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호수 가는 길/정동윤
산정호수 한 바퀴 돌고 오겠노라고
꽁꽁 묶는 강추위에서 벗어나
수변길 늘어진 솔가지 아래
은은한 소나무 향기와
얼음판 반사되는 햇살 만나러
명성산은 후고구려의 울음 소리
궁예의 눈물 산정호수 되었나
평생 걸어도 절반의 그늘
하루를 걸어도 절반은 햇살
태봉의 흥망 따라 빛과 그림자
산정호수 한 바퀴 돌고 오겠다니까
내 버거운 나이가 걱정 되어
따라나서는 아내와 함께
꿈결같이 다녀온 산속 우물
당일치기 여행의 나른한 여운.
.........
산정호수를 돌면서
한 사흘 집에만 머물다
추위가 주춤한다는 기상 예보
내 휴대폰 검색창의 산정호수가
그림같이 지나가네요
호수의 고즈늑함 속으로
혼자서 달려가려다
마실거리가 부실해 머뭇거리니
아내의 눈빛이 다가왔다
이것저것 설명하다
월요일로 출발을 미루었는데
주일 예배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도 내일 따라나서겠다고
혼자 가는 길이 허전해보여
시절이 하 수상하여
눈길도 빙판길도 염려되지만
특히 나이가 걱정된다고
외로움에 발을 헛디뎌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지 않도록
발길 닿는 데까지 동행하다
안전하게 돌아오겠다면서...
익숙함에서 낯선 곳으로
겨울 호수의 매끄러운 풍경 찾아
커피 넉넉하게 담아
도봉산역 환승센터로 갔다
외출 준비가 좀 길었지만
여행은 늘 기다림으로 시작되고
광역의 1386 번 버스는
도봉산역과 산정호수를 오간다
점심 때를 넘겨 도착
현지 주민의 식당 추천을 받아
괜찮은 식당을 찾아가니
아직도 붐비는 식당이었다
더덕구이 우렁된장국 도토리묵
다섯 가지 나물로 반찬이 넉넉해
공깃밥을 추가할 정도로
맛있는 점심을 마치고 길을 나섰다
후고구려 태봉의 왕 궁예가
나라를 잃고 펑펑 울었다는 명성산
망봉산과 망무봉이 울타리 되어
산에서 흘린 눈물 고여 산정호수
호수는 썰매 터가 되었고
수변 길는 3.2km. 좀 아쉬운 거리
아내의 의견 따라 두 바퀴를,
왼쪽으로 한 바퀴 오른쪽으로 한 바퀴
난 소나무 숲길 따라 한 바퀴
물가 수변 길로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숲길은 힘들 것 같다는 엄살에
그냥 물가로 돌기로 하였다
처음엔 산정호수 한 바퀴 돌고
평강수목원으로 가서
겨울나무 관찰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편안히 수변 길을 걸었죠
언젠가 다시 산정호수 생각날 때
혼자 소나무 숲길 찾아보고
평강랜드도 다녀오면 되는 일
소나무 늘어진 호수길이 가볍다
세상의 풍경 다 볼 수 없지만
좋은 풍경은 늘 즐기는 자의 몫
아무리 빼어난 풍경도
우울한 마음엔 채워지지 않는다
돌아오는 버스의 차창으로
겨울 저녁의 짧은 해가
둥지로 돌아가는 새 위로하듯
불그스레 비춰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