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씨가 말하는“몸과 인문학,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2016. 10. 11(화) 전주시청 강당에서 150회 전주시열린강좌가 있었다. 고전평론가이자 국문학박사인 고미숙씨(감이당연구원, 56세)가 허준(許浚, 1546∼1615)이 저술한 의학서적《동의보감》을 통해 삶의 지혜와 비젼을 제시하는 시간이었다.
과연 나는 삶을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왜 즉답을 못할까? 많은 돈이 있다고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고 남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졌다고 주인이 되는 걸까? 아닐 것이다. 진정한 주인은 두려움과 충동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다. 많이 가질수록, 건강할수록 두려움은 더 많다. 죽음의 이치를 깨치고 의연하게 넘어가는 힘이 부족하다. 자기 삶의 구도자가 되지 못하고 화(火)를 생성하는 음식을 많이 먹는다. 그래서 몸에 불이 커지지 않는다. 몸에서 물이 말라가고 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불면증환자는 물이 생성되는 시간이 없어졌기에 몸에 있어야 할 70%의 수분을 유지하지 못하여 정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낮에 쌓인 쓰레기를 비워야 하는데 비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폭력이 난무하고 자신도 모르는 충동이 일어난다. 일상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구조적 모순이 생긴다. 우리 몸은 존재와 세계의 마주침이라는 관계속에서 형성되어 간다. 내부와 외부뿐아니라 개인과 사회도 서로 맞물려 있다. 동양의 자연지(知)와 의역학과 운명의 지도 역시 우리 몸의 오장(五臟 간, 폐, 비장, 심장, 신장) 육부(六腑 쓸개, 위, 대장, 소장, 방관, 삼초)와 관련이 깊다. 목은 금에, 금은 화에, 화는 수에, 수는 토에 진다. 그러므로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순서에 맞게 살아가야 양생(養生)할 수 있다.
가족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가족으로부터 상처받고 괴로워서 노숙하는 경우도 많다. 말과 생각을 바꾸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가족관계에서는 무척 힘들고 어렵다. 혈연끼리는 네트워크가 잘 안 된다. 그러므로 낮에 각자 자기 일을 하고 밤에 생사확인하고 건강한가를 살피면 족하다. 떨어져 있어야 이야기꺼리가 있다. 혈연을 떠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 돈을 벌고 있지만 시간 나는 대로 많이 걸어야 하고 지혜로우면서 재미있는 말을 많이 하며 새로운 생각이 강물처럼 매일매일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몸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순환된다.
그리스와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등 당시 알려진 세상의 90%를 정복한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더(Alexandros B.C 356 - B.C 323)은 모든 것을 손에 넣었지만 늘 마음이 허전하였다. 그래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당대의 유명한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 B.C 400?- B.C 323)를 초청하기로 하고 신하를 보냈다. “대왕이 여기 오지 않은 자유가 있듯이 나도 대왕의 초청에 응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며 거절했다. 그러자 대왕이 직접 찾아가 “당신이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 보시오.”고 말하자 “조금만 비켜 주시오. 당신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라고 했단다. 산속의 호랑이가 움직이면 모두가 무서워 벌벌 떨지만 영적 충만함이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의 주인으로 내가 산다면 어느 누구도 노예로 삼지 않는다. 삶의 주인은 나를 구하는 것이다. 배움은 지식이나 정보의 축적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타자들과 천지만물과 소통하는 것이다. 삶의 주인이란 내적 충동을 조율하면서 외적 억압에 맞서 싸우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공감되는 강연이었다. 삶의 주인답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한편 전주평생학습원에서 취미로 익힌 플롯연주단이 강연 시작전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수 있는 「미녀와 야수」, 「라이어킹」등 영화 삽입음악 7곡을 연주해 줘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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