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부르스
필봉 최해량
처음 듣는 대중가요가 전파를 타고 흘러나온다. ‘나도 한때는 잘 나갔다. 오늘 밤은 내가 쏜다. 더 멋진 내일을 그리며 사나이의 인생길은 한 방의 부르스’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도 가사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지금의 내 모습은 그저 그렇지만 그래도 왕년에는 한가락 했다고 자랑들이다. 지금도 한방을 준비하고 있으니 머잖아 성공하리라 호언한다. 그렇다. 성공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자 선생의 말이 아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십대에 공부하고 30까지는 먹고 살 터전을 마련하며 40이면 다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탄치 않다. 죽어라 공부해도 바늘구멍 취업문은 열리지 않고 어렵사리 얻은 직장에서도 승승장구하기란 쉽지 않다. 자리를 잡았나 싶었는데 내려가라고 독촉한다. 오죽했으면 인생을 고해라 했을까! 그 힘든 세상에 위로를 주는 노래가 한방 부르스이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있기까지 나는 늘 한방 부르스를 꿈꿔왔다. 사춘기가 막 오던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아버지께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시며 이유를 물으셨다. 중학교, 고등학교 3년씩 다닐 필요가 없다. 검정고시로 1, 2년 공부하면 충분히 졸업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가 크게 혼나고 야단만 잔뜩 맞았다. 그렇지만 나의 한방 부르스는 계속되었고 절정을 맞은 것은 결혼 초였다.
깨를 볶으며 고소한 기름이 줄줄 흐르던 시절, 아내에게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교사는 내 체질이 아니다. 아이들과 씨름하며 살 수 없으니 더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찾겠다며 아내를 설득했다. 아내도 기꺼이 승낙해 주었다. 학교에 가서 사직원을 제출했더니 자상한 교감 선생님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며 말렸지만 내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사직을 하고 온실 밖으로 나온 나는 많은 경험을 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내 의지대로 되지도 않았다. 학문의 길 대신 사업을 시작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 공해방지 시설을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산업의 전성기를 구가할 때였다. 굴뚝산업의 발달은 맑고 푸른 하늘은 잿빛으로 만들었고 맑은 물은 시커멓게 변하여 악취를 풍겼다. 정부는 환경 파괴에 대처하기 위하여 강력한 법을 만들어 단속하기 시작했다. 지인들은 시기적으로 딱 맞는 사업이라며 사업이 성공할 거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어설픈 초보 사업가들은 제대로 된 공사 하나 발주 받지 못하고 세월만 죽이고 있었다. 기업도 눈가림식 공사를 원했다. 계속 버틸 힘이 없던 우리는 두 손을 들어야만 했다.
그 이후 모든 것을 정리한 나는 취업을 했다. 자그마한 개인 기업에서 생산과 업무를 함께 관리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곳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자동차 부품은 수지타산이 좋지 않다고 스피커 부품만 생산했다. 거래처는 국내 굴지의 ○○전기와 한일 합작회사 단 두 곳이었지만 생산 라인이 한계에 이를 정도였다. 중국은 아직 이 부품을 생산할 능력이 없어 우리나라에서 수입해 가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호조건의 주문이 들어오면 이를 놓칠 수 없어 쉴 새 없이 생산했다. 거래처에서는 납기를 지키지 않는다고 생산 책임자가 내려와 라인을 지키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근로자들을 설득하여 잔업을 시키고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겨우 납기를 맞출 수 있었다. 입사 당시보다 외형이 거의 두 배정도 올라 새로운 공장을 신축할 정도로 회사 형편이 좋아졌지만 내 건강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급기야 병원에 입원을 하고 수년간의 긴 투병을 거치며 신앙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치유되기까지 질병과 모진 싸움을 해야만 했다.
몸이 회복될 즈음,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회사로 돌아가면 어렵사리 얻은 신앙의 기본도 지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친구가 복직 시험을 치러가자고 했다. 당시 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라 많은 교사들이 학교를 떠났고 빈자리가 많았다. 그렇게 다시 학교에 돌아옴으로 9년간의 긴 외도는 종지부를 찍고 나의 방황은 끝이 났다.
나의 한방 부르스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홍수환 선수의 4전 5기 드라마는커녕 한방의 펀치조차 제대로 날려보지 못했다. 그리고 한방 부르스는 헛발차기이며 사상누각을 쌓으려는 몸부림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낮아진 마음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내딛는 것이 승지의 길임을 알게 되었다. 교단에 돌아온 이후, 이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전념했더니 기적같이 승진을 하게 되었고 학교장을 마지막으로 퇴임할 수 있었다.
