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 중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주에 관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우주가 이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 세계의 여러 가지
측면이 몇 가지 간단한 법칙이나 수학적 기술로 표현 가능하지만,
정작 우리는 왜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보다 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창조적인 정신의 순전한 창작에서
솟아나온 수학적 개념들이 물리세계를 기술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적정확한 도구임이 밝혀지는 순간일 것이다.
20세기의 저명한 물리학자인 유진 위그너는 이런 현상을
"자연과학에서 차지하는 수학의 터무니없을 만큼 뛰어난 효율성"
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원뿔곡선 이론일 것이다.
원뿔 곡선이란 타원, 포물선, 쌍곡선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 곡선은 그 후 약 2천년이 지나서 케플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들의 공전궤도가 타원형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과학 연구에 이용되지 못했다.
뉴턴은 케플러의 발견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서 태양계를 가로지르는
혜성과 그 밖의 천체들의 궤도까지 포괄시켰다.
그런 천체들의 궤도는 타원, 포물선, 또는 쌍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뉴턴은 지구의 형태 자체가 구가 아니라 타원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고대에 발견된 도형 중에 과학 연구에서 제자리를 찾기까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 또하나 있다.
이번에는 화학 분야에서였다.
1985년에 해롤드 크로토와 리차드 스몰리는 공동 연구를 통해 탄소의
새로운 분자구조를 발견했다.
그 구조에서 60개의 탄소 원자들이 하나의 분자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처음에 이 분자구조는 엄청난 수수께끼로 받아들여졌다.
나중에 그 구조가 기원전 3세기에 아르키메데스에 의해 기술된
형태임이 밝혀졌다.
그 도형은 6각형과 5각형이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형상으로,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축구공의 패턴과 같은 모습이었다.
벅민스터 풀러라는 사람이 지오데식 돔을 건설하는데 같은 도형을
이용했기 때문에, 크로토와 스몰리는 자신들이 발견한 새로운 분자구조에
'벅민스터풀러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명칭은 너무 길어서 사람들은 재치있게 '버키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최근 이 분자구조를 실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휘어진 공간에서 리만의 초기에 이르는 수학적 구조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미 그 구조가 우리 우주를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상당한 중요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세기 이후에 주로 형성된 수학적 상상에 의한 최근의 창조물들은
아직 현대 과학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확실히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연구들은 또한 머지않은 미래에 그 중요성이 입증될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수학적 구조가 창조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핵심적인
과정이 있다면, 그것은 추상이라는 과정일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중요한 보기가 '수'라는 개념일 것이다.
수 자체는 자연에서 생겨난 개념이 아니다.
사과와 오렌지를 합할 수는 없지만, 사과의 숫자와 오렌지의 숫자를
더해서 과일의 전체 개수를 셈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게다가 덧셈 규칙은 보편적이며, 숫자가 원래 가리키고 있는
특정한 물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독자적인 실체인 것이다.
구체적인 사물을 나타내는 수에서 추상적인 수로의 이행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아직도 일본어와 같은 특정 언어에서 물건에 따라 붙이는
단위가 다르다는 사실을 통해 충분히 입증된다.
(일본어나 한국어에서는 동물일 경우 '마리', 집은 '채' 옷은 '벌' 등 지칭하는
대상에 따라 수의 단위가 달라진다.)
추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추상은 보편성이라는 힘을 가지며, 단일한 규칙이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상황에 적용될 수 있게 해준다.
3 곱하기 5가 15라는 사실은 5달러짜리 극장표를 3장 사는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가로 세로가 3미터와 5미터인 테이블을 칠하기 위해
면적을 구할 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런 산술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특정 물체들이 뒤섞여 있는
혼란속에서 수라는 개념을 추출해낸 천재들의 뛰어난 업적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추상이 우리에게 주는 두번째 이득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명료함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유클리드의 저술에서 점과 선이라는 개념은 그 개념들이 추출된
실생활의 점과 선들보다 훨씬 명료하고 간단한 규칙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혼돈을 일으키기 쉬운 것은 이렇듯 간단한 규칙들을
추상에 적용해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을 다시 원래의 실제 사물에 적용시키려
할 때 타당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위그너의 수학의 불가사의한 유효성이라는 말을 통해 암시된
이 두드러진 사실은 그런 결론들이 거의 모든 경우에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추상으로 얻을 수 있는 세번째 중요한 이익은 그것이 우리의
상상력에 채워진 고삐를 풀어주어 우리가 실재의 새로운 변형, 또는
그 대안을 고안해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그 변형은 실세계에서 유사한 모형을 찾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수는 수천년 전부터 음수라는 개념이 가설적으로 제기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음수라는 개념에 대한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음수는 일반적인 수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추상이기 때문이었다.
5라는 숫자는 물체나 단위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5를 수라고 부른다면, 그것이 구체적인 대상을 자칭하지 않는 한,
수라는 구조를 한 단계 더 진전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음수를 받아들이고 사용하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사람들이 음수의 실용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다.
수나 유클리드 기하학처럼 실세계에서 직접적으로 추출된 추상에
기초한 수학의 일부가 실세계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적용 할 수 있을 뿐아니라
매우 유용한 도구라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위그너가 수학이 갖는 불가사의한 효용성이라는 말 속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추상이라는 탑 위에 다시 추상이 쌓여 있는 가장 난해한 수학의 영역에 적용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음수라는 개념이 점차 수용되기 시작하자 그보다 훨씬 더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그것은 곱이 음수인 수였다. 곱이 음수가 된다는 것은 산술의 기본 규칙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죽림의 향기 상화 ...
첫댓글 늘 대단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