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카드가 두 장으로 늘어난 2012년 이후 같은지구 세 팀이 포스트시즌에 오른 것은 세 번이 있었다. 올해 다저스(104승58패)는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 네 번째 경우다.
같은지구 세 팀 포스트시즌 진출
2013 NL 중부 (세인트루이스 피츠버그 신시내티)
2015 NL 중부 (세인트루이스 피츠버그 컵스)
2016 AL 동부 (보스턴 토론토 볼티모어)
2017 NL 서부 (다저스 애리조나 콜로라도)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다저스는 누가 올라오더라도 쉽지 않았다. 올해 최고의 팀인 것은 분명하지만, 애리조나와 콜로라도는 다저스를 두려워하지 않았다(애리조나전 8승11패, 콜로라도전 9승10패). 그래도 그나마 부담이 덜한 쪽은 선발진에서 앞서는 콜로라도였다. 그러나 애리조나가 치열한 난타전 끝에 콜로라도의 추격을 간신히 따돌렸다. 최소 월드시리즈 진출이 목표인 다저스로서는 첫 시리즈부터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다.
라이벌 매치
다저스와 애리조나 사이에 앙금이 생긴 것은 2011년 7월. 애리조나 헤라르도 파라는 다저스 불펜투수 궈홍치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냈다. 파라는 홈런을 치고 나서 한동안 타구를 바라봤는데, 궈홍치가 이 수모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6주 만의 마주한 타석에서 위협구를 던졌다. 문제는 파라가 또 한 번 홈런을 쏘아올리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 것. 다저스는 파라의 자극에 크게 분노했다. 이때 덕아웃에서 고함을 친 한 선발투수는 다음날 파라를 맞히고 퇴장까지 당했다. 경기 후 주심이 너무 엄격하다고 말한 클레이튼 커쇼였다.
두 팀은 2013년 6월에 또 한 번 으르렁 거렸다. 당시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잭 그레인키가 몸맞는공(코디 로스)을 던진 것이 불을 붙였다. 애리조나 선발 이안 케네디도 야시엘 푸이그에게 몸맞는공을 던졌는데, 그레인키가 다시 몸맞는공 하나를 더 던졌다(미겔 몬테로). 이어서 케네디가 투수인 그레인키 머리 쪽으로 공을 던지자 양팀 모두 억눌렀던 감정들을 분출시켰다(로날드 벨리사리오의 광분을 잊지 못한다). 선수들은 물론 감독, 코치들까지 혈기왕성하게 격돌한 이 벤치 클리어링으로 5명이 퇴장을 당하고 12명이 징계를 받았다.
그 해 다저스는 지구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하필 지구우승을 확정지은 경기가 9월20일 애리조나 원정이었다. 다저스는 클럽하우스에서 조용히 샴페인 파티만 여는 듯 했더니 갑자기 달려나와 체이스필드 수영장에 뛰어 들었다. 이 모습을 본 애리조나는 "매우 무례한 행동"이라며 화를 냈다. 당초 애리조나는 구장 시설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다저스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다저스는 애리조나 홈 관중들 앞에서 피해달라는 뜻인 줄 알았다고).
한편, 불편한 기색을 보인 대다수 애리조나 관계자들과 달리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축하하는지 신경쓰지 말고, 내년에는 우리가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고 덤덤하게 말한 선수가 있었다. 이듬해 양키스로 트레이드 된 후 2014년 12월에 다저스와 계약한 브랜든 매카시였다.
애리조나는 '타도 다저스'를 외쳤다. 2015년 12월에는 커쇼의 파트너였던 그레인키도 데려왔다. 그러나 정규시즌에서 다저스를 잡기는 쉽지 않았는데, 올해는 마침내 그 적기가 찾아왔다.
커쇼 포스트시즌 잔혹사 끊을까
다저스는 디비전시리즈 1차전 선발 고민을 가장 적게 한 팀. 커쇼가 5년 연속 디비전시리즈 1차전 선발을 맡는다. 앞선 네 번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 성적은 2승2패 5.33(25.1이닝 15실점). 이가운데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2014년 세인트루이스전(6.2이닝 8실점)도 있다.
2013년 이후 커쇼는 정규시즌 6이닝 이상 무실점 등판이 36회나 있다. 이 부문 2위 제이크 아리에타보다 8경기가 더 많다. 그러나 포스트시즌 선발 14경기에서는 이러한 피칭을 한 번밖에 하지 못했다(2016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 7이닝 무실점). 그나마 그 경기가 작년에 나온 점이 커쇼가 갈수록 포스트시즌 등판에 적응하고 있다고 위안삼는 부분이다.
