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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시식 원문해설(2)
원문
○{고혼청}孤魂請
{일심봉청}一心奉請 {실상이명}實相離名 {법신무적}法身無跡 {종연은현}從緣隱現 {약경상지유무}
若鏡像之有無
{수업승침}隨業昇沈 {여정륜지고하}
如井輪之高下
{묘변막측}妙變莫測 {환래하난}幻來何難 {원아금차}願我今此 {지의성심}至意誠心 {생전효행}生前孝行 {사후}死後 (9{일}日)
{지신}之辰
{천혼재자}薦魂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소천망}所薦亡
{엄부}嚴父
{영가}靈駕
{유원}唯願
{승불위광}承佛威光 {내예향단}來詣香壇 {수첨법공}受霑法供
{일심봉청}一心奉請 {약인욕식불경계}
若人欲識佛境界 {당정기의여허공}
當情其意如虛空 {원리망상급제취}
遠離妄想及諸趣 {영심소향개무애}
令心所向皆無碍 {원아금차}願我今此 {지의성심}至意誠心 {생전효행}生前孝行 {사후}死後 (9{일}日)
{지신}之辰
{천혼재자}薦魂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소천망}所薦亡
{엄부}(嚴父)
{영가}靈駕
{유원}唯願
{승불위광}承佛威光 {내예향단}來詣香壇 {수첨법공}受霑法供
{일심봉청}一心奉請 {인연취산}因緣聚散 {금고여연}今古如然 {허철광대영통}
虛徹廣大靈通 {왕래자재}往來自在
{무애}無碍
{원아금차}願我今此 {지의성심}至意誠心 {생전효행}生前孝行 {사후}死後
(9{일}日)
{지신}之辰
{천혼재자}薦魂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소천망}所薦亡
({엄부}嚴父)
{영가}靈駕
{영가위주}靈駕爲主 {복}伏{위기부}爲記付 {상세선망}上世先亡 {사존부모}師尊父母 {다생사장}多生師長 {누대종친}累代宗親 {제형숙백}弟兄叔伯 {자매질손}姉妹姪孫 {원근친척}遠近親戚 {일체애고혼}一切哀孤魂 {제불자등}諸佛子等 {각열위영가}各列位靈駕 {유원}唯願
{승불위광}承佛威光
{내예향단}來詣香壇 {수첨법공}受霑法供
{향연청}香煙請 (3번)
○{가영}歌詠
{제령한진치신망}諸靈限盡致身亡 {석화광음몽일장}石火光陰夢一場
{삼혼묘묘귀하처}三魂渺渺歸何處 {칠백망망거원향}七魄茫茫去遠鄕
○{안좌게}安座偈
{제불자등각열위영가}諸佛子等各列位靈駕 {상래}上來 {승불섭수}承佛攝受 {장법가지}仗法加持 {기무수계이임연}旣無囚繫以臨筵 {원획소요이취좌}願獲消遙而就座 {하유안좌지게}下有安座之偈 {대중수언후화}大衆隨言後和
{아금의교설화연}我今依敎設華筵 {종종진수열좌전}種種珍羞列座前
{대소의위차례좌}大小依位次第坐 {전심제청연금언}專心諦聽演金言
{수위안좌진언}受位安座眞言 「옴 마니 군다리 훔 훔 스바하」 (3번)
{백초임중일미신}百草林中一味新 {조주상권기천인}趙州常勸幾千人 {팽장석정강심수}烹將石鼎江心水
{원사망령헐고륜}願使亡靈歇苦輪 {원사고혼헐고륜}願使孤魂歇苦輪 {원사제령헐고륜}願使諸靈歇苦輪
【역문】
일심으로 청합니다. 실상은 명상을 떠나있고 법신은 종적 없이 인연 따라 숨기거나 드러냄이 거울 속에 비취는 모습 같고, 업을 따라 오르고 내림은 우물 속에 두레박이 오르내림 같아 오묘한 변화 예측하기 어렵거늘 환으로 오감이 어찌 어렵지 않으리오. 오늘 천혼재자 가 지성으로 바라오니 영가여, 부처님의 위신력과 법의 가지에 의지하사 이 향단에 오셔서 법공양을 받으소서.
일심으로 청합니다. 만일 부처님의 경계를 알려 하면 마음을 허공과 같이 맑히고 망상과 육도를 멀리 여의어 마음이 어디에도 걸림없게 할지니. 오늘 천혼재자 가 지성으로 바라오니 영가여, 부처님의 위신력과 법의 가지에 의지하사 이 향단에 오셔서 법공양을 받으소서.
일심으로 청합니다. 인연이 모였다가 흩어짐은 예와 지금 다르잖아 텅비고 넓고 크고 신령스레 통하여서 오고 감에 걸림 없어라. 오늘 천혼재자 가 지성으로 바라오니 영가와 영가위주 상세선망 ~ 각열위영가여, 부처님의 위신력과 법의 가지에 의지하사 이 향단에 오셔서 법공양을 받으소서.
