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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유혹과 쉬운 유혹
성경본문 : 느헤미야 6: 1-9
임현수 목사
오늘 본문에는 성벽 완성 바로 직전에 느헤미야에게 주어진 시련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시련을 느헤미야가 어떻게 이겨냅니까? 우리는 느헤미야가 시련을 이겨내는 모습을 통해서 시련 중에 가져야 할 몇 가지 자세를 교훈 받게 됩니다.
시련을 이겨내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1. 무시할 것은 무시(無視)해야합니다.
힘든 유혹과 쉬운 유혹이라는 제목을 단 것은 시험이나 시련이나 유혹이나 급수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의 첫 번째 부분에 나오는 유혹과 시련은 별 것 아니지만 그러나 그래도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사탄이 유혹하는 미묘한 시기를 조심해야 합니다.
성벽중건이 거의 마칠 무렵에 사탄은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이제 성문 문짝만 달면 성벽 건축이 완성됩니다.
바로 그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충성이란 죽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뭐든지 끝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배우는 중요한 교훈도 후반 마지막 5분에 결정적인 골들이 터졌다는 사실 입니다. 호주도 후반전 마지막 8분 사이에 3골을 몰아 부치며 일본을 침몰시켰습니다. 잉글랜드도 후반 마지막 5분전에 두골을 터트렸습니다. 한국도 토고에게 지다가 후반전에 두골이 터졌습니다. 멕시코도 후반전에 몸이 풀리면서 3골을 터트려 3:0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지난 대회 우승팀인 브라질도 후반전에 호나우드가 2골을 성공 시키므로 승리의 영광을 안게 된 것 입니다. 월드컵 준비전에서 포르투갈이 전반전에서는 룩셈부르크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후반전에서 3골이 터지면서 승리를 확정지었습니다.
성경은 죽을 때 까지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끝까지 라는 말 입니다. 충성은 끝까지 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계 2:10)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2)
끝까지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정점이라고 생각 하는 시점에서 예기치 못하는 시험과 유혹이 찾아 오기 때문 입니다.
밧세바가 다윗의 눈에 띤 때는 패배를 모르던 전성기였습니다.
요나가 자기연민에 빠진 때는 니느웨를 휩쓸어버린 큰 부흥 직후 였습니다.
요셉 이 유혹을 받을 때도 보디발의 휘하에서 마음대로 그 집을 운영하게 된 직후입니다. 주인이 요셉을 완전히 신뢰하고 모든 것을 맡긴 직후에 유혹의 손길이 찾아온 것 입니다.
그래서 시련을 극복하는 것보다 성공을 관리하는 것이 언제나 더 힘든 것 입니다.
엘리야 가 극심한 좌절의 위기를 겪은 때도 갈멜산에서의 850대 1의 극적인 승리를 거둔 직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장 큰 민족의 숙원이었던, 가나안의 가장 견고한 성 이었던 제 1요새지 여리고 성을 정복한 후에 아이 성이라는 작은 성 앞에서 무참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사탄의 유혹은 이렇게 승리와 성공 직후에 찾아 오는 것 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와 같이 사탄의 미묘한 전략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탄은 폭력으로 되지 않으면 유화적 <宥和的>인 술책을 사용합니다.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2)
오노평지는 아름다운 골짜기로서, 여기에서 서로 만나자는 것은 상당히 우호적인 방문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느헤미야를 해치려는 호도책(糊塗策)이었습니다. 항상 겉으로 나타난 것보다 속 마음이 중요합니다. 속으로는 느헤미야를 죽일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런 제안의 배후에 있는 적들의 저의를 분별하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여기서 느헤미야의 영적인 분별력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적들은 네 번씩 이나 거듭해서 줄기차게 유혹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한가지 일에 집중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였습니다. (빌 3:13-14)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하매z' (3)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를 정지하게 하려는 것이 적들의 목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탄은 언제나 우리가 쓸데없는 일에 시달리게 해서 힘을 빼게 합니다. 어찌해서든 사역의 현장에서 우리를 떠나게 함으로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이 진척 되지 못하게 하는 것-그것이 사단의 핵심적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에 대한 전략인 것을 아십니까? 목자의 자리, 교사의
자리, 섬김의 자리를 떠나고 싶은 유혹을 받으신 일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저와 여러분을 향한 사단의 공작일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런 사탄의 전략에 넘어가지않고 오직 한 가지 일에 집중합니다. 우선순위가 분명했다는 말 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4절에 보시면.."저희가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z' (4)
느헤미야가 암살계획을 눈치 채고 협상을 거부하자 대적들은 4번이나 계속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마귀는 한번에 물러가지 않습니다.
