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필자벌이후 인벌지(國必自伐而後 人伐之)
함석헌
씨알 여러분, 안녕하신가 묻기에는 시국이 너무도 소란해졌습니다. 서로 인사를 바꾸고 복을 빌기에는 문제가 너무도 다급해졌습니다.
어제까지 사상(史上)에 예가 없는 발전을 자랑하던 나라에, 오늘 갑자기 서울시민이 피난준비로 미숫가루를 만들기에 급급하다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어리석은 국민입니다.
헛간 하나가 무너진다 해도 하루 이틀에 되는 법은 없습니다. 반드시 몇 달 몇 해를 두고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안보문제가 어찌 하루 아침에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와서 갑자기 당황하고 서둘고 떠드는 것은 그동안 벌써 언제부터 있는 문제를 자거나 눈을 감고 몰랐거나 그렇지 않으면 딴 장난을 하느라고 무시했던 탓으로 온 것일 것입니다.
분열 있을 수 없는 것이 나라입니다. 분열 생각 아니하는 것이 사랑 입니다. 나라는 사랑으로 하는 것이지 다툼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사랑으로 받으면 다 살았습니다. 다툼으로 들으면 다 죽었습니다. 어머니의 말도 욕으로 들으면 그 집은 이미 망한 것이고 지나가는 사람의 비평도 좋은 뜻으로 받으면 이웃입니다. 마음에 달렸지 말에 있지 않습니다. 글쎄 왜 분열로 들렸을까요? 슬프고 답답합니다. 분열이라니, 갈라서는 무엇을 가질 것입니까? 누가 가질 것입니까? 나라 안에서는 누구가 있을 수도, 무엇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사람과 모든 생각과 모든 행동을 하나로 만드는 산 큰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있어서 분열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믿지 못하는 내 마음이 분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일찍부터 반공이란 말로는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반공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로 살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그러면. 반공이 지절로 됩니다. 반공은 건강의 법칙을 지켜서 병이 저절로 없어지듯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니, 반공 그것을 목표로 해서는 아니됩니다. 약을 위주하면 건강이 잘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하는 일을 비평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생명의 길인 사랑을 강조해서 갈래길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한 말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라의 안보는 올바르게 사는 결과로 될 것이지, 그것을 새삼 부르짖어서 되는 것 아닙니다. 신이 잘 맞으면 발을 잊고 띠가 잘 맞으면 허리를 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 사랑하면 성격과 사상과 기능이 각각 다른 사람들이 서로 잘 합하여 총화가 저절로 이루어지고 총화가 이루어지면 안보는 거기 자연히 있습니다. 마치 건강한 몸에는 병이 침입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행히 병이 난 때는 어떻게 할까? 그때는 물론 약도 쓰지만, 약을 쓸수록 약보다는 정신에 치중하여 건강의 근본 되는 원기를 기르기에 전념해야 됩니다. 약의 종이 되면 결국 병에 못 견디어 죽습니다. 나라 일도 그렇습니다. 법과 제도를 강조하여 총화안보를 얻으려 하면 뜻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점점 반대의 결과만 나기 쉽습니다. 사랑은 결코 사랑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강요 아니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비록 악이라 하더라도 강제로는 제거하려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강제하면 선도 벌써 선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이 간단 명료한 진리를 사람들이 하지 않기 때문에 목적은 서로 선하면서도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싸우면 이익을 보는 것은 악마뿐입니다.
나는 내 말이 옳은 것을 확신합니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만은 나 자신 속에 어떤 감정도 치우친 욕심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지장사 기언야선’(人之將死 其言也善)이라, 내 덕이라기보다는 내 나이가 말을 합니다.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바라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내 인생이 스스로 부족한 인생임을 압니다. 그런 마음에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될수록 조용한 마음으로 세상을 내다보아서 그 뵈는 바를 말하기로, 마치 조그만 시내에 온 하늘과 산이 다 비치되 조금도 거기 더하는 것도 도둑해내는 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부족이 나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내 말을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장자가 말하기를 경(敬)으로 효(孝)하기는 쉬우나 애(愛)로 효(孝)하기는 어렵다, 애(愛)로 효(孝)하기는 쉬우나 어버이를 잊기는 어렵다, 어버이를 잊기는 쉬우나 어버이로 하여금 나를 잊게 하기는 어렵다, 어버이로 하여금 나를 잊게 하기는 쉬우나 천하를 잊게 하기는 어렵고, 천하를 잊어버리기는 쉬우나 천하로 하여금 나를 잊어버리게 하기는 어렵다 했습니다.
