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별곡] 안성 3편,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안성 도심의 매력
역사 도시 경주, 전주 못지않네... 안성의 재발견
[경기 별곡] 안성 3편,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안성 도심의 매력
www.ohmynews.com
유럽의 도시를 걸어갈 때마다 항상 부러운 점이 하나 있다.
중세시대의 시가지, 아름다운 건물들을 살필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굳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걸어서 웬만한 명소들을 둘러보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항상 부러웠다.
우리나라 도시들은 70년대 산업화가 계기가 되어 급속도로 팽창했기에 100여 년 전의 자취도 좀처럼 찾기 힘들다.
경주, 전주 등 소수의 도시들을 제외하면 주요 명소가 시 외곽에 자리해 명소에서 그 도시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어렵다.
하지만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던 안성 시내에서 뜻밖의 수확을 거두게 되었다.
차분한 느낌을 주는 도심을 기준으로 다양한 볼거리가 산재해 있었다. 하루 정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걸으면
예스러운 분위기는 물론 불교, 천주교, 한옥 그리고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맛집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숨 쉴 틈이 없는 경주, 전주 못지않게 역사 도시로서의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안성천을 중심으로 안성 1, 2, 3동으로 나누어져 있는 안성의 도심은 현재 스타필드를 비롯한 각종 쇼핑몰이 들어와 있는
공도읍에 조금은 밀리는 기세다. 하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안성의 중심지 역할을 변함없이 맡아오고 있다.
과거에는 전주, 대구와 함께 조선의 상권을 주름잡던 도시였건만 지금은 경기도에서 꽤나 한적한 도시다.
이런 곳에 무슨 볼거리가 있을까 의문을 가진 독자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안성 도심의 매력을 함께 찾으러 떠나보도록 하자.
크지 않은 안성 시내에서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 고민이라면 일단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국밥을 먼저 먹으러 가야 한다.
국밥이라면 흔하디 흔한 음식인데 굳이 안성까지 가서 먹어야 할까 싶지만, 안성에는 경기도에서 가장 오래된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식당이 있다.
1920년부터 우시장으로 번성했던 안성장터 한 귀퉁이에서 가마솥 하나 만들고 장국밥을 팔기 시작해 어엿한 기와집에서
3대째 장사를 이어가고 있는 안일옥이 바로 그곳이다.
안성은 도심을 벗어나 어디를 가던지 한우농장은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한우가 유명한 고장이다.
그 덕택에 안성에선 맛있는 국밥을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데 특히 안성 한우 축산물 프라자의 갈비탕은
늘 사람들로 붐벼 오픈 시간에 찾아가지 않으면 먹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전통과 역사로 봤을 때 안일옥의 국밥을 먹지 않는다면 안성 여행을 절반만 한 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래된 식당인 만큼 낡은 탁자와 빛바랜 신문기사들, 단골들로 보이는 어르신 손님들 모든 것이 정겨웠다.
이 식당의 대표 메뉴는 아무래도 설렁탕이다.
그 밖에도 우족, 꼬리, 도가니, 머리 고기, 우설, 양지 등을 모두 넣고 끓인 안성맞춤우탕도 유명한데
좋은 재료가 들어간 만큼 가격도 비싸다.
설렁탕이 나오고 과연 그 맛이 어떨지 한 숟가락을 조심스럽게 떠먹어 봤다.
"이런? 아무 맛도 나질 않는데... 맞다 소금과 후추를 넣어야겠군."
식당의 분위기에 빠져 막상 식탁 위의 양념통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식당의 연륜만큼이나 깊고 진한 육수의 맛이
우러나오는 훌륭한 맛이었다. 앞으로도 식당의 명성이 잘 유지되길 바라며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저번화 매산리 석불입상(태평 미륵)에서 언급했듯이 안성에는 미륵불이 유독 많이 남아있다.
안성 시내도 예외가 될 수 없는데 주공 아파트를 배경으로 장승과도 같은 독특한 인상의 아양동 석불 2기가 있다.
몸의 비례도 엉성하고, 전체적으로 투박한 솜씨지만 그렇기에 일반 민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와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한다.
예전 이 일대에 살던 마을 사람들은 두기의 석불을 가리켜 큰 것은 할아버지 작은 것은 할머니 미륵으로 불렀다고 한다.
역시나 고려시대의 석불로 추정되는 만큼 안성 일대의 미륵불에 관한 신비로움과 궁금증이 일어난다.
앞으로도 안성의 미륵불 탐험은 쭉 이어진다.
이제 잠시 길을 남쪽으로 돌려 안성천을 건너 다음 목적지로 가보려고 한다.
웬만한 강 못지않게 폭이 넓은 안성천은 한강, 청계천 같은 다른 하천처럼 번잡하지 않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걷기 좋았다. 안성천의 남쪽은 북쪽과 달리 임야지대가 대부분이지만 이 지역에도 우리는 문화재를 마주할 수 있다.
도기동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언덕 꼭대기에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삼층석탑이 자리해 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보통 석탑은 절의 앞마당에 세워지는 게 일방적이다.
하지만 도기동 삼층석탑은 절터라고 하기도 어려운 위치라 예불 이상의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독특한 비례의 삼층석탑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언덕에서 보이는 경치를 보면서 내 나름대로의 추론을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안성의 다른 동네에서 보이는 미륵불과 마찬가지로 이 마을의 무사 평안을 빌기위한 장승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입구에 적혀 있는 설명문을 읽어보니 여기 '도기동'의 마을 생김새가 마치 거북이 모양처럼 보였기에
거북이가 안성천을 건너면 마을이 망한다는 풍수지리적 믿음으로 거북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탑을 세웠다고 한다.
처음엔 그런 목적으로 세워졌을지 모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마을을 바라보는 수호신처럼 든든하게 서 있는
석탑의 존재에 경이감을 표하게 된다. 안성 도심에서 머지않은 문화재들의 개성과 사연이 범상치 않다.
다시 안성천을 건너 시내로 돌아왔다.
안성의 시내는 조선시대처럼 더 이상 사람들로 붐비지 않지만 시간이 70~80년대에 멈춘 듯한 건물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우리 주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슬레이트 지붕의 대장간과 방앗간, 쌀 정미소,
그리고 동네 아이들의 아지트였던 만화방까지.
어른들에게는 예전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고,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이색 명소로서 충분히 가볼 만한 거리다.
이제 골목을 지나 이름도 범상치 않은 낙원 역사공원에 이르게 된다.
원래 이름은 안성 공원이라 하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기록상으로 볼 때 1920년대부터 근대적 공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안성시민의 휴식, 문화 공간으로 사랑받았던 안성 공원은 수목이 울창하고, 정자 하나만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지역의 유지가 정자 세 개를 짓고 죽산에 있는 석불과 보개면에 있던 고탑 등을 옮겨오면서
지금의 역사공원 틀이 갖춰졌다고 한다.
현재는 석불좌상, 석탑, 49기의 비석 등 안성에 흩어져 있던 다양한 석조 문화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야외 석조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따로 있으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석조물을 단지 공원을 가볍게 산책하면서 쉽게 접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싶었다.
안성 도심을 걸어 다니며 그동안 내가 미처 몰랐던 안성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안성 도심의 매력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안성의 색다른 문화를 찾아 함께 떠나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