“마귀야! 물러가라!”고 해서 단번에 물러가는 줄 오해하고 방심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마귀가 물러갔다가 일곱 귀신을 데리고 다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처럼 마귀의 공격은 끈질깁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섯번 째 공격을 시도합니다.
유화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자 이제는 악성(惡性) 루머를 퍼뜨리기 시작합니다.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내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5-6)
대적들은 자기들의 계략이 안 통하니까 느헤미야가 황제를 모반하고 유다 왕이 되려고 성을 건축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처럼 사단이 교회를 무너뜨리고, 사명을 방해하는데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도구는 바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쁜 말은 되도록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언제든지 상상력을 동원해서 어마어마한 거짓말을 지어냅니다.
그리고 이런 소문의 특징은 소문의 출처가 발표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그냥 막연한 정보입니다. 그리고 그 정보가 정확한 출처가 있고 사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내가 그 말을 전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형제들에게 유익이 되는지를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청교도들은 그래서 언제나 자기의 언어생활을 훈련했습니다.
소문은 언제나 과장되고 부정확합니다.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 이것도 자기의 상상력 일 뿐 입니다. 소문은 개인적인 상처와 오해를 낳고, 불신풍조를 조장합니다. 부주의한 한 사람의 혀 때문에 일평생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혀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영적 침체기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결정적인 특징을 보면 자신이 마귀의 도구가 되는 줄도 모르고 입의 실수를 달고 다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입의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 실수는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더 실패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객관적으로 볼 때 여자분들이 남자 보다 배나 말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여성은 하루에 평균 2만개의 단어를 사용하고 남자는 7천 개의 단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거의 3배 가깝게 말을 많이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은혜를 쏟는 것도 묘합니다. 남자들은 오른쪽 귀로 듣고 왼 쪽 귀로 흘린다고 하는데 여자들은 오른쪽 귀로 듣고 모자라서 왼쪽 귀로도 듣고 입으로 쏟는다고 합니다.
말이라는게 참 묘합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시골에 근무를 하고 있던 젊은이 둘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총각이고 한 사람은 결혼을 한 모양입니다.
결혼한 젊은이의 부인이 아이를 낳게 되어서 시골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총각인 친구가 축하한다고 전화를 했지요.
"뭘 좀 사 갈까?" 그랬더니
" 약국에 들러서 압축기 하나 사오라"고 합니다.
퇴근 길에 약국에 들어가서 압축기 달라고 그랬더니 압축기는 철물점에 있다고 그래요.
다시 철물점에 들어가서 압축기 달라고 그랬더니 화장실이 막힌 줄 알고 새까맣고 사발처럼 생겼고 막대기가 달려 있는 압축기를 주더래요.
그걸 신문지에 싸들고 가면서 생각하길 "시골 병원이라 화장실이 막혔는데 손님보고 뚫으라고 하나" 그러면서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한쪽 모퉁이에 툭 던져놓고 안부를 묻고 있는데 친구가 "압축기 사왔냐"고 묻습니다.
"사왔다"고 대답하고 신문지에 둘둘 만 것을 풀어 보니 기절초풍할 노릇입니다.
부인이 젖이 불어서 남편에게 시내 가서 유착기 하나 사오라고 그랬는데 남편이 유착기가 뭔지 모르니까 자기 친구에게 압축기 사오라고 한 것입니다.
이 새까맣고 사발처럼 생긴 압축기를 손에 들고는 한심해서 친구가 "야 이놈아 내 마누라가 공룡이냐 이걸 가지고 젖을 짜게!" 불은 젖 짜려고 하다가 하수구 뚫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단어 하나 바꾸고 나면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게 말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정말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에베소서 4장 29절에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 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씀합니다. 잠언 6:16~19절, 여호와께서 미워하는 것 6~7가지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혀와 관계된 것이 3가지나 됩니다.
