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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4일 대림절 둘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24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하겠습니다. 성경은 마25:14-30절(신43쪽)입니다.
제목: 달란트 비유
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주일에 사도신경을 통해서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고 주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을 고백하면서 그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23-25장에서 그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길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마태복음의 종말론이라고 부릅니다. 종말의 심판에는 언제나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으로 나눌까요? 예수님은 이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5:24절입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은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보내신 이신 하나님, 즉 하나님의 복음을 믿느냐 아니 믿느냐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종말에 대해 말씀(23-25장)을 하시기 전에 ‘그리스도(메시아)’에 대해 질문(22:41-46)을 하셨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 자신을 거절한 예루살렘에 대하여 안타까워하시며(23:37), 심판(23:38)과 그의 재림(23:39)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즉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은 이유는 다윗의 후손이신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을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종말론 강화에서 최후 심판의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언약 관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최후 심판의 대상은 언제나 모든 사람(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포함)입니다. 24:22절입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리라.” 24:30절입니다. “그때에 인자의 증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처럼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주님의 최후 심판의 대상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14-30)의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바르게 준비하고자 합니다.
달란트 비유(14-30)는 우리말 성경은 ‘또’이지만, 원문은 ‘왜냐하면’이라는 이유의 접속사로 시작하여 앞에 있는 열 처녀 비유(1-12)에 근거하여 ‘그런즉 너희는 깨어 있으라’(13)는 예수님의 명령과 연결되어 시작합니다. 13-14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깨어 있으라. (왜냐하면)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리라(못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명령은 천국에 대한 열 처녀의 비유(1-12)에 근거합니다. 열 처녀는 모든 인류를 가리킵니다. 신랑을 기다리면서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은 혼인 잔치(구원)에 참여하였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은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름’이 천국에서 그들의 운명을 영원히 결정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름’이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눅18:8절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성도 여러분, 이처럼 달란트 비유(14-30)는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믿음을 갖고 ‘깨어 있으라’(13)는 예수님의 명령에 대하여 어떻게 깨어 있을 가에 대한 비유입니다.
첫째, 타국에 갈 때 자기 소유를 종들에게 맡기는 주인입니다(14-15).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같기 때문이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천국(1)은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다는 것입니다. 즉 달란트 비유도 천국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말씀하시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타국에 간다’라는 것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승천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들’은 누구일까요? 언뜻 보면, 그의 제자들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후 심판의 대상이 모든 사람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 종들’은 신자와 불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하여 모든 사람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28:18).
주인은 자기 종들에게 각각 지닌 재능과 능력에 따라 다르게 자기 소유를 맡겼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자기 소유에서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 두 달란트를, 그리고 한 사람에게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달란트’에 대하여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현재 ‘달란트’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나 은사’로 이해되지만, 예수님의 당시에는 ‘달란트’는 단지 교환을 위한 돈(은)의 단위(무게)였습니다. 당시 ‘한 달란트’는 많은 중량의 은(돈의 액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가 무엇인가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주인이 종들에게 맡긴 ‘자기 소유’ 즉 주인의 소유가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는 주인이 종들에게 단지 ‘주인의 소유’를 각각 다르게 맡겼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종)에게 맡긴 주님의 소유가 무엇일까요?
둘째, 타국으로 떠난 주인을 위해 장사하는 종들입니다(16-18).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주인이 돌아올 것만을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깨어 있으라’(13)는 예수님의 명령에 종들이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 있다’라는 것은 종들이 맡은 주인의 소유로 바로 가서 장사하여 이윤을 남기는 것, 즉 주인의 소유로 주인이 원하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의 돈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땅을 파고 감추어 두었습니다(18). 그는 ‘깨어 있으라’(13)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돌아온 주인에게 결산하는 종들입니다(19-30).
먼저 19절입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여기서 ‘오랜 후에’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재림이 많이 지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5, 24:48). 그러나 그의 재림은 반드시 있을 것이며, 재림 후에는 회계(심판)하시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 날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16:27).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와 결산하실 날이 반드시 있음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칭찬과 상급과 구원을 받은 종들입니다(20-23).
