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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나라
성경본문 : 잠언 21: 3
3.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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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 4-8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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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현재 전 세계에 몇 개국이나 있는지 아세요? 어떤 자료에는 지도상으로 237개국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자료에는 196개국이라고 합니다. 아마 정식으로 국가의 명칭을 가진 나라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UN 가입국은 192개국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 이렇게 많은 나라들이 있는데 이 나라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나라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나라는 아닙니다. 모르긴 해도 이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나라는 많이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기쁨과는 멀지도 모릅니다.
구약의 나라들을 보세요. 이스라엘 나라가 나뉘어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변방에 애굽, 앗수르. 바벨론, 바사, 에돔, 모압, 암몬, 헬라, 로마 등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나라도 완벽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하시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그리스도인이 위축되기 쉽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교회가 문을 닫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순교 후에 교회는 더 왕성했고, 그 성에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즐거움은 그리스도가 주신 신비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화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나아갔습니다.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것이 기쁨의 원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 명령을 수행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을 실천하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려고 했던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핍박이 시작되고 순교가 시작된 때에 그들에게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아니라 기쁨이 있었던 것입니다.
기뻐하지 못할 때 기뻐하는 것, 웃지 못 할 때 웃는 것, 감사치 못할 때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신비입니다.
빌리 선데이는 “신앙생활 가운데 전혀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당신의 기독교에 어딘가 구멍이 났음에 틀림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남모르는 기쁨이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쁨과 나의 기쁨이 일치하면 참 기쁨입니다. 참 행복입니다. 이것이 참 가치입니다. 여기에 참 인생의 의미가 있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에 보면 선한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합니다. 악한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정직은 악의 반대입니다. 정직은 곧 선한 것입니다. 정직한 영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거짓 영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거짓 영들이 가득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선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도 못합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왕들을 보세요. 솔로몬 왕이 죽은 후에 나라가 분열하여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됩니다. 북 이스라엘에는 19왕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선한 왕이 하나도 없습니다. 남 유다에는 20왕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8왕이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왕도 많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왕도 많지 않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지지 않고 인간의 뜻이나, 경제나, 무기에 의존하는 나라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나라로 전락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나라들은 믿음이 나라들입니다. 십자가가 국기인 나라들, 청교도 정신으로 세워진 미국은 하나님이 기뻐하셨지만 지금은 십자가도 청교도 신앙도 다 버린 것 같습니다. 이런 나라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듣기를 바랍니다.
첫째, 전도자의 말을 따르면 기쁘시게 합니다.
사도행전 8:6에는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고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의 말을 듣고, 표적을 보고, 그 말을 따랐습니다. 듣고, 보고,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과정입니다. 먼저 들어야 하고, 그 다음에 보아야 하고 그리고 따라야 온전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따르다’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세이콘’입니다. 이 단어는 미완료입니다. 미완료란 계속 따라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복음을 듣고, 보았으면 따라야 합니다. 여기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따르지 않으면 듣고 보는 것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복음을 듣기만 하고 보기만 하면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복음 듣기만 해도 듣지 않는 것 보다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보기만 해도 보지 않는 것보다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듣고 따르면 제일 기뻐하십니다.
마태복음 13:23에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고 합니다.
듣고 따르는 자가 결실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실해야 기뻐하십니다. 열매가 없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듯이 하나님이 슬퍼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가 그랬고, 마태가 그랬고,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제자들은 모두 다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면 기뻐하십니다. 따르는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세리 마태와 셀롯인 시몬은 다 함께 제자로 따랐습니다. 당시에 세리는 유대정치의 극우파입니다. 세리들은 로마의 권력에 앞잡이가 되어 유대인들의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열심당원인 셀롯인은 유대정치의 극좌파입니다. 가나안인들은 로마인보다 세리를 더 싫어했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시몬은 가난안인이었다고 합니다. 마태와 시몬은 서로 상극일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을 함께 따르는 동안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따르면 모든 견해의 차이가 좁아집니다.
