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에
한 교회에 주일학교 고등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교사가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출석이 너무 저조했던 것입니다.
교사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왜 이렇게 안 나올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
서로 친하지 못한 아이들,
그래서 느껴지는 어색함…
교사는 그것이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꾀를 떠올렸습니다.
“잘 나오는 아이들을
잘 나오지 않는 아이들과 짝꿍으로 묶어 주자.
그렇게 서로 관계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오겠지?”
교사는 주일에 모인 아이들에게
자신의 뜻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짝꿍을 정해 연락처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뒤로 주일마다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전화는 했니?”
“얼마나 연락했니?”
“교회는 오라고 권면은 했니?”
아이들은 선생님의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짝꿍이 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권면하며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나오지 않는 아이들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교사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온 아이들에게
이렇게 시켰습니다.
“너희가 더 신경 써서 연락하고, 만나고,
꼭 교회로 인도해 오도록 해라.”
그렇게 아이들에게 더 큰 멍에를 지웠습니다.
그 가운데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잘 나오지 않는 남학생에게
관심도 없었지만 짝꿍이 되었기에
어쩔수 없이 용기내어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남학생도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주고
자신을 챙겨 주는 것 같아
여학생에게 고마워했습니다.
그렇게 두 아이는
여학생의 관심과 전화로
조금씩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교사의 의도처럼
남학생은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남학생은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 여학생을 교회가 아닌
밖에서 따로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여학생에게 전화가 또 오자
밖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여학생도 그렇게 만나서
교회로 인도하면 되겠다 싶어
만남을 허락했습니다.
그렇게 두 아이들은 교회가 아닌 밖에서
서로 만나기 시작했고
만나는 날이 늘어만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사이
아이들의 대화는 교회 이야기가 아닌
더 많은 세상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찬양이 아닌 세상 노래를,
성경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교사의 의도와는 달리
여학생이 남학생을 교회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주객이 전도되어 오히려 여학생이
남학생을 따라가 버리고는
그 여학생마저도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고등부는 점점 텅 비어 갔습니다.
심각성을 알게 된 고등부 목사님이
원인을 알아보다가
이 교사가 시작한 '짝꿍 챙기기'가
모든 일의 시작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교사가 혼자 계획하고,
아이들에게 서로 멍에를 지게 하여
잘 나오던 아이들마저
잘 나오지 않는 아이들과 어울리다가
함께 교회를 떠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교사는
더 이상 교회에서 교사의 직분을 얻지 못하고
그냥 평신도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소문이 교회로 퍼졌습니다.
"저 집사님이 고등부를 망쳐 놓았대..."
결국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한 교사는
그 교회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다른 교회로 옮겨 가 버렸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절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사랑하는 여러분!
이 교사의 마음이 처음부터 나빴습니까?
아닙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은 영혼을 사랑하는 귀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방법에 있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먼저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머리를 굴려 꾀를 냈습니다./
교회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자기 마음대로 계획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의 짐을
자기가 지지 않고
아이들의 어깨에 얹었습니다./
기도하는 일, 찾아가는 일, 인도하는 일,
그것은 교사가 먼저 감당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멍에를 아이들에게 지우다가
교회를 망치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멍에는 두 마리의 소가 함께 메는 것입니다.
함께 메는 순간
두 마리는 같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리가 한쪽으로 기울면
다른 한 마리도 끌려가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신의 생각으로 사는 모습은 아닌지요?/
열심은 있는데
하나님의 뜻은 묻지 않고
내 방법, 내 계획, 내 생각대로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지/
세상에 끌려가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먼저 주님께 단단히 매여 있지 않는다면
그 목적이 누군가를 건지려는 일이라도
그 자리가 세상의 자리가 된다면
우리의 영혼도 끌려갈 수 있습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한 교사의 잘못된 생각이 교회를 망치고
순수한 아이들의 신앙 마저도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고,
세상과 멍에를 함께 메지 않으며,/
오직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과 같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