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거룩과 자비의 규정들 (찬 426)
1. 23장은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관련된 명령들이 ‘예배자 규정’(1~8)과 군사 원정에 관한 규정들(9~14)에 연관되어 나오고 15절 이후의 말씀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한 규정들이다.
2.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라고 명하신다(1~8).
누가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가? 언약 공동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격을 규정해주는 용어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점에서 구별된 사람들이었고 오늘날의 교회가 그렇다.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요, 언약 공동체다. 언약 공동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구약에서는 제사)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정결한 예배자가 되어야 했다. 이것이 부르심의 근본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제외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언약공동체가 그 거룩함을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제외되는 자들의 목록은, 첫째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다(1). 이들은 거세당한 자들인데, 가나안 종교가 남자를 거세하는 부패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이런 의식이 허용되지 않았다. 둘째는 사생자다(2). 사생자는 특별히 가나안 신전에 있는 창기들이 음란한 의식을 통해서 낳게 된 자식들을 일컫는다. 17~18절에서 언급한 창기나 남창(남자 동성애 창기)들에 대한 언급도 이와 관련된 부분이다. 셋째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이다(3~6). 암몬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올 때 영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모압은 발람을 불러 저주를 하려고 하였으며 바알브올의 음행 사건으로 이스라엘을 거의 무너지게 하였기 때문에, 영원히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다고 선언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저주를 선과 축복으로 바꾸셨다(5). 넷째는 에돔 사람과 애굽 사람이다(7~8). 에돔은 조상 이스라엘(야곱)의 형제이기에 그리고 애굽은 전에 이스라엘이 그 땅에 객이 되었었기 때문에 미워하지 말라고 하시나, 그들도 삼대까지는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선언하신다.
3. 이어서 군사 원정에 관련된 규정들이 나온다(9~14).
이 규정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관련된 규정들이다. 원리는 하나님의 군대에 하나님의 임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운다. 그러므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요, 거룩함이었다. 그들의 사적인 영역의 모든 행위는 다 거룩함과 하나님의 임재에 의해서 판단되고 조절되어야 했다.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14)라는 말이 그것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구체적인 적용 사항들이 있다. 첫째 개인 위생의 문제다(9~11). 몽정과 관련된 규정이 언급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피해야 할 것으로 간주되었다. 둘째로 공중 위생의 문제다(12~14). 오물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공중 보건의 차원에서 질병이 전체에 퍼질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규정을 주셨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신학적 이유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늘 기억하고 그들 중에 있는 모든 더러움의 요소들을 다루어야만 했다.
4. 이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기초한 추가적 규정들이 나온다(15~25).
첫째는 주인을 피하여 도망친 종들을 대하는 태도다(15~16). 이런 종이 만일 내게 피신해오면 그를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지 않고 성읍 중 원하는 곳을 택하게 하여 그와 함께 살며 그를 압제하지 않고 보호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이방인 종을 가리키는 말씀인데 주인을 피하여 도망한 자들을 향한 이런 온정주의적 접근은 오늘날 난민에 대한 문제나 불법체류자의 신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적인 태도가 어떠해야 하며 기독교적 방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사실상 정치적 난민들에 대한 오늘날의 법규들의 기초가 된 말씀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을 이용하지 말고 그들을 보호하며 그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둘째로 예배와 돈의 관계에 관한 말씀이다(17~18). 이스라엘의 예배는 가나안의 타락하고 성적 방종으로 채색된 예배와는 구별되어야 했다. 또 비정상적인 성적 행위들을 통해서 벌어들인 수입은 하나님께 바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돈을 버는 방식은 중요하다. 돈을 버는 방법과 과정이 모두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은 이자 놀이를 금하신다(19~20). 형제(동포)에게 돈을 빌려줄 경우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은 형제의 불행을 자신의 이익의 기회로 삼지 말 것과 형제가 원금보다 불어나는 이자로 말미암아 더욱 불행해지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보여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마음과 태도로 서로를 대하고 살아가야한다.
넷째로 서원을 지키라고 하신다(21~23).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고 책임지고 성취하시는 분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신자가 언어 생활에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는 관대하고 후한 나눔의 삶을 요구하신다(24~25). 가난한 사람들은 포도원이나 들에서 그 소산을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지고 나가는 것은 도둑질로 간주되었다. 손으로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은 괜찮지만 본격적으로 추수하듯이 낫으로 베는 행위는 금지되었다. 이런 제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삶을 통해서 드러내라는 하나님의 요구였다.
5.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함이다.
우리의 삶에서 모든 말과 행위가 아무리 사적인 것이고 작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혜가 풍성하고 관대하게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나타나야 한다. 이것은 은혜를 받은 사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자연적인 특징이다. 우리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떻게 그런 성품이 드러나는가?
6.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삶의 모든 태도에서 저희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게 하사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를 원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함 안에서 살게 하시고, 저희의 주변에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관대함과 자비하심을 드러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