전도자 빌립의 말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험하고 무겁지만 복된 일입니다. 우리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야 할 법을 따르는 것은 안전한 일입니다. 평안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따라야 할 것을 따르지 않으면 불행이고 불편한 일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도리를 따르기도 하고, 돈을 따르기도 하고, 쾌락을 따르기도 하고, 권력을 따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따를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진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신삼종지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려선 아비와 어미의 뜻을 함께 따르고, 시집가면 지아비를 가르쳐서 평등한 가정을 만들며,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에 연연하지 말며 나의 길을 간다”로 ‘삼종지도’가 바뀌었습니다. 무엇을 따르느냐 하는 것은 도리이며, 인격이며, 신앙인에게는 신앙의 척도입니다. 주님을 따라야 거기에 행복이 있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도리입니다.
‘따르는 자 없는 리더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르는 자의 도리를 요즘 말로 ‘팔로워십’이라고 합니다. 팔로워십은 중요합니다. 리더가 누구든 따르는 사람들은 세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헌신적인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단계가 가장 유능한 추종자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리더와 대의에 헌신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헌신적으로 따르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따르면 좋아합니다. 성경에 보시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따른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좋아하셨을 것입니다. 그들을 통하여 기쁨을 누리셨을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0:27에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양이라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염소는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목자의 음성을 알아야 양입니다. 양이라면 모름지기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목자가 양을 기뻐합니다.
찬송가에도 참 좋은 가사가 있습니다.
“누가 주를 따라 섬기려는가,
누가 죄를 떠나 주만 따를까
누가 주를 섬겨 남을 구할까
누가 주의 뒤를 따라 가려나.
부르심을 받아 주의 은혜로
주를 따라가네 주만 따르네”.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고 고백할 때에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기뻐하실 것입니다.
둘째, 귀신이 나가고 병이 나으면 기쁘시게 합니다.
사도행전 8:7에는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라고 합니다. 귀신 들리고, 병이 들고, 아픈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이 나가고, 낫게 될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빌립이 갔던 사마리아는 귀신이 나가고, 환자들이 치유되고, 병이 낫고, 표적이 있어 그 성에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귀신이 나가고 병이 나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사람이 귀신 들리고 병이 드는 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마귀의 권세 때문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고, 병이 나은 것은 마귀를 이겼다는 뜻입니다. 마귀를 이겼으니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 왜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까? 마귀의 권세인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으면 왜 하나님이 기뻐하십니까? 마귀의 권세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얽히고설킨 인간관계가 풀리고 서로 화평하고 화해하면 왜 하나님이 기뻐하십니까? 마귀의 권세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인간사의 모든 문제가 죄로 말미암아 들어왔고, 마귀의 세력이므로 이런 모든 매듭이 풀어지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마태복음 11:5에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그랬습니다. 이 말은 “당신이 메시야입니까?”라는 말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모든 병든 것, 인간을 괴롭히는 것, 나쁜 것을 다 고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오심은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귀신이 나가고, 병이 낫고, 죽은 자가 살고, 가난한 자가 부요해지는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고치십니다. 병들고, 신음하고, 고통 당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길을 지나가실 때에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도우소서”, “내 딸을 고쳐 주소서”, “내 아들을 살려주소서”, “할 수 있거든 내 아들을 고쳐주소서”라고 하는 말은 한 번도 주님은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민망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라고 하셔서 고쳐주시고 낫게 하실 마음을 본성적으로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처럼 낫게 되고 살게 될 때에 주님도 기뻐하십니다.