향을 살아 청합니다. (3번)
○노래로 맞이함
목숨 다해 임종에 이르게 되니
번쩍 하는 돌불 같은 한바탕의 꿈
아득해라 삼혼은 간 곳 어디며
망망해라 칠백은 고향 갔느뇨.
○안좌게
모든 불자들과 모든 영가여, 위에서 이미 부처님의 섭수하심을 받아 법의 가지에 의지하여 이미 죄에 얽매임이 없어져서 법연에 임하였으니, 한가로움을 얻어 법연에 나가소서. 다음에 안좌게를 대중은 따라서 창화하시오.
제가 이제 여법하게 자리를 펴고
갖가지 향긋한 음식을 차렸사오니
위 아래 순서대로 자리하시고
마음 다해 설하는 법 경청하소서.
지위 따라 편안한 자리를 주는 진언
「옴 마니 군다리 훔 훔 스바하」
○차를 드리는 노래
온갖 풀 중 오로지한 신선한 차맛
조주스님 몇 천 명에 권하였던가
오늘 다시 맑은 차를 다려 드리니
망령이여, 윤회고를 아주 쉬소서.
고혼이여, 윤회고를 아주 쉬소서.
제령이여, 윤회고를 아주 쉬소서.
【진행】
법주 요령을 세 번 울리고 나서 앉은 채로 합장하고 반배하면서 ‘일심봉청’을 하면서 요령을 잡고 진행하다가 ‘유원’에서 요령을 한 번 채고 내리면 된다. 이와 같이 세 번을 하고 나면 바라지는 목탁이나 태징을 내리고 향연청을 세 번 외우고 가영을 외운다.
다음에 법주 요령을 세 번 울려 위에서 청한 영가들이 모두 자리에 앉도록 착어를 하고 난 후, 바라지가 받아서 안좌게 ‘아금의교설화연~’을 외우면서 목탁을 내린다.
다시 법주 요령을 세 번 울리고 ‘수위안좌진언’을 하고 바라지는 다게를 외운다. 다게를 외울 때는 재자들에게 삼배를 하도록 한다.
【해설】
관음시식의 고혼청은 천도작법 대령에서의 고혼청과 같다. 다만 청사의 내용과 법문을 바꾸어서 할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삼청을 진행하는 청사의 순서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동일하다.
그동안 여러 번의 의식절차를 통하여 영가를 청하였는데, 이제 다시 영가를 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도재를 진행하는 순서상 처음에 대령을 할 때에 고혼을 청하는 의식을 집전하였으면 그만일텐데, 그 뒤에도 여러 번의 영가를 청하는 의식이 나오고, 또 같은 고혼청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왜 이렇게 번잡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대령과 관음시식을 따로 진행하는 경우에 각각의 고혼에 대한 청사를 하는 의미가 있으며, 또 하나는 인간의 심성이 자주 변하고 어지럽듯이 영가의 마음도 다르지 않으므로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혹여 다른 데 정신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천도하려는 모든 영가가 빠짐없이 참석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 번에 걸쳐 간절한 마음으로 청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관음시식의 고혼청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청사를 진행하는 법주의 마음이 법계의 실상(참다운 모습)을 관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법주가 올바로 법계의 실상을 관하게 되면, 바로 그 자리가 극락정토로 변화하게 된다.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손가락으로 대지를 툭 건드리는 순간, 우주법계가 화장장엄세계로 변하는 것과 같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영가를 천도하는 지름길은 영가로 하여금 법계의 참다운 모습을 깨닫도록 하여, 그 법계에서 노닐도록 하는 데 있다. 대령을 해설할 때는 청사의 자세한 내용은 관(觀)을 통해서 증득해야 할 선구(禪句)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해설하지 않았으나, 여기서는 대강 언급하고자 한다.
‘법계의 참다운 모습은 이름을 떠나 있고, 법신은 자취가 없어 업연 따라 일어났다 없어지는 것이 마치 우물 속의 두레박이 오르내림과 같다’고 하였다.
법계의 진정한 모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직관을 통해서 법계의 모습을 관해야만 그 모양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어떤 고정된 실체를 갖고서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기가 지은 업연을 따라 과보를 받아 태어나서 어느 정도 생을 누리다가, 다시 업연이 다하면 사라지게 된다. 그 업을 따라 윤회하는 모양은 마치 깊은 우물에서 물을 푸기 위한 두레박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과 같으며, 천상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의 도에 업을 따라 오르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르내리는 변화는 헤아리기가 어렵지만, 하나로 통해버린 실상세계에서는 오고 가는 것이 실체가 있지 않아 환(그림자)과 같다. 그러므로 먼 곳에 있더라도 못오실 이유가 없으니, 오늘 9재(천도재)를 맞아 아드님이나 따님 또는 부인이나 남편, 손자 등이 간절한 마음으로 영가를 청하오니, 부디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천도재를 올리는 이 자리(법석)에 와서 법공양을 받아 해탈하거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라는 말이다.
실상에서 올바로 보면 삶과 죽음은 실체가 없어 인연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실제로는 태어남이라는 것도 죽음이라는 것도 따로 없다. 그러므로 이 이치는 말로 더 자세히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각자 법계의 모양을 잘 관해야 알 수 있는 경지이다.
