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풍경이라도 언제 누구랑 갔냐에 따라 어떨 때는 최고의 여행지, 어떨 때는 최악의 여행지로 기억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남도 여행이 처음인 선배에게 여행 내내 미황사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해서 선배는 미황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었다.
저녁 어스름한 푸르름 속, 달마산의 하얀 바위를 닮은 기둥들, 창살에서 은은히 배어나오는 모과빛 불빛은 누구와 함께 가도 낮은 탄성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기에 2박3일 여행의 방점을 찍기에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미황사는 너무 맹숭맹숭했다. 올 때마다 단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던 미황사가 무색무취, 개성없는 그냥 절간이었다. 대웅전 뒤 바위도 맹숭거리고 덜렁 놓인 대웅전은 자기 자리가 아닌 듯 벌쭘하게 서 있고. '미황사' 낮게 부르기만 해도 그리움이 배어나오던 미황사가 저런 모습이었다니...
오늘의 본론인 용문사 이야기를 하기 전 미황사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다. 신라의 마지막 마의태자가 천년전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다 꽂은 지팡이가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된 양평 용문사하고 똑같은 이름의 절이 경북 예천에도 있다.
이곳은 소백산 용문사. 지금에야 사방으로 뚫린 고속도로 덕분에 접근하기 쉬워졌지만 얼마전까지도 예천 용문사는 내륙 속의 섬이라 불릴만큼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오래전 어렵게 용문사에 찾아간 적이 있다. 대장전 안에 있는 윤장대를 보기 위해서였다.
윤장대는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 때 쓰던 팔각형의 불경궤이다. 티벳의 마니차처럼 돌리기만 해도 불경을 읽은 것과 똑같은 효험이 있는 글자를 모르는 민초들을 위한 기원의 도구였다.
날도 더운데다 백암온천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돌아오던 길이라 너무 지쳐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오자는걸 너무 먼 곳이라 끝까지 우겨 용문사쪽으로 돌아왔다. 시모와 남편은 주차장에서 기다리겠다고 나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한여름 차 안에서 기다리는 시모 때문에 윤장대의 세밀한 조각을 음미할 시간도 후불 목각탱과 눈 맞출 여유가 없었다. 대장전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밖에서 빛의 속도로 대장전 안을 쓰윽 쳐다보고 돌아왔다. 감동이고 자시고 할게 없었다. 그 때의 기억 때문에 용문사는 다시 가고픈 곳은 아니었다.
그 뒤 두세번 용문사 옆을 지나갈 일이 있었음에도 굳이 들를 이유가 없었다. 초파일 삼사기행팀의 숙소가 예천 용문사 근처였다. 봉암사, 대승사, 김룡사와 윤필암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에 반했던 터라 더 이상의 감동은 필요없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다음날 아침 산책을 겸해 용문사에 갔다.
어제 초파일 야단법석을 끝낸 용문사는 고요 그 자체였다. 싸한 아침 공기, 아직 마르지 않은 아침 이슬, 아침 햇살에 반사되는 공기 안의 촉촉함. 어제 저녁 다녀올걸, 짧게 주어진 시간이 안타까웠다.
곧장 대장전 안으로 들어가 아무도 없는 대장전에 홀로 앉았다. 대들보 위의 물고기가 공중에서 유영하고, 윤장대의 꽃살이 활짝 피어나며 넘실거렸다. 카메라를 들고 왔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금방 다행이란 마음으로 바뀌었다.
카메라를 들고 갔으면 사진 찍느라고 이처럼 흠뻑 대장전을 느끼지 못했을거다. 그 사이 사람들이 몰려와 감탄을 하고 윤장대의 꽃잎을 세고 사진을 찍느라고 난리다. 사람들 휴대폰으로 대장전 풍경을 몇 개 기록해 카톡으로 받았다. 용문사가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바뀌었다.
기계로 깎은 날카로운 탑, 어김없는 중창불사... 절 자체가 고즈넉하진 않다. 윤장대와 목각탱, 대장전을 빼면 전혀 매력적인 곳도 아니다. 게다가 윤장대를 돌리지 말라는 아크릴판의 경고문판이 참으로 위압적이다. 덜 고압적으로 소박하게 써 놓으면 사람들이 막 돌리나? 그럼에도 그 아침 대장전에서의 시간이 참 좋았다. - 2013.05.18 초파일 삼사순례
350도 물이 휘도는 회룡포, 장안사 옆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물길이 끊어져 호수가 생긴 호수가 우각호인데, 서울의 석촌호수가 우각호라고... 매일 지나가면서 도저히 한강과 연결이 되지 않던 석촌호수가 이해됐고, 시간이 지나면 회푱포를 감싸고 도는 의성천도 우각호가 된다고 동행한 친구가 말해줬다.
예천에 가면.... 용궁 회룡포를 지나칠 수가 없다. 동행한 친구가 자기 엄마가 용궁 김씨라고 <용궁>이란 동네가 정말 존재한다고 신기해했다. 내성천이 350도 휘돌아 치는 회룡포가 한 눈에 조망되는 장안사 전망대에 올라갔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회룡포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지리시간에 배운 지식을 아무리 총동원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눈앞에 펼쳐진 350도의 물의 휘몰이가 신비롭다.
다리가 생기고, 길이 넓어지고, 사람들이 몰려와도 육지 속의 섬 회룡마을은 소박하고 여전하다.(처음 90년대 초반에는 의룡포였었다) 그 흔한 팬션, 카페, 음식점 하나 없으니 굳이 사람들은 회룡대에서 회룡마을과 350도의 내성천 물줄기를 보고는 탄성을 자아내고 회룡마을에 들어갈 일이 없으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인간떼를 피한 회룡마을은 액자 속의 그림처럼 비현실적이다.(지금은 낙동강 4대강 사업으로 금빛 모래밭도 마을도 저 풍경이 다 사라졌단 얘길 전해 들었다)
그리고 예천에 왔으면 점심은 무조건 박달식당 용궁순대. 국물반, 머릿고기가 반인 순대국밥이 삼천원, 순대국과 밥이 따로 나오는 따로국밥은 삼천오백원, 다른 곳에선 대창인가를 사용하는데 반해 이곳 용궁순대는 막창을 사용해 두껍고 맛있다고... 서울에서는 만나기 힘든 착한 가격에 품질이다. 2008년 3월 가격이다. 1년반뒤 2009년 7월에 갔더니 순대국밥은 오백원이 올라 3500원, 순대는 천원이 올라 6,000원이었다.
이젠 존재하지 않는 회룡포 금모래에 용궁 순대가격이겠지만 예전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