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율이 빚어낸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 가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사람의 과거를 그려낸 '푸름애'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MV의 시작은 어떤 이유에선지, 숲 속에 버려진 실험체 파란이를 비추고 있습니다.
결국 경계를 풀고 파란이를 거둬주기로 합니다. (여담으로 경계하는 모습이 고양이 같아서 귀여워요)
그 이후, 친해진 두 사람은 함께 숲 속을 돌아다니며 추억을 쌓습니다.
이 행복이 영원하지 않음을 암시하듯, 숲 속을 배회하는 로봇들.
하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행복한 삶을 즐기는 두 사람.
머리카락을 꼬아 구멍으로 파란이를 보는 소녀.
어쩌면 이 노래는 소녀가 파란이에게 보내는 곡이 아닐까요?
외로움 속에 든 볕. 파랗고 파란 푸름을 사랑하는 소녀.
파란이는 소녀에게 그 자체로 푸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하지만 이 행복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암시합니다.
시점은 다시 소녀로. 소녀는 변화를 예감한 것인지, 자신의 목걸이 장식을 파란이에게 건네줍니다.
소녀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미 소녀는 사람 속에 섞여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요.
결국 소녀를 떠나보냅니다. 함께 가줄 수 없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두 사람은 그렇게 이별합니다.
파란이가 소녀를 완전히 잊어버렸을 즈음
신이 되어 나타난 소녀를 비추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개인적으로 이 노래는 외로운 소녀가 친구를 만나 행복해지는 모습을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유일하게 진실인 기억을 만들자는 가사. 사람에게 수없이 상처받고 힘든 소녀가 파란이에게 구원받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 소녀의 푸름은 '파란'이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행복을 가둬 둘 수는 없죠. 파란이는 유토피아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벽 안의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소녀는 꿈에도 모른 채로요.
순수한 파란이는 소녀와 함께 벽 안으로 가고 싶어합니다. 아마도 소녀는 주체가 안 되는 파괴적인 능력 탓에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한 것 같은데, 그걸 꿈에도 모르는 파란이는 월담소녀의 품 속 개구리처럼 담을 벗어날 생각만 합니다.
결국 소녀는 자신의 증표를 보여주며 파란이를 보내줍니다. 용기를 내지 못한 채, 한 발 내딛지 못한 채로 자신의 푸름을 떠나보냅니다.
파란 없는 소녀의 생활은 <월담소녀>에서 이어져요. 개구리와 떠난 친구를 겹쳐 보고, 혼자서 친구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도 합니다. 파란이를 다시 손 안에 넣고 싶어하는 것 같죠.
결국 다다른 것은 벽 앞.
소녀는 제목대로 월담, 즉 담을 넘는 것 대신 담을 들어올립니다. 소녀는 모순적이었죠.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을 바라면서 파란이만큼은 자신에게 귀속되어 있기를 바랐어요. 그렇기에 벽을 들어올려 모두를 가둡니다. 자신의 관점에서 '행복'해 보이는 규칙을 강요하면서요. 그렇게 소녀는 디스토피아를 만들고 맙니다.
서로가 다른 걸 미워하지 않는 세상
이야기는 파도혁명으로 이어지죠. 소녀는 다름을 미워하지 않는 세상을 만듭니다. 개성을 짓밟아서 다름을 없애버리면 서로를 미워하지 않잖아요. 소녀는 자신을 상처주었던 그 세계를 똑같이 만들고 말죠. 이 대목에서 저는 현실을 정확히 꼬집었다고 생각합니다. 몰개성한 사회, '튀는 것'을 미워하며, 자존심과 체면과 겉치레에 모든 것을 거는 세상. 그 속에서 소녀처럼 유니크한 존재는 상처받기 일쑤.
자신의 개성을 잃지 말라 말하면서 이상해 보이는 것은 배척합니다. 그 속에서 소녀는 아팠죠.
한때 자신의 푸름이었던 파란이에게 소녀는 공격당합니다. 너도 결국 똑같다고 말하는 듯이요. 여기서 저는 상처받고 깎였던 개성적인 사람들이 결국 자신을 죽이고 세상에 섞여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토록 증오했던 세상에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는 것이 소녀의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이렇게 길고도 장대한 세계관에 쉼표를 찍듯 등장한 <푸름애>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노래 뒤로 충격적인 스토리와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어쩌다 소녀가 흑화했는지, 파란이의 정체는 무엇인지. 수없이 많고 어지럽게 엉킨 떡밥과 시간선을 정리하듯 등장한 신작은 말도 못 할 정도로 제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스토리 이외에도 생활 소음을 접목해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반주와 환상적인 MV의 작품성까지! 좋다는 말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좋은 곡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감성을 접하기가 힘든데, 음율이 말 그대로 파란을 일으키고 있네요. 언젠가 한국 음악의 판도를 뒤집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좋습니다...
너무 길어진 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청량한 음색과 아이디어로 좋은 노래 내주시는 음율 정말 감사합니다! 더 많은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율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