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申師任堂)
우리나라 5만원권 지폐의 인물은 신사임당이다. 5천원 권 지폐의 인물은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 이율곡이다. 한 집안에서 모자가 지폐의 인물에 오른 것은 세계 최초라고 한다. 신사임당은 유학자, 화가, 작가, 시인이며 자수와 서예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사임당은 남북한에서 똑 같이 존경받는 인물이다. 북한에서 제작된 신사임당 영화는 정치색갈없이 있는 그대로 신사임당을 높이 평가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지명은 모두 실명이었다. 신사임당의 영향으로 북한에서는 괄목할만한 예술인들이 많이 배출 되었다고 한다.
신사임당은 일곱 남매를 키우느라 가난하고 눈코 뜰새없이 살았지만 한시라도 자식들 교육에 등한시 하지 않았다. 요즈음 일인칭으로 된
🙏女子신사임당🙏이란
책을 읽었다. 책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결혼한지 20여년에 살림하랴,
일곱남매를 키우랴 생일 한번 제대로 챙긴 적 없이 살아 왔다. 그러다가 마흔 세살이 되는 생일 날에 친정엄마와 남편과 자식들의 생일선물을 받았다. 그 선물 중 애들로부터 받은 나비문양의 옥 연적(硯滴 베루에 사용하는 물을 담는 그릇)도 있었다👈
애들이 말했다.
🙏어머니의 연적이 너무 낡아서 볼 때마다 마음에 걸렸어요🙏
애들에게 주는 용돈이라 해봤자 명절에 세뱃돈이 고작이다. 집에서 좀만 나가면 저잣거리인데 먹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겠냐만 애들은 엄마가 먼저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기뻐하기보다 오히려 애들을 나무랬다.
✍이런 거 살 돈이 있으면 아껴뒀다가 종이 한장이라도 더 살 것이지... 고맙긴 하다만 다시는 이러지 말거라✍
종이 한장 구하기 힘들었던 500년 전에 사임당은 자식들에게 받는 선물보다 자식들의 교육에 더 관심이 컷다.
또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이 집안은 글읽는 것이 가풍이었다. 집에는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라는 책이 있었다. 세종10년에 진주에서 김화(金禾)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사건은 백성들은 물론 세종대왕도 큰 충격을 받았다.
❗계집이 남편을 죽이고 종이 주인을 죽이는 것은 혹 있을 일이지만 이제 아비를 죽이는 자가 나타났으니 이것은 내가 덕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세종은 탄식하며 대신들과 학자들에게 시간이 걸릴지라도 백성들을 교화할 수 있는 교양서를 만들라는 칙령을 내렸다. 마침내 세종16년(1434년)에 전국에서 모범이 되는 충신,효자,열녀를 발굴하여 편찬한 삼강행실도가 세상에 선 보였다. 이 책은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서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였다.
하루는 아홉살 되는 현룡(이이)이 두 동생에게 삼강행실도를 읽어 주고 있었다. 그런데 두 동생이 책을 자기가 읽겠다며 옥신각신 싸웠다. 다행히 사임당이 슬기롭게 절충하여 책싸움은 원만하게 해결이 됐다.
사임당은 남편을 과거에 급제시키기 위하여 처절할 정도의 집념을 보였다.
그러나 남편 이원수는 공부에는 소질도 자신감도 없었다. 아내의 시달림에 남편은
차라리 농사를 짓든지 대장쟁으로 살든지 공부는못하겠
다고 선언 했다.
남편의 이 맥빠진 소리에
사임당은 마음을 더 모질게 먹었다. 사임당은 반짇고리에서 가위를 꺼내들었다.
🗽앞길이 창창한 대장부가 저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겠다는데 제가 무슨 낯으로 푸른 하늘을 볼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머리깎고 산에 들어가 평생 이 결혼 후회하며 살 것입니다.