먼저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의 보고와 주님의 판결입니다. 20-21절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이제 두 달란트 받았던 자의 보고와 주님의 판결입니다(22-23). 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도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와 같이 주인의 소유와 남긴 이윤을 가지고 와서 주인에게 보고하였습니다(22).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들과 같이 주님이 우리에게 맡긴 것과 그것의 풍성한 열매를 가지고 주님에게 보고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자(20)와 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22)에 대한 주인의 판결문이 같습니다(21절과 23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들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주님의 동일한 칭찬을 받았습니다. 칭찬의 근거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착하다(아가도스)’는 ‘선하다’라는 의미로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선함을 나타내는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칼로스’라는 헬라어는 ‘착한 또는 선한’이라는 의미로서 주로 인간관계 속에서의 윤리적 측면을 나타냅니다(5:16). 그리고 ‘충성된(피스테)’와 ‘충성하고 있다(피스토스)’는 ‘신실하기를 계속하다, 지속적으로 신뢰한다’, 즉 ‘주인을 믿는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주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이들은 주인에게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두 개의 보상, 즉 상급과 구원을 받았습니다. 첫째의 보상은 ‘많은 것’을 맡게 되는 것, 즉 상급이며, 둘째는 주님의 즐거움(기쁨)에 참여하는 것, 즉 구원의 혼인 잔치입니다. 여기서 ‘많은 것’은 ‘작은 일’ 즉 그들이 주인의 달란트를 가지고 많은 이윤을 얻은 일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천국에서 받을 상급은 영원하고 더 영광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 주신 상급이 ‘많은 것’이라는 동일한 표현으로 되어 있지만, 똑같은 것을 받게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이는 열 달란트 가진 자가 한 달란트 받은 자로서 빼앗는 한 달란트를 더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28). 이것이 천국의 새로운 영적 원리입니다. 29절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그렇습니다. 종말에 가서 하나님은 영적으로 부여한 자들 더욱 부요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은 열 므나 비유(19:11-27)’에서도 열 므나를 남긴 자는 열 고을 권세(17), 그리고 다섯 므나를 남긴 자는 다섯 고을 권세(19)를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에게 받은 주님의 소유인 달란트를 가지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서 주님의 재림을 위해서 ‘깨어 있으라’(13)는 예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우리와 결산하실 때, 우리 모두 더 크고 더 영광스럽고 영원한 상급과 함께 주님의 기쁨 즉 구원 잔치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책망과 영원한 형벌을 받는 종입니다(24-30).
한 달란트 받았던 자의 보고입니다. 24-25절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 즉 주인은 수고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이익만을 취하는 사람으로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서 주인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다가 가져왔다고 말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인에 대한 그의 지식이 바른 지식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지식은 아주 완전히 잘못되며, 거짓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16:16)이시며, 우리를 위한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늘과 땅의 주인(28:18)이시라고 증거 합니다. 특히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20:28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심으셨습니다. 요12:23-2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이 되신 것입니다. 그 결과로 주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천국을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의 소유인 달란트로 풍성한 열매를 맺은 것도 다 주인의 대속의 죽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달란트를 받았던 자와 같이 주인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안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가롯 유대처럼 예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한 불신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같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거절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깨어 있으라‘(13)는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에 대한 주인의 책망입니다. 26-27절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주인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26). 여기서 ‘게으르다’라는 것은 주님의 일(천국)에 대하여 게으르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는 자기의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주인은 주인에 대한 그의 지식(말)대로라면, 그가 마땅히 주인의 돈을 취리하는 자에게 맡겼다가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라고 말씀(27)하면서, 그가 그것도 하지 않았다고 그를 책망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주인의 소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우리는 우리가 받은 주인의 소유로 무엇인가를 하여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자기 소유(달란트)’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것은 천국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그의 천국 복음으로 우리 성화 구원(거룩함과 의의 열매)을 이루고, 더 나아가 그 복음을 전파하여 모든 족속을 그의 제자로 만들어야 합니다(28:19-20).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는 복음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믿음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한 달란트를 받은 자에 대한 주인의 판결입니다. 28-30절입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여기서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무익한 종’으로 표시됩니다. 천국에서 쓸모가 없는 종이라는 것입니다. ‘바깥 어두운 데’는 굳게 닫힌 천국 문의 바깥을 의미하는 곳으로써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원한 사망을 의미합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깨어 있으라’(13)는 예수님의 명령은 그의 제자들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이를 부인하면, 다시 오신 주님은 세상 사람을 심판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천국 복음을 가지고 성화의 구원, 즉 거룩함과 의의 열매를 맺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면서, 그리고 복음으로 모든 민족을 주의 제자로 삼으면서,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깨어 있으라’(13)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깨어 있는 자, 즉 그의 복음으로 열매를 맺는 자들에게는 천국의 상급과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지만, 그의 복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복음을 거절하는 자), 즉 ‘깨어 있으라’(13)는 예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영원한 사망이라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달란트 비유의 교훈대로 주의 재림에 대하여 ‘깨어 있으라’(13)는 주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시어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큰 상급과 함께 주님의 기쁨, 즉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175장을 부르시고 다 같이 기도하신 후에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