노래 소리가 더 크게 귓전을 때린다. 사나이의 인생길은 한 방 부르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순의 나이에 이 노래는 감회를 새롭게 하며 마지막 욕망을 깨우고 있다.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내 인생의 마지막 과업, 잠들지 않고 꼭꼭 숨어있는 소망이다. 2017, 2018년에 걸쳐 아프리카 땅에 교회를 다섯 개 짓고 왔다. 거기에서 배움에 굶주린 아이들의 가련한 눈빛을 보았다. 이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 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이루어질지 장담할 순 없지만 차근차근 잘 준비하여 마지막 한방 부르스는 제대로 날리고 싶다.
첫댓글 인생 제2막 제대로 한방이 터지길 기원합니다. 한방부루스를 꿈꾸며 한 바퀴 돌아온 것도 헛된 걸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게 밑거름이 되어 아이들을 더욱 사랑해 주며 가르치고, 낮은 마음으로 한 계단씩 내딛는 것이 승자의 길이라는 깨달음 까지 얻게 되었고, 학교장의 영예까지 얻었으니 값진 수업료를 지불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필봉 선생님의 전반기 인생역정을 엿볼 수 있네요. 교단에서 시작하셨고, 다른 길로 가셨다가 교단에 복직하신 특별한 삶을 사셨네요. 많은 경험이 글 쓰기의 밑거름이 됩니다. 좋은 글 기대됩니다.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한방 부루스 재미있는 글제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누구나 꿈꿔보는 대박 타령 허황된 꿈일수도 있지만, 홍수환 선수처럼 칠전팔기 한방의 부루스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건강을 치유해 주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전도와 사회사업으로 남은 여생을 사랑과 보람으로 사시는 선생님이 존경 스럽습니다. 뜻 하신바 소망이 모두 이루어 지시길 기원드리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의지대로 직장을 바꿀 수 있는 용기,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것 같습니다. 그래도 복직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정진을 한 덕분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곁길을 잠시 돌아왔지만 그곳에서 본 삶의 다른 면이 인생을 풍요하게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직장생활의 무미건조한 현실을 과감히 탈피하고 여러사업을 하신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깊는 신앙심으로 일하셨고 학교장까지 역임하시고 명예롭게 퇴임하신 후 아프리카까지 가셔 학교를 지어주신 깊은 뜻을 저위에 계신분이 아시고 도와주실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두 분이 참 의견이 일치하여 잘 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친구와 서업을 하겠다고 사표를 내고 온 남편을 말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뜻을 따라준 박선생님도 참 존경스럽습니다. 건강을 찾아 다시 복직을 하셔서 노력하신 보람으로 교장퇴임 하신 능력,하느님 뜻입니다.가르치시던 그 길을 찾아 하느님 사업을 달성하기 위해 아프리카까지 가셔서 학교를 지어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신 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맡기시는 분의 뜻을 이행하시는 선생님 정녕 하느님의 참 도구로 살고계심이 부럽습니다.
한 권의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인생은 전환점이 있고 고비가 많은데.. 성실함과 가족간의 사랑으로 극복하신 것 같습니다.
신앙심으로 더 큰 꿈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교사는 복직할 기회가 주기적으로 온다는 말을 확신하며 사직을 하고 임용고사를 쳐 복직을 했습니다. 아프리카땅에 교회를 짓고 오신 선생님의 깊은뜻에 박수를 보냅니다. 선생님의 소망을 꼭 이루시기를 기원하며 잘 읽었습니다.
사나이 인생길은 한방 부르스 맞습니다. 9년간의 외도를 끝내고 교직에 잘 돌아 오셨습니다. 앞으로 원하시는대로 학교를 세우시기를 기원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사나이 가는길을 그 누가 막으랴. 인생은 때로 도전정신이 필요합니다. 젊은 날의 무모한 도전을 경험했으니 이제 원숙하고 지혜로운 도전의 방법을 터득한 것 같습니다.한국에서 이루지 못한 한방 부르스를 아프리카 땅에서 이루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삶의 열정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멋있으십니다.아무나 그런 길을 가지는 못할것 같습니다. 인생2막 한방부루스 꿈꼭 실현하실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떤 일에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 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업을 하시면서도 너무 열정적으로 매진하시다가 건강을 잃으셨나 봅니다. 건강문제만 아니었으면 한방을 멋지게 날릴 수 있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9년 후에 다시 돌아오신 그 자리가 선생님을 꼭 필요로 하는 자리였던 모양입니다. 중간에 9년을 쉬시고도 교장퇴임을 하셨으니 그것도 한 방입니다. 선생님의 외도를 묵묵히 응원해주신 박선생님도 한방.이십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