나는 쪽 진 머리를 풀어 헤쳐
머리채를 움켜쥐고 한 움큼 잘라 버렸다
남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내몸을 부둥켜 안고 가위를 빼앗았다🗽
🙏알았으니 제발 그만 두시오. 내가 잘못했소. 이제부터 당신 속 썩이는 일 없을테니 절대로 딴 생각하면 안되오🙏
🗽정말입니까. 믿어도 되겠습니까?
사임당은 몇번이나 다짐을 받아 내고 초촐한 술상을 차렸다. 남편이 술이 거나해지자 사임당은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많이 생각했지만 이대로는 안되겠어요. 당신의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우리 10년만 떨어져 살아요. 10년을 온전히 학업에 투자해도 관운이 열리지 않는다면 저 또한 미련을 갖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10년을 꼭 떨어져 살아야 하겠소🙏
🗽오늘 낮에 당신에게 줄 맨드라미(鷄冠花)를 그리면서 당신이 어사화(御賜花)를 쓰고 금의환양하는 모습을 떠 올렸습니다. 어찌나 마음이 뿌듯했는지 몰라요.이제부터는 저 그림을 사랑채에 걸어두고 매일 당신을 기다릴 겁니다🗽
사임당은 남편의 소질과 고충은 완전히 묵살한 채 자기의 의지대로 남편을 끌고 갔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사임당은
남편에게 회한이 담긴 유언을 남겼다.
🗽아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 쯤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어서도 내가 가져갈 기억은 당신뿐입니다
용서 하십시오
속마음 꼭꼭 숨기고 10년 별거 운운하며 한사코
가기 싫어하는 당신을 대관령 밖으로 밀어 냈습니다
당신은 그때 드센 마누라 만났다고 여겼을 테지요
실은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 당신이 세번이나 돌아오는 것을 보고
생각을 접었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당신이 다른 곳에서
위안을 찾을 일도 없었겠지요🗽
사임당은 현모양처로 많이 알려졌다. 현모양처는 사임당에게 보다 사임당의 어머니에게 더 맞는 말이다. 그녀의 어머니 용인 이씨는 사경을 헤메는 남편을 살리기 위하여 왼손 중지 두마디를 자를 정도로 남편에게 충성했다. 이같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증종23년(1526년 )에 조정에서는 열녀 정각(旌閣)을 세웠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녀는 딸에게 신신 당부 했다.
🙏딸아, 너는 너의 삶을 살아라🙏
사임당은 어머니의 당부대로 시대를 앞서가며 당당하게 자기의 삶을 살다갔다.
여성계에서는 사임당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전형이라며 현대여성의 표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2009년도에 5만원 권이 발행될 무렵 여성계의 반발이 심했다. 당시 5만원 권 화폐 초상에 유관순 열사와 김구선생이 거론되기도 했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원수도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화폐의 초상은 무엇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렇게 거센 반발과 논란속에서 사임당이 화폐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축복이다.
천안 도서관에 소장된 도서 중에
제일 많은 책이 사임당에 관한
아동 도서다. 전국의 도서관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어린이는 나라의 희망이며 미래다. 인간의 두뇌는 세살 이전에 90%이상 완성된다고 한다. 세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게 괜한 말이 아니다. 아울러 어릴 때 좋은 교육으로 형성된 습관도
평생 가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남북한 우리 어린이들이 사임당의 글과 그림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꿈을 키워가고 있다.
사임당은 한반도 모든 어린이들의 살아 있는 위대한 어머니이며 교육자이다.
북한에서는 한국의 5만원 권을 소장하기만 해도 행운이 깃든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어렵사리 5만원 권을 구해서 비밀리에 소장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신사임당은 신씨 집안의 사임당이 아니라 남북한을 망라한 우리 모두의 사임당이다.
남북한이 사임당을 공유하듯이 우리 대한민국의 5만원 권 화폐도 같이 공유하고 통용되는 날이 앞당겨졌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