제발 국민이 정부를 잊어버리고 정부가 국민을 잊어버릴 만큼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잘 맞는 옷이 내 몸을 잊어버리게 하듯 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이상론이라 공상이라 하지 마십시오. 이상론이라면 법을 족집게같이 만들어 분열을 뿌리째 뽑겠다는 것도 이상론이요, 공상이라면 전쟁을 하여 나라 대적의 씨를 없이하겠다는 것도 공상입니다.
그러나 잊어버리게 하는 사랑으로 전체가 사는 것은 우리들의 집에서도 날마다 실지 증거가 되는 진리입니다.
국필자벌이후(國必自伐而後)에 인벌지(仁伐之)라, 나라마다 스스로 제가 저를 친 다음에야 남이 치게 됩니다. 우리끼리 서로 분열이다, 분열이다, 시비하고 찍는 것이 곧 나라의 밑을 찍는 일입니다. 그렇게 말할 때 벌써 스스로 나라를 버리고 밖에 선 것입니다. 제가 나라를 버리면 나라도 그를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늙은 아버지 눈에는 몹쓸 자식 하나도 없습니다. 나라에서는 서로서로가 다 늙은 어버이가 되고 어린자식이 되어야 합니다.
殷鑑不遠
은감불원(殷鑑不遠)이라, 재하후지세(在夏后之世)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감(鑑)이란 거울입니다. 은(殷)나라 사람이 나라를 하는데 거울처럼 들여다보아서 교훈으로 삼을만한 것은 결코 멀리 있는 것 아니라, 바로 그 은나라, 서기전에 있다가 은한테 망해버린 하(夏)나라 때의 일에 있다, 하는 말입니다. 그 말을 오늘 우리에게 가져다 쓴다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한감불원(韓鑑不遠)이라 재월남지망(在越南之亡)’이라. 또 전차(前車)의 복철(覆撤)은 후차(後車)의 계(戒)라. 앞에 가던 수레의 엎어진 것은 뒷 차의 경계가 된다 하는 말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에 급작이 위기가 닥쳐온 것은 월남의 멸망 때문입니다. 월남은 우리 앞에 가다가 엎어진 차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경계로 삼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여러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마는 지금 우리의 총화안보를 부르짖는데 비추어 한 가지만을 여기 생각해보려 합니다.
월남의 멸망이라지만 엄정한 의미에서는 월남의 멸망이 아니고 티우 정부의 멸망입니다. 그 이유는 월남은 멸망할 수 없습니다. 나라는 영원히 산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라도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정부는 망해도 민족이 있는 한 나라는 다시 일어섭니다. 그것은 나라의 뿌리는 정부에 있지 않고 민족에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은 산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생명체기 때문에, 한때 정치주권을 잃는 수가 있어도 마침내는 그것을 다시 찾아 제 힘으로 제 주권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티우의 정권이 망하고 공산권이 섰지만, 그 국민이 언제까지고 그 모양대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그 안에서 자유의 정신이 일어나 민중의 자유를 찾아 세우는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나는 월남의 부활을 확신합니다. 반드시 월남의 일을 자세히 알아서가 아니라 인간성을 믿기 때문이요 생명의 뜻 곧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티우는 망했습니다. 그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망했습니다. 차라리 죽었더라면 망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망케 하고도 구차히 살겠다고 도망해 나온 고로 정말 망했습니다. 노자는 ‘사이 불망자수’(死而不亡者壽)라, 죽어도 망하지 않는 이가 정말 오래 산다 했습니다. 예수의 말씀으로 한다면 죽었어도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한다 그 말입니다. 티우는 살았지만 망했습니다. 이제라도 자기의 민족과 인류와 하나님을 저버린 죄를 원통히 회개하여 새로 나는 체험을 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는 한 그는 영원히 망한 존재입니다. 이미 제 민족과 양심을 저버린 이상 천지간에 어디에 있을 곳이 있겠습니까? 영국 가도 영국인이 아니요 미국 가도 미국인이 아닙니다. 민족의 재산을 도둑해 가지고 나온 것으로 어디가 목숨이 붙어있다 해도 인간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관용을 베풀고 동정을 해주고 싶어도 받을 수 있는 인간성이 없어졌습니다.