재청에서 ‘인연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은 옛과 지금 다르지 않고, 우주의 본체는 텅텅 비어 넓고 크고 신령스레 통하여서 오고 감에 자유로와 아무런 걸림이 없다’고 하였다.
인연이 모였다 흩어진다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을 말한다. 즉 인연이 주어지면 모양새가 나타난다. 이것을 태어났다고 하고, 그 인연이 다하면 모양새가 허물어지게 된다.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혀 다르지 않은 진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법계의 모양은 텅 비었고, 아주 맑고 넓고 클 뿐만 아니라, 신령스레 통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법계의 모양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서울과 부산은 서로 떨어져 있고, 한국과 미국은 따로 떨어져 있으며, 너와 나는 서로 떨어져 있는 모양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계에서는 본래 한 세계이므로 여기에 계합만 하면, 곧 하나임을 알게 되므로 서로 통하여 있다는 말이다. 오늘 영가를 청하건대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는다면 어디 계시더라도 즉시에 오실 수가 있다. 그러므로 곧 오시라는 말이다.
삼청에서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경지를 알고자 하면, 그 마음을 맑히기를 허공과 같이 하여 망령된 생각과 모든 헐떡거림(집착)을 멀리 떠나보내고 그 마음으로 하여금 일체의 걸림이 없게 하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진리를 올바로 깨달아 깨달은 대로, 즉 진리 그대로 사시는 분이다. 부처님의 경지를 알고자 한다면 곧 진리의 세계, 참다운 법계에 계합해야 한다. 법계에 계합하려면 일체의 망령된 생각과 헐떡거림, 즉 번뇌를 없애야만 한다. 그리고 법계의 참모습을 배반하고 이루어진 번뇌의 업과 과보로 이루어진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이 없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마음에 일체의 걸림이 없게 된다.
걸림이란 자신의 마음에 무엇인가 건더기를 남기는 것을 말한다. 탐욕심을 가진 자, 성냄을 가진 자, 어리석음을 가진 자는 모든 것에 걸림을 갖게 마련이다. 내가 남보다 무엇을 하더라도 더해야 하는데, 더 잘나야 하는데, 더 많이 가져야 하는데 등등 걸리는 것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모든 할 일을 다 마친 사람을 무위진인(無爲眞人)이라고 하였다. 즉 무슨 일을 하더라도 탐진치 삼독을 떠난 상태에서 밥먹고 말하고 똥누고 가고 오는 사람을 말한다. 욕심을 가지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아 성을 낼 필요가 없고, 성을 내지 않으면 헐떡거리지 않으며, 지혜 있으면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부처님의 경지를 알 수 있는 법계의 모양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 모든 영가들은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모두 이 법연에 내려와서 법공양을 받으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향화청이 아니고 향연청이다. 향을 사르며 청한다는 말이다.
가영은 대령에서 자세히 해설하였으므로 참고하면 되고, 안좌게는 편안하게 앉게 하는 노래이다. ‘위에서 이미 부처님의 섭수하심을 받아 법의 가지에 의지하여 이미 죄의 얽매임이 없어져서 법연에 임하였으니, 원컨대 한가로움을 얻어 법연에 나가소서’라고 하였다.
대령과 관욕을 통하여 온갖 번뇌에 물든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 영가들에게 다시 법의 가피에 의지하도록 법문을 계속 일러주어 번뇌를 끊게 하는 것이 천도의식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관음시식에서 고혼을 세 번 청하는 데도 그냥 청하는 것이 아니다. 법계의 참된 모양을 보여주고 그 법계의 움직이는 모양을 보여주고, 법계를 배반하고 생사계에 떨어진 영가의 실상을 알려주어 그 생사의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법문이 고혼청의 내용이다. 그렇게 법계를 관하고 생사의 세계를 벗어나 열반의 세계에서 한가롭게 노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9재는 단순하게 영가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법문을 일러주어 영가로 하여금 진여법계의 실상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그 참다운 목적이다. 그러므로 영가들에게 순서대로 편안하게 앉아 부처님 말씀을 자세하게 들으라고 한다. 이렇게 수위안좌진언을 통하여 편안하게 앉은 영가들에게 다시 조주스님이 법을 물으러 오는 모든 이들에게 차를 권하였듯이, 차를 대접하여 목마른 갈증을 해소시켜주고, 그 다음에 진수를 들어 일체의 허기를 면하고 윤회하는 마음을 씻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원문】
{선밀가지}宣密加持 {신전윤택}身田潤澤 {업화청량}業火淸凉 {각구해탈}各求解脫
{변식진언}變食眞言
「나막 살바 다타아다 바로기데 옴 삼바라 삼바라훔」 (3번)
{시감로수진언}施甘露水眞言
「나모 소로바야 다타아다야 다냐타옴 소로소로 바라소로 바라소로 스바하」 (3번)
{일자수륜관진언}一字水輪觀眞言 「옴 밤 밤 밤 밤」 (3번)
{유해진언}乳海眞言 「나모 사만다 못다남 옴 밤」 (3번)
○{칭양성호}稱揚聖號
{나무다보여래}南無多寶如來 {원제고혼}願諸孤魂 {파제간탐}破除<H535E>貪 {법재구족}法財具足
{나무묘색신여래}南無妙色身如來 {원제고혼}願諸孤魂 {이추루형}離醜陋形 {상호원만}相好圓滿
{나무광박신여래}南無廣博身如來 {원제고혼}願諸孤魂 {사육범신}捨六凡身 {오허공신}悟虛空身
{나무이포외여래}南無離怖畏如來 {원제고혼}願諸孤魂 {이제포외}離諸怖畏 {득열반락}得涅槃樂
{나무감로왕여래}南無甘露王如來 {열명영가}願我各各 {열명영가}列名靈駕 {인후개통}咽喉開通 {획감로미}獲甘露味
{원차가지식}願此加持食 {보변만시방}普遍滿十方 {식자제기갈}食者除飢渴 {득생안양국}得生安養國
{시귀식진언}施鬼食眞言 「옴 미기 미기 야야 미기 스바하」 (3번)
{시무차법식진언}施無遮法食眞言 「옴 목역능 스바하」 (3번)
{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훔」 (3번)
{보회향진언}普廻向眞言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 마하 자가라바훔」 (3번)
【역문】
가지를 베푸오니 몸과 마음 윤택해지고
업의 불길 소멸되고 해탈을 구하소서.
