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탄 롤러코스터
최종호
“교장선생님 휴일에 전화 오면 불안하시죠?” 보건교사 목소리였다. 평소에 전화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다, 그 말까지 들으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올 2월부터 31번 확진 환자로 인해 대구에 있는 신천지교회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확산된 코로나19. 질병관리본부의 신속한 대응으로 불길이 잡혀 잠잠해졌는가 싶었는데, 엊그제부터 다시 이태원 클럽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되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가 클럽 5곳을 다녀간 기간에 이용한 사람은 자진검사를 종용하는 소식이 이어졌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걸려온 보건교사의 전화는 불안을 가중시켰다. 한동안 우리 지역에서는 확진자가 거의 없었기에 이대로 가면 개학을 순조롭게 할 수 있겠구나 싶어 안심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우리 학교 원어민 교사를 포함하여 전남 지역의 5명이 5월 연휴에 이태원을 다녀왔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진다. 확진자가 다녀간 동선과 겹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한 가닥 위안은 되었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상황은 아니었다.
얼마 후 보건교사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원어민이 확진자와 밀착접촉자는 아니지만 다른 직종과 달리 학교 교직원이 감염되면 학생을 통해 지역사회 감염우려가 커진다는 것을 강조하여 검진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오후 늦은 시각에나마 원어민이 사는 주소지 인근 보건소에서 검진을 받고 그 결과는 다음날 아침에나 나온다고 한다. ‘양성반응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설마…….’ 감염병 정국에도 학교에는 긴급돌봄이 진행되고 있다. 이 기간에 나오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 수업도 진행된다. 이태원을 다녀온 이후에도 영어 수업이 일주일 간 진행된 걸 알고 있었기에 더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과 원어민 모두 마스크를 낀 상태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지만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도교육청 지침은 영어수업을 온라인으로 하도록 되어 있는데 아무리 아이들을 위한 좋은 의도였다 하더라도 잘못되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어민은 자율격리를 하도록 했지만 수업을 받은 아이들과 가족은 또 어떻게 하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검진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일요일에는 지인 몇 명과 고흥 팔영산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 어렵사리 한 약속을 나로 인해 깨버리기도 미안했지만 가더라고 마음은 천근만근일 듯 싶었다. 긴 고민 끝에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염려한다고 검진 결과가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고,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음성이 나올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다.
일요일 아침, 광주를 출발하여 팔영산 입구에 도착하니 9시 반이 넘었다. 팔영산은 신비로운 봉우리가 8개나 되어 부쳐진 이름이다. 교직에 있는 지인들이 아니기에 고민을 공유할 수도 없었지만 산을 오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조바심에 두 번째 봉우리를 앞두고 보건교사에게 전화를 했으나 신호만 갈 뿐이었다. 회신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검진 결과는 오후 1시 이후에나 나온다고 한다. 오후 1시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인데 길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오후 2시경에 전화가 왔는데 결과는 음성이란다. 천만다행이다. 음성일 확률이 높다는 예상을 했으나 ‘만에 하나’ 라는 불안한 마음이었기에 기쁨은 배가 되었다.
다음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출근했다. 교무실에 들러 교감과 토요일과 일요일에 마음 졸였던 얘기를 경험담처럼 나누고 있었다. 보건교사도 합류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번에 서울에 같이 간 원어민의 생활 동선을 자세히 알아보았더니 전남에서 올라간 원어민 세 명이 다른 지역의 원어민 두 명을 만나 같이 사흘간 생활했다고 했다. 문제는 두 원어민 중 한 명이 확진자가 다녀간 기간 동안 이태원 클럽에 다녀왔으며 현재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는 것이다.
출근할 때의 가벼운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없이 무거워졌다. 만약 그 원어민이 양성으로 판정되면 우리 학교 원어민은 밀접접촉자가 되기 때문에 14일 동안 자가격리에 들어가고 격리가 끝날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순간 머리가 복잡했다. 우선 긴급 돌봄 기간 중 원어민과 대면접촉을 한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아이들을 학교에 나오지 못하도록 각 가정에 전화하여 양해를 구했다. 도교육청의 신속한 지침에 따라 학교 선생님들도 재택근무에 들어가도록 하였다. 다행히 오후에는 이태원 클럽에 간 다른 학교 원어민이 음성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휴!"
학교는 관리자를 비롯한 필수 인원만 근무했다. 자율격리에 들어간 원어민은 담당교사가 소통하고 지원해 주었다. 날마다 발열과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필요한 생활용품은 대신 구매하여 문 앞에 놓아두었다. 자율격리 마지막 날까지 혹시나 발열 증세가 있을까 봐 매일 보고를 받으면서도 늘 긴장감이 들었다. 우리 학교 원어민을 비롯하여 이태원을 방문한 다른 학교 원어민들도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천만다행이다. 한 학교에서라도 양성반응 확진자가 나왔으면 그 파장은 상당히 컸을 것이고, 그로 인한 관리책임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원어민은 보름간의 자가격리가 끝나고 출근하였다. 교무실에 들러 “미안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연신 허리를 구부리고 인사한 후 2층 영어실로 올라갔다. 이 모습을 보고 교감과 마주보고 웃었다. 원어민의 사과가 진정성으로 다가왔다. 본인도 많이 놀라고 괴로웠을 것이다. 원어민으로 인한 그간의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밉기 그지없지만 우리말도 못하고 나라 사정에 어두우니 상황 판단을 잘못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외국인들이 이태원을 안방 드나들듯 하며 이곳을 다녀온 것이 자랑거리라고 하는데 이번 감염병 확산의 파장을 어찌 예견이나 했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본국에서의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자율격리기간에 많이 불안해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욱 짠해졌다.
해방 이후 3월에 개학이 이뤄지지 못한 2020학년도는 역사에 오래 남을 것이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도 서서히 정착되고 있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했던가. 이를 통해 IT강국의 면모를 세계에 떨치고,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한 선진화된 의료 체계는 세계가 인정한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고 있다. 백신이 나오지 않는 한 겨울까지도 이어질 수가 있다고 하니 변화되는 교육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학교의 모습이 기대된다.
나라의 보배인 아이들이 생활하는 학교는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 몇 년 모은 적금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고, 보고 싶은 사람들과 아무 때고 만나 밥과 차를 나눌 수 있는 그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나날이었는지 다시 깨닫게 된다. 롤러코스터 타듯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가슴을 쓸어내린 이번 일을 교훈 삼아 감염병 확산과 예방에 작은 구멍이라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첫댓글 일상의 고마움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글 잘읽었습니다.
학생을 사랑하는 교장 선생님의 마음이 잘 드러났습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한 덕분입니다. 문장도 좋아요.
그런데 어색한 번역 투 말 '-로 인해(인한)'가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번역 투 말을 다룬 내용은 우리 단톡방에 올려서 공유하기로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