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너더리통신 81/180423]‘또조카’의 스몰웨딩(작은 결혼식)
‘또조카’가 장가를 갔다. 맘껏 축하해도 부족할 만큼 좋은 일이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리라. 또조카가 누구를 말하는지를. 당연히 친조카나 처조카는 아닐 터. 나의 가장 친한(요즘말로 절친이다) 친구의 아들을 이른다. 떡애기 때부터 알고 있으니, 친척 못지않다고 봐도 될 터. 또조카만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여섯 살 때인가, 서울 우리집에 놀러왔는데, 자그마한 녀석이 거실 소파에 기대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당시 유행하던 ‘담다디’ 노래를 불러 우리를 뒤집어지게 했던 장면. 친구들이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낳으면 아이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큰아버지로 부르라!느니 막내삼촌이라 부르라!느니. 이때, 기발한 신조어가 탄생했다. 또삼촌! 말하자면 ‘가짜삼촌’이다. 각자 아들이 있으므로, 나도 또삼촌, 친구도 또삼촌이 되었다. 하여 친구의 아들은 또조카이고, 아버지 친구의 아내는 또숙모이다. 지난해 나의 아들이 아들을 낳았다. 친구는 나의 손자를 ‘또손(자)’이라 불렀다. 우리 아들들이나 친구의 아들은, 어릴 적부터 친사촌이나 이웃사촌도 아니면서, 또삼촌이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친척’과 어울려 살았기에 ‘진짜 친척인 줄로 알았다’고 훗날 고백하기도 했다.
아무튼, 지난 3월 17일, 이 녀석이 양가 친척 각 100명씩 참석하는 ‘작은 결혼식(스몰 웨딩)’을 했다. 그동안 금일봉 축의금을 몇 번이나 했을까. 이 녀석도 어쩔 수 없이 그 범주에 들었다. 아버지 친구나 지인을 초대하지 않는다해도 ‘또삼촌’만큼은 예외일 수밖에 없는 일. 예식은 사람 수처럼 심플하게 진행됐다. 평소 제법 까불까불하던 녀석이 그날은 주인공답게 제법 의젓했다. 대견하고 기특했다. 요즘 서른, 서른다섯이 넘어도 결혼을 생각지 않은 자녀들도 많은데, 저희가 알아서 간다는게 어딘가. 업어주어도 되리라. 사회는 내 큰아들이 보았다. 저희끼리 그렇게 의가 좋으니 보기에 심히 좋다. 주례선생님도 모시지 않고, 양가 혼주(婚主)가 덕담(德談) 한 마디 하는 것으로 끝나니, 어딘가 공백이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의식이 상당히 보편화된 것같기도 하다. 1시간마다 벽돌 찍어내듯이 한쌍씩 탄생하는 저잣거리의 식장과 피로연장은 사람들의 홍수로 난리블루스가 아니던가. 혼주에게 ‘눈도장’ 찍으려는 하객들의 줄서기 등 ‘도때기 시장’을 방불케하는 결혼식 풍경에 질리고 식상한 분들도 많으리라. 양가만 합의한다면 스몰웨딩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아니, 장려할 일인 듯싶다. 그래도 막상 닥치면 왠지 ‘관행대로 하지 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도 3년 전 두 아들을 봄․가을에 성혼(成婚)을 시켰지만, 예식이라는 세리머니는 ‘장난’이 아니었다. “주면 부담을 주는 것이고, 안주면 섭섭해 한다”는 청첩장은 대체 어느 선까지 주고 보낼 것인지,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수 년 전 어느 일간지가 기획특집으로 ‘작은 결혼식’을 연중 보도했다. 그때는 별로 신경을 쓴 기억이 없었는데, 막상 아들들의 결혼식이 닥치니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이 심하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직장생활 30년이 넘었는데, ‘본전’ 생각이 안난다면 거짓말일 듯. 그동안 ‘고지서 없는 세금’을 낸 게 무릇 기하였을까? 그냥 일가친척끼리 조촐하게 하면 ‘품앗이’로 치자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가. 그리고 식후에 알리는 문제도 골칫거리가 아닌가. 하여, 현 직장은 옮긴지 4개월밖에 안됐으니 알리지 않기로 하고, 두 前직장에는 염치 불구하고 인트라넷으로 공지해 달라고 했다. 오면 오고, 안와도 할 수 없고, 그렇게 “퉁”을 쳤다. 일일이 어떻게 청첩장을 보낸단 말인가? 아들에게 100여장만 달라고 하여, 피치 못한 사이는 직접 전달하는 것으로 하고, 이무러운 지인들에게는 모바일청첩장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 어떻게 치렀는지, 한마디로 “휴-”이다.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 한 해에 아들 둘 ‘해치운 일’인 것같다.
처음 작은 결혼식을 한다는 친구의 전언에 “잘 생각했다”고 말했지만, 그게 잘 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보니 작은 결혼식은 사회적으로 확산되면 될수록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사회지도층들이 솔선수범을 해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혼주들이 식이 끝난 후 알리지 않아서 정말 서운한 사람들에게는 식사라도 대접하며 취지를 이해시키면 될 터이고, 누군가 앞장서 하나씩 실천해 나가야 확산이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요즘 젊은 친구들은 부모들과 세대 차이가 많이 나, 자기들의 취향을 고집하는 경향까지 있으니, 그 문제로 서로 불편할 일은 없어야 할 일이다.
그렇게 또조카는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전화를 했다. 그러고 한참 지난, 지난 토요일(21일) 서울 인사동 맛집에서 신혼부부를 초대하여 점심을 샀다. 또조카의 색시, 그러니까 친구의 며느리는 음전하고 말수도 적었다. 학교 같은과 선후배로 만났다는데, 프리랜서 방송인이라고 했다. 또삼촌이라는 호칭이 생소해 놀랐다고도 했다. 연애를 제법 한 사이인데도 서로 존칭을 쓰는 게 보기에 심히 좋았다.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한껏 빌어준, 모처럼 신선한 모임의 주말 점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