음식을 변화시키는 진언
「나막 살바 다타아다 바로기데 옴 삼바라 삼바라 훔」
감로수를 드리는 진언
「나모 소로바야 다타아다야 다냐타옴 소로소로 바라소로 바라소로 스바하」
수륜삼매를 관하는 일자 진언
「옴 밤 밤 밤 밤」
젖의 바다와 같이 부드럽게 하는 진언
「나모 사만다 못다남 옴 밤」
○성스러운 부처님의 명호를 찬탄하여 드러냄
다보여래 부처님께 귀의하오니, 모든 고혼 간탐심 버리고 보배로운 법의 재물 갖춰지이다.
묘색신부처님께 귀의하오니, 모든 고혼 추한 몸 떠나 원만한 몸매가 이뤄지이다.
광박신 부처님께 귀의하오니, 모든 고혼 범부 몸 벗고 허공 같은 본래의 몸 깨쳐지이다.
이포외 부처님께 귀의하오니, 모든 고혼 두려움 벗어 니르바나 열반락이 누려지이다.
감로왕 부처님께 귀의하오니, 초청 영가 목구멍 열려 감로수의 청량한 맛 얻어지이다.
이 가지 공양이 시방세계 두루하여
드신 이는 기갈 들고 왕생극락하오소서.
아귀에게 밥먹이는 진언 「옴 미기 미기 야야 미기 스바하」
차별 없이 법공양을 베푸는 진언 「옴 목역능 스바하」
널리 공양하게 하는 진언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훔」
널리 회향하는 진언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 마하 자가라바 훔」
【해설】
이제까지 영단에 법단을 꾸며 제수를 진설하고, 영가를 불러 자리에 앉히고 우주 법계의 현상을 설명하여 법계에 들도록 하는 법문을 구구절절이 하게 하였다.
이제는 법단에 차려진 공양물을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사다라니를 통하여 변식하여, 다섯 여래의 명호를 일러 주고 진언을 통하여 잘 드시도록 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가지를 베푸오니 몸과 마음 윤택해지고 업의 불길 소멸되고 해탈하소서’라고 하였다. 선밀가지는 선비밀가지를 줄인 말이다. 밀교의 비밀한 주문으로써 가지하여 음식을 변화시키겠다는 뜻이다. 그러한 가지에 의하여 베푸는 음식을 먹게 되면 이제까지 고단하고 피곤하고 배고파서 고달프던 몸과 마음이 기름지게 되어 윤택하게 살이 찌고, 법식을 먹음으로 해서 업으로 인해 지은 번뇌의 불길이 모두 꺼지고 시원해지게 되므로 각각 모두 해탈을 하라는 것이다.
변식진언은 거칠고 세속적인 음식을 부처님께서 드시던 좋은 공양으로 바뀌게 하는 것이다.
변식진언에 얽힌 유래는 삼보통청 강의를 진행할 때에 자세하게 이야기하였다.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한 바라문이 삼 개월 안거 동안 공양을 올리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그 바라문은 외도의 꾐에 빠져 약속을 어기고 공양을 올리지 않았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목동들에게 말먹이인 겉보리를 얻어 삼 개월을 지내게 되었는데, 모든 제자들은 먹기가 역겨워 매우 힘이 들었는데 오직 부처님께서는 맛있게 드셨다. 아난이 의아해 하자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잡수시던 말먹이 공양을 아난에게 주셨다. 아난이 먹어 보니, 그 맛이 세상 어느 음식에도 비할 수 없이 좋았다는 이야기다.