귀신이 나가면 사람이 온전해집니다. 예수님이 만났던 군대귀신 들린 자를 보세요. “귀신이 나가고 옷을 입고 온전하여지니라”고 합니다. 귀신이 나가고, 병이 나아야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병들지 않은 원래 상태로 돌려놓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고치시는 치유기적에는 ‘고치다’라는 말을 헬라어로 두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한 단어는 ‘테라퓨오’입니다. 이 단어는 ‘고치다’는 말입니다. 영어에서 ‘테라피’라는 말의 어원입니다. 다른 한 단어는 ‘이아오마이’입니다. 이 단어는 ‘돌려놓다’ 혹은 ‘회복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치유에는 ‘테라퓨오’보다 ‘이아오마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병들지 않은 온전한 원래 상태로 돌려놓으셨다는 뜻입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은 원래 사도들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마태복음 10:1에는 열두 사도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후에는 이 권능은 믿는 모든 자에게 약속된 능력입니다. 마가복음 16:17에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라고 합니다. 이 능력을 우리 모두가 받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심각한 병에 걸려 있습니다.
마치 중증환자와 같습니다. 범죄와 부조리와 빈부차이는 도를 넘었습니다. 사건 수를 시간으로 나눈 수치인 범죄시간도 계속 빨라지고 있습니다. 작년의 범죄시간을 보면 2005년보다 1.5초 앞당겨져 있습니다. 절도는 2분 31초마다 발생합니다. 성폭행은 1시간마다 발생합니다. 살인은 7시간 54분마다 발생합니다. 각종 범죄는 16.9초마다 발생합니다. 금요일과 화요일이 범죄가 가장 많고, 서울에서는 서울 강남3구라고 하는 강남, 서초, 송파가 범죄가 제일 많습니다. 성폭행은 강남구가 제일 많습니다. 살인은 구로구와 영등포구가 많습니다. 절도는 강남구와 광진구가 많습니다. 폭력은 강남구가 제일 많습니다. 사기도 강남구가 제일 많습니다. 방화는 동대문구가 제일 많습니다. 재물이 많은 곳에 범죄도 많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병든 도시의 현실입니다.
요즘 애들 말로 ‘빵셔틀’, ‘담배셔틀’, ‘시험셔틀’, ‘체육복셔틀’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신종학교폭력입니다. 만만한 아이들에게 빵 시름을 시키고,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시험 답안지 심부를 시키고, 체육복 심부름을 시키는 용어입니다. 이제는 아이들 용어도 발달하여 외래어를 사용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또는 대인기피 등 다양한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파괴된 인격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나라가 얼마나 심각한 병에 걸려 있는지 아시겠지요?
우리가 잘 아는 복음성가입니다.
“이 땅에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정말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고쳐주셔야 합니다. 이 땅을 속히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니까 고침을 받아야 기뻐하십니다.
역대하 7:14에는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치시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정신병동에 두 환자가 함께 방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환자가 발작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다른 환자가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나 쟤 때문에 미치겠어요”. 모두가 서로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상대방 때문에 미치겠답니다. 여와 야가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상대방 때문에 미치겠답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상대방 때문에 미치겠답니다. 빈부가 서로 갈등을 가지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모든 것을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피와 물이 어느 쪽으로 흐릅니까? 농도가 진한 것이 약한 쪽으로 흐릅니다. 우리가 강하면 세상의 더러움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지만 우리가 약하면 세상의 온갖 악이 죄다 들어와 우리까지 오염시킵니다. 성탄의 동방박사 이야기 가운데 제4의 박사 알타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방에서 함께 출발했지만 오는 도중 아프고 신음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에 와서 그 사람들을 간호하고 돌보다가 세 사람이 떠나도록 돌보는 일을 놓지 못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가서 만나기도 하지만 그분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회를 고쳐주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입니다.
결론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의 박상철교수는 장수 원인으로 유전적 요인보다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규칙적인 생활방식, 올바른 식습관 등 후천적 요인이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그는 백세 건강의 권위자입니다. 건강한 노년생활을 위한 다섯 가지 생활 태도를 말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적응해야 한다. 틀림이 없어야 한다, 느껴야 한다, 생각해야 한다고 권합니다. 개인이나 사회나 어떤 조직이나 국가나 다 이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복음 전파에 빨라야 합니다. 병 고침이 있어야 합니다.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건강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미신을 타파해야 합니다. 영적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으로 회귀해야 합니다. 사회적 병폐를 치유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재무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복음전파와 치유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펴온 설교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