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외시無畏施’라고 부르는 보시가 있다. ‘두려움 없는 마음을 줌’이란 뜻이지만, 불안이나 두려움을 덜어주고 기쁨이나 편안함을 주는 것을 뜻한다. 화난 사람 옆에 있으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공연히 불안하고 불편해진다. 말없이 ‘두려움’을 주고받은 셈이다. 반대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득 한 사람 옆에 있으면, 그 감응 또한 내게 전해져 나도 모르게 기쁘고 즐거워진다. 사람만이 그런 게 아니다. 언제나 주인을 보면 기뻐하며 달려드는 개는 우울한 기분을 어느새 덜어준다. 얼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가수의 노래에 감동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다면, 음악이나 예술이 준다는 생각 없이 우리에게 어떤 좋은 감동을 ‘준다’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쁨이나 분노의 감정과 무관하게, 자신의 신체는 이웃한 신체에 무언가를 준다. 신체가 일으키는 파동이 이웃한 신체에 전해지면, 어떤 기분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래서 주지 않으려 해도 무언가를 주게 된다. 어떤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게 아닌 데도, 아무 말없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 편안하고 기분 좋게 해주는 사람도 있다. 존재 그 자체가 말없는 선물이 되는 사람이다. 무외시란 존재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는 그런 보시다.
자신이 준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는 채, 누구에게 주었는지, 무얼 주었는지도 모르는 채, 무외시도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선물이 준다는 생각 없이 주는 선물이다.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선물이 될 수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절대적 선물이고 무주상보시일 것이다. 아, 모든 사람이 누구에게나 그럴 수 있다면!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선물 같은 존재임을 느끼지 못하고 나와 상관없는 낯선 존재로 여기며 지나치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저 푸른 하늘과 빛나는 태양 아래 반짝이는 건물과 산하대지가 모두 무주상보시라는 선물로 주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함을 느끼고 있지 못하고 있다니! 그러고 보면 선물은 항상 존재하지만, 받을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받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선물이란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능력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불교를 철학하다-이진경 지음> p104~107에서 문장을 몇 군데 빼고 보태고 해서 다시 쓰다.
첫댓글 저는 스님을 2번밖에 그것도 짧게밖에 못뵈었지만...스님은 인터넷에서 좋은 보시하시는 분 같아요.
절도있고 우아하고 품위있는 언어 표현을 본받고 싶어요.
공감합니다~^^
신기하게 저도 두 번 뵈었네요~^^
십여년 넘은 세월동안
많은 은혜를 받고 있지요
감사합니다~()
@여여 그러시군요. 반가워요.
스님과 인터넷으로 주로 만난 법우님들끼리 언제 모여서 스님 뵈러 가면 좋겠네요. 대중공양도 같이 가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