감로수를 드리는 진언은 보통 물을 한 번 먹으면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감로의 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일자수륜관이란 오륜삼매 중의 하나인 수륜삼매를 관하는 것이다. 물이란 본래 모든 만물을 윤택하게 적시어서 생장시키고 체성을 유연하게 하는 두 가지의 공덕이 있다. 그러므로 이 수륜관을 통하여 물이 온갖 만물을 윤택하게 적시어 자라나게 하는 것과 같이 오늘의 조그마한 선근을 수륜삼매를 통하여 증장시키는 의미를 가진다.
즉 수륜삼매라는 것은 윤택해지고 촉촉해져 청량(시원)해지는 의미를 갖고 있다. 수륜관진언을 통하여 수륜삼매에 들게 하여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하고, 높은 아만과 아상을 조복하고 선법에 따르게 하는 의미로 수륜관진언을 한다.
유해진언의 유해는 밀교의 용어로 금강계의 대일여래의 지혜의 덕을 일컫는 말로서, 대일여래의 지혜의 물을 뜻한다. 경전에 보면 우유라는 것은 아주 좋은 공양으로 묘사되고 있다. 부처님의 수행기를 다룬 『수행본기경』에는 싯달타의 극심한 고행을 보고 감탄하며 같이 수행하던 다섯 비구가 싯다르타가 선생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었다고 해서 타락했다고 그의 곁을 떠나가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과 같이 우유라는 것은 아주 정제된 것으로, 우유에 대한 비유가 『아함경』에는 많이 등장한다.
이처럼 사다라니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입으로만 진언을 외울 것이 아니라 올바로 관을 하면서 진언을 외워야 하겠다.
그 다음은 영가에게 성스러운 다섯 부처님의 명호를 들려 준다. 다섯 부처님은 아귀들에게 공양을 베풀 때 모시는 부처님이다.
다보여래는 보승여래라고도 하며, 평등성지(平等性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서 평등한 마음을 갖게 하여, 인색과 탐욕을 떨쳐 버리고 법의 재물을 얻게 한다.
묘색신여래는 대원경지(大圓境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서 영가를 대원경지에 들게 하여, 추한 모습을 버리고 원만한 모양을 갖게 한다.
광박신여래는 법계지(法界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서 범부들이 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 몸을 가지고 ‘나’라고 집착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고 법계지인 공성을 깨달아 허공과 같음을 깨닫게 한다.
이포외여래는 성소작지(成所作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 부처님이 수행으로써 모든 팔만 사천의 마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성불을 한 것과 같이 모든 고혼들이 두려움을 떠나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한다.
감로왕여래는 묘관찰지(妙觀察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 모든 아귀와 영가들의 목구멍을 크게 열어서 음식을 맛있게 먹게 한다.
오늘 올린 음식이 온 세계에 두루하여 먹는 자마다 주림과 목마름을 여의고 안양국, 극락세계에 가서 나도록 발원한다.
이와 같이 사다라니와 다섯 여래의 위신력을 통하여 영가에게 강제로라도 음식을 먹게 하는 것이 마지막 절차이다.
시귀식진언으로 아귀의 입과 목을 벌리고 밥을 먹게 하여 주며, 시무차법식진언으로 기타 고혼들에게 빠짐없고 차별없이 평등하게 공양을 하도록 하며, 보공양진언으로 널리 공양하게 하며, 보회향진언으로 오늘 지은 모든 공덕을 널리 회향하여 공덕을 확대시킨다.
공덕을 지어서 자기 혼자만을 위해 쓰려는 자는 조그만 공덕은 이룰 수 있으나, 크게 되지 못하고 크게 받을 수가 없다. 아무리 작은 공덕이라도 진정으로 아낌없이 널리 회향을 하는 사람은 그 크기가 법계에 가득 차게 되고 그 회향되는 만큼 공덕이 늘어날 것이다.
【원문】
{수아차법식}受我此法食 {하이아난찬}何異阿難饌 {기장함포만}飢腸咸飽滿 {업화돈청량}業火頓淸凉
{돈사탐진치}頓捨貪瞋癡 {상귀불법승}常歸佛法僧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
{여래십호}如來十號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佛 {세존}世尊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역문】
받으신 법식은 아난찬과 다르잖아
주린 배는 채워지고 업의 불길 꺼지리다
탐진치를 떨쳐내고 불법승에 의지하여
보리심을 잊잖으면 처처극락 되오리다.
제상 비상 상이란 모두 헛된 것
제상 비상 바로 보면 여래 보리라.
여래십호
그렇게 온 이 여래는 ‘공양 받을 이, 바르게 두루 아는 이, 지혜와 행이 갖춰진 이, 잘 건너간 이, 세간을 가장 잘 아는 이, 스승 없는 이, 장부를 잘 다루는 이, 하늘과 사람의 스승, 깨달은 이, 세간에서 가장 존귀한 이’시네.
모든 법은 본래부터 오감없이 적멸하니
이 길 닦는 모든 불자 내세에 성불하리.
일체 행은 무상한 생멸의 이치
냄과 꺼짐 끝내야만 열반이리라.
【해설】
‘받으신 법식은 아난찬과 다르잖아’라는 말은 불공의식 진행할 때 여러 번 설명하였다. 부처님께서 잡수시던 말먹이 겉보리를 아난이 먹어 보니, 이 세상의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데 없는 맛있는 음식이더라는 데서 나온 말이다.
