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생긴 일.
아내는 다친 팔이 아직 완전하지 않아 무거운 짐을 들지 못한다. 오늘은 바깥에 나가면서 '여보 오늘 은행일도 좀 봐주고 시장에 나가서 이것들 좀 사다 줄래요 ?' 하면서 메모지에 몇가지를 적어준다. ' 냉장고에 돼지고기 사 논 게 있으니 이것들 사서 점심 때 구워드시면 돼요 ' 하고.
나는 가끔 재래시장 가는 걸 좋아한다. 여자들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사기도 하고 시장의 시끌뻑적함도 즐겨 들여다보고 때로는 물건을 흥정하면서 다투는 모습을 재미있어 하기도 한다. 오늘은 먼저 우리은행에 가서 아내가 시킨 일 두가지를 쉽게 처리했는데 이런 은행일도 제대로 못해 아내에게서 핀잔을 듣는 일이 자주 있다. 우리은행 일을 마치고 국민은행으로 간다. 거기서 돈을 좀 뽑아서 다시 농협으로 간다. 매달 칠십여만원의 연금이 들어오면 정기적으로 하는 일인데 친 손자 한 녀석 외손자 두 녀석 통장으로 50,000원씩 저축을 해 주는 일이다. 통장에 돈을 넣고 조금씩 불어가는 통장을 들여다 보는 즐거움도 나의 소확행 (小確幸)중의 하나이다. 은행 일을 보고 다이소를 지나면서 뭔가 살 게 있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턱대고 안으로 들어가 두 바퀴 돌아보는데도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반드시 메모를 해야 하는데 깜빡 잊어버리면 이렇게 된다. 할수없이 그냥 나와서 바로앞의 마트로 들어간다. 아내가 메모 해 준 버터 치즈 김 청하 한 병 (모레 부모님 성묘 갈 때 가져 갈) 복숭아 포도 양파등을 사서 계산대로 오니 아가씨가 배달입니까 ? 한다. 얼마부터 됩니까 ? 삼만원부터입니다. 이거 모두 얼마 되지 않으니 그냥 가져가지 뭐 하는데 계산이 37,500원이 나온다. 배달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 빨리 결정하세요 뒤에 기다리고 있어요 ' 하면서 짜증 난 말투다. 배달해 주세요 하고 나왔는데 나의 행동이 항상 이런 식이다. 신속히 결정을 못 하고 망설이다가 핀잔을 듣는다. 괜히 늙은이가 젊은 아가씨한테서 핀잔을 들으니 기분이 상하는데 내 실체가 그러니 어쩌겠는가 ?
마트에서 나와 유기농 상점 초록마을이란 곳에서 상추 깻잎 콩나물을 사서 시장 바구니에 넣고 계산을 하는데 이번에는 정신을 차리고 빨리 지불을 하고 나온다. 마지막으로 정육점에 가서 닭도리탕용으로 닭 한 마리를 사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는데 더워서 샤워를 하고 손수건을 물에 빨려고 하니 아까 다이소에서 생각 안 난 게 이제사 생각이 난다. 요즘 일일이 세탁기를 돌리지 않고 수건 런닝셔츠등은 아내가 팔도 아프고 하니 세면대에서 내 스스로 간단히 빨아서 널고 하는데 빨래 할 때 조그만 빨래판이 있으면 편리하겠다 싶어 다이소에서 찾아봐야겠다 했는데 그만 까먹어 버린 것이다. 늙을수록 메모광이 돼야 하는데.
집에 돌아오니 점심때가 되어서 사 온 상추 깻잎을 깨끗이 씻고 돼지고기를 좀 굽고 해서 막걸리를 한 잔 하니 마트에서의 일도 말짱 잊어버리고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오후에는 뒷산에 가서 숲속을 좀 거닐다 와야지.
2018.8.30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