느헤미야가 소문에 대해서 보여준 모본은 무엇입니까? 사실무근의 소문은 무시해 버리고, 중상모략은 직접 대결하며, 상처는 하나님께 가져갔습니다.
“너의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zzzz' (7-9)
가치도 없고 쓸데 없는 소문에 대해서는 무시하면 되는 것이지 변명하고 해명하는 데 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 입니다.
치명적인 소문을 퍼뜨려도 보고 공개적인 중상 모략도 해보고 죽이려는 음모도 꾸미고.. 그래도 안되니까 이제는 종교적인 방법까지 동원해서 느헤미야를 시험합니다.
이 단계는 좀 힘든 시험의 단계였지만 결론적으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시험과 유혹을 극복 하는 것을 보게 되니다.
2. 순종은 기적을 낳습니다 느 6:10-19
이 유혹은 얼마나 그럴 듯 해 보입니까!
선지자가 성전에 모여 기도하자고 하는데 느헤미야가 거절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뇌물을 받고 일을 꾸몄음을 알아내었습니다.
분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느헤미야가 하나님 말씀에 정통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51 “장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장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찌며”
민수기 18:7 “너와 네 아들들은 단과 장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일찌니라”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말씀을 몰라서 성전에 들어가 피했다면 느헤미야는 합법적으로 율법적으로 죽임 당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지요. 그래서…
최후의 유혹은 종교적인 유혹입니다.
1) 가장 어려운 시험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 오는 경우입니다.
사람은 일단 가까운 사람을 믿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을 통해 시험과 유혹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종교적인 접근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를 합해 놓은 작품이 본문의 내용 입니다.
가까운 친구 그리고 교회 다니는 분이라면 훨씬 믿기가 쉬울 것 입니다. 그래서..
2) 가장 분별하기 힘든 시험은 종교적인 접근을 통해 오는 경우입니다.
3) 선지자요 친구였던 스마야는 뇌물을 받고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유혹을 던졌습니다.
느 6:10 z'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xz'
친구가 하도 안보여서 심방을 갔더니 그 친구가 말합니다. 야, 적들이 너를 죽일지도 몰라 그러니 빨리 성전에 가서 숨는 것이 어떻겠니? 이런 제안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전혀 악의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기억 하실 것이 있습니다. 사탄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후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천사 같은 모습, 아름다운 모습, 달콤한 유혹.. 이런 경우에 우리는 분별력을 잃어 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4) 십중팔구 넘어지기 쉬운 유혹 앞에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사탄의 궤계를 분별하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느 6:12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바가 아니라..... "
말씀드린 것처럼 생각해 보니까 성소나 지성소는 제사장이나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 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의하면 다른 사람이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가면 다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친구 스마야의 권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라도 네 목숨을 건지라고 부추키는 것 입 니다.
지금 사느냐? 죽느냐? 하는 판인데 그 율법 조항이 뭐가 중요한가? 이렇게 유혹하는 선지자요 친구인 스마야의 유혹 앞에서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 합니다.
느 6:11 z'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zz'
그러므로
5) 느헤미야의 완전한 승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 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자기가 있어야 할 곳과 있지 말아야 할 곳을 알았고 말씀을 어겨 가면서 까지 자기의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경적으로 이성적으로 바르게 판단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신비주의 같은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가까운 이웃과 친구들이 이렇게 타락 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뇌물 때문 입니다. 돈이 사람을 이렇게 타락 시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뇌물을 조심해야 합니다.
☛1) 뇌물은 스마야를 거짓선지자로 타락 시켰습니다.
선지자도 뇌물 앞에서는 얼마든지 질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뇌물의 막강한 파워를 느낍니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부정 축재와 부정 부패는 모두 뇌물 때문에 생기는 것 입니다. 재벌들이 뇌물 가지고 권력을 남용하는 일들이 비일 비재합니다. 정경 유착의 고리를 끊을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비극입니다.
심지어 뇌물 받고 재판 까지도 굽게 할 수가 있는 것 입니다.
느 6:13 "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출 23: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성경은 뇌물이 우리의 분별력을 상실케 한다고 말씀합니다.