그럼 그는 왜 그렇게 망했습니까? 첫째는 위에서 말한 대로 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 스스로 살았노라 할 때에 갖은 수단을 써서 정권을 쥐었고 그 잘못을 책망하고 자유를 찾겠다 반항하는 민중을 탄압했으니만큼, 양심이 있다면 일이 실패되어 나라가 위태해졌을 때에 책임을 지고 민중으로 더불어 죽기까지 같이 지켰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민중이 배척하여 마땅히 나갔어야 할 때는 악착같이 붙잡고 아니 나갔다가, 이제 정말 의리로 보아 마땅히 죽기로서 남아 있어야 할 때는 비겁하게 빠져나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지간에 있을 곳이 없어졌습니다. 그가 만일 마지막에라도 민중으로 더불어 같이 죽었던들 그 큰 죄의 용서를 받고 오히려 민중의 가슴속에 있을 곳이 있었겠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정말 영원히 헤매이는 벌 받은 존재가 됐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가 살았을 때 민중이 배척했던 것이 당연하고, 이제 그 월남은 망했더라도 그 자유와 정의의 투쟁에서 티우의 손에 죽었던 수많은 민중들은 도리어 역사 속에 길이 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혹은 몸이 다 죽은 다음 정신이 살았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할지 모르지만, 그런 믿지 않는 마음과는 인생과 역사를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다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자기의 정신적 후계자를 하나도 남긴 것이 없는 점입니다. 그는 몇십 년 동안 도둑질을 한 것이지 결코 정치를 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참 의미의 나라 일을 했다면 반드시 그의 후계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는 비록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 후계자들이 그의 정신을 이어 반드시 일어섰을 것입니다. 성공 실패가 문제 아닙니다. 정신은 성공 실패와는 상관없이 반드시 아들을 낳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월남이 망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두 놀라고 슬퍼하는 것은 이 점입니다. 얼마나 악하고 허망한 정치를 했으면 그렇게도 후계자가 하나도 없을까? 이날껏 그 참혹한 싸움을 싸우다가 나중에 이렇다 할 반항전 하나 없이 모래가 물 속에 풀어지듯 망해버리는 것은 그가 어떻게 알속 없는 인간이었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절대로 혼자서는 못합니다. 정치가는 계속 아들을 낳아야 합니다. 몸은 한정이 있고 정신만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지켜가는 나라의 아들은 정치하는 자와 그 민족 사이에서 나옵니다. 민중은 마치 어머니와 같습니다. 정치가가 나라를 참으로 사랑하면 민중 속에서 자꾸 나라의 아들이 나옵니다. 티우가 제가 죽어도 계속해서 나라를 지켜줄 나라의 아들을 낳지 못한 것은 그가 민중을 착취만 해먹고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부려만 먹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내가 아니라 종이요, 거기서는 아들이 날 수 없습니다. 티우의 죄는 이 점에서 극대에 이릅니다. 저만 망했을 뿐 아니라 나라까지 망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민중은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의 씨를 품기 때문에 마침내는 그 아들을 다시 낳고야 말 것입니다. 마치 꿀벌들이 그 여왕이 불행히 죽었을 때는 임시로 비상수단으로 왕대를 만들어 여왕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퍽 힘들 것입니다.
이것이 월남이 온 세계가 놀라도록 뜻밖에 맥없이, 그러기 때문에 참 더럽게 망한 가장 큰 원인입니다. 물론 나라의 아들이 되는 씨는 반드시 정치가만이 낳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가의 역사적 책임을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사실은 옳게 되는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그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재권이 강하면 강할수록 인격과 인격의 결합을 방해하기 때문에 나라의 아들이 배태되기가 매우 힘듭니다. 진시황 같은 것을 극대로 확대시키면 민족은 정신적으로는 대가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전제 독재자의 정권이 대개 수명이 짧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씨알 여러분! 일하는 꿀벌은 근본이 여성입니다. 씨알도 여성입니다. 평상시에는 일만 하지만 비상시에는 나라를 위해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알을 낳아야 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정치가 불행히 옳게 되지 못하는 때가 있더라도 역사의 뿌리가 스스로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단 말입니다.
골고루 함
그러나 국민총화 안보를 말하는데 있어서 아직도 가장 중요한 한 말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 없이는 모든 말이 다 소용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데 가장 어렵습니다. 그러나 또 가장 쉬운 일입니다. 즉 다시 말한다면 할 마음만 있으면 아주 쉬운 일이요, 그렇지 못하면 끝까지 빈말로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이것이 빈말로 그친다면 그 밖의 모든 말이 빈말이 되고 맙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골고루’라는 말입니다. 화(和)는 고르게 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먹을 것을 골고루 먹어야 합니다. 국민을 골고루 먹이지 않고 총화하자는 것은 어리석은 말입니다. 한편에는 짐이 되도록 지나친 부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생명유지의 필요량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라를 지키라니, 이미 도둑맞은 것도 분한데 또 그 도둑맞은 것을 지켜달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총화가 됩니까?
