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笛晩風聽不得 (일저만풍청부득)
白鷗飛下浪花前 (백구비하랑화전)
젓대(대금)소리 늦바람으로 들을 수 없고,
흰갈매기만 물결 좇아 꽃을 향해 날아든다.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에는 선비와 기녀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그림이 많은데 <주유청강>도 그 중 하나죠~
수염도 나지않은 양반자제 둘과 수염난 선비 한 사람이 한강에 작은 배를 띄웠습니다.
한 청년이 묵묵히 노를 젓고, 두 어린 선비는 기생을 희롱하는 와중에 소년과 기생 한 명이 악기를 연주합니다.
노 젓는 물소리와 음악을 들으며 선비는 먼 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소년이 부는 악기는 대금, 기생이 부는 악기는 생황입니다.
생황은 원래 조롱박에 대나무관을 꽂아 부는 악기로 국악기 중에서는 유일하게 화음을 낼 수 있는 관악기라고 합니다.
박이 잘 깨져 나무나 금속으로도 만들었다고 하네요.
『수서』와 『당서』에 생황이 고구려와 백제의 음악 연주에 사용되었다고 되어 있어 우리 땅에서 연주되어오던 악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서기 725년에 만들어진 상원사의 종에도 이 악기의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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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석꾼 오부자네 스물네칸 기와집을 짓는 도편수 황각중은 한 아이를 유심히 내려다봤다.
부잣집이 큰 집을 지으면 점심상이 지게로 바리바리 오고 새참도 적잖게 와 월천교 다리 밑의 거지 아이들이 파리떼처럼 모여든다.
오부자가 자자손손 살아갈 보금자리를 지을 때는 덕을 쌓아야 한다며 때마다 거지몫 음식도 만들어 보냈다.
다른 거지 아이들은 오로지 먹을 것에만 눈독을 들이며 아귀다툼을 벌이는데 그 아이만은 품위를 지킨다.
특히나 먹을거리보다는 집 짓는 일에 온 관심을 쏟는 것이 도편수의 눈길을 끌었다.
목수들한테 일도 물어보고 대패며 망치·끌 등의 연장도 신기한 듯 만져보더니 어렵게 망설이다가 도편수인 황각중에게도 다가와 먹줄의 용도를 물었다.
하루는 그 아이가 못 박는 망치를 들고 와 여기서 훔치지 않았다는 듯이
“이거, 대장간에서 며칠 풀무질해주고 얻은 거예요”
신고를 했다.
“좋구나.”
도편수는 빙긋이 웃으며 망치와 못통을 허리에 차는 연장띠 하나를 그에게 줬다가 빼앗고는, 다시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새 연장띠를 건넸다.
아이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아이는 사또가 칼을 찬 듯이 목수 연장띠를 허리에 차고 으스댔다.
이튿날부터 그 아이는 버려진 굽은 못을 주워 망치로 펴서 허리에 찬 못통에 넣고, 쓰다 버린 널빤지를 모아서 저녁이면 월천교 다리 밑으로 가져갔다.
며칠 뒤, 도편수 황각중이 그 아이를 불러 유지에 싼 뜨끈뜨끈한 찰떡 세개를 줬더니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먹지도 않고 품에 넣어 쏜살같이 달아났다.
두어식경이 지나서야 아이가 다시 돌아왔다.
“너 어디 갔다 왔냐?”
“월천교 다리 밑에요.”
“왜?”
그 아이 대답이 도편수 가슴을 때렸다.
“제 친구가 심한 고뿔에 걸려서 밥도 못 먹고 누워 있는데 뜨뜻한 찰떡을 줬더니 잘 먹더라고요.”
“너는 몇살이냐, 이름은?”
“열한살이고요.
이름은 공진이라 해요.”
“네 부모님들은?”
도편수 황각중은 무심코 묻고는 금방 후회했다.
열한살 거지 공진이는 대답을 못하고 하늘만 쳐다봤다.
결국 돌아서더니 눈물을 훔쳤다.
“그래그래,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구나.
미안허다, 공진아.”
아이는 금방 웃는 얼굴로 돌아서더니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 안되는데….”
며칠 후, 도편수가 물었다.
“공진아, 판자 조각은 불을 지피겠지만 굽은 못은 주워서 뭣에 쓰려는 게냐?”
공진이는 한숨을 쉬더니만
“거적때기 움막 속에서 동지섣달을 나다 보면 몇사람은 죽어요.”
공진이는 아이답지 않게 또 한숨을 쉬고
“작년에도 넷이 죽어 눈으로 덮어놓았다가 이듬해 땅이 녹자 산에 묻었어요.”
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제가 다리 밑에 판자로 집을 지을 거예요.”
도편수 황각중은 깜짝 놀랐다.
다음날 공진이 보이지 않기에 점심 남은 걸 싸서 월천교로 향했다.
어른 거지, 아이 거지 할 것 없이 모두 달려들어 흙벽돌을 옮겨 벽 쌓을 기초를 다지고 어디서 주워 왔는지 크고 작은 판자들을 늘어놓았다.
열한살 공진이가 이곳에서는 도편수로 진두지휘했다.
공진이가 황각중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보자기에 싸온 점심밥을 건네주자 또 거적때기 움막 속, 아파 누운 친구에게 들고 갔다.
어림잡아 열대여섯명의 거지 떼들은 대여섯살 코흘리개부터 벽돌 하나도 들지 못하는 늙은이까지 모두가 삐쩍 말라 피골이 상접했다.
황각중은 오만가지 생각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대설이 사흘이나 남았는데 새벽부터 눈이 펄펄 휘날렸다.
“서설(瑞雪)입니다요.”
“오 대인, 천년만년 이 집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상서로운 눈이 내립니다요.”
그날은 스물네칸 오부자네 대궐같은 기와집 상량식 날이다.
소 한마리 잡고 전 부치고 국 끓이고 떡하고 술독을 열고….
원래 상량식 주인공은 집주인이 아니라 목수들과 도편수다.
그들은 장롱 속에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훤하게 나왔다.
동네사람들이 다 모이고 거지들도 모두 왔다.
도편수 황각중이 비단 마고자를 입고 두리번거리더니 거지 하나를 붙잡고 공진이를 찾았다.
그 거지는 대답을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더니
“어제 친구가 죽었어요.
짐승들이 뜯을까봐 공진이가 돌을 모아서 덮고 있어요.”
며칠 전에 도편수가 거적때기 움막 속을 슬쩍 들여다봤을 때 귀신처럼 누워 있던 아이 모습이 눈에 선했다.
거지들과 구석에 앉아 술만 퍼마시는 도편수에게 오대인이 술잔을 들고 찾아왔다.
“여보게 도편수, 오늘같이 좋은 날 웬 눈물인가!”
이튿날, 판자와 기둥을 가득 싣고 도편수와 목수 여섯을 태운 달구지가 월천교 밑으로 갔다.
덜 마른 흙벽돌이 얼었다 녹으며 거지들이 짓던 집이 와르르 무너진 자리에 도편수와 여섯목수가 달라붙어 뚝딱뚝딱 판잣집을 짓기 시작했다.
사흘째 반나절도 안돼 판잣집이 완공됐다.
오대인이 판자와 기둥을 대줬을 뿐 아니라 입주식에 돼지 한마리를 잡았다.
거지들은 엎드려서 울기만 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