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13-18 (사는 법과 얻는 법)
성경본문 : 다니엘 3: 13-18
13. 느부갓네살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 오라 명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 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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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김춘섭 목사
총리를 지내신 어떤 분과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장로이기도 한 그분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특히 자녀들이 다 좋은 대학들을 나와서 유학하였고, 미국 여러 곳에 두루 흩어져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어만 감사였지 자랑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국가의 총리를 지내신 믿음 좋으신 분이 국가관이나 민족관이나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가치관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 성공하여 잘 살고 있어서 감사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물론 그분이 사회에 어떤 악을 행하였거나, 다른 공직자들처럼 부정에 관여되었던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국가를 위한 공직에 있었던 분이라면, 무언가 좀 더 높은 의식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1.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존경쟁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사는 법보다도 얻는 법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자랑합니다. 세상적인 성공을 거둔 것을 신앙적인 승리로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믿음생활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그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바로 주님의 고난을 상기하는 절기입니다. "나를 따르라" 하시며, 앞서 가신 주님의 삶의 길을 겸손히 따르는 자세를 배우는 절기입니다.
그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며 회개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성공'이 들어가는 국내에서 출판된 책을 살펴보니 1,658권이었습니다. 성공은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적인 신앙생활, 성공적인 기도생활, 성공적인 전도법 등 성공이 들어가는 신앙서적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공이라는 단어를 쓰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성경 전체에서도 '성공'이란 단어는 지혜를 예찬하는 말로 오직 한번 나올 뿐입니다.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전 10:10)."
성경은 성공하는 법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는 법을 말할 뿐입니다. 주님은 사는 법을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람들과 이기려 합니다. 남들보다 튀어나 보이고 싶어합니다. 머리 모양도 옷차림도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튀어나 보이려 합니다. 화학재료를 쓰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주 과도하게 물들입니다. 무언가 달라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의 헤어스타일과 저녁이 다릅니다. 패션도 다릅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튈 수 있을까가 관심입니다. 무언가 돋보여야 하고 나아가 이기는 그런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믿고 있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괜찮은 것인가? 쉼 없이 그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주님의 말씀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더해주시겠다고 하신 것이 우리가 원하는 성공이요 먼저 구하라는 것이 사실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는 법만 꾸준히 지켜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2. 그리 아니 하실 지라도
성경의 위인들이 다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들을 들 수 있습니다. 저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민족이었지만, 느부갓네살 왕의 인재등용 원칙에 따라 총명한 젊은이로서 선택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암울한 역사 속에서도 미래가 보장된 젊은이들로 의식주는 물론 세상적인 지위까지도 약속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법을 결코 흐트러뜨리지 않습니다. 음식에서부터 종교의식까지 전혀 이방 문화에 물들지 않습니다. 삶과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고수합니다. 황제 신상에게 절하지 않음으로 보장된 모든 미래를 잃을 위기를 당합니다. 왕도 안타까이 여겨 끝까지 기회를 줍니다. 극렬히 타는 풀무불 앞에서 왕은 다시 저들이 돌이킬 것을 권합니다. 그렇지만 저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 3:17).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더 귀중한 것은 다음 말씀에 있습니다. 계속되는 저들의 신앙고백이 그렇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8).
저들은 성공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오직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길은 바로 이런 길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하면 그 길을 지켜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법을 죽어도 놓지 않겠다고 단언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하나님도 우리의 성공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공이 관심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관심이어야 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것입니다. 높아지면 겸손하게 낮추고, 낮아지면 그런 대로 극복하고, 나아가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까지도 단호하게 선택하는 것입니다.
3. 사는 법과 얻는 법.
그런데 우리의 삶은 사는 법과 이기는 법이 서로 갈등을 일으킵니다. 사는 법을 따를 것인가, 이기는 법을 따를 것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직 사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법은 처참하리 만치,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입니다.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구태여 쓴다면 그렇게 살아가는 삶 자체가 성공인 것입니다. 의외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명한 기독교 학교인 거창고등학교의 강당에 졸업하는 학생들을 위해 <직업선택의 10계>라는 글이 써 있다고 하여, 인터넷에서 찾았습니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3대 교장이신 전영창 선생님의 기독교정신이 담긴 이 10계는, 이 계명을 지켜 살아간 졸업생들이 오히려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동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직 사는 법을 가르쳐 제대로 살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 과정을 중요시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공에 관심을 두어 사는 법에 양심이 마비된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이름 붙이기가 어색합니다.
일제 식민지 속에서 성공하는 법을 새기며 살아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민족을 억압하는 등 갖은 악랄한 방법을 통해서도 튀는 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사는 법을 더욱 중요시하면서 살아간 선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 것인지를 알아 꿋꿋이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삼일절 만세 운동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그렇게 물을 수 없습니다. 민족 자존심으로 마땅히 살아가야 할 법을 선포한 것입니다. 교회가 도화선이 되어 빨리 전국적으로 퍼질 수 가 있었는데, 1914년의 기독교인 수가 9만6천명이었으면서도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중에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는 것과 교회가 제일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들은 당시 크리스천들의 역사 의식과 사회참여가 얼마나 대단하였고, 저들의 삶의 자세가 얼마나 힘이 있었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공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룬 성공을 감사를 빙자하며 은근히 자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