뇌물이 사람도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 드린대로 싱가폴의 이광요나 베트남의 호치민 그리고 태국의 잠롱 중국의 주은래 대만의 장개석 같은 분들이 존경을 받는 것은 그들의 청렴 결백한 인격 때문 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독재자 였지만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은 그분이 가장 검소하게 살았다고 하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대 대통령의 비극은 죄다 뇌물 수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혹은 종교적인 이름으로도 얼마든지 찾아 올 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종교의 가면을 쓴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 적 그리스도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 사이비종교와 거짓선지자들의 배후에는 언제나 뇌물이라는 올무가 있습니다.
발람 선지자는 발락에게서 뇌물을 받고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롯 유다도 은30냥을 받고 자기의 스승을 팔아 넘길 정도로 뇌물에 약한 인물입니다. 이런 배신은 지금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통일교의 포교 방법도 죄다 돈 입니다. 성지 순례 시켜준다. 미국 세미나에 참석시켜준다는 등 여기에 말려 들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뇌물로 김일성까지 매수해서 평양 한 복판에 통일교 교회당을 세웠습니다.
*발람 선지자와 발락의 뇌물(민22:17-37) *가룟유다(마26:15) *총회장 선거 *통일교의 뇌물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했던 이런 느헤미야의 순종은 기적이라는 하나님의 은총을 가져왔습니다.
3. 순종은 승리를 약속 합니다
1) 느헤미야는 기도 했습니다. 순종의 사람은 매사에 철저하게 기도합니다.
(14).."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왕정시대에는 가장 무서운 것이 모략 입니다. 아무리 느헤미야가 결백해도 왕이 오해하면 그것으로 끝장이 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반역 얘기가 나오면 힘이 빠지고 의욕이 상실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본문에 보면 계속 기도합니다.
느 6:9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느 6: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하나님! 제 손을 힘 있게 하소서!” 주님 저들의 소위를 기억 하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2) 성벽중건의 역사는 52일만에 끝났습니다.
15절/ 성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는 큰 그릇은 오래 만들어 진다는 대기만성(大器晩成) 이라는 말을 진리 처럼 믿고 있지만 얼마든지 예외도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순종하고 나아가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도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 입니다. 우리 교회 성전 건축의 역사에도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면 짧은 시간 안에 큰 역사가 일어 날 줄을 믿습니다.
이제…
3) 느헤미야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16절/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이방 사람들도 다 들었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 입니다. 신명기 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가나안까지 가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실제로는 한 달도 안 걸리는데 왜 40년이 걸렸 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과 불순종과 반항과 원망 때문 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았던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 한 사람의 설교를 듣고도 하루에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 왔습니다. 우리는 한 주에 10가정만 등록해도 놀라는데… 주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한 때 우리 한국 교회가 주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하고 순종하여 열심히 전도하였을 때 1년에 100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와서 주체 할 수 없을 정도의 부흥을 일군 적도 있습니다. 순종의 결과 부흥이 찾아 온 것 입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오직 기도에 매달리며 우리들의 할 일을 다했더니 불과 52 일만에 성벽 재건을 완성 할 수 있었습니다.
오병이어로 만 명을 먹인 기적도 어린아이의 작은 순종에서 시작 된 것 입니다.
문둥병자 나아만이 문둥병에서 깨끗하게 나음을 입은 것도 한 마디로 순종을 결단했던 순간에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출애급 40년(불순종) 사도행전 교회 (행2장) 민족복음화(순종) 성벽재건(순종) 오병이어(순종) 병고침 (순종-나아만)
인도의 켈컬타에서 빈민 구제 사역을 시작 하면서 주변의 반대와 박해가 시작 되었을 때 그녀는 오직 한 가지를 생각 했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한 방향 밖에는 바라 볼 수가 없습니다. 그는 뒤를 돌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계획을 가질 수가 없답니다.”
그렇습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믿으신다면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여러분과 저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계획 때문에 사는 자가 아니라 그분의 맡기신 일을 위해 사셔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한 방향밖에는 바라 볼 수가 없는 자입니다. 행여나 뒤를 돌아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만 소명의 십자가를 질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소명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