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박철홍의 역사는 흐른다!]
서일환의역사이야기 / 요절 문학인 ‘현진건’
<그는 동양척식 주식회사에 농토를 빼앗기고 간도로 떠났으나
탄광에서 고생하다가 늙은 부모마저 죽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단돈 20원에 술집에 팔려가서 빚만 지고 돌아온 옛 애인을 만났다
그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 경성으로 길을 떠났다>
1926년 현진건의 단편집 ‘조선의 얼굴’에 수록된 단편소설 ‘고향’의 줄거리다
그를 통해 일제치하 식민지 백성의 비참한 현실을 표현했고
그의 옛 애인을 통해 여성의 수난을 드러냈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 소설의 마지막에 부르는 노랫소리가 우리의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현진건(玄鎭健)은 대구시 뽕나무골에서 태어났고
도쿄 세이조중학교와 상하이 후장대학에서 공부했다
개벽에 단편소설 ‘희생자’를 발표하고 등단했다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고향' 등 27편의 소설을 남겼다
큰형 현홍건은 러시아 대사관 통역관 이었고
둘째 형 현석건은 변호사였다
셋째 형 현정건은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평양에서 옥사했다
넷째 현진건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1등을 차지한 손기정 유니폼의 일장기를 지워 1년간 구속됐다
현진건은 석방되어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무영탑(無影塔)’에 이어 ‘흑치상지(黑齒常之)’를 연재했으나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중단했다 또한 작품집 ‘조선의 얼굴’마저 금서로 지정되어 판매가 금지됐다
현진건은 일제와의 타협을 거부한 채 가난에 찌들어 살면서도
붓을 꺾고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
1943년 장결핵으로 38세에 요절했다
60년이 지나서야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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