‘주린 배는 채워지고 업의 불길 꺼지리다’라는 말은 아귀세계의 아귀는 배가 남산만하고 목구멍이 바늘 구멍 같아 고통받는데, 변식을 통하여 잘 정제된 법의 음식을 먹는 이 순간이야말로 모처럼 배가 부르게 된다. 또한 먹으려고 하기만 하면 불로 변해 버리던 음식을 제대로 먹음으로써 업력의 불길이 꺼져 아주 시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탐진치를 떨쳐내고 불법승에 의지하여 보리심을 잊잖으면 처처극락 되오리다’는 영가에게 이러한 좋은 기회를 만났으니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었던 세 가지 독을 한꺼번에 버리고 나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는 거룩하신 스님들에게 항상 귀의하여서, 생각생각[찰나찰나]마다 부처님처럼 위없이 바른 깨달음을 얻고야 말겠다는 보리심을 갖고, 가는 곳마다 안락국, 즉 편안한 나라 정토가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안락국은 극락정토라고 할 수 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는 『금강경』 제5 여래실견분(진리와 같이 참다움을 보는 분)에 등장하는 사구게로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게송이다. 유위법, 즉 인연에 의하여 형성되어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진실한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참다운 실상이 아니다. 재를 지내고 있는 영가들은 육신의 형상을 잃어버린 중음신으로서, 영가가 가지고 있는 ‘나’라는 생각은 완전한 허상이다.
이 사구게의 전통적인 해석은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즉시 여래를 보리라’이다. 범본이나 현장본 앞의 구절을 잘 살펴보면 제상이란 32상을 구족한 것이고, 비상은 32상이 구족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32대인상 구족은 고대 인도인의 사상이었다. 전륜성왕이나 붓다는 32대인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 붓다께서는 “상으로 여래를 보아서는 안 된다”고 32상에 빠진 사고를 타파하고 계신다.
금강경의 흐름에서 간파되듯 32상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는 것이, 상념을 깨는 지름길임을 보여 주고 있다. 모든 상이 상이 아니라고만 하면 허무론에 빠지기 쉽다. 구족상과 그렇지 않은 [非具足相] 두 측면 모두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 ‘상이 상이 아니다’해 버리면 더 이상 논의의 여지가 없어진다.
구족상이나 비구족상을 떠나야만 여래를 보고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음을 영가에게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영가는 자신의 형상을 집착하게 되므로 금강경 사구게를 일러주어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뜻이 있다.
여래는 부처님의 별칭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지칭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는 열 가지 다른 이름이 있는데 이를 별호라 한다. 영가에게 다시 부처님의 훌륭하신 열 가지 이름을 들려 주는 것은 재를 올리는 인연이 헛되지 않고, 부처님과 같이 진리를 깨달아서 고해를 잘 건너가라는 의미이다.
여래(如來)는 진리로부터 온 이, 진리와 함께 온 이라는 뜻이다. 즉 진리를 바탕으로 하여 서 있는, 진리적인 생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응공(應供)은 공양 받을 만한 이라는 뜻이다. 아라한의 해석으로 쓰이는 것으로 평등성지를 얻어 모든 것을 평등하게 관하는 지혜를 증득하였다는 뜻이다.
정변지(正遍知)는 바르게 두루 아는 지혜를 갖춘 이라는 뜻이다. 전지(全智-모든 것을 바르게 아는)하다는 뜻을 가진 별호이다.
명행족(明行足)은 명과 행이 갖춰진 이라는 뜻이다. 명은 법계를 밝게 보는 지혜이고, 행은 밝게 아는 지혜를 몸으로 실천한다는 것으로 두 가지를 완전히 갖추었다는 뜻이다.
선서(善逝)는 잘 간 이, 잘 건네주는 이라는 뜻이다. 본인 자신이 일체 번뇌로 가득한 고해를 잘 건너갔을 때뿐만 아니라 다른 중생까지도 잘 건네주는 이라는 뜻이 있다.
세간해(世間解)는 세간을 잘 아는 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은 세간을 뛰어 넘은 존재로서 출세간의 법성 진리의 차원에 머무르고 계시지만, 세간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세간을 잘 알아야만 자신도 세간을 잘 건너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중생도 잘 건네 줄 수 있다.
무상사(無上士)는 더 이상가는 스승이 없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다른 스승에게서 배워서 안 것이 아니지만, 다른 어떤 스승보다 높은 진리를 깨달으셨으므로 ‘더 이상 위가 없는 스승’이라 하는 것이다.
조어장부(調御丈夫)는 장부를 잘 제어하신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하여 일체의 번뇌를 버리고 해탈에 이르셨을 뿐만 아니라 다른 다루기 어려운 중생도 잘 다루므로 조어장부라고 하는 것이다.
천인사(天人師)란 천인(天人) 즉 하늘 사람의 스승 또는 천상 세계와 인간 세계의 스승이란 뜻이다.
