한다.
「귀차니즘」은 사진 속 생선의 '상태(머리 없음, 누워 있음)'를 현대인의 '심리 상태(번뇌 삭제, 휴식)'로 바꾸는 상황 대입형 결합을 통해 집착의 비움을 알레고리화한다.
「아버지」는 사진 속 파이프의 '물성(굽어짐, 녹슬음)'을 아버지를 향한 '신체적·감정적 서사(굽은 등, 피땀)'로 바꾸는 상징적 환원 결합을 통해 부성애를 알레고리화한다.
네 작품 모두 사진의 표면적 현상을 ‘단순 묘사’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사진이 가진 시각적 기표에 전혀 새로운 시적 기의와 철학적 상징을 부여함으로써 1+1이 2가 아닌 3 이상의 미학적 시너지를 창출해 내고 있다.
Ⅳ. 결론: 디카시의 현주소와 미학적 과제
서울중랑장미축제 제4회 디카시 공모전 당선작 4편은 한국 디카시가 도달한 높은 수준과 다채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자연의 물상에서 신화적 부활과 원형적 생명력을 끌어올리는 초월적 서정의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 「불사조」), 전통 문화유산의 정서와 시간의 깊이를 감각적인 언어 세공으로 풀어내는 역사적·공간적 서정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瓦글瓦글」, 또한 「귀차니즘」에서 목도하였듯이 일상의 친근한 정경을 현대적 위트와 해학으로 재해석하여 대중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해학적 서정의 묘미를 보여주는가 하면 「아버지」에서처럼, 보잘것없는 산업 물상에 부성애라는 뜨거운 온기를 불어넣어 보는 이의 거문고 줄을 울리는 인간학적 서정의 숭고함을 형상화하는 예술 디카시의 묘미를 보여주었다.
이 네 편의 작품이 보여주는 공통적인 미학적 미덕은 ‘관찰의 깊이’와 ‘언어의 절제’, 그리고 그 찰나의 공간에서 피어나는 ‘철학적 알레고리’ 다. 네 시인 모두 풍경이라는 시각적 매체를 과도하게 설명하려 들지 않았으며, 단 몇 줄의 절제된 시어로 찰나의 순간에 찾아온 직관적 깨달음과 상징을 깔끔하게 명주(銘註)했다.
이와 같이 예술적 디카시는 앞으로도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장르로서 대중과 깊이 호흡하며 그 지평을 넓혀갈 것이다. 이번 공모전의 당선작들은 디카시가 단순한 놀이나 일상의 스케치를 넘어, 인간의 존재론적 고뇌와 역사의 깊이, 그리고 진정한 삶의 위로를 담아내는 디지털 시대의 당당한 주류 문학 장르로서 우뚝 섰음을 입증하는 소중한 미학적 자산임을 입증했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서두에서 밝힌 바처럼 한국디카시학회가 지향하는 디카시의 비전이 앞으로도 이러한 예리한 시선과 절제된 언어를 통해 더욱 깊고 풍성한 비평적 담론을 생산 해 내는 마중물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