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35. 강산광(정헌명 처)
강산광(정헌명 처)이 일찍이 을축년(개도52년 1925년) 5월 성탄절에 처음 와서 대성사모님을 뵈오니, 사모님께옵서 하교하시기를 “부인이 스승을 좇아 도를 배우는 것이 옛적에는 드물게 있었지만 현재 운수에는 옛적과 다르니 만일 잘하면 반드시 내 제자가 되리라” 하시다
그리고 7월에 두 번째 와서 뵈오니, 다시 하교하시기를 “듣건대 지금까지 한 번도 수태하지 못하였다고 하니, 천지께서는 만물을 생하는 것을 마음으로 삼으심에 만물이 각각 그 마음을 얻어서 나는 고로 물건마다 각각 자식을 낳을 마음이 있지 않음이 없되 사람이 더욱 심하거니와 어찌 목마르게 바라는 회포가 없겠느냐? 모름지기 일심으로 도를 닦아서 내 제자가 됨을 잃지 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낳고 참혹한 광경(부정함)을 본 뒤에젖이 퉁퉁 불어서 심히 괴로워하니, 시아버님(대도존사)께서 하교하시기를 ‘아이 무덤에 가서 젖을 짜면서 이르기를 네 젖은 네가 가지고 가거라 하면 젖이 붇지 않는다’ 하시는 고로 명대로 시행하였더니 그 후에 자식을 낳으면 젖의 양이 항상 적으니 이런 것도 불가불 알아야 할 것이라” 하시다.
병인년(개도53년 1926년) 3월 그믐날에 금천으로 이사를 와서 성묘(사당집)에 전사를 받들어 행하다가 정묘년(개도54년 1927년) 겨울에 이르러 부득이한 일로 해임되니라.
이때 사모님께옵서 이끌어서 간곡히 일깨우시기를 “모름지기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맹세코 끝을 보아라” 하시고 전에 지내신 바 일을 말씀하시기를 “내가 신도안 백암동에 처음 왔을 때 휴대하였던 자금은 다 떨어져 이미 바닥이 나고 사방을 돌아봐도 친척이 없어서 변통할 길이 없는지라. 집안의 어르신(대도존사)께서 다듬잇방망이를 깍아 만들어 주시거늘, 내가 의복 속에 넣고 이웃 마을에 다니면서 팔고자 하니 전혀 돌아보지 않는 자도 있고 혹 동정심으로 사는 자도 있더니 지금에 와서는 만인의 사모가 되었으니, 세상살이 만 가지 일이 대개 이 같은즉 모름지기 뜻을 변치 말고 앞날을 기다려보아라” 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