불(佛)은 바른 깨달음(붓다)을 얻으신 이라는 뜻이다. 인도의 다른 종교에서도 깨달음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부처님이라는 표현은 하지 못했다.
세존(世尊)은 세간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세간에 있는 모든 스승들 가운데 으뜸이 되며, 우리 인간과 똑같은 인간으로서 누구보다도 위대하신 수행을 통하여 가장 높은 진리를 깨우치고, 다른 이에게 설하여 세존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이와 같이 영가에게 부처님의 열 가지 특징이 다른 명호를 들려 준다.
여래십호에서 여래를 포함하며 호가 11개가 되므로 불세존을 한 호로 본다던가 무상사조어장부를 한 호로 보는 갖가지 견해가 있으나 여래십호라고 하였으니 여래의 십호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여래의 열 가지 다른 이름이므로 (당연히 대표호가 되는 여래는 계산에 넣을 수 없음) 복잡하고 구구한 견해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불교, 부처님라고 하듯이 ‘佛’이 대표적인 호로 자리잡게 되어 십호니 십일호니 하는 말들이 거론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리고 마지막 법문으로 설산동자가 뒷구절을 얻기 위해서, 나찰에게 자신의 몸을 제공하려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법을 구했다고 하는 ‘법신게’ 법문을 들려 준다. 그럼으로써 영가에게 영가의 몸이 허깨비임을 깨닫게 하여, 이승이나 육신에 대한 집착을 끊고 깨달음에 이르러 정토에 왕생시키려는 것이 공양 후의 사구게 법문이다.
‘모든 법은 본래부터 오감없이 적멸하니 이 길을 닦는 불자 내세에 성불하리라’는 말은 있는 것을 소멸시켜서 고요하게 된 것이 아니라 본래 모양이 고요하다. 진리의 근본인 법성 진리 차원에서는 무슨 특정한 모양새를 갖추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불자들이 도를 수행할 때에 이와 같이 알고 깨닫는다면, 금생에 보처보살의 위치에 오르게 되고 내세에는 반드시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다음 구절인 ‘모든 법은 본래부터 오감없이 적멸하니 이 길 닦는 모든 불자 내세에 성불하리라’는 영가에게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집착을 끊게 하기 위하여, 무상한 세계에 대한 법문을 들려 주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항상됨이 없이 변해 가며, 영가가 죽은 것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죽음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태어났다 죽고 다시 태어났다 죽는 것이 모두 없어져야만 고요한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이다. 영가에게 마지막 남은 집착을 끊고 열반의 세계에 들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진 법문이다.
영가에게 무상법문을 해주고, 부처님의 열 가지 명호를 알려 주고, 아미타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여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나도록 염불해 주는 것이다.
【원문】
{원아진생무별념}願我盡生無別念 {아미타불독상수}阿彌陀佛獨相隨
{심심상계옥호광}心心常係玉毫光 {염념불리금색상}念念不離金色相
{아집염주법계관}我執念珠法界觀 {허공위승무불관}虛空爲繩無不貫
{평등사나무하처}平等舍那無何處 {관구서방아미타}觀求西方阿彌陀
{나무서방대교주 무량수여래불}南無西方大敎主 無量壽如來佛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10번 이상)
역문
이 한 목숨 다하도록 다른 생각 아니하고,
오직 한 분 아미타 부처님을 따르오며
마음속에 옥호광명 더욱 깊이 연모하고
찰나라도 금빛 부처 떠나지 않으리다
마음 모아 염주 들고 법계를 관하올제
허공으로 끈 삼음에 꿰지 못함 없나이다
평등하신 노사나불 안 계신 곳 없사오나
서방세계 아미타불 그리오며 구합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 위대한 교화주시며 한량없는 수명의 주인공이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나무아미타불」~
해설
『아미타경』등 정토삼부경에서 아미타불께서는 “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하는 자는 한마음으로 일주일을 일심불란하게 아미타불을 염하면, 임종시에 아미타 부처님께서 좌우에 관음·세지 양대보살을 거느리고 오셔서 그 사람의 이마를 어루만지시면서 극락세계로 인도하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일심으로 부르는 사람이 적으므로 단 한 번이라도 아미타불을 부른 자는 극락으로 데려 가겠다고 하시고, 그것도 잘 되지 않아 임종을 한 후에 가족들이 돌아가신 망자를 위하여 지성으로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그 망자를 극락세계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관무량수경』에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열세 가지 관법을 닦으라고 하셨다.
첫째는 해가 넘어갈 때의 큰 불같이 생긴 붉은 해를 본 뒤에 눈을 뜨거나 감거나 간에 그 해의 영상이 똑똑히 남아 있도록 하는 법, 둘째는 물을 생각하되 물이 얼어 유리 같이 투명함을 보는 법, 셋째는 을 생각하는 법, 넷째는 나무를 생각하는 법, 다섯째는 보배 연못을 생각하는 법, 여섯째는 칠보로 된 누각을 생각하는 법, 일곱째 연화대를 생각하는 법, 여덟째 부처님의 형상을 생각하는 법, 아홉째 부처님의 참 몸을 뵙는 법이 나오고, 열째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법, 열한째 대세지보살을 생각하는 법, 열두째 그 모든 것을 통틀어 생각하는 법과 열세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몸을 섞어서 관찰하는 등의 열세 가지 관법이다.