그다음 권력을 골고루 가지는 일입니다. 사람은 살자는 욕망은 같은데 그 받아가지고 나는 육체와 정신의 능력에는 차이가 많습니다. 사회 제도는 본래가 이 점을 생각해서 모든 사람이 골고루 살아가게 하자는데 목적이 있지만 실제에는 그와 반대로 적은 수의 사람만이 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고 대다수의 사람은 그들의 지배를 받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밖의 모든 것에도 차별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차이가 심할수록 총화는 어렵습니다. 그런 때에 아무리 국가의 위기를 말해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총화의 가장 바르고 빠른 길은 사회의 상류층의 사람들이 자진해서 자기 부와 권력을 내놔서 골고루 가지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려면 당장에 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행하지 않고 총화를 외치는 것은 마치 나의 99마리의 양을 채워 100으로 하기 위해 너의 한 마리밖에 없는 것을 내놓으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씨알 여러분, 나는 여러분 편에 섭니다. 부자와 권력가들이 그 쉬운 것을 하지 않는 때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골고루 나눠가지기 전엔 안보도 총화도 없다 한다면 그것은 공산당의 하는 일입니다. 폭력으로라도 그것부터 하잔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런다면 우리의 공산당과 싸우는 의미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폭력으로는 그것이 되지도 않고 한다 해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선한 우리 씨알이 참고 양보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속담에 독을 보아서 쥐를 못 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쥐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마땅히 차지해야 하는 부분까지 가져가고 우리를 영원한 가난과 종살이 속에 두려는 저 특권층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당당히 제해 버릴 권리가 있지만 나라를 보아서 차마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쥐처럼 꾀있게 늘 나라 뒤에 숨습니다. 그러므로 밉지만 나라를 보아 참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억울하지만 사람의 정신은 거의 무한이어서 심한 고난에도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해 싸우다가 사나운 공산당에게 둘 다 나라와 함께 망하는 것보다는, 한때 억울을 참고 양보해서 나라를 건져놓아 우리와 쥐 무리가 다 살게 하는 것이 어진 씨다운 일입니다. 우리는 보기는 낮아도, 낮기 때문에, 하늘마음을 받아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나라 주인의 심정을 발휘하여주면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그 쥐 같던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우리에게 돌아오게 하는 힘을 주십니다.
씨알 여러분,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여러분은 나를 그 특권계급의 앞잡이라고 배척하겠습니까? 나는 여러분이 결코 그러지 않고 나를 믿어 줄 줄 압니다. 그것은 내 하는 말이 결코 내 말이 아니고 나보다 크신 이들이 다 증거 해 주신 말씀인 줄을 여러분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폭력은 대적하는 자 앞에서는 굉장히 강하나 그것을 사랑으로 받는 자 앞에서는 의외로 약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지금 우리를 사정없이 압박하던 그들도 우리가 자기네의 죄 값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신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우리를 알아줄줄 믿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두 겹의 위기를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땅의 나라의 위기요, 또 하나는 하늘나라의 위기입니다. 이기는 자는 둘을 다 차지하지만, 지는 자는 둘을 다 잃습니다. 여러분은 땅에 나라의 권리를 지키려다가 두 나라를 다 잃으렵니까? 땅에 것을 희생하면서라도 정신의 나라를 지키려해서 둘을 다 상으로 받으렵니까? 나는 여러분의 속에 하늘시민의 자격을 품은 줄을 압니다.
그러나 또 부와 권력을 쓰고도 남도록 가지신 특권층 여러분들! 여러분은 그래 정말 저의 의젓하고도 불쌍한 씨알들의 피의 부르짖음을 들은 후에야 꼭 마음이 감동되겠습니까? 나는 여러분이 정말 나라를 사랑하고 인생을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조금 생각해 보시면 곧 나라 건지는 길이 아주 쉽게 여러분께 맡겨진 것을 깨닫게 될줄 압니다. 이 썩어질 특권을 버리면 정말 썩지 않을 특권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것을 연연해 못 놓으시면 영원한 거지와 헤매는 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속고 있습니다. 미혹시키는 자의 ‘영원이란 없다’ ‘현실 뿐이다’ 하는 말에 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쥔 것을 버리십시오. 총화는 선 자리에서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 5천년 역사의 길바닥을 굴러온 저 씨알들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곧 여러분 자신의 또 하나의 모습임을 모르십니까?
둘이 아닙니다, 다 씨알입니다. 여러분 다들 안녕!
씨알의 소리 1975.5 43호
전작집; 8- 279
전집; 8-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