올시즌 커쇼는 애리조나를 두 번 만났다. 8.1이닝 1실점, 7이닝 무실점 호투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애리조나전 25경기 이상 선발로 나온 투수 중 커쇼보다 평균자책점이 낮은 투수는 없다(커쇼 26경기 2.55, 범가너 29경기 2.61). 또한 다저스타디움에서 애리조나를 상대한 13경기 성적은 8승1패 1.54로 압도적이었다. 커쇼가 가을 악몽을 떨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렇다고 마냥 낙관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커쇼는 제이디 마르티네스가 합류하고 나서 애리조나를 만난 적이 없다. 다저스는 마르티네스가 온 애리조나를 맞아 현재 진행 중인 6연패 포함 2승7패로 완벽하게 밀렸다. 애리조나가 좌완 약점을 극복하면서 한층 더 위협적인 타선을 갖췄기 때문. 7월24일 이전 애리조나의 좌완 상대 조정득점창조력(wRC+)은 메이저리그 최하위였다(68). 하지만 마르티네스가 본격적으로 경기에 나온 7월24일 이후에는 메이저리그 9위(107)까지 뛰어올랐다. 마르티네스는 폴 골드슈미트마저 넘어서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는데(62경기 .302 .366 .741 29홈런) 9월5일 다저스타디움에서는 역대 18번째 4홈런 경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비록 와일드카드 경기에서 4타수무안타로 조용했지만, 마르티네스는 포스트시즌 홈런이 있으며(2개) 커쇼를 상대로도 홈런을 날린 적이 있다(8타수3안타 1홈런 .375).
이는 비단 커쇼에게만 발령되는 경보도 아니다. 다저스는 리치 힐과 다르빗슈가 커쇼에 이어 선발로 나올 예정이다. 두 투수는 정규시즌에서 모두 마르티네스에게 홈런을 허용했다. 마르티네스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다저스의 디비전시리즈는 출발부터 꼬일 가능성이 높다.
로비 레이
애리조나는 와일드카드 경기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초반 넉넉하게 잡은 리드를 그레인키가 지켜주지 못한 것(3.2이닝 4실점). 그레인키가 긴이닝을 소화해주고 불펜 투입으로 경기를 끝냈다면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 로비 레이를 낼 수 있었다. 레이는 올해 다저스의 저승사자였다.
다저스도 지난해 좌완 상대로 약점을 보인 팀이었다. 좌완이 선발로 나온 경기에서 5할 승률도 못 거뒀다(22승24패). 올해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는데(36승33패) 레이에게 만큼은 자존심을 구겼다. 레이는 다저스전 5경기 3승무패 2.27(31.2이닝 8자책). 이 중 두 자릿수 탈삼진 4경기는 단일시즌 다저스 상대 최다기록이다. 잡아낸 53삼진도 단일시즌 다저스 상대 최다삼진 2위에 해당한다(1908년 크리스티 매튜슨 58개).
토리 러벨로 감독은 와일드카드 경기에서 34구만을 던진 레이를 2차전에 내보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루틴이 무너진 레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언급되고 있는 타이후안 워커(9승9패 3.49)가 아무리 다저스타디움에서 좋은 피칭을 했다고 해도(11이닝 2실점) 마지막 10경기에서 제구가 흔들린 워커를 신뢰하기는 힘들다(9이닝 볼넷 4.3개). 무엇보다 와일드카드 두 경기를 통해 주심들의 존이 유난히 좁아졌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애리조나로선 레이가 다저스전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그레인키가 살아나는 것이 최선이다.
기세 싸움
와일드카드 경기에서 혈투를 벌였지만 애리조나는 닫혀 있던 체이스필드 지붕도 뚫을 기세다. 단판 경기에서 살아남은 것이 큰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14년 샌프란시스코와 캔자스시티는 와일드카드 경기에서 승리한 뒤 그들만의 월드시리즈를 만들었다. 야구에서 기록은 무시할 수 없지만, 단기전은 기록보다 기세의 싸움이다. 애리조나는 포스트시즌 첫 단추를 잘 채운 점을 비롯해 정규시즌 다저스를 상대로도 우위를 점한 부분이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만 애리조나는 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변수가 존재한다. 마무리 페르난도 로드니다. 로드니는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강심장을 지닌 투수가 아니다(12경기 4.63). 오늘도 애리조나가 사정권에 머물렀다면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여기에 로드니는 정규시즌 다저스전에서 대형사고를 친 적이 있다. 7월7일 경기에서 석 점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것(0.0이닝 4실점 4볼넷 2안타). 이후 다저스전 5경기에서 모두 세이브를 챙기며 반등했지만(5이닝 1실점) 로드니의 제구는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다.
타선에 젊은 선수들이 자리를 잡은 다저스 역시 분위기를 타는 것이 중요하다. 코리 시거(23) 코디 벨린저(21) 크리스 테일러(26) 야시엘 푸이그(26)가 그라운드를 휘저어야 한다. 뛰는 야구를 위해 들어온 팀 로카스트로(24)도 분위기를 좌우할 선수. 여기에 어틀리(38) 그랜더슨(36) 같은 베테랑 선수들이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다저스가 바라는 그림이다.
다저스의 변수는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다. 로버츠의 경기 운영은 포스트시즌에서 좀더 변칙적, 또는 극단적으로 변할 것이다. 만약 다저스가 커쇼를 1차전에 내고 패하게 되면 로버츠는 더욱 조급해질지도 모른다. 달리 말해 1차전 승리가 좀더 절실한 쪽은 다저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