아미타불을 염불하기 전에 외우는 아미타불 찬탄은 제8부처님의 형상을 생각하는 불상관(佛像觀)과 제9부처님의 참 몸을 생각하는 진신관(眞身觀)의 내용이다.
극락정토에 나려면 일심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부르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는데, 아미타불을 외우는 염불행자는 어떠한 생각으로 해야 하는가. 바로 ‘이 한 목숨 다하도록 다른 생각 아니하고, 오직 한 분 아미타 부처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다음에 극락세계의 칠보로 장엄된 연화대를 생각하고, 그 연화대 위에 앉으셔서 미간의 백옥 빛을 가진 터럭으로부터 빛나는 광명을 발휘하는 부처님의 상호를 깊이 연모한다. 눈을 뜨거나 감거나 간에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아미타불의 금빛 몸을 생각하는데, 잠시도 [念念] 잊어버리는 일이 없겠다고 맹세하고 다짐한다. 여기서 염념(念念)이란 찰나를 의미로, 시간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찰나찰나의 생각에도라는 뜻이다.
물론 염주를 들고 법계를 관하고 온 허공을 다 꿰뚫어 관하지만, 아미타불만을 찾게 되니 다른 부처님께는 약간 죄송한 마음도 있다. 그러므로 우주 법계에 평등한 보신인 노사나부처님이 계시지만, 오직 서방 극락세계에 태어나기 위하여 아미타 부처님만을 관하고 극락정토에 나기를 구한다고 하는 것이다.
많은 부처님 가운데서 오직 아미타불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극락을 건설하고 이끌어 가시는 한량없는 생명의 주인이신 아미타불께 의지하고 따르겠으니 부처님의 원력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발원하는 것이다.
이 발원을 뒤집어서 말하면 마음을 오로지 하여 아미타불을 염해야만 극락세계에 가서 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원문】
{극락세계 십종장엄}極樂世界 十種莊嚴 (南無阿彌陀佛)
{법장서원수인장엄}法藏誓願修因莊嚴 (南無阿彌陀佛) {사십팔원원력장엄}四十八願願力莊嚴 (南無阿彌陀佛)
{미타명호수광장엄}彌陀名號壽光莊嚴 (南無阿彌陀佛) {삼대사관보상장엄}三大士觀寶像莊嚴 (南無阿彌陀佛)
{미타국토안락장엄}彌陀國土安樂莊嚴 (南無阿彌陀佛) {보하청정덕수장엄}寶河淸淨德水莊嚴 (南無阿彌陀佛)
{보전여의누각장엄}寶殿如意樓閣莊嚴 (南無阿彌陀佛) {주야장원시분장엄}晝夜長遠時分莊嚴 (南無阿彌陀佛)
{이십사락정토장엄}二十四樂淨土莊嚴 (南無阿彌陀佛) {삼십종익공덕장엄}三十種益功德莊嚴 (南無阿彌陀佛)
【역문】
극락세계는 열 가지 장엄으로 꾸며졌네 (나무아미타불)
법장비구 서원세워 인업 닦아 장엄되고 (나무아미타불)
8종의 원력 세워 그 힘으로 장엄되고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명호같이 수명 지혜 장엄되고 (나무아미타불)
미타삼존 거룩하신 모습으로 장엄되고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극락국토 안락으로 장엄되고 (나무아미타불)
보배강은 청정하여 공덕수로 장엄되고 (나무아미타불)
보배전각 뜻과 같이 누각으로 장엄되고 (나무아미타불)
주야육시 공양수행 알맞도록 장엄되고 (나무아미타불)
2종의 쾌락으로 청정국토 장엄되고 (나무아미타불)
서른 가지 이로운 일 공덕으로 장엄됐네 (나무아미타불)
【원문】
{석가여래팔상성도}釋迦如來八相成道 (南無阿彌陀佛)
{도솔내의상}兜率來儀相 (南無阿彌陀佛)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南無阿彌陀佛)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南無阿彌陀佛)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南無阿彌陀佛)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南無阿彌陀佛)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南無阿彌陀佛)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南無阿彌陀佛)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南無阿彌陀佛)
【역문】
석가여래 성도하신 여덟 가지 모습이라 (나무아미타불)
도솔천궁 떠나시어 사바 오신 님의 모습 (나무아미타불)
룸비니원 무우수 하 탄생하신 님의 모습 (나무아미타불)
동남서북 성문 밖을 살피시던 님의 모습 (나무아미타불)
드높은 성 넘으시어 출가하신 님의 모습 (나무아미타불)
흰눈 덮인 산중에서 수도하신 님의 모습 (나무아미타불)
보리수 하 자리하여 마군 이긴 님의 모습 (나무아미타불)
사슴 노는 동산에서 설법하신 님의 모습 (나무아미타불)
사라쌍수 그늘 아래 열반하신 님의 모습 (나무아미타불)
관음시식 원문해설(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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