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 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其在宗廟朝廷 便便言 唯謹爾
공자가 고향마을에서 정성스럽게 하시어 말에 능하지 못하는 것 같으셨다.
그 종묘와 조정에 계실 적에는 말을 잘 하시되 오직 삼가셨다.(1절)
周代에 5백 戶를 黨, 25黨을 鄕이라 함 恂 진실로 순, 정성 순 便 말 잘할 변
<家苑 註 2>
공자가 고향 마을에 계실 때의 모습을 그린 것이 향당편이다. 맹자가 “朝廷莫如爵 鄕黨莫如齒 補世長民莫如德(조정은 벼슬만한 것이 없고, 향당은 나이만한 것이 없으며,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데에는 德만한 것이 없다:공손추 하편 2장)”라고 하였듯이 농경사회에서는 유목사회와는 달리 연장자를 특별히 우대하였다.
위의 첫 문장은 공자가 고향마을의 어른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차렸음을 말하고 있다. 농촌 사회의 경우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바로 드러나게 되어 있는데다 진중한 얘기를 나눌 상황도 아니고 또한 그렇다고 마을 어른들 앞에서 함부로 나설 수 없다 보니 자연 말수가 적어 마치 어눌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반면에 정사를 하는 종묘와 조정에서는 의견개진을 분명히 하여 정확한 의사표현을 하되, 자기 주장만 내세운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설득하여 바른 방향으로 끌어내야 하므로 상황에 따라 신중하게 대했음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공자가 태묘(大廟) 일을 보실 적에 상급자에게 매사를 물어가며 의식을 치룬 것이나(팔일편 15장), 향당편 2절에서 5절에 나타난 조정에서의 행동거지는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또한 공자는 당시 제후들의 정치적 자문에 응하여 자세히 답변해 주면서도 (중용 20장 ‘哀公問政’, 논어옹야편 6장) 할 말은 하는 모습(논어 선진편 23장, 안연편 17-19장, 자로편 15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① 주자
恂恂은 信實之貌요 似不能言者는 謙卑遜順하여 不以賢知로 先人也라 鄕黨은 父兄宗族之所在라 故로 孔子居之에 其容貌辭氣 如此하시니라便便은 辯也라 宗廟는 禮法之所在요 朝廷은 政事之所出이니 言不可以不明辯이라 故로 必詳問而極言之로되 但謹而不放爾시니라 此一節은 記孔子 在鄕黨宗廟朝廷하실새 言貌之不同이라
순순(恂恂)은 미덥고 성실한 모양이오, 말을 잘 못하는 것 같음은 겸손하고 낮추고 공순하여, 어질고 앎으로써 다른 사람을 먼저 하지 않음이라. 향당(鄕黨)은 아버지 형제와 종족이 있는 곳이므로 공자가 거처하심에 그 용모와 말의 기운이 이와 같으심이라.변변(便便)은 분별함이라. 종묘는 예법이 있는 곳이고, 조정은 정사가 나오는 곳이니, 말을 분명하게 분별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반드시 자세히 묻고 할 말을 다 하시되 다만 삼가고 방자하지 아니하셨음이라. 이 한 절은 공자가 향당과 종묘와 조정에 계실 때에 말과 용모가 같지 않았음을 기록함이라.
출처
:
『논어
易解』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