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지
팽창하고 뜨거워지고 차가워지고 축을 중심으로 돌면서 공간 속에서 충돌하는 별과 태양계 등 ...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규모로 추동되고 움직이는 이 모든 현상의 에너지인 충동은 정신이나 의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충동은 전체적으로 정신과 무관한 현상으로, 개인의 인간성이나 지적 능력과는 상관없이 맹목적이다. 따라서 목적이나 목표가 없는 순전히 비인간적인 힘이다. 이 힘은 예지계의 어떤 것에 대한 현상계에서의 현시이다.
쇼펜하우어는 예지계에 적합한 용어를 찾으면서 무엇보다도 ‘힘’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그러고 나서 이 용어가 과학과 특별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과학은 현상계에만 적용될 수 있음을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그 현시 중 하나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것이, 신체 운동으로 나타나는 충동, 힘, 에너지 내에서 경험하는 고유한 의지의 작용이라는 것에서 착안하여 그것을 ‘의지’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의지’ 라는 용어는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아무런 성격도, 어떤 종류의 정신이나 지력도, 아무런 목적이나 목표도 없는 의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의도를 꽤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모든 물질적 대상을 포함한 경험 세계를 채우는 것은 시공의 틀에 따라 움직이는 에너지이고 힘의 장이라는 물리학의 발견을, 자신의 철학과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2.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결합
쇼펜하우어에게 힌두교와 불교를 소개한 사람은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Friedrich Majer 1772-1818)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이들 종교의 중심 교리가 우연하게도 자신과 칸트가 완전히 다른 경로를 통해 이르렀던 결론과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하고서 매우 놀라워했다.
칸트와 쇼펜하우어는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한 서양철학 전통의 중심에서 연구했다. 그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했고 이후의 서양철학의 역사에 정통했다.
특히 이들은 로크에서 흄에 이르는 탐구, 즉 인간의 상황을 알고 이해하는 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탐구에 자신들이 관련되어 있다고 느꼈다.
*
쇼펜하우어는 즉시 힌두교와 불교 경전을 읽고 자신의 논변과 동양철학 논변의 유사성을 지적하면서 이를 자신의 글에 인용하기 시작했다.
쇼펜하우어가 가장 주목한 점은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완전히 다른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는데도 실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동일한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이 힌두교와 불교에 따라 형성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힌두교와 불교 이론을 널리 전파한 가장 유명한 유럽인이 되었다.
*
쇼펜하우어가 칸트와 길을 달리는 부분을 살펴보면 늘 불교와 상통하는 방향이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서양철학의 주요 흐름에 맞는 용어로 칸트와 불교를 융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까지 쇼펜하우어는 동양철학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했던 유일한 서양철학자로 여겨진다.
3. 무신론자
쇼펜하우어는 서양 사상과 동양 사상간의 연관성을 밝혀낸 최초의 서양철학라는 점 외에도 개방적이며 철저한 무신론자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홉스와 흄도 사실상 무신론자였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내용을 출판하는 것이 범죄 행위인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신의 존재에 많은 면을 다루지 않았다.
쇼펜하우어는 인격신이라는 관념을 개념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거의 모든 개념에 인간에게서 나왔다면, 인격신의 개념은 ‘신인동형성’보다 나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영혼의 개념과 같이 눈 없이 본다는 것이나, 위장 없이 소화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듯, 뇌 없이 안다는 것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영혼의 개념이 앎과 의지와는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동물과는 독립적인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이는 정당화될 수 없고, 따라서 사용되지 않는다.’
4. 존재의 공포
쇼펜하우어는 경험 세계는 의미나 목적 없이 존재하며 궁극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경험 세계는 모두 주체에 의존적이지만, 우리는 우리와는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갖고 태어나는데, 우리가 이런 환상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세계에서 의지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불렀고, 철학적 이해의 최종적 결과라고 보았다.
쇼펜하우어는 세계를 매우 혐오했다. 그는 동물적 본능을 몹시 끔찍하게 여겼다. 이 세계에 있는 생물은 대부분 사냥을 하고 다른 생물을 잡아먹으며 살아간다. 따라서 매 순간 수많은 동물이 갈기갈기 찟어지거나 산 채로 잡아 먹힌다. 양육강식이라는 말 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현실이다.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다. 폭력과 부정은 어디서나 자주 일어난다. 개인의 삶은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끝나는 무의미한 비극이다. 우리는 평생을 욕망의 노예로 살고 있다. 하나의 욕망을 채우자마자 다른 욕망이 생기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불만족의 상태에 있게 되고 이러한 우리의 존재 자체가 고통의 근원이 된다.
5. 예술의 가치
쇼펜하우어에게는 이 세계라는 어두운 감옥에 수감된 상태에서 잠시나마 평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예술이다.
그림, 조각, 시, 희곡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에서 우리는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냉정한 우리의 의지력을 조금이나마 풀어놓을 수 있고 불현듯 존재의 고통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느낀다.
쇼펜하우어는 개인의 예술을 다른 어떤 철학자들보다 폭넓고 통찰력 있게 다루고 있으며, 특히 음악을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다른 모든 예술을 넘어서는 초예술로 보았는데, 바그너와 구스타프 말러와 같은 음악가들은 쇼펜하우어의 글 중에서 음악에 관한 글이 가장 뛰어나다고 여겼다.
6. 영향력
쇼펜하우어의 영향력이 가장 널리 퍼져 나간 영역은 소설 분야 일 것이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에밀 졸라, 토마스 만, 토마스 하디, 콘데르 등은 자신들이 책을 쓰는데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인정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라레나’, 하디의 ‘테스’ 그리고 체호프, 버나드 쇼, 루이지 리판델로, 사무엘 베케트 등의 회곡에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등장한다.
모파상, 서머셋 몸, 보르헤스 등도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다.
작곡가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부분적으로는 쇼펜하우어의 글에 대한 답변이라고 말한 바 있다.
프로이트는 쇼펜하우어가 자신보다 먼저 억압의 기제를 충분히 설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정신분석학의 초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쇼펜하우어와 무관하게 이 이론을 구축했다고 주장한다.
철학자 중에는 니체, 비트겐슈타인, 포퍼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니체는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자신의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 브라이언 메기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철학의 역사’
브라이언 메기의 이 책은 쇼펜하우어 입문서를 펴낸 사람답게 서양철학사 중에서도 쇼펜하우어 철학을 가장 명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힐쉬베르거, 러셀과는 달리 쇼펜하우어 철학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 중 한 명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